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소방본부 상황실 모습. ⓒphoto 뉴시스
강원 소방본부 상황실 모습.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18일 13시12분, 강원도 강릉의 한 펜션에서 서울 대성고 3학년 남학생 10명이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됐다. 학생들이 머물던 펜션의 가스보일러에서 배기가스가 실내로 유입되면서, 이들이 수면 중 일산화탄소에 노출된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학생들이 최초 발견됐을 때 펜션 내부 일산화탄소 농도는 155ppm이었다. 일반 수치의 8배다. 경찰은 학생들이 이 정도 농도에서 2시간가량 방치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학생들의 체내 일산화탄소 농도는 25~45%에 달했다. 정상인의 수치는 3%, 치사량은 20%다. 최초 구조 당시에는 10명 모두 체내 일산화탄소가 20%를 넘었다. 아직까지 조사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경찰은 펜션 보일러 배관과 연통이 어긋나 있어 외부로 빠져나가야 할 배기가스가 실내로 유입됐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사고로 10명 중 3명의 학생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일산화탄소를 들이마셔서 의식을 잃었던 나머지 7명 학생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보통 현장에 출동한 구조대원들의 초동조치가 적절했는지 여부에 대해 논란이 일 때가 많지만, 이번 사고는 구조대원들이 발 빠른 대처를 했기 때문에 더 큰 참사를 막았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최초 신고가 접수됐을 때부터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 다시 고압산소 치료가 가능한 시설로 이동하는 과정 등에서 현장 구급대원들에게는 수많은 판단이 요구됐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학생들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구급대원들의 판단 하나가 생사를 가를 수도 있었다.

골든타임 30분이 생사 가르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발견 당시 학생들은 편한 복장으로 입에 거품을 물고 거실 등에 쓰러져 있었으며 일부 학생들은 배설을 한 상태였다고 한다. 3명은 이미 생존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상태였다. 학생들은 2층에서 4명, 1층 거실에서 4명, 1층 방에서 2명이 각각 발견됐다.

신고 접수 10분 만인 13시22분 먼저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학생들의 피해 상태를 파악하는 분류 작업을 신속히 실시했다. 분초를 다투는 만큼 학생마다 30초에서 1분 내외로 빠르게 상태를 파악해 중증 정도를 분류했다. 잇따라 도착한 구급대원들이 학생 상태에 따라 인근 병원으로 분산 이송시켰다.

이번 강릉 펜션 사고처럼 같은 공간에서 다수 사상자가 발생한 경우, 여러 명의 환자 중 누가 더 심한 상태이고 누구를 먼저 치료해야 하는지는 구급대원이 우선적으로 판단해야 할 몫이다. 이때 구급대원은 ‘환자 중증도 분류’라는 매뉴얼대로 행동한다. 이 중증도 분류는 이른바 ‘스타트법(START method)’이라는 절차를 통해 이뤄진다. 스타트법이란 ‘Simple Triage And Rapid Treatment’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건양대 응급구조학과 김철태 교수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원들은 환자가 걸을 수 있는지, 호흡이 있는지, 순환은 어떤지 등을 평가한다. 이 평가를 통해 환자는 4순위로 분류된다. 1순위는 긴급환자. 말 그대로 당장 조치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긴급한 상태다. 2순위는 응급환자. 이 역시 위중하지만 얼마간 생명 유지는 가능한 상태다. 3순위는 비응급환자. 스스로 걸을 수 있거나 의식이 있는 상태다. 4순위는 지연환자(사망환자). 응급조치를 취하기 전 이미 사망한 상태다”라고 설명했다. 중증도 분류에서는 소생 가능성이 있으면서 위급한 환자(긴급환자)부터 우선순위가 된다.

강릉 펜션 사고의 경우는 어땠을까. 강릉소방서 이성군 구급담당자는 주간조선에 “도착 당시 3명은 지연환자로 구분했고, 나머지 부상자 7명은 모두 긴급환자인 상태였다”고 당시 현장 상황을 전했다. 구급대원들은 매뉴얼에 따라 분류한 긴급환자 7명 중 5명을 아산병원으로, 2명을 동인병원으로 이송했다.

