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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52호]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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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北에 보낸 USB ‘북한판 청바지’ 될까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 미국 인권재단이 북한 주민들에게 USB를 보내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photo HRF
옛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를 붕괴시킨 원인 중 하나는 미국의 청바지(blue jean)라는 말이 있다. 청바지는 원래 미국에서 광부들이 입었던 옷이다. 잘 해지지 않아 작업복으로 입었던 청바지는 할리우드 배우 제임스 딘이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입으면서부터 자유와 젊음, 반항의 패션 아이콘이 됐다. 이후 청바지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고 젊은층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옛 소련에서도 미국의 청바지는 인기 품목이었다. 소련 젊은이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밀수입으로 들어온 미국의 청바지를 구입해 입었다. 심지어 1980년 초 수도 모스크바를 관광하던 한 미국인이 강도에게 입고 있던 청바지를 빼앗기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소련 당국은 ‘청바지법(jeans crime)’을 제정하기도 했다. 청바지법의 내용은 ‘청바지를 획득하기 위해 어떤 수단이든 사용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기인한 위법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련 당국은 젊은이들의 청바지 열풍을 막지는 못했다. 청바지를 입은 소련 젊은이들이 ‘철의 장막’을 뚫고 유입된 록과 팝송 등 서방의 문화를 적극 수용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었고, 공산주의 체제는 서서히 무너져갔다. 프랑스의 좌파 철학자이자 쿠바 공산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의 동지였던 레지 드브레는 “청바지를 비롯해 록 음악, 비디오, 패스트푸드, 위성 텔레비전에는 소련의 붉은군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힘이 있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정일의 청바지 금지령
   
   1989년 6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밀입북해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석했던 임수경은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젊은이들에게 청바지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북한 정권은 김일성과 악수하고 포옹까지 한 임수경을 ‘통일의 꽃’이라 치켜세웠지만, 당시 북한 젊은이들은 22세 여대생이 입었던 청바지와 티셔츠가 선망의 대상이 됐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한국이 자유로운 국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후 청바지는 북한 젊은이에게 ‘가장 입어보고 싶은 옷’으로 불렸을 만큼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청바지의 ‘영향력’을 우려한 김정일은 1993년 8월 평양 시찰 도중 젊은 여성이 몸에 꽉 끼는 청바지를 입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청바지는 미국 깡패 옷”이라면서 “조선 청년들은 미국 깡패 옷을 입지 않아야 한다”는 ‘교시’를 내렸다. 북한 정권은 이때부터 청바지의 착용을 전면 금지했다. 청바지를 입은 젊은층이 한국을 비롯해 서방국가들의 문화를 접할 경우 자칫하면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제2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외부 정보 유입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다. 특히 북한 정권은 한국 매체의 보도 내용이 주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적극 차단하면서 이른바 ‘비사그루빠’를 만들어 대대적인 검열을 벌이고 있다. 그루빠는 영어 ‘group’을 북한식으로 표기한 것으로 비사그루빠란 ‘비(非)사회주의적’ 현상을 제거 혹은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암행 감찰단이다. 탈북자들은 북·중 접경 지역에 대한 통제가 엄격해져 USB와 SD카드 등의 반입이 거의 불가능해졌다고 전하고 있다. 탈북자들은 “요즘 불순 녹화물에 대한 단속과 통제가 크게 강화되고 있다”면서 “기존에는 불순 녹화물 단속사업을 109상무가 전담하다시피 해왔는데 최근에는 모든 기관을 동원해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비사그루빠가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수시로 사무실과 자택들에 대한 검열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검열 과정에서 불순 영상물에 관련된 증거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체포해 엄중 처벌하고 있다”고 밝혔다. 109상무는 일명 ‘109그루빠’라고 불리는데 북한 정권이 영상물과 불법 출판물, 라디오와 녹화기 단속을 목적으로 2004년 2월 만든 사상과 미디어 통제검열조직이다. 탈북자들은 “불순 영상물이라도 그 내용과 형태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다르다”면서 “정치적 성격을 띤 영상물에 대해서는 3년 이상의 노동교화형, 일반적인 내용의 영상물은 6개월 이상의 노동 단련대형으로 처벌한다”고 밝혔다. 특히 북한 정권은 퇴폐적인 내용의 영상물을 보았거나 녹화물을 다른 사람에게 유통시킨 경우 최고 총살형까지 처벌하고 있다.
   
