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연중기획 | 나는 체인지메이커다] “나는 술집 사장입니다” 원부연 음주문화공간기획자
  • facebook twiter
  • 검색
  1. 사회
[2552호] 2019.04.08
관련 연재물

[연중기획 | 나는 체인지메이커다] “나는 술집 사장입니다” 원부연 음주문화공간기획자

5년간 술집 7곳 창업 여자가 술집을? 광고회사 그만두고 왜?

▲ 원부연씨가 처음으로 창업한 ‘원부술집’. 아지트 같은 편한 술집을 콘셉트로 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연세대 사회과학대학 연극동아리 ‘토굴’. 건물 지하계단 아래 남은 공간을 이용한 동아리방에선 매일 저녁 술판이 벌어졌다. 연극 대본과 술병을 앞에 놓고 토론으로 시작해 민중가요 ‘떼창’을 불러젖히다 격한 논쟁으로 밤을 새곤 했다. 붙어살다시피 하며 술로 다져진 선후배 관계는 졸업생 재학생 할 것 없이 끈끈함을 자랑했다. CJ ENM의 나영석 PD를 비롯해 방송·영화판에 ‘토굴’ 출신들이 많다.
   
   15년 전 창문 하나 없이 토굴처럼 어두침침한 동아리방으로 자그마하고 얌전해 보이는 여학생이 신입으로 들어왔다. 02학번 정치외교학과 3학년 원부연이었다. 이 여학생이 들어오고부터 ‘토굴’의 술자리가 달라졌다. 누군가 뒤엉켜 늘 싸움판으로 끝나던 술판에서 싸움이 사라졌다. 트로트와 함께 한바탕 춤판이 벌어지는가 하면,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순간이면 ‘게임 타임’이 시작됐다. 치고받고 싸우다가도 그가 일어섰다 하면 술판이 유쾌해졌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건만 그는 ‘토굴 골든벨’ ‘8도 소주 궐기대회’ 같은 이벤트로 특별한 술자리를 만들었다. 기획력에 추진력까지 장착한 그는 8도 소주를 찾아 전국 일주를 하고 미국에 있는 지인을 동원해 평양소주까지 조달했다. 어느 날은 ‘토굴’을 탈출해 ‘신촌 말고 맛집 투어’ ‘좋은 음악술집 투어’를 이끌었다. 당연히 ‘토굴’의 모든 술자리 기획은 그의 담당이 됐다. 그래서 선후배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 ‘원부시발(始發)’이다. 모든 일은 ‘원부’, 즉 원부연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다.
   
   
   술자리 분위기메이커서 음주문화 체인지메이커로
   
   동아리 술판을 휘어잡던 여학생 원부연(35)은 현재 술집 사장이다. 광고기획자로 9년 가까이 일하고 호기롭게 퇴사했다. 2014년 ‘원부술집’을 시작으로 ‘모어댄위스키’ ‘하루키술집’ ‘보통술집’ 등 술집 4곳을 창업하거나 인수했고 문화예술소극장 ‘신촌극장’, 복합문화공간 ‘신촌살롱’의 공동운영을 맡고 있다. 그 중간에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기 위해 철거될 상가나 폐업하는 가게에서 한시적으로 술집을 운영하는 팝업술집 프로젝트를 3곳에서 진행했다. 5년 동안 9곳의 새로운 공간을 론칭한 셈이다. 술집 창업 노하우를 전수하는 ‘음주문화연구소’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술집 뽀개기’ ‘상가 테리어’ ‘퇴사 후 나만의 가게로 성공하기’ 같은 소수정예 특강 프로그램이다. 문화센터 등에서 술집 창업 강의 요청도 많아지고 있다. 책도 두 권 냈다. ‘나는 술을 팔기로 했다’는 부제가 붙은 ‘합니다, 독립술집’(2017·공저)과 ‘회사 다닐 때보다 괜찮습니다.’(2018)이다. 두 번째 책에는 술집 계획표 짜기부터 임대 계약, 인테리어 등 자신의 창업 경험을 토대로 한 실전 노하우가 낱낱이 기록돼 있다.
   
