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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2536호]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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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통신] 비전문가의 상식이 영국을 움직인다

학교도 병원도 소비자인 관리위원들이 최종 결정권자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 런던 교외 뉴몰든 한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킹스턴병원의 직원들. 520병상을 둔 이 대형병원의 최고의결기관은 관리위원회로, 전문가들이 아닌 일반인들, 특히 병원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에 의해 구성된다. photo kingstonhospital.com
영국 사회를 관통하는 화두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 하나가 ‘상식(common sense)’이다. 영국 사회를 찬찬히 보다 보면 프로페셔널한 전문가보다는 아마추어 일반인들의 판단을 더 중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사회 전반에 비전문가인 일반인의 역할이 눈에 띄게 많다. 영국의 일반인들은 생업에 종사하면서 동시에 각종 사회단체나 기구에서 자원봉사 형식으로 참여한다. 그를 통해 나름대로의 사회적 책무를 다한다. 특히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일상생활 현장에서는 반드시 전문가가 아닌 비전문가들이 큰 역할을 한다.
   
   
   영국에는 교육청이 없다
   
   예를 들어 보자. 학교, 병원, 문화기관, 자선단체의 의사결정은 거버너(governor)라 불리는 관리위원들이 맡는데 이들 모두가 자신의 직업을 따로 가진 비전문가들이다. 영국 개별 학교의 정책을 결정하는 관리위원회(governor committee)는 생업을 가진 지방 유지들이 무보수로 자원봉사를 하는 현장이다. 영국 학교는 공공예산으로 운영되는 공립이라도 교직원의 전근이라는 개념이 없다. 개개 학교들이 각각 단독으로 존재한다. 만일 선생님들이 개인 사정에 따라 학교를 옮기고 싶다면 현재 학교에서 퇴직하고 원하는 곳의 학교에 새로 취업을 하는 식으로 이직이 이루어진다. 학교 단위로 취업을 하는 교장을 비롯한 모든 교사, 직원들은 신분보장이 되지 않는 무기한 계약직이다. 교사들은 교장이 임명하고 해임하는데 그 교장을 바로 관리위원회에서 선임하고 해임한다. 관리위원회에서는 예결산이나 학교 운영방안들도 다 다루어진다. 영국 학교의 관리위원회는 한국의 경우와는 달리 자문기구가 아니라 최종 의결기관이다.
   
   그런데 그런 관리위원들이 특별한 전문가들이 아니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필자가 관리위원으로 있는 초등학교 관리위원회도 다양한 직업인으로 구성돼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한 명도 없다. 관리위원이 되기 위한 특별한 자격도 없다. 그냥 동네 학교 발전에 관심이 많아 기여를 하고 싶으면 지방자치단체 웹사이트에 있는 학교 관리위원 희망서를 작성해 올리면 해당 부서에서 연락이 온다. 사무적인 절차를 거쳐서 통과가 되면 추천된 학교 몇 개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 해당 학교 관리위원회에서 연락이 와서 인터뷰를 한 뒤 기존 관리위원들이 승인하면 위원이 된다. 물론 위원이 된 뒤 교육을 받긴 하지만 사전에 무슨 자격증이나 특별한 능력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대개 기존의 관리위원들이 해오던 방식을 따라가면서 업무 파악을 하고 학교 운영에 하나하나 눈을 떠가게 된다. 학교 관리위원들은 대개 야간에 회의를 하면서 학교를 책임지고 운영한다.
   
