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농가 반발이 엄청 심했어요. 오죽하면 저희 아버지가 ‘너 농민들한테 인심 잃으면 아버지 죽었을 때 조문객도 없다’면서 말릴 정도셨으니까요. 그때 이렇게 말씀드리면서 설득했죠. ‘지금은 농가들이 불편하게 생각해도 이 사업이 잘돼서 우리 평택 쌀이 명성 있는 쌀이 된다면 그걸 농민들은 고맙게 생각할 겁니다’라고요.”

지난 12월 3일 경기 평택시 오성면 미듬영농조합 사무실에서 곽정근(60) 영농조합 상무를 만났다. 곽 상무는 2005년 경기 평택 안중농협 유통상무로 재직하면서 미국으로 수출된 국내 수출 쌀 1호인 ‘슈퍼오닝(super oning)’을 개발한 인물이다.

평택은 전국에서 가장 좋은 쌀이 나기로 유명한 경기 남부에 속해 있지만 이천, 여주 등 근처의 다른 고장 쌀에 비해 낮은 등급의 상품으로 평가를 받았다. 높은 일조량, 큰 일교차, 태풍·홍수로부터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 등 벼농사를 짓기에 유리한 조건을 모두 갖췄는데도 왜 다른 경기 남부 쌀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았을까. 평택에서 태어나 살면서 농협대학교를 졸업한 뒤 평생을 쌀에 바친 곽 상무는 평택 쌀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평택 안중농협의 유통·가공 책임자가 되자마자 지역 내 유통매장들로 뛰어갔다.

“유통매장에 가니까 소비자 민원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어요. 품질이 떨어진다면서 반품 들어오는 쌀이 매장에 쌓여 있었죠. 현장을 다니면서 반품 사유를 수집했어요.”

곽 상무가 고객들을 직접 만나면서 반품 사유를 들은 결과, 소비자들이 말하는 문제는 품질 평준화가 안 돼서 품질의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었다. “저번에는 쌀이 좋아서 다시 샀는데 이번 쌀은 품질이 좋지 않다”는 식이었다. 쌀 품질이 균일화되지 않았다, 쉽게 얘기해서 규격화가 안 됐기 때문에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제대로 된 원인을 파악하니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곽 상무가 평택시농업기술센터와 협의해 평택 쌀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개발한 방법은 ‘뜰 단위 재배’다. 이전까지 평택 농민들은 농사를 지을 때 개별 농가가 각자의 농사기법에 따라 농사를 지었다. 토양의 질에서부터 종자의 등급, 비료의 종류와 주는 양 등이 모두 다르니 쌀의 품질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었다. 곽 상무는 농가들을 설득해 작게는 5㏊에서 크게는 40㏊까지의 논을 ‘뜰’이라는 하나의 단위로 묶었다. 그리고 토양을 관리하는 방법, 비료의 종류와 농사법을 평택시농업기술센터로부터 지원받은 매뉴얼대로 짓고 관리하도록 했다. 모양과 색깔이 정상인 완전미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50억원 상당의 도정시설을 세우고, 단백질 함유량 검사 등에 쓰일 1억5000만원 상당의 장비도 도입했다. 평택시농업기술센터는 농가들이 매뉴얼대로 농사를 짓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관리했다.

하지만 뜰 단위 재배를 정착시키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무엇보다 농가들이 통제에 쉽게 응하지 않았다. 자율적으로 농사짓던 방법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농협 내부에서도 새로운 방식을 하니까 불편해하는 기색이 여러 곳에서 보였다. “사방에 내 편이 없었어요. 농협 내부에서도 ‘일을 왜 이렇게 힘들게 하냐’ 하고, 농업인들도 ‘이런 걸 왜 하냐’고 하고요. 총대를 멨는데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엄청 걱정했죠. 저희 집안에 아무도 탈모가 없는데 지독한 스트레스 때문에 제 머리카락이 빠질 정도였으니까요.”