   그는 자신을 ‘음주문화공간기획자’로 소개한다. 그가 만든 ‘셀프 타이틀’이다. 음주·문화·공간, 세 가지 키워드를 녹여 새로운 술 문화, 새로운 술 공간을 만들어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는 똑같은 메뉴에 분위기도 비슷한 술집이 아니라 주인장의 개성이 살아 있는 ‘세상에 하나뿐인 술집’들이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폭탄주부터 말고 보는 술자리가 아니라, 취향껏 주량껏 각자 좋아하는 술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더 늘어나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한다. 술자리 분위기메이커에서 음주문화 체인지메이커가 된 원부연씨를 서울 성수동 성동구 ‘신촌살롱’에서 만났다. 독주처럼 ‘쎈’ 언니를 예상했는데, 그가 좋아한다는 칵테일 ‘마가리타’처럼 상큼발랄해 보였다. 여자가 술집을, 그것도 여러 곳을 운영한다고 하면 아직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현실이다. 술이 아니라 취향과 문화를 판다는 그의 ‘술집’ 창업기를 들어보자.
   
   
▲ 곧 철거될 상가에 한시적으로 운영한 팝업 술집 ‘방배동 소설집’.

   나는 술을 팔기로 했다
   
   “동아리 시절 취하면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그러다 싸우는 술자리가 지겨웠습니다. 술을 좀 즐겁게 마시면 안 되는 걸까? 고민하다 술자리를 바꾸기 위한 단계별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양한 게임을 개발하고 특별한 술자리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그 일이 엄청 즐거웠습니다. 이벤트들은 테마별로 꼼꼼히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이때부터 술집을 운영하면 재미있게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 4학년 때 광고회사에서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하는 아르바이트 기회가 생겼다. 첫 출근 날 ‘알바생’을 환영해주겠다며 회식을 하자고 했다. 어김없이 진행 본능이 발동했다. ‘SM3’(좌로 한 번 우로 한 번 양쪽으로 한 번 파도 타기)로 시작해 게임의 세계로 인도하며 그 자리를 접수했다. 이날 술자리 덕분인지 알 수 없으나 졸업도 하기 전에 인턴을 거쳐 신입사원이 됐다. 이곳에서도 술자리나 행사 진행은 그의 몫이었다. 밤낮 없이 뛰며 5~6년 지나자 한계가 왔다. 그렇게 즐겁던 술자리가 일이 되니 피곤했다. ‘나’는 없어지고 회사의 시스템 내에서 움직이는 것도, 내 것이 아닌 남의 브랜드를 알리는 일도 즐겁지가 않았다.
   
   ‘회사 그만두고 술집을 차려보면 어떨까?’ 어느 날 불쑥 튀어나온 생각이 마음속에서 점점 커져가기 시작했다. “골목 골목 찾아다니며 부동산 시세 알아보고, 대기업 다니다 카페 차린 지인 찾아가 조언을 구했습니다. 절대 회사 그만두지 말라, 술 좋아하는 사람이 술집하면 안 된다면서 하나같이 뜯어말렸어요.” 그의 눈에도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다시 퇴근 후 폭탄주 말며 꿈을 접었다.
   
   3년 후 기회가 왔다. 대학 시절 아지트였던 술집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렸다. ‘토굴’ 선후배 셋과 함께 공동으로 운영해보기로 했다. 안주부터 재료 구입까지 전 주인에게 특별과외를 받았다. 술을 마실 줄만 알았지 모두들 운영에는 생 초보였다. 회사는 그만두지 않고 일단 ‘양다리’를 걸쳤다. 말하자면 ‘인턴 사장’이었다. 퇴근 후 술집으로 달려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새벽 2시에 마감했다. 몸은 녹초가 됐지만 힘든 줄 몰랐다. 매출도 전 주인이 할 때보다 훨씬 높아졌다. 3개월 만에 확신이 섰다. “내 브랜드를 건 술집을 해도 되겠다.”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8년 차 광고기획자로 서른 살 때였다.
   
   ‘소주부터 양주까지 다양하게 마실 수 있는 곳’ ‘모던 팝 떼창 하다 필 받으면 1990년대 가요에 춤출 수 있는 곳’ ‘강남은 불편하고 이태원은 너무 힙하고 대학가는 시끄럽고, 직장인들이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 이런 술집을 꿈꾸며 방송국이 몰려 있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에 ‘원부술집’을 차렸다. 자신의 이름 ‘원부연’에서 딴 것이기도 하지만 ‘원 없이 부어라’란 뜻도 담겨 있다.
   