   영국에는 교육청이라는 학교 관리감독기관이 없다. 물론 불시에 교육표준청(OFSTED·Office for Standards in Education)에서 감독관이 나와서 학교의 교육수준을 판단하긴 한다. 감독관은 감사를 나오기 하루 전에야 통보를 한다. 때문에 학교는 별수 없이 평소 상태대로 감사를 받을 수밖에 없다. 감독관의 감사 예정 통보 시 반드시 학교 관리위원들의 참석을 요구한다. 물론 생업이 있는 위원들이니 갑작스러운 통보에 전원이 나올 수는 없으나 가능하면 많은 위원들이 나와서 직접 감사를 관찰하라고 요청한다. 감사가 끝나면 평가회를 하고 수일 내에 결과서가 나온다. 하지만 감독관은 학교 운영 정책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단순히 교육 시스템이나 교재, 교습 상황을 판단해서 학생들을 얼마나 잘 가르치는지만 평가할 뿐이다. 학교는 순전히 개별 학교 관리위원회와 교장, 교사, 교직원들에 의해 운영된다. 결국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봉사에 의해 학교가 운영 유지된다는 얘기다. 봉사의 질이 좋아지면 덕분에 주민들의 자녀들이 좋은 교육을 받게 된다.
   
   또 다른 예는 병원이다. 2013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끌던 보수당 정권의 개혁으로 영국 국민건강보험(NHS·National Health Service)은 지역공단별로 독립재단으로 변환되었다. 급속히 증가하는 고령인구로 인해 의료비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 위기에 처한 NHS를 구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독립재단으로 독자성을 가지고 경영을 해서 자생하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하면 국가가 관리할 때와는 달리 방만하게 낭비되던 예산이 효율적으로 운용되지 않을까 하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지역의료보험 재단의 핵심적인 결정을 하는 기관 역시 병원 관리위원(governor)들로 이루어진 관리위원회다.
   
   유럽 유일의 한인촌이 있는 런던 교외 뉴몰든 한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킹스턴병원은 인근 32만명의 주민들이 소비자이다. 병상 520개와 정직원 2900명, 계약직 300명을 둔 대형종합병원이다. 1년 예산이 2억1650만파운드(3247억원)이고 신생아만 1년에 5000여명을 받아낸다. 이런 대형병원의 운영 역시 경영진으로 이루어진 이사회와 함께 무보수 자원봉사자인 관리위원들이 맡는다. 이사회와 관리위원 의회(governor council)의 두 기구가 주축인 셈이다. 이사회는 의장, 최고경영자(CEO), 상임이사 7명, 비상임이사 6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임이사는 병원 내 각 부서를 담당하는 연봉 2억~3억원의 전문가들이다.
   
   비상임이사는 모집공고를 보고 응모를 한 지원자 중 선정하여 관리위원들이 승인하면 임명된다. 관리위원 의회를 대표하여 이사회에서 활동하는 셈이다. 현재 킹스턴병원의 비상임이사들은 30년간 의료보험 종사자, 인사 관련 전문가, 경영 컨설턴트, 개업 가정의, 회계사 출신의 경영 컨설턴트, 간호학교 CEO 경력 등 의료계통이나 전문경영인 경력을 가진 일반인들이 맡고 있다. 비상임이사는 자원봉사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소액(연간 1만3500파운드·2000만원) 수당만을 받는다.
   
   관리위원은 32명인데 인근 지역별로 6500여명의 병원 회원들이 선출한 28명과 병원 직원들이 선출한 4명으로 구성돼 있다. 병원 회원은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 환자 가족, 지역주민 누구나 신청하면 될 수 있다. 회원 중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싶은 사람은 입후보한 후 회원들의 우편 투표 결정을 기다리면 된다.
   
   재단 이사회를 일반 회사의 이사회라고 본다면 회원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는 주주회의라고 보면 된다. 회원이 된다고 해서 무슨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비를 내는 것도 아니다. 단지 병원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찾기 위해 병원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회원이 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투표나 다른 절차에 기꺼이 참여하는 셈이다.
   
   
▲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기업인 존루이스백화점. 완전한 종업원 지주회사이다.

