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집단 중 하나는 의료인이다. 서울대 보라매병원 공공의료사업단 이진용 교수가 지난해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문직종 직업인에 대한 신뢰도’ 중 가장 높은 것은 의사였다. 응답자의 90.7%가 의사를 신뢰한다고 대답했는데 초·중·고 교사에 대한 신뢰도 89.3%보다 높은 수치다. 한국CSR연구소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조사한 바를 보면 병원에 대한 신뢰지수는 가족, 친구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가족에 대한 신뢰가 6.14점, 친구들에 대한 신뢰가 5.24점이었는데 병원에 대한 신뢰지수가 4.16점이었다.

그러나 신뢰도에 대한 조사를 그대로 신뢰할 수만은 없는 이유가 있다. 정지태 고려대 의대 의인문학교실 교수는 “개별 의사에 대한 신뢰도는 높지만 의사 집단에 대한 신뢰도는 땅에 떨어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들이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그러니까 환자로서 찾아가는 의사에게는 상당한 신뢰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의사 집단을 신뢰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 교수는 현재 한국 사회를 ‘불신사회’로 정의하면서 “미디어에서 계속되는 의료인 관련 사건·사고 보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책임감을 크게 보이지 않는 의사들에 대한 불신 역시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가수 고(故) 신해철의 장 협착 수술을 집도하다 사망에 이르게 한 의사 강모씨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대표적인 예다. 강씨는 신해철의 죽음 이후에도 진료활동을 이어갔다. 병원 이름을 바꿔가며 진료를 하다가 다른 환자를 또 사망에 이르게 한 뒤에 지방 종합병원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지난 5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그의 의사생활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한 번 면허를 취소당했던 의료인이라고 하더라도 재교부 신청을 하면 대부분 받아들여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해까지 면허 재교부 신청을 한 의사 41명 중 40명이 면허를 재발급받았다.

이 문제는 날이 갈수록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로 불거지고 있다. 몇 달간 끊임없이 적발된 대리수술 사건은 시민들의 의료기관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을 키우는 중이다. 의사면허가 없는 비의료인이 의사를 대표로 내세워 개설하는 ‘사무장 병원’은 꾸준히 문제가 되어왔지만 최근 들어 제도적인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료 사고 문제는 개별 의료인에 대한 신뢰도까지 낮추는 데 영향을 준다.

의사와 의사 집단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진다는 것은 곧 공중보건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다는 의미로 큰 문제가 된다. 정지태 교수는 “의사는 한 사회 공중보건의 가장 중요한 전문가로서 의사 집단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다는 것은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정치인, 법조인에 대한 신뢰보다 의료인에 대한 신뢰가 전반적으로 높은 것이 일반적일 정도로 공중보건은 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주요 요소다.

징계 사유 공개하는 텍사스의 면허 관리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비록 많지는 않지만 전문가들 중에는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의사 출신으로 국회에 입성한 박인숙 자유한국당 의원(서울 송파갑)도 그중 하나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박 의원은 벽면에 가지런히 꽂힌 서류철에서 하나의 문서를 꺼내 먼저 보여줬다. 문서 제목은 ‘Texas Medical Board Bulletin’, 미국 텍사스주 의료위원회의 뉴스레터였다. 박인숙 의원은 미국 텍사스주에서 발급받은 의사면허도 가지고 있다.

“이 의료위원회가 하는 일은 어찌 보면 간단해요. 의사들을 교육하고 관리하고 감독하는 겁니다. 뉴스레터는 의사들에게는 꼭 발송되고 일반인 누구라도 홈페이지나 위원회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무슨 내용이 있냐 하면 먼저 의료법 등에 대한 변경 사항을 알리고 의료인에게 제기된 정식 고소 사건을 공개합니다. 뒤로 짧게는 몇 쪽 길게는 몇십 쪽에 걸쳐서 일일이 의사 이름과 면허번호, 의료활동 지역과 위반 사항, 징계 처분 결과가 쭉 나옵니다.”

박 의원이 가지고 있던 서류에는 근 20쪽에 걸쳐서 의사 이름과 징계 처분 내용이 나열돼 있었다. 텍사스주 스프링이라는 지역의 앨리스 잉그램이라는 의사는 특별 목적의 시험을 통과하고 3년 내 단기간 수련과정을 수료하기 전까지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의료 활동을 정지해야 하는 징계를 받았다. 벌금 3000달러(약 335만원)도 함께 부과됐다. 이유는 그가 두 환자에게 잘못 시행한 진료 때문이다. 한 환자의 출산예정일을 잘못 예측해 제왕절개를 하게 했고 자궁외 임신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게 메토트렉세이트 약물을 잘못 투여했다는 이유에서다.

