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지난 11월 30일 아침 미세먼지로 전혀 식별이 안 되는 상하이 푸둥. (우) 같은 위치 7월에 찍은 사진.
(좌) 지난 11월 30일 아침 미세먼지로 전혀 식별이 안 되는 상하이 푸둥. (우) 같은 위치 7월에 찍은 사진.

지난 11월 30일 아침, 상하이 푸둥(浦東)의 하늘은 잿빛이었다. 11월 마지막 주 내내 상하이를 덮친 미세먼지에 안개가 결합한 탓이었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창 밖으로 보이는 동방명주탑과 세계에서 두 번째, 중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632m 높이의 상하이센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파트 아래 왕복 10차선 간선도로마저 안 보일 정도였다. 집안에 설치된 공기청정기는 붉은빛을 내뿜으며 맹렬히 돌아갔다. 다행히 이날 오후 들어 바람이 불면서 대기질이 호전됐지만, 11월의 마지막 날 아침, 잿빛 하늘이 주는 공포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중국 기상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경 상하이의 공기질량지수(AQI)는 119로 경도(輕度)오염 단계였다. 중국 기상당국이 대기오염지수를 측정하는 359개 도시 가운데 231등이었다. 중국 기상당국은 AQI지수가 100~150 사이면 경도오염, 150~200은 중도(中度)오염, 200~300은 중도(重度)오염, 300~500은 엄중오염으로 분류한다. 물론 119란 수치는 중국 기상당국의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여기에 대략 50 정도를 가산하면 미국 기준치가 된다. 아니나 다를까 황푸강 건너편 구도심에 있는 미국 총영사관에서 공표하는 같은 시각 AQI는 무려 157을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잿빛 하늘은 12월부터 겨울철 내내 이어질 미세먼지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중국 기상당국이 발표하는 대기질 지도를 보니 상하이를 기준으로 서북쪽 선상에 위치한 장쑤성 난징의 AQI는 207, 안후이성 허페이는 226, 후베이성 우한은 274, 산시성 시안은 283, 신장자치구 투루판은 388을 기록하고 있었다. 서북풍이 부는 겨울철, 서북쪽의 미세먼지가 수일 내에 상하이 상공을 뿌옇게 뒤덮을 생각을 하니 절로 목구멍이 간질거리며 재채기가 나왔다. 다행히 이날 수도 베이징의 대기질이 상하이보다 더 나쁜 것을 위안으로 삼는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는 ‘서북풍을 마신다(喝西北風)’는 말이 있다. 곡식 낱알을 싣고 오는 서북풍을 먹고살 정도로 가난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 중국에서 겨울철 서북풍은 절대 마시면 안 되는 바람이 됐다. 곡식 낱알이 아니라 미세먼지를 싣고 오기 때문이다. 실제 서북풍이 부는 겨울이 되면서 상하이의 미세먼지는 11월 마지막 주 올 하반기 들어 최악의 수치를 기록했다. 11월 들어 AQI지수가 100을 상회한 것은 11월 19일(102) 한 차례였다. 하지만 11월 25일 108(경도오염)을 시작으로 103(26일), 103(27일), 163(28일), 139(29일)까지 5일 연속으로 100을 상회했다.

상하이시 당국은 그간 미세먼지와 사투를 벌여왔다. 자동차 보급은 번호판 경매제로 발급 문턱을 높이는 식으로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꼽히는 디젤자동차는 중국에는 건설용 중장비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중국에서는 SUV도 대부분 디젤이 아닌 가솔린을 쓴다. 연료효율이 떨어지는 노후 자동차는 도시 주요도로 통행을 제한한다. 매연을 내뿜는 오토바이도 대부분 전기오토바이로 대체된 지 오래다. 간선도로에는 비산먼지를 제거하는 살수차가 수시로 물을 뿌리고 다닌다. 상하이의 도심 녹지비율은 중국 내 다른 어떤 도시보다 높다.