   한적한 주택가 골목 안에 숨어 있는 ‘원부술집’은 방송가에 금방 소문이 났다. 모르는 사람끼리 금세 친구가 되고, 혼자 들러도 좋은 ‘상암동 사랑방’이 됐다. “술집 하면서 몰랐던 저의 재능을 발견했어요. 낯가림이 전혀 없어요. 처음 본 손님도 십 년 알고 지낸 것처럼 술잔 부딪치고 반갑게 맞아줘요. 한번 온 손님은 언제 어떤 술을 마셨는지 기억합니다.” 술만 팔면 원부연이 아니었다. 매달 다양한 이벤트를 열었다. 술 마시며 물건 파는 플리마켓 ‘원 없이 팔아라 원팔마켓’, 다섯 명의 미술작가 작품을 전시한 ‘상암동 예술집’, 신진 희곡작가 작품을 낭독하는 ‘희곡 좋아해’ 등 색다른 시도가 이어졌다. 어느 달은 ‘오픈 마이크’로 손님들이 나서 각자 취미를 공유했다. 술집에 문화를 불러들인 것이다.
   
   
▲ 서울 성동구 성수동 주택가에 위치한 ‘신촌살롱’은 취향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공간이다. 지난해 10월 첫 전시로 ‘영화 포스터 B컷전’을 열었다.

   술집에서 술집으로
   
   술집을 끝내면 ‘바’에서 한잔 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하루 수고에 대한 위로였다. ‘바’를 다니면서 만난 위스키, 칵테일은 신세계였다. 종류가 무궁무진이었다. 그런데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너무 어렵고, 가격도 비싸고, 바텐더와의 구조도 편치 않았다. “쉽고 편한 바가 없다면 내가 만들어보자!” 2년 후 신촌에 두 번째로 낸 ‘모어댄위스키’의 탄생이다. 세 번째 ‘하루키술집’은 술과 문학이 만난 술집이다. 하루키 작품 속에 나오는 술과 안주를 메뉴에 넣었다. ‘예전의 감성 넘치던 술집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라는 아쉬움 끝에 나왔다. 네 번째 ‘보통술집’은 선배가 창업해 두 달 만에 포기한 곳을 떠맡았다. 자신의 술집 창업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운영해볼까 고민 중이다.
   
   술집을 계속 창업하다 보니 부동산이 가장 큰 문제였다. 보증금, 권리금, 건물주와 갈등, 젠트리피케이션 등이 자영업자들을 괴롭혔다. 복잡한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술집을 만들자고 나선 것이 팝업술집 프로젝트였다. 재개발로 철거될 상가나 문 닫을 가게를 찾아 ‘여의도 하이볼’ ‘부평 개인의 취함’ ‘방배동 소설집’을 열었다. 2017년 10월부터 매달 하나씩 3곳에서 하고 싶은 실험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큰 공부가 됐다.
   
   술집에 문화를 넣다 보니 공간의 한계를 느꼈다. 전진모 연극연출가 등 연극 동아리 선배들과 술 마시면서 ‘술집과 문화’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다 의기투합, 40석 규모의 ‘신촌극장’을 만들었다. 2017년 하반기에 첫 공연을 올린 후 지금까지 신촌 유일의 소극장으로 소임을 다하고 있다. 좁은 골목 한 주택의 옥탑에 있어 ‘옥탑극장’이라고도 불린다. ‘신촌극장’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신촌살롱’으로 이어졌다. 체인지메이커를 지원하는 비영리사단법인 루트임팩트가 운영하던 공간을 ‘신촌극장’ 팀에 맡긴 것이다.
   
   취향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살롱문화를 내세운 ‘신촌살롱’은 성수동의 새로운 아지트로 뜨고 있다. ‘살롱’ ‘게으름’ ‘와인’을 주제로 모임을 진행하고, 일반인들이 희곡 대본을 읽는 ‘리딩파티’, 배우·PD 등과 배우 지망생들이 만나는 ‘셀텝살롱’ 등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4월 5일부터는 9명의 여성 목수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최소의 의자전’이 열린다. “신촌극장이 주인공을 무대에 올리는 곳이라면 신촌살롱은 무대 뒤의 스태프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비추고 소개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술집창업에서 ‘신촌살롱’까지 사실 계획된 일은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꿈이 꿈으로 연결된 것이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그의 블로그에 기록했다. 그 글들은 ‘회사 다닐 때보다 괜찮습니다.’라는 책으로 나왔다. 책은 술집 창업자들을 위한 안내서다. 내용은 아주 구체적이다.
   