“전부 다 그런 내용이에요. 여성 환자에게 어떻게 성희롱했는지, 그래서 어떤 징계를 받았는지 적혀 있고 심지어 환자에게 돈을 빌린 의사에게 벌금을 부여한 항목도 있어요. 모두 의사 윤리를 위반한 의사들이죠.”

텍사스주 의사들은 10년에 한 번씩 의사면허를 재발급받아야 한다. 자동차 면허처럼 최소한의 자격만 갖추면 재발급해주는 것이 아니다. 가장 우선적으로 의료 활동을 지속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위와 같은 징계 처분을 받지 않았거나 받았더라도 성실히 의무를 수행했는지를 보고, 정해진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의사 윤리와 최신 기술 등에 대한 상당히 방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하고 나서야 의사면허가 재발급된다.

의료위원회는 이 과정을 총괄하는 관리·감독 기관이다. 의료위원회에 대한 모든 것은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다. 현재 텍사스주 의료위원회 위원은 모두 19명인데 의사는 12명, 일반인은 7명이다. 변호사, 투자회사 사장, 부동산 중개인 등으로 구성된 비의료인 위원들은 위원회의 객관성을 유지해준다. 모든 회의 내용도 공개된다. 일 년에 두 번씩 발행하는 ‘뉴스레터’에는 각종 회의에서 의결한 내용들이 빼곡히 담겼다. 올해 7월 발간된 위원회 자료를 보면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한국계 의사 김모씨는 벤조디아제핀 같은 향정신성 의약품을 오·남용해 처방하고 있어 아예 면허를 중지당했다. 그의 의료행위가 공공보건에 지속적인 위협(a continuing threat to public welfare)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무자격·무면허 대리수술’을 한 병원을 고발하기 위해 대검찰청을 찾은 최대집 의협 회장. ⓒphoto 뉴시스
‘무자격·무면허 대리수술’을 한 병원을 고발하기 위해 대검찰청을 찾은 최대집 의협 회장. ⓒphoto 뉴시스

5년마다 면허 갱신하는 영국

미국 텍사스주에만 이런 제도가 있는 게 아니다. 의사면허 관리제도에 대해 오래 연구해온 안덕선 대한의사협회(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소장은 “사실 전 세계에서 의사면허를 관리하지 않는 곳은 동북아시아 3개국, 즉 한국·중국·일본 정도에 그친다”고 말했다. 미국과 캐나다, 한국의 의사면허를 모두 가지고 있는 안덕선 소장은 캐나다 의사면허를 사용하지 않고 중지시켜놨다고 한다. 캐나다에서는 의료 활동을 하지 않는 의사들의 경우 면허 사용을 중지할 수 있다.

“면허를 가진 모든 사람이 의료 활동을 하지는 않아요. 제가 조사했을 때는 캐나다 퀘벡주에서 1만7000여명의 의사가 활동 중이었는데 이 중 10~20% 정도는 면허를 비활성화시켜뒀습니다. 만약 의사로 다시 활동하고 싶다면 몇 달의 교육을 거쳐 평가를 받은 다음에 활동할 수 있습니다.”

의사면허는 의대를 나와 몇 년간의 수련을 받는다고 평생 유지할 수 있는 자격증 같은 것이 아니다. 의사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능력과 함께 시민의 삶과 건강을 책임지는 전문가로서 엄격한 윤리와 원활한 소통능력 등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의사 교육 자체도 면허증을 취득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의사를 관리·감독하는 기구도 분명치 않고 일일이 터지는 사건·사고를 막는 데만 급급했을 뿐이다.

우리에게 의사면허는 ‘평생 자격증’처럼 여겨지지만 영미권 국가에서는 너무 당연하게도 의사면허는 ‘갱신’되는 것이다. 그 역사는 영국에서 시작됐다. 이미 1894년 영국에서는 현대적인 면허 관리기구인 영국의학협회(GMC·General Medical Council)가 설립되면서 의사면허는 지속적으로 관리받아야 하는 것으로 간주됐다.

“중요한 것은 면허를 관리하는 기관의 독립성입니다. 의학 분야는 그 어느 분야만큼이나 전문적인 분야입니다. 또 의심의 여지 없이 객관적이죠. 비의료인이 대다수인 행정부나 객관성을 잃을 수 있는 정치권이 개입해서는 안 되는 부분입니다. 행정관료와 의사, 학자와 일반 시민까지 다양하게 구성된 영국의학협회는 독립적이고 신뢰받는 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의사들은 5년에 한 번 면허를 갱신해야 한다. 면허를 갱신할 때는 상당한 수준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우선 매년 이뤄지는 평가(annual appraisal)를 받아야 하는데, 이 평가에서 중요한 것은 지식과 기술뿐 아니라 의사소통 능력, 팀워크 같은 태도와 윤리적인 부분이다. 동료·환자의 다면평가도 필요하다. 실제 진료에서 문제가 됐던 부분이 없어야 하고 본인의 건강상태도 점검받아야 한다. 평가에 필요한 항목과 기준이 수십 가지에 달한다. 이 까다로운 심의 과정은 영국의학협회의 규제하에 시행된다.

