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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T/과학
[2552호] 2019.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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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세상 읽기]윤리적으로 추락하는 과학기술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duckhwan@sogang.ac.kr

▲ 조동호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가짜 학회 참석 등이 문제가 돼 장관 후보자 지명이 철회됐다. photo 뉴시스
과학기술계가 쑥대밭이 돼버렸다. 노벨상도 못 받아오는 대표적인 고비용·저효율 집단이라는 오래된 푸념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것이다. 이제는 윤리적으로도 신뢰할 수 없는 ‘찌질한’ 집단으로 전락해버렸다. 논문 표절, 연구비 유용, 연구실의 비윤리적 운영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고, 과학자의 개인적 일탈도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정부의 입장도 바뀌고 있다. 연구비 관리나 연구 성과 활용에서 부정을 저질렀다는 혐의로 명망 있는 과학자들을 검찰에 고발하고, 인사 검증 과정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장관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과학자의 추락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자들에게 높은 수준의 윤리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과학자가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사회의 기대는 무망(無望)하고 순진한 것이다. 과학자도 탐욕스러운 인간일 수밖에 없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명성과 부(富)를 추구하고 권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투자가 늘어나고 과학기술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문제는 오히려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정치와 기업에 휘둘리는 과학
   
   과학자의 윤리적 일탈은 무엇보다도 과학 자체에 대한 심각한 위협 요인이 된다. 철저하게 통제된 실험에서 얻어지는 경험적 증거를 바탕으로 발전하는 현대과학에서 실험의 위조·변조·날조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다. 전 세계의 과학계가 연구 윤리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과학자의 비윤리적 행태는 과학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동원해서 전 세계 과학계를 우롱했던 황우석 사태가 대표적인 경우다. 황우석 사건은 단순한 논문 위조 사건이 아니었다. 연구는 제쳐두고 정치판이나 기웃거리던 무명의 젊은 과학자가 순진한 대통령의 관심을 사로잡으면서 벌어진 황당한 일이었다.
   
   황우석 사태가 우리에게 남겨놓은 후유증은 심각했다. 과학자는 사회적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렸고, 생명과학·공학 분야의 연구에 대한 행정 규제도 필요 이상으로 강화돼버렸다. 지금도 줄기세포와 유전자 편집 분야에서는 정상적인 연구 수행이 쉽지 않고, 세계적 수준의 유전자 편집 기술의 사업화도 포기해야 하는 형편이다.
   
   과학계가 정치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엉터리 과학자들이 대선캠프를 기웃거리면서 쏟아내는 설익은 정책들이 심각한 사회 갈등을 부추기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줄기세포 열풍, 녹색성장과 4대강 사업, 창조경제, 신재생을 앞세운 탈원전이 모두 그런 경우다. 정치 바람을 타고 졸속으로 세워진 4대강 사업의 적폐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역시 캠프 출신의 이념화된 과학자들이 신(新)적폐를 만들어내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원전 기술도 환경원리주의를 주장하는 캠프 과학자들에 의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이해상충도 과학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린다. 오늘날 과학은 상업적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버린 비윤리적인 기업과의 이해관계를 애써 감춘 과학자들이 넘쳐난다. 과학 상식과 합리적 판단력이 부족한 소비자의 주머니를 노린 가짜 과학의 폐해가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어설픈 건강기능식품 제도는 이해상충을 부추기는 통로가 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음이온 공기청정기에서 시작된 라돈 사태가 모두 가짜 과학이 만들어낸 사회적 재앙이었다. 육각수·전해환원수·해양심층수·수소수를 비롯한 환상적인 효능을 앞세운 기능수도 가짜 과학의 산물이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개인적 일탈
   
   과학자의 도를 넘은 자식 사랑이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식을 버젓이 자신과 동료들의 학술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다. 자식의 대학원 진학을 위해 연구실의 대학원 학생들을 총동원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드러났다. 물론 현실과 맞지 않는 불합리한 대입제도와 부실한 입시 관리를 탓할 수 있다. 그렇다고 윤리적으로 무너져버린 과학자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가짜 학회(학술회의)와 가짜 학술지 문제는 10여년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새로운 골칫거리다. 해외에서는 ‘약탈적 출판사(predatory publisher)’나 ‘해적 출판사(pirate publisher)’로 알려지고 있는 비윤리적 기업이 학문적으로 취약한 과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의 연구비를 노리고 있다. 와셋(WASET)과 오믹스(Omics) 이외에도 수많은 약탈적 출판사들이 활약하고 있다. 가짜 학회를 기웃거리는 우리 과학자의 규모가 세계 5위라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연구비가 넉넉한 일류대학의 과학자들이 가짜 학회의 유혹에 더 쉽게 넘어가고 있다. 가짜 학술지를 넘보는 과학자의 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짜 학회·학술지의 폐해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연구비를 해외 관광에 낭비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연구 성과를 부풀리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관리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가짜 학술지에 실린 엉터리 논문이 소비자를 현혹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가짜 학술지에 실린 엉터리 논문이 게르마늄 팔찌의 마케팅에 활용되기도 했다.
   
   
   치열해진 경쟁과 늘어난 연구비
   
   과학자의 윤리적 일탈은 과학계의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국가와 기업의 연구에 대한 투자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과학자의 현실은 정반대로 더 팍팍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학자가 사회적으로 대접받던 시절도 오래전에 끝나버렸다.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승진과 연구비 확보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릴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런 이유가 과학자의 윤리적 일탈을 정당화해주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의 윤리적 일탈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은 더욱 강화되어야만 한다. 가짜 학회·학술지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정상적인 학회·학술지도 부실하게 운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짜’와 ‘부실’의 경계는 쉽게 가려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윤리적 일탈이 과학자에게만 한정된 일은 아니다. 인문·사회과학자들의 윤리적 일탈도 심각하다. 학문 세계의 윤리 수준은 사회의 윤리적 수준을 넘어서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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