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경보가 연일 이어지던 지난 3월 초,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사는 56세 남성 전모씨는 퇴근하자마자 마스크를 벗고 일본 야후에 접속했다. 일본에 빈집이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진짜 빈집이 많은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지방자치단체나 부동산 업체에서 중개하는 빈집이 꽤 있었다. 오사카에서 자동차로 1~2시간 거리에 있는 소도시의 경우 160㎡(약 50평) 대지 2층 집이 350만엔(약 3500만원)에 나온 곳도 있었다.

전씨는 1993년 일본으로 이민을 가서 20년 넘게 살다 6년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 생활도 안정되고 일도 자리를 잡아가지만 그는 최근 다시 일본에서 사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바로 미세먼지 때문이다. “지진에 대한 공포는 없냐”는 질문에 전씨는 “1995년 고베 대지진을 직접 경험해 지진 공포도 잘 안다”면서도 “지진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지만 미세먼지는 당장 대책을 고민해야 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부터 서울 강남구의 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26세 여성 공모씨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2003년 캐나다로 이민을 간 캐나다 시민권자다. 대학은 캐나다 동부 온타리오주 워털루에서 나왔고 동부 토론토와 서부 앨버타주 캘거리를 오가며 생활했다. 아직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한 공씨가 지난해 11월 한국에 들어온 이유는 한국 생활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공씨는 “캐나다는 넓고 자연환경이 좋지만 심심했다”며 “한국처럼 다이내믹한 사회에서 살고 싶었다”고 했다. 가족 중 일부가 한국에 있다는 점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공씨 역시 캐나다로 돌아가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역시 미세먼지가 문제였다. 3월 들어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수치가 연일 ‘매우 나쁨’을 기록하면서 편하게 숨 쉬던 캐나다의 맑은 공기가 그리워졌다. 공씨는 작년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대형 산불이 났을 때 남풍을 타고 날아온 매캐한 연기를 느낄 수 있는 미국과 캐나다 접경 지역에 있었는데, 그때보다 요즘 한국 공기가 더 나쁘다고 말한다. 그는 “다이내믹한 한국 생활에 매력을 느껴서 정착하려고 했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올해 말에는 캐나다로 돌아가야겠다”고 했다.

위의 두 사례는 요즘 신조어로 ‘에어노마드(Air Nomad)’족이라 할 수 있다. 미세먼지가 싫어 좋은 공기를 찾아 나라 밖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네트워크에 접속시켜주는 디지털 기기 하나를 들고 지구촌 여기저기를 옮겨다니는 ‘디지털노마드’에 이은 새로운 이주족이다.

우리 사회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에어노마드’족은 2019년 우리 사회 이민의 새로운 단면이다. 과거에는 없던 이유로 살던 나라를 떠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듯이 요즘은 이민 형태도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앞에서 든 사례처럼 외국에서 살다가 귀국한 사람들이 다시 나가는 사례도 있고, 처음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도 ‘영원히 떠난다’기보다는 ‘일단 벗어나자’는 생각에서 출국을 계획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들은 조건과 상황이 달라지면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민자들이다. 이런 흐름을 두고 전문가들은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면서 ‘입국이민(Immigration)’과 ‘출국이민(Emigration)’으로 양분돼 있던 이민의 흐름이 이른바 ‘순환이민(Circulimization)’으로 바뀌는 추세라고 말한다. 특히 동남아시아의 아세안(ASEAN) 국가들의 경우 우리나라와 가깝고 물가가 싼 데다 은퇴비자 제도가 잘 마련돼 있어 최근 순환이민 대상지로 각광받고 있다.

출입국이민에서 순환이민으로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국내 대기업 직원 30대 남성 정모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10여년 전 태국 치앙마이로 거주지를 옮겼다. 태국은 은퇴이민을 받는 대표적 국가다. 치앙마이 은퇴비자의 경우 만 50세 이상이어야 하고, 태국 내 은행에 3개월 이상 80만바트(약 2900만원) 이상 예치하거나 월소득이 6만5000바트(약 233만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태국은 은퇴비자 기한이 1년으로, 1년마다 갱신받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긴 하다.

이들이 동남아로 이주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씨의 설명은 이렇다. “한마디로 말하면 ‘돈을 가치 있게 쓸 수 있으니까’가 정답이다. 동남아로 가는 이유는 딱 하나, 물가가 싸기 때문이다. 같은 돈으로도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진다. 한국에서 나오는 연금만으로도 여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다.”