   북한에선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노래 등의 한류(韓流)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지난해 3차례나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고, 한국 예술단이 평양에서 공연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북한 정권은 한류를 차단하기 위해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 시청은 금지돼 있지만 USB로 중국을 통해 밀수된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면서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 등장인물의 의상과 머리 모양을 흉내 내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보는 것은 한국 드라마라고 한다. 이 때문에 북한 정권은 한국 드라마를 보거나 유통시킨 주민들을 대거 체포해 엄벌에 처하고 있다. 지난 2월 양강도 혜산시에서 불법 녹화물 시청 및 유포와 관련한 군중폭로모임에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적발된 40대 남성과 여성, 20대 대학생, 14살짜리 중학생 등 모두 17명이 끌려나와 공개적으로 자아비판과 함께 처벌되기도 했다.
   
   
▲ 북한 정권이 지난 3월 소집한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 photo 노동신문

   북한에도 부는 한류
   
   게다가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한국산 화장품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한국산 화장품은 북한산이나 중국산보다 2~3배 비싸다. 북한산 살결물(스킨), 물크림(로션) 2종 세트가 북한 화폐로 6만~8만원인 데 반해 한국산 스킨, 로션 2종 세트는 18만원에 거래된다. 북한 근로자가 월급(3000원 수준)을 한 푼도 쓰지 않고 5년 동안 모아야 하는 돈이다. 한국산 화장품들은 중국으로부터 대부분 밀수입되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산 의류도 밀거래되고 있다. 장마당에서 파는 옷은 80~90%가 중국산인데, 밀수입된 한국산 의류는 상표가 가려진 채로 물밑에서 거래된다. 이 때문에 한국산 의류는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상표 없는 옷’ ‘아랫동네(남한) 옷’ 등의 은어(隱語)로 통한다고 한다. 한국산 전자제품도 인기품목이다.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잘 팔리는 한국산 가전제품으로는 밥솥, 고데기, 다리미, 면도기, 녹화기, 사진기, 전기주전자 등이 있다”며 “북한에서는 한국 전자제품을 최고로 알고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든 제일 잘 팔린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디어기기는 단연 손전화(휴대전화)다. 언제 어디서든 편안하게 외부 미디어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노트텔과 MP3, MP4 등이 북한 주민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미디어기기들이다. 북한 정권은 최근 들어 국경 지역에서 정보의 유·출입을 차단하기 위해 국가보위성 12국(휴대전화 전파감시국)을 15국(무선반탐국)으로 바꾸고 역할을 강화했다. 15국은 각 도 보위부와는 횡적 연계만 하고 국가보위성에 직접 지시를 받으며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외국산 손전화기’를 몰래 들여와 국내에서 사용하는 행위를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최근 평안남도 개천시에서 공개재판이 진행돼 7명이 교화형을 선고받았는데, 그중 5명이 외국산 전화기를 사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처벌을 받았다.
   
   북한 정권은 이와 함께 통보강연회를 통해 주민들의 사상 통제도 강화하고 있다. 북한에서 주민강연회는 목적과 내용에 따라 정책강연, 정세강연, 통보강연 등으로 분류된다. 정책강연회는 수령의 사상과 정책을 선전하는 것이지만, 통보강연회는 반사회주의 행위 등 불순분자의 부정적 행위를 대중에게 통보하고 비판하는 동시에 당 정책을 주입하면서 주민들의 충성심을 끌어내는 수단이다. 특히 통보강연회는 정세가 긴박하고 복잡할 때마다 민심을 통제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게다가 비사그루빠는 주민들의 옷차림까지 집중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여성의 경우 몸매가 드러날 정도의 폭이 좁은 바지나 날씬해 보이기 위해 바지 끝단이 복숭아뼈와 무릎 사이의 종아리에서 멈춘 속칭 8부바지, 치마도 바지의 형태도 아닌 속칭 치마바지 등이 단속 대상이다. 남성의 경우도 무릎 아래쪽부터 폭이 넓어지는 나팔바지, 김정은이 착용한 바지처럼 폭이 넓은 속칭 ‘헐렁바지’도 단속된다. 심지어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게 당의 승인이 없는 소규모 모임조차 금지하고 있다. 몇몇이 친목모임을 갖고 술을 마시거나 주패(카드)를 치는 것도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어긋나는 자본주의 생활방식으로 간주돼 처벌받고 있다. 이 때문에 소규모 친목모임에서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얘기를 했다고 체포된 사건들도 있다고 한다.
   