첫 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한 시각을 기준으로 약 18분 만인 13시40분 첫 환자가 아산병원으로 이송됐다. 이후 20분 동안 5명의 환자가 순차적으로 응급실에 도착했다. 동인병원으로 간 2명이 응급실에 이송된 시각은 각각 13시41분과 56분이었다. 사실상 30분 안팎의 시간 동안 환자 이송이 완료된 것이다. 동인병원으로 실려간 환자 2명은 다시 헬기를 통해 120㎞ 떨어진 원주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돼 15시31분경 도착했다. 이들을 동인병원에서 원주기독병원으로 옮긴 이유는 동인병원에 고압산소치료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10인용 고압산소치료기 ‘챔버’를 갖춘 아산병원에서는 16시50분과 19시30분 3명, 2명씩 나눠 고압산소치료가 이뤄졌다. 원주병원에서는 16시30분과 19시에 2명에 대한 고압산소치료가 진행됐다.

분초를 다투는 구조 현장에서 구급대원들이 의식을 잃은 부상자의 상태를 정밀하게 판단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번 사고의 경우에도 현장 상황만으로는 피해학생들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의식을 잃은 것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한 담당자는 “당시 현장 상황만으로 학생들의 부상 원인이 무엇인지 단정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강원춘천 지역의 재난의료책임자 이태헌 한림대 응급의학과 교수 역시 “사고 접수 최초에는 약물중독이 원인이라는 첩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고 발생 직후 몇몇 언론은 학생들의 ‘약물중독이 의심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위급한 상황에서 현장 대원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권역 소방본부는 상황실에 ‘지도의사’를 두고 있다. 권역별 상급병원의 응급전문의가 1명씩 돌아가면서 24시간 동안 소방 본부 상황실에서 당직을 선다.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구급대원은 실시간으로 구조 현장과 환자의 상태를 지도의사에게 보고하며 소통한다. 지도의사는 구급대원이 전해주는 현장 상황을 전해들으며 환자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다. 그리고 환자에게 맞는 응급조치 요령을 구급대원들에게 지도하고 병원을 배정해준다. 이번 사고 당시 강원 소방본부의 지도의사는 조준휘 강원대 응급의학과 교수였다. 조 교수 측은 “이미 보도된 것 외에 따로 할 말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대응시간 단축한 중증도 분류 팔찌

환자가 병원에 도착한 이후 대응도 생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 환자들이 도착할 경우 병원은 중증도 분류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하게 되어 있다. 병원이 중증도를 분류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구급대원은 이송 중 환자에게 각각 중증도 분류 팔찌(긴급환자는 빨간색, 응급환자는 노란색, 비응급환자는 초록색, 지연환자는 검은색)를 달아 병원 측에서 즉각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이러한 매뉴얼에 따라 정확히 행동하는 것은 몇 초의 시간이라도 허비하는 것을 막아준다. 이번 사건에서도 응급대원들은 이송 중 환자의 중증도를 분류해 병원 측의 대응시간을 단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12월 27일 정오 기준 아산병원에 입원했던 5명 중 3명이 퇴원했다. 나머지 4명은 아직까지 아산병원(2명)과 원주기독병원(2명)에서 치료 중이다. 전반적으로 상태가 호전되고 있으며, 의료진은 연내 퇴원을 목표로 치료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퇴원하는 학생이 아산병원에서만 나오는 것을 두고, 동인병원으로 옮겨졌던 학생들에 대한 초동대처가 잘못됐거나 구급대원 또는 의료진의 오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또한 최초 병원을 세 군데로 나누어 이송할 당시 어떠한 기준으로 환자를 분류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이에 대해 강릉소방서 이성군 구급담당자는 “긴급환자는 2명당 응급전문의 1명만이 담당할 수 있다. 따라서 6명은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아산병원으로 이송하고, 그 외 2명은 지역응급의료센터인 동인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분산 이송해야 하는 원칙에 따랐다”고 말했다. 또 이 담당자는 “이러한 결정 역시 해당 병원 응급실 전문의, 소방청 지도의사, 권역 소방본부 지도의사 간의 신속한 소통을 통해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이번 펜션 사고 구조에 참여한 대원들은 대부분 20대로 이런 참사를 처음 겪어봤다고 한다. 때문에 이번 사고 이후 정신적 충격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릉소방서 박유삼 예방안전계장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사고 현장에 나갔던 구급대원들은 대부분 20~30대로 젊다. 10명의 어린 학생들이 쓰러져 있던 현장의 기억이 쉽게 지워지지 않아 힘들어하고 있다. 구급대원들과 현장 지휘대 등 32명의 소방 공무원에 대한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 심리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곽승한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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