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한화그룹이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오너 일가 편법 경영권 승계에 해외 계열사를 동원했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국세청도 이 의혹에 연루된 회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 중이다. 주간조선이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3월 관세청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한화그룹 비상장 계열사인 한화에너지, 에이치솔루션 등에 대한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에이치솔루션은 한화에너지의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회사로 과거 오너 일가의 편법승계에 동원돼 물의를 빚었던 한화S&C가 전신이다. 에이치솔루션의 지분은 김 회장의 세 아들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이 각각 50%, 25%, 25%씩 나눠 갖고 있다. 관세청은 에이치솔루션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한화에너지가 싱가포르 현지법인을 통해 별도의 손자(孫子) 회사인 ‘TRI Energy Global Pte. Ltd’를 만들어 그룹 일감을 몰아줬다는 혐의를 두고 있다.

싱가포르 계열사가 핵심

관세청은 지난해 조사를 통해 에이치솔루션과 한화에너지 등이 수천억원 규모의 무역 거래를 통해 외환관리법을 위반하고, 이 과정에서 거액의 배임, 횡령 등을 했다고 판단했다. 오너 일가가 사실상 100% 지분을 갖고 있는 ‘TRI Energy Global Pte. Ltd’에 편법적 일감몰아주기를 했다고도 봤다. 다만 관세청은 이 부분에 대한 직접 수사권이 없어 관련 자료를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외환관리법 혐의에 대해서는 서울중앙지검 외사부에, 이외의 혐의에 대해서는 ‘해외범죄수익환수 합동조사단’(합조단·부장 이원석)에 배당했다. 합조단은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설치됐으며, 검찰 뿐만 아니라 국세청, 관세청 등 유관 기관 인력들로 꾸려져 있다.

검찰과 관세청 등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한화그룹 오너 일가가 향후 경영권 승계를 위해 해외 계열사를 통한 일감몰아주기를 했다는 의혹이다. 한화에너지는 열병합 발전에 사용하는 유연탄의 납품처를 자사의 손자회사이자 싱가포르 법인의 자회사인 ‘TRI Energy Global Pte. Ltd’란 회사로 몇 해 전 바꿨다. 이 거래로 인해 ‘TRI Energy Global Pte. Ltd’의 매출이 늘어나게 되면 최종적인 이익은 한화에너지의 대주주인 에이치솔루션, 즉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에게 돌아가는 구조다. 그룹 내부에선 손자회사의 이름을 TRI(트라이·3개로 된)라고 지은 것이나 하필 싱가포르 법인에다 손자회사를 만든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있다.

앞서도 언급했듯 에이치솔루션의 전신은 한화S&C다. 과거에도 일감몰아주기로 물의를 빚었으며 지난해 3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이와 관련해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 내 6개 계열사를 현장조사했다. 한화가 지난해 8월 한화S&C를 물적분할하고 사명을 에이치솔루션으로 바꾼 것도 이런 오해를 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검찰과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관리 감독이 미치기 어려운 해외에다 손자회사를 만들어 새로운 형태의 일감몰아주기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에이치솔루션이 한화그룹 경영권 승계 이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왜 사정기관들이 이번 사안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지 알 수 있다. 한화그룹은 ㈜한화와 에이치솔루션이란 두 개의 회사가 사실상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한화가 지주회사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룹 내 모든 계열사에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재는 ㈜한화 외에 에이치솔루션이 한화에너지를 비롯한 그룹 내 자회사들을 거느리며 또 하나의 지주회사 역할을 수행하는 모양새다.

업계에서 ㈜한화와 에이치솔루션의 합병이나 에이치솔루션의 합병 가능성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합병 시 상장사인 ㈜한화는 가중산술평균종가(1개월·1주일·최근일 종가 평균)로, 비상장사 에이치솔루션은 최근 3개년(2015~2017) 수익가치 및 최근 연도 자산가치를 기반으로 합병가액을 산출한다. 하지만 에이치솔루션은 별도의 사업을 하고 있지 않은 만큼 결국 지분을 갖고 있는 계열사의 자산가치가 높아질수록 합병 시 세 아들이 보유할 수 있는 ㈜한화의 지분이 많아진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한화에너지가 받고 있는 의혹 중 외환거래법 위반 등은 곁가지이며 해외 계열사 간 일감몰아주기가 경영권 승계에 편법적으로 동원됐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유연탄 안정 공급 목적, 자금도 그대로”

공교롭게 에이치솔루션은 지난 3월부터 국세청의 세무조사도 받고 있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지난 2월 6일 서울 중구 장교동에 위치한 에이치솔루션 본사에 조사1국 요원들을 보내 회계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등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기존에 조사1국은 정기세무조사를 담당해왔지만 최근에는 조사1·2국이 하는 정기세무조사와 조사4국이 담당하는 특별세무조사의 구분이 거의 없어졌다는 것이 국세청 내부 흐름이다.

한화그룹 역시 지난해 관련 사안에 대해 관세청의 조사를 받은 사실을 시인했다. 다만 관세청이나 검찰의 시각과 달리 오너 일가를 위한 일감몰아주기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한화에너지는 발전사업 확장 계획에 따라 원가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유연탄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유연탄 수급 과정에서 비용의 외부 유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100% 자회사를 설립하여 유연탄을 공급받는 것”이라며 “설립 이후 현재까지 100% 주주인 한화에너지에 배당을 실시한 사실이 없고, 신용도 제고를 위해 설립 이후 외부 유출 없이 자금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화그룹은 세무조사와 관련해서는 “정기세무조사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해왔다. 김 회장은 2014년 부실 계열사를 부당지원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고, 지난 2월 집행유예 기간이 만료됐다. 그러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편법 일감몰아주기에 대해 또 한 번 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됐다.

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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