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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2544호] 201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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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과학정책 비판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

“국가와 시장 할 일 구별 못 해 빅 사이언스가 경제 살린다”

최준석  선임기자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입자물리학)는 자리에 앉자마자 “무엇이 경제를 발전시키는가?”라고 물었다. 물리학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줄 몰랐다. 지난 1월 22일 서울 서촌의 역사책방에서 만난 박 교수가 갖고 나온 노트북 컴퓨터 화면에는 ‘빅 사이언스~ 과학과 기술에의 투자는 누구의 숙제인가?’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한-CERN 협력사업’ ‘혁신 성장을 위한 홍릉클러스터 구축 방안’이라는 자료도 갖고 나왔다. 이들 자료는 박인규 교수가 지난해 11월 이후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인 ESC, 홍릉포럼 등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박 교수는 “언론이 과학자의 얘기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면서 인터뷰에 응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1970년 노벨상)은 2차대전이 끝나면 공황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예측은 빗나갔다. 전쟁 수요가 사라졌음에도 미국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그 이유는 경제학계의 미스터리였다. 198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솔로(MIT 교수)가 주목할 만한 답을 내놓았다. 솔로는 ‘외부에서 들어온 신비로운 압력’으로 인해 전후 성장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 ‘신비로운 압력’은 무엇이었을까? 세계은행 수석경제학자로 일한 폴 로머가 나중에 답을 내놓았다. 바로 과학에 대한 투자였다. 폴 로머는 이 공로로 201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박인규 교수는 “큰 산업을 만드는 건 순수물리학”이라며 “노벨물리학상 역사 100년을 뒤집어보면 바로 산업혁명 100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이 산업혁명에 가까운 기술혁신을 이루고 싶다면 물리학에 대한 투자, 그것도 거대과학에 정부가 돈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연구개발비 규모에서 세계 정상급이다. 2017년 총 연구개발 투자액은 78조8000억원이고, 세계 5위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비율은 4.55%로 세계 1위이다. 그런데 과학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는 말인가? 그 많은 연구비는 다 어디로 갔나?
   
   
   R&D 세계 1위는 ‘뻥튀기’
   
   박 교수는 “연구개발비 통계의 착시가 있다”고 말했다. 2016년 전체 연구개발비 중 민간 부문이 67조원이고, 정부 부문은 20조원이다. 박 교수는 민간 부문 말고 정부 부문을 보자고 했다. 이 정부 부문 20조원에는 KAIST 지원금, 교수와 직원 인건비가 포함되어 있는 등 ‘뻥튀기’가 심하다고 주장했다. “과학자는 충분한 연구개발비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하고, 정부는 돈을 줬다고 하는 상황이다. 서로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박 교수는 또 연구비가 비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리학상의 산실인 고에너지 물리학 분야를 비교해보자고 했다. 고에너지 물리학은 통상 핵물리학과 입자물리학, 천체물리학이라는 세 분야를 가리키며, 1901년부터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의 55%를 배출했다. 100만전자볼트 이상의 높은 에너지에서 일어나는 물리 현상이 연구 대상이다.
   