안덕선 소장은 영국의 면허 관리제도는 단순히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의사와 환자, 의료인과 시민 사이의 신뢰를 증진시키는 일이에요. 면허를 받아 활동하는 의사는 검증된 전문가라는 것을 누구나 믿을 수 있습니다. 의사 입장에서는 더욱 긍정적입니다. 전문성을 기를 뿐 아니라 의료 윤리를 잊지 않고 지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흔히 의사면허 관리제도는 의사들의 반발을 부를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사 사회 내부에서는 의사면허 관리제도에 대해 반감을 보이는 분위기가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정지태 고려대 의대 교수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의협의 중앙윤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예전에는 의료 윤리에 대해 먼저 고민하고 말하는 의사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젊은 의사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윤리학회가 구성되고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윤리위원회에서 자체 징계를 위한 위원회가 열릴 때에도 예전과 다릅니다. 예전에는 솔직히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얘기가 통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제가 생각해도 단호하고 강한 징계 처분이 내려질 때가 많습니다. 문제는 윤리위원회가 내린 결정이 어떤 법적 근거를 갖지 못한다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의사들이 나서 먼저 의사면허를 관리하자는 얘기를 꺼내고 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온 안덕선 소장의 설명이다.

“지난 9월 의협 대표단을 이끌고 인도네시아와 태국을 방문했습니다. 대표단은 대개 우리보다 의료 수준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던 동남아 국가에서 훨씬 더 선진적인 면허 관리기구가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놀랐습니다.”

공무원 3명이 60만개 면허 관리하는 한국

인도네시아에는 의사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인구는 2억6000만명이 넘는데 전문의 수는 3만7000여명에 불과하다. 일반의가 13만명이 넘지만 다 합해도 16만명이다. 그런데도 인도네시아에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면허 관리기구가 만들어져 있다. 2005년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개설된 인도네시아의학협회(IMC·Indonesia Medical Council)는 외부 인사와 정부 관료를 포함한 17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기관의 직원 수만 130명이다. 이곳에서 5년마다 의사면허 갱신 여부를 결정한다.

중요한 것은 면허 관리기구의 운영 방법이다. 안덕선 소장은 직원 수가 130명에 달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면허 관리기구는 직원 수만 200명이 넘습니다. 200명의 직원이 2만명의 의사를 관리합니다. 지금 한국의 보건복지부에서 의사면허와 관련한 업무를 하는 공무원은 3명입니다. 3명이 60만개의 면허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규제를 하는 기관도 여러 곳이다. 의사협회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지지만 법적인 강제성이 없고 보건복지부에서 담당을 하지만 경찰과 검찰에서도 수사가 진행될 때가 많다. 의료사고의 경우에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같은 별도의 기구가 또 있다. 그런데 이 많은 행정기관에서 제대로 된 관리·감독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의학이라는 전문적인 분야를 이해하고 정확히 객관적으로 판단할 능력을 갖춘 인력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각 기관의 목적에 따라 의사면허를 어떻게 관리하고 사건·사고의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지가 달라집니다. 이러면 면허 관리기구 사이에서 긴장감이 생깁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면허 관리기구를 만드는 것인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안덕선 소장은 “지금까지는 의사의 권익을 증진하는 노동조합 형태를 띠고 있던 협회(association)를 공공의 역할을 다하는 위원회(council)로 변모시켜 독립기구를 운영하는 것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아직 의사협회와 정부 행정기관, 시민 사이의 괴리감을 이해하고 거리감을 좁히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있다. 정지태 교수는 “의사면허 관리기구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시민과 행정관료, 정치인들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회에서 의사면허 관리·감독을 위해 내놓은 의료법 개정안을 보면 규제항목을 늘리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안덕선 소장은 “근본적인 문제부터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 윤리를 위해서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의사면허를 박탈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고도 합니다. 사무장 병원에 대해 엄격한 단속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윤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의사면허 관리제도를 개선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의사 집단의 이익을 증진하는 것도, 어느 한 행정기관에 공중보건과 관련된 권력을 몰아주는 것도 아니다. 지식과 기술의 발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한국 의료의 팽창 속도를 잠시 늦추고 관점을 달리하자는 것이다. 의료 윤리를 준수하고 시민사회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공중보건 시스템을 만드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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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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