동남아 이민이 각광받는 이유는 자녀교육 여건이 우수하다는 점도 작용한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보다 저렴한 학비로 아이들을 한국보다 여건이 우수한 국제학교에 보낼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한 한국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정씨는 “돈이 엄청 많으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겠지만 여기도 나름 괜찮다. 국제학교 GPA 기준은 만국공통이고 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인 SAT를 볼 수 있는 자격만 받으면 여느 선진국에서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나도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한국에선 키우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양화되는 순환이민의 중심에는 최근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아세안 국가들의 이민정책이 있다. 최근 아세안 국가들은 외국인 이주를 적극적으로 받고 있다. 선진국의 고령층을 겨냥한 은퇴비자가 중심으로, 아세안 국가들은 정책적으로 선진국 은퇴이민자들을 우선적으로 받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10년짜리 은퇴비자 조건부터가 50세를 기준으로 나뉜다. 50세 미만은 현금 자산 50만링깃(약 1억3000만원) 이상, 월소득 증명 1만링깃(약 270만원) 이상을 만족해야 한다. 반면 50세 이상의 경우 현금 자산 35만 링깃(약 9500만원) 이상, 월소득 증명 1만링깃(약 270만원) 이상으로 조건이 완화된다. 비자를 받은 뒤에도 일정 금액은 말레이시아 현지 계좌에 예치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반면 말레이시아의 은퇴비자는 투자, 사업행위는 가능하지만 말레이시아 내의 기업에 취업해 활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국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이민정책 전문가인 오정은 한성대 교수(이민다문화 전공)는 “아세안 국가들이 은퇴비자 제도를 처음 시작한 건 복지제도가 발달한 선진국에서 은퇴한 노인들이 와서 여생을 즐기라는 의도였다”며 아세안 국가들의 은퇴비자 제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로 핀란드·노르웨이 등 북유럽 복지국가 사람들은 은퇴 후 아세안 국가에 와서 생활했다. 근데 이 제도를 한국인들이 이용하면서 달라졌다. 한국은 연금생활자의 비중이 북유럽만큼 높지가 않다. 아세안 국가들이 점차 은퇴이민자를 많이 유치하려고 나이 제한도 없애거나 40세까지 낮췄는데 이 제도를 한국인들이 특이하게 활용한다. 이 비자가 있으면 현지에서 법적으로 부동산 구입이 가능한데, 이걸 이용해 한국인들은 부동산을 사서 현지에서 임대업, 관광업을 하는 것이다. 동남아 여행객들은 갈수록 늘고 있고, 마침 K팝도 인기지 않나. 한국인에게는 아세안에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 것이다.”

지난 3월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모습. 올봄 들어 최악의 공기질을 기록한 날이다.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지난 3월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모습. 올봄 들어 최악의 공기질을 기록한 날이다.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관심 끄는 말레이시아의 MM2H 비자

동남아시아 은퇴이민은 사실 기존의 영주권, 시민권 등의 개념과는 관련이 없다. 대표적인 경우가 말레이시아의 MM2H(Malaysia My Second Home) 비자다. 이 비자를 받으면 10년간 말레이시아에 체류할 수 있고 만 21세 이하의 자녀를 부양가족으로 동반할 수 있다. 10년이 지났을 때 원하면 계속 연장할 수 있기 때문에 영주권이나 다름없다. 반대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라도 돌아가는 것이 전제돼 있다. MM2H 비자를 갖고 있으면 자녀를 국제학교에 입학시킬 수 있고 말레이시아 내에서 상속·증여세가 면세되며 국외 소득도 면세된다. 필리핀도 선진국 은퇴 국민을 상대로 태국, 말레이시아와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오 교수는 “동남아는 가깝고 물가가 싸기 때문에 한국과 쉽게 오갈 수 있고 여차하면 사업을 접고 돌아올 수도 있다”며 “이민이 출국이민(Emigration)에서 순환이민(Circulimization)으로 바뀌는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말했다.

요즘에는 아예 영주권이나 시민권에 구애받지 않고 관광비자가 허용하는 3개월 내에서 다른 나라에 살아보려는 ‘장기 체류’도 순환이민의 새로운 흐름으로 들어오고 있다. 국내 대기업 임원 출신인 A씨가 이 사례다. 70대에 접어든 그는 부인과 같이 매년 두 차례씩 태국에 있는 골프장을 찾는다. 한 번 갈 때면 2~3개월씩 머무르는데, 장기비자가 없기 때문에 3개월 내로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 여행인지 이민인지 모호한 사례다. A씨는 “리조트에 가면 숙박부터 골프까지 모든 게 해결된다”며 “겨울에 가면 날씨도 따뜻해 자주 간다”고 말했다.