   킹스턴병원의 힘
   
   킹스턴병원의 힘은 바로 이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킹스턴병원의 최고 의결기관인 관리위원 의회가 이렇게 전문가들이 아닌 일반인, 특히 병원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 이사회의 비상임이사들도 이런 일반인 중에서 추천되어 운영위원들에 의해 선임되기 때문에 이사회에서 환자나 병원 이용객의 권익을 위해 활동할 수 있다. 영국 대부분의 NHS병원은 이런 민주적인 선임절차가 갖춰져 있어 우리처럼 국가기관이나 퇴직 고위 공무원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올 수 없는 구조다.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회 저명인사들을 찾으려면 영국박물관, 영국도서관, 빅토리아알버트박물관, 테이트미술관 같은 문화단체나 공공기관, 자선단체의 재단이사(board of trustee) 명단을 찾아보면 된다. 예를 들면 영국박물관과 함께 영국에서 최고의 박물관으로 인정받는 빅토리아알버트박물관의 이사진을 보면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로 대단한 명사들이 즐비하다. 현재 이사장은 보그·GQ·바니티페어 같은 유명 잡지출판그룹 회장이 맡고 있다. 이사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고급 라이프스타일 그룹 퀸테살리 창업자 회장, 거대 부동산개발 그룹 회장, 미술사 전공 관련 잡지를 발행하고 저서를 낸 현직 대학교수, 예술 관련 컨설팅회사 창업자, 판사 경력의 문화 전문 변호사, 디자인 회사 창업자, 영국 왕립미술대학교 부총장, 현직 고위 방송인, 설치미술예술가, 자선단체 일을 많이 한 초등학교 교사 출신, 현직 대학부총장인 역사 교수, 유명 기업 임원을 지내고 여러 곳의 비상임이사 경력을 가진 기업인 출신, 현직 투자은행 임원, 홍보와 공중보건 부문에서 다양한 경력을 가진 아메리칸익스프레스 홍보담당 부사장, 소머세트하우스박물관 이사회 의장 경력의 현 맥켄지 컨설팅 파트너 임원 등이다. 이들 거의 모두는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혹은 숙녀 서훈을 받은 유명인사들이다. 영국 사회에서 이미 명성과 지위를 공인받았다는 뜻이다.
   
   이런 문화단체 재단 이사들 역시 무보수이다. 회의가 있을 때 적절한 금액의 교통비가 지급된다고 하는데 그 금액이 이들의 지위로 봐서는 정말 놀랄 정도의 소액(50만원 수준)이다. 1년에 6번의 이사회가 열리고 이사회 내 분과위원회에 소속되어 활동하는데 보통 1년에 5~8회 정도의 회의가 있다. 평소에는 서류 검토와 박물관 행사 참석이 주 업무이다. 가끔 가다가 박물관의 자문에도 응한다. 물론 빅토리아알버트박물관에도 경영을 담담하는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상임경영이사회(Executive Board)가 있다. 이들은 거의 2억~3억원의 연봉을 받는다. 경영진인 이들 상임이사들의 선임과 해임을 위의 비전문가이자 비상임이사인 재단이사들이 맡는다. 뿐만 아니라 상임이사들의 연봉과 직원들의 복지 관련 결정 등 경영진이 직접 해서는 안 되는 결정을 재단이사회의 분과위원들이 담당한다.
   
   
   존루이스백화점이 존경받는 이유
   
   이제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심지어는 존경까지 하는 국민기업 ‘존루이스백화점’의 경우를 한번 살펴보자. 존루이스는 완전한 종업원 지주 회사이다. 존루이스에는 평직원 의회에서 선출된 종업원 이사 5명, 회장이 지명한 5명의 경영진 이사, 회장·부회장, 비상임 즉 사외이사 3명과 종업원 측 대표 ‘카운슬러’ 1명 등 모두 15명의 이사회 이사가 있다. 이 중 3명의 비상임 사외이사들은 주로 회사 경영층이 결정하기 힘든 영역을 담당한다. 예를 들면 임직원 연봉과 상여금 책정과 같은 보상 관련 업무, 기업의 사회환원 관련 정책, 회사 미래 정책의 위험도 측정을 주로 관장한다. 종업원 8만9900명을 두고 존루이스, 웨이트로즈, 피터존스까지 포함해 모두 400여개의 백화점과 슈퍼마켓을 가진 대형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이사회 구성인원 15명 중에는 비전문가인 종업원 6명과 사외이사 3명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현재 사외이사 3명은 다양한 이력을 가진 유력 인사들이다. 수년 전에는 영국에서 가장 큰 회사 중의 하나인 영국항공(British Airway) 현직회장이 사외이사를 한 적도 있다. 종업원 이사는 현직 종업원이어서 업무적인 지식은 있을지 몰라도 경영 관련 전문인은 아니다.
   