‘뜰 단위 재배’로 품질 균일화

자나 깨나 고민하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컴퓨터를 켜서 공부하던 세월이 꼬박 1년. 이렇게 곽 상무가 노력을 쏟아부은 결과 2005년 ‘슈퍼오닝’ 쌀이 첫 수확됐다. ‘슈퍼오닝’이라는 이름은 ‘아침의 쌀’이라는 뜻으로 대학교수들이 추천한 이름이었다. 슈퍼오닝은 고품질 쌀로 태어났다. “농민들은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서 비료를 과하게 주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면 쌀 품질이 떨어집니다. 매뉴얼대로 하다 보면 수확량은 줄어들지만 품질이 뛰어난 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단백질 함량, 아밀로오스 함량 이런 것이 농가별로 차이가 났는데 그게 현격히 규격화됐어요. 옛날에 개별로 농사짓던 것보다는 품질이 월등히 좋아졌죠.”

곽 상무가 야심작을 출시했지만 시장에서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마케팅이 부족해 인지도가 낮은 탓이었다. “철원 오대쌀, 여주 이천쌀 같은 기존 강자들이 있으니까 아무리 해도 소비자에게 노출이 안 됐어요. 그때 유통학회에서 만난 분이 ‘쌀 수출 이벤트를 해볼 생각 있냐’는 아이디어를 주셨죠.”

곽 상무가 슈퍼오닝 쌀을 개발한 2005년 무렵은 쌀을 수출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였다. 당시 곽 상무는 영국으로 쌀을 수출하는 이벤트를 벌이기 위해 구매자에게 샘플 쌀을 보냈는데, 우연히 이를 보게 된 미국의 한 한국계 기업 사장이 “한국 쌀을 수입해 미국 시장에서 팔아보겠다”며 이메일을 보낸 것이다. 목표 시장은 동포들이 많이 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곽 상무는 2007년 6월 11일 농림부로부터 쌀 수출 허가를 받고 다음날 바로 쌀을 수출했다. 우리 쌀을 미국에 수출한 것으로는 대한민국 최초의 사례였다. 단 ‘슈퍼오닝’보다 수출이 사흘 늦었지만 배로 배송한 ‘슈퍼오닝’과 달리 비행기로 배송해 도착이 빨랐던 ‘군산 철새도래지쌀’이 공식적으로는 미국 수출 쌀 1호로 기록돼 있다. 곽 상무는 “미국에 쌀을 처음 수출하니 중앙 언론에서 너도 나도 취재를 왔다”며 “9시 뉴스에도 나오면서 쌀이 갑자기 전날보다 네 배나 많이 팔리는 등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했다.

“미국에서 품질을 인정받고 나서 한국에 돌아오니 대접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빅3 대형마트에 납품을 시작하고, 유명 즉석밥 브랜드와 계약도 체결했고요. 유명 편의점의 고급 도시락에도 납품되면서 본격적으로 대한민국 대표 쌀이 됐죠. 유통업체들이 원하는 만큼 물량을 대주지 못할 정도가 됐어요.”

2008년부터 슈퍼오닝 쌀은 본격적으로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매년 매진을 기록했다. 일반 쌀보다 1.5배 비싸지만 뛰어난 품질과 밥맛을 소비자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 ‘슈퍼오닝’은 농협이 도입한 ‘밥맛 인증제’에서도 특상품 7개 중 하나로 뽑혔고, 평택을 대표하는 쌀로 자리매김했다. 자연히 농가의 반응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급선회했다. 곽 상무는 농림부와 전국 시군 농정과장들의 강연 요청이 쏟아지면서 여주, 용인, 철원, 강화, 경주 등 전국을 다니면서 새로운 영농기법 성공 사례를 교육했다.

“슈퍼오닝을 보면 지금도 뿌듯합니다. 당시에는 천대받고 유통업체서 받아주지도 않던 쌀이 지금은 세계로 수출하는 명품쌀이 됐으니까요. 결국 우리 쌀의 경쟁력을 높여야 농민이 잘살 수 있습니다.”

배용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