   
▲ 북한의 젊은 여성이 평양에서 휴대전화로 통화하면서 걸어가고 있다. photo 위키피디아

   18년 만에 열린 초급선전일꾼대회
   
   북한 정권이 지난 3월 6~7일 평양에서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를 열고 내부 결속을 다진 것도 외부 정보 유입을 막으려는 의도 때문이다. 제2차 당 초급선전일꾼대회는 18년 만에 개최된 것으로, 김정은 체제 들어 처음 열리는 것이다. 당 초급선전일꾼이란 각 기관, 단체, 공장, 기업, 협동농장 등에서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사상교양·선전선동 사업을 하는 간부들을 통칭한다. 이들은 노동당이 추진하는 정책과 방향성을 말단에서 주민들에게 설파한다는 점에서 ‘모세혈관’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김정은은 또 지난 3월 25~26일 평양에서 북한군의 최말단 지휘관인 중대장과 각 지방에서 활동하는 중대정치지도원을 소집해 제4차 중대장·중대정치지도원대회를 주재했다. 이런 일련의 회의들을 개최한 것은 외부 정보 유입에 따른 민심과 군심(軍心)의 동요를 막기 위해 사상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한 정권에 완전한 비핵화를 압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은 강력한 제재 조치와 함께 외부 정보를 북한 주민들에게 대거 유입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르게이 쿠르바노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한국학센터 소장은 “소련을 무너뜨린 핵심은 서양 팝송 문화와 청바지 문화였다”면서 “북한에도 외부 문화와 사상이 파고들어간다면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쿠르바노프 소장은 “북한이 한국의 대중문화가 북한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란봉악단’과 같은 북한판 걸그룹을 만든 것이 그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쿠르바노프 소장은 이어 “북한 내부 개혁을 바란다면 평양이 아닌 지방에 사는 북한 주민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알리고 젊은 세대 문화에 집중해야 하고 외부 세계를 소개해 깨닫게 한다면 북한도 소련처럼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최근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 등 외부 정보를 접해본 응답자가 62%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 입수 경로는 CD 64%, USB 27%, 라디오 26%, TV 23% 순이었다. 이런 외부 정보는 북한 주민들의 사고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외부 정보를 접했던 응답자의 47%는 이후 한국 사회에 호감이 생겼고, 38%는 탈북 의식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또 북한 정권의 선전교육이 거짓말인지 사실인지 분별하는 비교 안목이 생겼냐는 질문에 30%가 그렇다고 답했고, 북한 정권에 대한 반발심이 생겼다는 응답도 19%에 달했다.
   
   
   북한 주민 정보 접근 위해 600만달러 지원
   
   미국 정부와 의회는 북한 정권의 이런 약점을 간파하고 외부 정보 유입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3월 20일 북한 인권 문제와 북한 주민들의 정보 접근을 위해 국내외 단체와 기관들을 대상으로 600만달러(67억원)를 지원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국무부는 대북정보 유입 및 북한 내부정보 유출 등에 350만달러, 북한의 인권유린 상황을 기록하고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사업에 150만달러, 북한 인권활동 및 북한 정보 유통사업에 각각 50만달러를 지원할 예정이다. 국무부는 대북정보 유입과 북한 내부정보 유출, 북한 내 정보 유통사업의 롤모델로 민간 대북방송과 USB 유입사업을 꼽았다. 말 그대로 USB는 ‘북한판 청바지’가 될 수 있다.
   
   톰 말리노스키 하원의원(민주)도 “북한 문제의 장기적인 해법은 외부 정보 유입에 달려 있다”면서 “의회는 북한 주민들이 사용하는 USB, CD, DVD, 휴대전화를 통해 외부 정보를 계속 전달하기 위한 관련 예산을 앞으로 몇 년간 계속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 담당 차관보를 역임한 말리노스키 의원은 “북한 주민들이 외부 정보를 통해 독재체제의 실상을 알고 미래와 지도자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민간단체인 ‘인권재단’(HRF)도 외부 정보를 북한에 보내는 ‘자유를 위한 플래시 드라이브’(USB)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다. 이 단체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기부를 받아 북한에 7만여개의 USB를 보냈다.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장은 “북한 정권이 외부 정보 유입을 어렵게 할 수는 있겠지만, 자유와 인권에 대한 인식이 북한에 들어가는 것을 계속 막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아무튼 문재인 정부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원한다면,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길 바란다면, 북한에 탈북자 단체 등을 통해 외부 정보를 유입시키려는 노력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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