   이제 영국 정치 최고 기관 중 하나인 지방의회의원(councilor)을 보자. 지방의회의원들은 전원이 직업정치인이 아니다. 모두 생업을 가지고 있어서 의정활동은 당연히 퇴근 후인 밤에 할 수밖에 없다. 세비도 활동이나 중요성에 비하면 형편없는 연 1만2000파운드(약 180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생활이 절대 되지 않는 금액이다. 원래 목적 자체가 학교의 관리위원이나 문화기관들의 비상임 재단이사처럼 일반인들이 봉사 차원에서 하라는 뜻이었다. 전업 정치인의 눈과 머리로 모든 사안을 보지 말고 일반주민의 입장에서 지방자치업무를 판단하고 결정하라는 취지다. 전업 정치인인 전문가들의 아집 때문에 생기는 맹점을 피하자는 목적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지방의회의원들과 달리 하원의원들은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초선이나 재선 때는 다선의원의 보좌관 정도의 역할을 하면서 일을 배운다. 그러다 중견의원이 되면 내일 당장 내각에 들어가 행정부 장·차관을 해도 해당부서 장악에 전혀 문제가 없는 전문가가 된다. 그러나 영국 하원과 상원의원들 역시 전업 직업정치인으로 시작된 조직이 아니다. 모두들 자신이 속한 계급과 직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의원이 되었다. 중세를 지나 18세기 조지 시대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들어와서는 그나마 직업정치인의 모습을 가지기 시작하긴 했으나, 그것도 유복한 명문가 자제들이 국가를 위한 사회봉사 차원에서 정치를 했다. 그런 이유로 영국 상하원 의원들의 세비는 박봉(연 7만7379파운드·약 1억1600만원)이다. 한국 국회의원 세비(1억3796만원)와 비교하면 금액상으로도 적고 영국과 한국 물가를 비교하면 엄청난 박봉이다. 거기에는 생계형이나 권력지향형 정치인의 진입을 막는 영국 국민들의 숨은 뜻이 있는 듯하다. 하긴 영국의 과학자들이나 사회활동가들이 이룬 업적들은 생계형이 아니라 모두 소명의식을 가진 괜찮은 집안 출신들의 취미활동이 이룬 일들이다. 찰스 다윈이 전형적인 예다. 그의 친가는 영국 최고 의사 집안이었고 외가는 본차이나로 유명한 웨지우드 집안이었다. 자신의 전공인 외과의사는 팽개치고 유전학을 전업으로 삼을 만한 환경이었다.
   
   하루하루 생업에 허덕이는 일반인들이 동네 병원과 학교의 무보수 관리위원직을 맡는 이유는 뭘까. 자신들의 업무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영국 저명인사들이 영국 유수의 문화단체기관 재단이사직을 맡는 이유와 거의 동일하다. 이는 영국인의 피 속에 흐르는 ‘자원봉사, 참여의식, 희생정신’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거기에다가 저명인사들의 참여에는 ‘재능기부 차원의 사회지도층의 사회봉사’, 소위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더해져 있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사회봉사 차원에서 이뤄지는 비전문가 일반인들의 평범한 상식이 사회를 이끄는 권력이 되는 영국은 아집에 싸인 전업 전문가들에게만 의존하는 사회에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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