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1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 승리, 탄핵 축하’ 촛불문화제. ⓒphoto 뉴시스
지난해 3월 1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 승리, 탄핵 축하’ 촛불문화제. ⓒphoto 뉴시스

청와대 본관 로비에 걸려 있던 촛불집회 그림이 사라졌다. 대신 인왕산과 소나무를 그린 작품 2점이 새로 걸린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1월 10일 기자회견에서 목격되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주기적으로 청와대 내 그림을 바꾸고 있기 때문에 이에 따라 교체한 것일 뿐 특별한 배경은 없다”고 설명했다. 정말 그런 것일까.

촛불 그림이 청와대에 들어온 것은 2017년 11월 21일이었다. 국무회의를 주재하러 이동하던 문 대통령은 그림 앞에 멈춰서서 국무위원과 청와대 참모진들에게 본인이 직접 그림을 들여왔다고 설명한 후 기념촬영까지 했다. 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촛불정신을 강조하였다. 여권 인사들도 문재인 정부를 “촛불정부”라 부르기를 즐겼다. 그런데 대통령이 손수 낙점한 전시물을 주기적 계획으로 교체했다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일각에서는 그림 교체가 적폐청산에서 경제 활성화로의 국정기조 전환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1월 10일 기자회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경제(35회)였다. 성장(29회), 혁신(21회)이 뒤를 이었다. 촛불, 적폐라는 단어는 1~2회에 그쳤다. 적폐청산과 촛불정신을 강조하며 경제라는 단어를 아홉 번밖에 사용하지 않은 1년 전 같은 행사와 비교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국정기조의 전환이라 해석하는 것은 희망적 사고에 가깝다.

정치권에서는 ‘폴생폴사’(poll生poll死·여론조사에 죽고 산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옛날과 달리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최근 데드크로스(dead cross·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섬)를 기록한 대통령 지지율 하락 배경에는 적폐청산에 대한 피로감과 경제부진에 대한 실망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림 교체와 기자회견의 키워드 변화는 국정운영 동력 상실에 대한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가볼 필요가 있다. 바로 촛불에 대한 집권세력의 인식이다.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보면, 촛불의 최대 수혜자는 현 집권세력이다. 촛불 덕분에 정권을 잡았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허니문 현상을 뛰어넘는 1년 반에 걸친 지지율 고공행진의 원동력도 촛불에서 나왔다. 정치에서는 내가 잘해서 점수를 얻는 것보다 남이 못해서 반사이득을 얻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침에 출근하는 대통령’이 달라진 청와대 풍경으로 대서특필될 정도로 현 집권세력은 ‘박근혜 기저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촛불의 정치공학적 활용에 있어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였다.

문제는 촛불이 함의하는 정치철학을 오독(誤讀)한 데서 비롯되었다. 촛불의 문제제기는 ‘이게 나라냐’였고, 해답은 ‘나라다운 나라’였다. 탄핵은 박근혜라는 인물의 실패임과 동시에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제도의 실패였다. 문 대통령이 주목한 것은 전자였다. 그는 사람이 문제지 헌법이 무슨 죄가 있냐고 했다. 그러나 최근 잇따른 내부자 폭로에서 드러났듯이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행위자만 ‘박파’에서 ‘문파’로 바뀌었지, 행태는 도긴개긴이다. ‘광화문 대통령’은 온데간데없고 청와대 정부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새로운 공화국에 대한 열망을 표출한 촛불은 모노 컬러가 아니었다. 왼쪽으로는 통진당 재건파와 민노총, 오른쪽으로는 새누리당 비박계를 위시한 온건보수에 이르기까지 촛불대오는 무지개연합이었다. 탄핵 찬성 80%라는 수치는 이 무지개에서 나왔다. 이런 대형 무지개는 몇십 년에 한 번, 역사적 대전환기에 나타난다. 1960년 4월혁명과 1987년 6월혁명 모두 대규모 연합전선이 형성되었기에 가능했다.

이 대목에서 한번 따져보자. 4·19는 내각제 개헌을 통해 제2공화국을 출범시켰으나, 5·16군사정변으로 좌절했다. 그래서 4·19를 미완의 혁명이라 부른다. 6·29는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으나, 문민 대통령을 탄생시키지는 못했다. 그래서 절반의 승리라 부른다. 그렇다면 2017년 11월의 촛불은? 청와대의 주인을 바꾸는 데는 성공했지만,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앙시앙 레짐은 그대로다. 우리는 지금도 6공화국에 살고 있다.

혁명은 일반적으로 낡은 체제의 종식과 새로운 체제의 등장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촛불은 혁명이 아니다. 조금 격한 방식의 정권교체일 뿐이다. 6·29는 비록 전두환의 친구 노태우를 6공화국의 첫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으나, 와신(臥薪)과 상담(嘗膽)의 세월을 거쳐 1993년 문민대통령, 1998년 최초의 정권교체라는 옥동자를 만들어냈다. 제도의 저력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물 지체를 극복해낸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17년 촛불은 1987년 6월보다 훨씬 못하다. 6공화국의 일곱 번째 대통령을 만들어냈을 뿐, 국정농단의 위험성을 획기적으로 낮출 새로운 시스템의 등장은 오리무중이다. 6급주사가 장관을 독대할 정도로 청와대는 여전히 내각 위에 군림하고 있다. 여당은 청와대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너무도 익숙한 풍경의 재탕이다.

촛불의 명령은 나라다운 나라, 새로운 공화국의 출범이었다. 만일 현 집권세력이 거기에 초점을 맞춰 국정을 운영했다면, 무지개연합의 구성원 대다수가 아직도 박수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집권세력은 촛불민심을 아전인수로 해석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이용하였다. 대선 득표율 41%의 정권이 무지개연합의 합작품인 촛불을 독점하려고까지 했다. 최근의 지지율 하락은 이러한 행위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왼쪽으로는 민노총이, 오른쪽으로는 중도보수가 “내가 이러려고 촛불 들었나”라며 현 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11월 5일 원로지식인들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저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맏형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구시대의 막내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며 “새로운 시대를 안내하는 다리가 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였다. 노 전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검찰 무개입, 당청 분리, 대연정 제안 등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문 대통령에게는 그 같은 강렬한 문제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권력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는 사정기관의 고질적 병폐는 더 심해졌고, 민주공화국의 철칙인 삼권분립은 흔들리고 있다. 현 집권세력은 정권획득 수단으로서의 촛불은 십분 활용했지만, 진정한 공화국 건설이라는 촛불정신은 외면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과 비교해 정치공학은 진화했으나, 정치철학은 퇴화했다.

술에 취하면 반나절 자고 나면 깨지만, 권력에 취하면 약이 없다. 선거의 본질은 심판과 응징이다. 내가 잘해서 뽑힌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못해서 당선된 것이건만, 어느덧 오만해져 “우리는 DNA가 다르다”고 거드름을 핀다. 이렇게 되면 양질의 DNA 소지자인 자신들이 정권을 잡은 것 자체가 엄청난 개혁이요 진전이 된다. ‘우리는 달라’라는 자기최면이 뇌를 지배하게 되면, 세상을 온전히 인식하기 어려워진다. 지금 집권세력은 권력에 취해 있다. 촛불 그림만 사라진 게 아니다.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라는 촛불정신도 실종되었다. 촛불 잔치는 끝났다.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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