   박 교수 분석에 따르면 고에너지물리학에 대한 지원 규모가 2016년의 경우 미국은 1조8000억원(NASA 지원금 제외)인데 한국은 300억원에 불과하다. 60 대 1의 비율이다. 박 교수는 미국과 한국의 예산 규모가 10 대 1인 점을 감안하면(미국 4400조원, 한국 400조원) 한국 정부가 고에너지물리학에 쓰는 돈이 1800억원은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에 크게 못 미친다. 박인규 교수는 “미항공우주국(NASA) 지원금까지 포함하면 그 격차는 600 대 1로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유럽연합의 CERN(유럽 핵입자물리연구소), 미국의 페르미연구소, 일본의 KEK(고에너지가속기연구기구)가 세계적인 고에너지 연구기관이다. 한국은 고에너지 연구소가 없다. 이들 고에너지 물리연구소는 각국이 ‘빅 사이언스(Big Science)’에 투자한 대표적인 사례다. CERN은 세계 최대의 입자충돌기(LHC)를 갖고 있고, 일본의 KEK는 양성자가속기(J-PARC)를 가동 중이며, 6.7㎞ 길이의 국제선형가속기(ILC)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일본은 중성미자 연구를 위한 가미오칸데 프로젝트에 1100억원을 들여 그곳에서만 노벨물리학상 2개를 일궈냈고, 올해 말에는 중력파검출기 카그라를 가동한다. 고에너지 분야는 아니나, 미국은 중력파검출기(LIGO·7000억원), 허블 우주망원경(1.5조원), 화성 탐사선 쿠리오시티 프로젝트(2.5조원)라는 거대과학 프로젝트가 유명하다. 박인규 교수는 “빅 사이언스에 남들이 투자하고 있을 때, 한국의 역대 정부는 아무런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4차산업, 창조경제, 녹색경제에 꽂혀 그것들에 몰입했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에 22조원을 썼다. 정부가 돈이 없지 않다. 뭘 할지를 몰라서 돈을 어떻게 쓸지를 모르고 있다.”
   
   
   국가는 조 단위 빅 사이언스 개발해야
   
   박 교수에 따르면 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빅 사이언스는 중요하다. 박 교수는 서구는 거대과학을 전형적인 재정 사업으로 본다고 했다. 일종의 마중물 붓기다. 특정 산업에 혜택이 돌아가는 게 아니라 관련 중소기업이 다 먹고살 수 있는 방안이 거대과학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과학에 투자하면 과학자가 가져가는 건 그들의 인건비밖에 없고 나머지는 기업과 지역에 돌아간다. 최종 수혜자는 중소기업이다.”
   
   박 교수는 한국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에 답답해했다. “중소기업에 정부가 직접 돈을 준다. 몇 년 전에도 4조원을 줬다. 개발 아이디어를 갖고 와보라는 태도다. 그런데 정부가 기업의 기술 관리를 하나하나 어떻게 할 수 있나? ‘직접 지원’ 방식은 잘못이다. 정부가 사이언스에 돈을 붓고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중소기업이 돈을 가져가도록 하면 된다.”
   
   박 교수는 “국가가 할 일과 시장이 할 일을 한국은 구별을 못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가는 조 단위 규모의 빅 사이언스를 개발해야 한다. 나머지는 시장에 맡겨두면 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시장이 해야 할 일까지 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미국의 애플, 테슬라, MS, NVIDIA와 싸우고 있다. 인공지능을 개발하겠다고도 한다. 여기에 돈을 넣고 있다. 그러니 과기부 공무원이 바쁠 수밖에 없다. 시장까지 책임지고 있으니까.”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역할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비판적이었다. 유럽과 미국의 정부출연 연구소는 목표가 뚜렷하다. NASA는 우주 개발을 하고, 일본의 가미오칸데는 중성미자 연구를 한다. 한국은 이와는 달리 학문 연구 분야별로 연구소가 있다. 화학, 전기통신, 기계 등등. 1970년대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대전 대덕에 연구단지를 만들 때는 그게 괜찮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21세기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연구기관 사이에 담장이 높다. 박 교수 말을 들으니, 지난해 대덕연구단지의 정부출연 기관들을 취재할 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곳 종사원들은 “대덕에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수십 개 있으나, 일부 기관들은 임무가 뚜렷하지 않아 있을 필요가 없어 보인다”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정부가 출연 연구기관들에 수술칼을 들이대야 하는데, 그 일을 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박인규 교수는 고에너지물리 연구자로서 한 가지 바람이 있다고 했다. 고에너지물리연구소를 정부가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한국은 국립 고에너지 연구소가 없는 유일한 OECD국가이다. 노벨물리학상 기회의 55%를 놓치고 있다. 그 작업을 위해 우선 유럽의 CERN과 협력해 CERN의 한국 연구센터를 유치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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