   ‘Why-나는 왜 술집이 하고 싶은가’ ‘How-콘셉트, 타깃, 주종, 장소, 예산 다섯 가지 카테고리를 기준으로 해답을 찾아라’ ‘What-사람들이 원하는 술집은 무엇일까’. 이렇게 마인드맵을 그리는 법부터 시작해 브랜드 구축 전략, 두 달 일정의 로드맵, 마지막 액션플랜 세우기까지 실질적인 정보를 담았다. 술집 계약, 주류업체 선정하는 법, 인테리어 공사 정보, 세금 신고하는 법, 진상손님 대처법부터 자신의 매출까지 낱낱이 공개했다. 그가 공개한 ‘원부술집’의 초기 순수입은 자신의 인건비까지 포함 600만~700만원 선. 현재 술집 4곳을 다 합한 수입도 ‘원부술집’ 한 곳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직접 운영하는 대신 직원을 채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 곳당 수입은 줄었다. 그는 “매출 대비 순익은 ‘3:2:5의 법칙’을 적용하면 된다”고 말한다. 즉 전체 매출의 30%는 재료비, 20%는 임대료·관리비·공과금, 나머지 50%가 나에게 떨어지는 비용이다. 만일 직원을 고용하면 순익은 당연히 줄어든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수준 이하일 수 있다.
   
   그는 “다른 누군가는 내 창업기를 보면서 고생을 덜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냈다”고 했다. “이 바닥이 무서운 게 통계가 없습니다. 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직접 몸으로 부딪쳐가며 값비싼 수업료 내면서 경험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술집 창업하려는 사람들한테 먼저 어디든 들어가 경험해보라고 조언합니다.”
   
   
▲ 서울 성동구 성수동 주택가에 위치한 ‘신촌살롱’은 취향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공간이다. 지난해 10월 첫 전시로 ‘영화 포스터 B컷전’을 열었다.

   회사 다닐 때보다 괜찮다?
   
   요즘 그에게 술집 창업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술집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대부분 ‘이상’에 머물러 있다. 그는 자영업자 생태계는 사람들이 생각한 것보다 혹독하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환경이 달라졌다. “불황 탓도 있고 술 문화도 달라졌습니다. 2차를 안 갑니다. 얼마 안 남은 술꾼들을 놓고 나눠 먹기를 하는 셈입니다. 지금은 다들 버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는 요즘 수강생들에게 오히려 “창업하지 말라”고 강의한다. 자영업자 10명 중 9명이 폐업을 하는 시대, 철저하게 준비하고 들어와도 나가떨어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인식이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가장 오해하는 대목 하나. 술집 차리고 싶은 이유가 “술을 좋아해서”라고 하는데 정작 술집 주인은 술을 못 마신다는 사실. “한번은 수강생이 전부 50대 남성이었는데 너무 추상적이었습니다. 타깃 분석도 없고 메뉴 고민도 없고 주종별 장단점도 모르고. 그냥 술집을 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는 거죠. 그런 사람들에게 잘되는 가게가 아니라 안 되는 가게에 가서 분석해보라고 조언합니다.”
   
   주량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술 잘 못 먹는다. 술 마시는 것보다 먹이는 것을 훨씬 잘한다”고 답했다. 술집 하면서 오히려 주량이 줄어 와인·칵테일 2~3잔 매일 마시는 수준이다. 그는 소주, 폭탄주처럼 취향을 강요받는 술 취향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골라 먹듯 자신이 좋아하는 술을 골라 먹는 술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세상에는 맛있는 술이 너무 많다. 자신도 술집하면서 어떤 술을 좋아하는지 뒤늦게 알게 됐다.
   
   ‘회사 다닐 때보다 괜찮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 제목에 ‘마침표’는 찍었지만 아직은 ‘물음표’라고 했다. 사실 ‘괜찮지 않은’ 게 현실이다. 회식과 월급봉투는 여전히 아쉽다.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하고, 좋아하는 술을 정작 못 마시고, 손님 없는 술집을 혼자 지키고 있을 때 외로움은 상상 이상이다. 매일 사고의 연속이라고 할 만큼 어디선가 문제가 터지고 회사 다닐 때보다 치열하게 뛰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일이 즐겁다고 했다. 술집 운영보다 강의 시간이 길어지는 요즘, 아예 음주문화공간 기획을 하는 사회적 기업이나 소셜벤처도 염두에 두고 있다. 6년은 뛰어봐야 ‘전문가’ 명함을 내밀어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여자가 무슨 술집? 좋은 대학 나와서 멀쩡한 회사 다니다 왜?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들을 향해 멋진 ‘마침표’를 보여주기 위해 술집사장 원부연은 오늘도 술을 판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창간 50주년 영상

주간조선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기업소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