미세먼지 등 이민을 가야 할 새로운 이유들이 생기면서 실제 이민자 숫자도 늘고 있을까. 우리 국민이 외국에 나가서 사는 것을 의미하는 이민(Emigration)은 기관마다 정의가 다르다. 유엔(UN)은 ‘3개월 이상 삶의 근거지를 다른 나라로 옮기는 것’을 이민으로 정의한다. 반면 우리 외교부는 “해외이주는 영주권 등 일정한 자격을 갖추고 외교부나 재외공관에 신고한 것을 말하는 반면 이민은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정부의 통계가 허술하지만 요즘 미세먼지로 인해 이민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관련 업계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거의 확실하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S 이민컨설팅업체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작년부터 미세먼지가 유독 심한 봄이나 늦겨울이면 이민 문의가 급증한다”며 “이민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뭐냐고 물어보면 보통 자녀교육이나 경제 문제를 말하는데 최근에는 직접 미세먼지 얘기를 꺼내는 분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 있는 또 다른 이민전문컨설팅업체 I사 관계자도 전화통화에서 “수치상으로 어떻게 말하긴 힘들지만 특히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이민 관련 상담이 유독 늘어난다”고 했다.

전통적으로 우리 국민이 해외이주를 많이 해온 4대 국가는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다. 해외이주를 하는 방법은 크게 국제결혼을 포함한 가족이민, 유학, 해외취업, 투자 등이 있다. 미국은 시민권 취득자의 가족이민을 허용하기 때문에 가족이민은 가장 보편적인 루트다. 법무부 산하 이민정책연구원(IOM) 강동관 연구교육실장은 기자와 만나 “미국은 세계 최대의 이민시장인 데다 애초에 이민자들로 구성된 국가이다 보니 외국인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며 “영어가 공용어라는 점도 한몫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호주 등은 영주비자를 받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현지에서 취업한 경험이 있어야 하거나 학력 제한을 두는 식으로 비자 발급자격을 강화하는 추세다.

투자이민도 전통적인 방법이다. 캐나다, 뉴질랜드가 투자이민을 받는 대표적 나라들이다. 미국 지역사회에 일정 금액을 기부하고 가는 EB-5 투자이민 역시 꾸준히 각광받는 추세다. 10억원을 가져가서 6억원을 지역사회의 부동산이나 SOC 등에 투자하는 식이다. 다만 투자이민의 경우 거액을 투자하면서도 투자금 손실이 날 수 있기 때문에 외교부로부터 해외이주 알선을 정식 승인받은 업체의 도움을 받는 편이 안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영주권이 이민자 기준인 시대는 지났다

외교부가 쓰는 용어인 ‘해외이주’ 통계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18년까지 16년간 해외이주자는 총 29만2270명이다. 이 해외이주자는 외교부에 이주를 신고한 해외이주신고자와 현지 재외공간에 이주를 신고한 현지이주신고자를 합한 숫자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이 16만5419명으로 가장 많았고, 캐나다가 4만2275명, 호주 1만7000여명, 뉴질랜드 1만1000여명 순이었다.

하지만 이 통계는 신뢰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례로 2011년까지 매년 2만명을 넘던 해외이주자는 2011년 1만5000여명, 2013년부터는 8000명 이하로 줄어들었고, 2017년에는 1443명까지 줄어들었다. 오정은 한성대 교수는 이에 대해 “기존에는 해외로 이주할 때 외교부에 신고를 해야 했지만 2011년 무렵부터 신고를 하지 않아도 벌금을 내지 않도록 바뀌었다”며 “안 한다고 벌금 내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강제성이 없다”고 말했다.

외교부도 해외이주 인구와 이민자 숫자가 똑같은 게 아니라고 설명한다. 외교부나 현지 재외공관에 해외이주 신고를 하지 않고도 외국에 정착하는 우리 국민들이 이제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이민정책은 대부분 국내에서 국외로 나가는 출국이민(emigration)보다 국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입국이민(immigration)에 초점을 맞춰왔다. 외국인들이 국내로 들어오는 것이 국내에 끼치는 영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제 정부 정책도 우리 국민들이 다양한 형태로 밖으로 나가는 데 초점을 맞춰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강동관 이민정책연구원 연구교육실장은 “자원과 영토가 한정된 국내에만 있는 것보다 능력이 된다면 이민을 가는 것도 장기적으로 국익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정은 한성대 교수도 “이제 영주권을 지닌 사람을 이민자로 보는 시대는 지났다. 외국에 주소를 등록해 3개월 이상 거주하는 사람을 이민자로 봐야 한다”며 “동남아에서 K팝 공연을 한번 하면 동남아 관광객들이 국내에 급증한다. 조기퇴직한 사람들이 타국에 나가서 한국을 알리는 다양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을 글로벌 시대 우리의 경제활동 인구가 적재적소에 배치되는 긍정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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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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