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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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말 ‘을지면옥’ 철거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며 서울시 재개발 정책에 새삼 관심이 모아졌다. 재개발 과정에서 을지면옥과 같은 노포(老鋪)를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과 개발을 더 이상 미루기만 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맞섰다. 논란이 커지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을지로 3가 일대의 재개발사업을 ‘전면 보류’하기로 했다.

을지면옥 철거 논란이 불거지면서 동시에 주목받은 개념도 있다. 바로 ‘도시재생’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이라 일반인들은 재개발과 혼동하곤 한다. ‘건물이 오래되면 부수고 새로 지어야지, 뭘 보존하느냐’는 식의 목소리가 큰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건축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이제 개발의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하며 도시재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몇몇 재개발 사업들이 있다. 을지면옥 주변 세운3구역 재정비사업이나 서울의 마지막 남은 달동네 ‘백사마을’ 사업 등이다. 두 사업 모두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재개발 정책의 바로미터로 여겨진다. 이미 세운3구역 재정비사업의 경우 전형적 박원순식 포퓰리즘 사업이란 비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사업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광환 국가건축정책위원(해안건축 소장)이다. 그는 서울시 건축정책위원, 2020 서울시 주거환경 기본계획수립 건축 총괄계획가, 백사마을 재개발 총괄계획가로 일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위원장 승효상)으로 임명되었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건축기본법이 제정됨에 따라 2008년 12월 대통령 직속기구로 출범했다. 11개 부처 장관과 19명의 민간위원으로 구성되어 국가 건축 정책의 기본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주간조선은 지난 2월 22일 서울 역삼동 해안건축 사무실에서 이광환 소장을 만나 최근 서울시 도시재생 사업과 관련한 생각을 물었다. 이 소장은 국가건축정책위원의 역할에 대해 “한마디로 국가에서 이뤄지는 건축이 ‘허튼짓’ 이 되지 않도록 자문하는 게 주요 임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도시재생이라는 개념에 대해 “도시는 기나긴 역사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발전하고 또 쇠퇴하는 과정을 겪는데, 그 쇠퇴함까지 유지하고자 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낡은 것을 무조건 없애고 새로 지을 게 아니라 ‘낡은 것의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낡은 것의 가치’는 아직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현재 살고 있는 동네가 보존되기보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는 걸 원하는 사람이 많아서다. 낡은 동네에 사는 이들은 재개발이 이뤄지는 날만 기다린다. 이 소장은 “그런 욕망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다만 그런 이들은 누군가가 그렇게 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쉽게 말해 ‘헌 집 줄 테니 새집 주세요’ 하는 격인데,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언론이나 정치권에서는 대체로 (재개발을) 요구하는 사람들 입장만 듣게 된다. 그 사람들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그러나 그 요구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혹은 정당할지라도 적절한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의 지적대로 도시 개발은 늘 정치권의 화두다. 많은 이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매번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장은 정치권의 일방향 소통만이 답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현장에서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분명 주민들 사이에서도 목소리가 나뉜다. 그 이견(異見)이 곧 충돌이 되고 갈등이 된다. 이러한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분명한 제도나 법적 장치가 필요한데, 그런 면이 특히 부족하다”고 했다.

그가 총괄계획을 맡은 서울 중계동 백사마을은 서울에 몇 안 남은 ‘달동네’ 중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시는 2011년 이곳을 ‘주거지 보전구역’으로 지정했다. 60년 넘은 백사마을의 길과 터를 그대로 유지하는 전례 없는 재개발 방식이었다. 이때부터 도시재생은 ‘박원순식 재개발’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설계안을 둘러싼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은 아직 시작조차 못 했다. 4~5층으로 설계된 아파트 층수를 12층으로 올려달라는 것이 주민들 요구사항이었다. 결국 이 사업 총괄계획가를 맡았던 이 소장은 얼마 전 주민대표단에 고발까지 당했다.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아 보였다.

“부동산 극약처방, 결국 다른 곳이 아플 것”

이 소장은 “정치 하는 분들이 그 기준을 엄격히 명문화했다면 이렇게까지 오지는 않았을 거다. 한마디로 지난 6개월 동안 주민, 시행사, 서울시 모두가 서로 돈 낭비, 시간 낭비한 것밖에 되지 않았다”며 관련 법안 및 제도가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백사마을 주민들의 반대를 두고 “헌법 위에 떼법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설계안을 두고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백사마을은 도시재생과는 관계없다고 보는 게 옳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 땅만 제외하고 문짝에서 지붕까지 모두 새것으로 바뀐다. 그게 어떻게 ‘재생’인가?”

박원순 시장의 도시재생 정책을 두고 ‘포퓰리즘’이라는 논쟁도 뜨겁다. 세운3구역 재정비사업의 경우 이미 승인이 난 사업을 전면 보류하는 등 여론에 따라 갈팡질팡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 소장은 “도시재생은 어느 선구자 한 명이 ‘따라와!’ 부르짖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라며 “다만 세운3구역 같은 경우는 개발의 필요성이 큰 곳이다. 제대로 된 길도 없을 뿐더러 현재 건물들도 언제까지 유지되겠나”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기본적으로 박 시장의 도시건축 정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다. 건축계와 정비사업 업계에서는 흔히 2012년을 기념비적인 해로 여긴다고 한다. 도시건축의 근본적 개혁이 일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재개발·재건축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이때부터 시민들 사이에도 퍼지기 시작했다. 이 소장은 “그 시점에 마침 취임한 박 시장은 전처럼 무리한 재개발을 추진하는 대신, 지역에 마을회관이나 도서관 같은 기반시설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이런 사업들이 현재 100여건 되는데, 규모가 작다 보니 언론이나 사람들 눈에 안 띈다. 그러나 직접 가보면 그 마을의 공동체가 꿈틀거리는 걸 느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가 부동산 전문가는 아니지만, 도시건축 전문가 입장에서 ‘강남 땅값’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누군가는 서울에 ‘강남’을 더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게 뭐 만들겠다고 만들어지는 것인가.(웃음) 의지만으로 될 일은 아니다. 의지 자체도 ‘오버’인 거고. 그렇다고 강남을 찍어 누를 필요도 없다. 지금 정부 부동산 정책을 보면 틈새를 완벽하게 차단해야만 이 정책이 먹힐 것이라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극약처방이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그 약을 먹으면 증상은 잠시 가라앉을지언정, 결국 다른 곳이 아프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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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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