인위적인 노력의 결과 올여름부터 가을까지만 해도 상하이의 공기질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는 중국 기상당국이 발표하는 월평균 AQI 수치로도 입증된다. 상하이의 월평균 AQI는 지난 7월 60을 시작으로 58(8월), 70(9월), 67(10월)로 모두 100 이하의 양호한 수치를 기록했다. 11월 역시 마지막 주의 공기질이 급속히 악화되기는 했으나, 11월 초중반까지의 공기질이 나름 선방을 했던 관계로 11월 전체 평균 AQI는 72로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면 한국보다 살 만하다”는 말이 교민들 사이에서 나왔다.

북위 33도선 이북의 중앙집중식 난방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은 중국 화북지방에서 겨울철 중앙난방이 공급되는 11월 중순부터는 수포로 돌아간다. 중국은 건국 초기 소련의 원조로 남북경계선인 진령(秦嶺)산맥과 회하(淮河) 이북에 대량의 석탄을 태워 각 가정집에 열을 공급하는 중앙집중식 난방체계를 구축했다. 대략 북위 33도선 이북 지역으로 영상 5도 이하의 날씨가 90일 이상 지속되는 지역들이다. 지금도 매년 11월 15일을 시작으로 이듬해 3월 15일까지 약 4개월간 중앙집중식 난방을 공급하고 있다. 매년 11월 15일 이후 미세먼지 뉴스를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겨울철 중앙난방을 제외하면 매년 11월 중순경부터 상하이 상공을 뒤덮는 미세먼지의 계절적 원인을 설명하기가 힘들다. 실제 상하이의 AQI는 매년 12월부터 악화되는 패턴을 보여왔다. 수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2013년 12월 AQI가 158로 중도(重度)오염이었던 것을 시작으로, 99(2014년 12월), 117(2015년 12월), 94(2016년 12월), 97(2017년 12월)로 미세먼지를 본격 체감하는 심리적 경계선인 100을 넘나들었다. 사실 겨울철 중앙난방 공급도 못 받는 상하이 시민들로서는 미세먼지만 뒤집어써야 하니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난방공급 경계선인 회하 이남에 위치한 상하이의 가정집에는 중앙난방이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겨울이면 부슬부슬 비가 자주 내려 상하이의 겨울철 체감온도는 상당히 낮다. 겨울철 중국 북방의 집이 남방의 집보다 따듯한 기현상은 이 때문이다. 이에 상하이의 각 가정에서는 개별 설치한 라디에이터나 냉난방 겸용 에어컨을 가동해 방안 공기를 덥히는 식으로 추위를 해결해왔다. 하지만 단열재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라 난방을 풀가동해도 금방 한기를 느낀다. 집안에서도 두꺼운 옷을 껴입고 뜨거운 차를 홀짝이면서 겨울을 넘기는 것은 상하이의 흔한 풍경이다.

하지만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이제 상하이의 이런 겨울 풍경도 과거의 추억이 되고 있다. 요즘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남부에서는 전기, 가스 등 각종 형태의 열원을 사용한 개별난방이 급속히 보급되고 있다. 상하이의 고급아파트를 중심으로는 한국식 바닥난방도 유행이다. 온돌에 익숙한 한국 교민들은 비싼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바닥난방을 갖춘 집을 선호하는 편이다.

과거 난방을 하지 않던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남부지방까지 속속 개별난방 기기를 설치하면서 ‘미세먼지’라는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지고 있다. 겨울철 난방공급경계선을 회하에서 그보다 더 남쪽의 장강(長江)으로 내려 중앙난방 공급범위를 확대해달라는 요구도 꾸준히 제기된다. 이 경우 줄잡아 수억 명이 중앙난방 공급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중국 가정집의 겨울철 실내온도가 1도씩 올라갈수록 미세먼지가 늘어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추운 겨울 따듯하게 지내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지만, 이웃나라에까지 영향을 줄까 이래저래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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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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