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나(가명)씨의 이름이 15명 남짓 모인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화제에 오른 것은 2015년의 일이었다. 김씨의 전 남자친구 박민규(가명)씨가 갑작스럽게 저지른 일 때문이다. 2015년 12월 김예나씨와 박민규씨는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상견례를 하고 결혼식장도 예약했지만 곧 파혼했다. 파혼 일주일 후 김씨는 자신과 박씨가 함께 참여하고 있던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끔찍한 영상’ 여섯 개가 업로드된 것을 확인했다. 언제 찍었는지도 모르는, 김씨와 박씨의 성관계 영상이었다. 박씨의 뒤통수만 나오는 대신 김씨의 얼굴이 적나라하게 다 드러난 영상은 짧게는 30초, 길게는 2~3분 길이였다.

사람들이 김씨에게 연락을 해왔지만 차마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 김씨는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근 기자와 만난 김씨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가장 사랑했던 사람한테 배신당했다는 분노, 너무 수치스럽고 억울하다는 감정, 어떻게 해야 하나 암울한 심정이 동시에 들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감정도 사그라들지 않고 4년 내내 문득문득 떠올라요. 제일 강한 감정은 ‘왜’라는 거예요. 왜 그 사람은 저를 몰래 찍었을까요. 왜 그렇게 유포를 했을까요. 제가 어떻게 되기를 바랐을까요.”

김씨는 서울 인근 경기도 신도시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직장에는 사표를 냈다. 사람들과의 연락도 끊었다. “혹시 다른 곳에 가서 이 일을 얘기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두려웠다”고 한다. 김씨는 “누군가는 분명히 어딘가에서 제 얘기를 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여전히 후회하면서 고민하는 일 중 하나는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경찰에 수사 의뢰를 했어야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점이에요. 그때 저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냥 피하고 싶었어요. 없던 일로 하고 싶었어요. 그 일을 다시 입에 올리면서 영상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싫었어요.”

사실 김예나씨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4년 전의 일을 다시금 들추기 싫다는 김씨의 강력한 거부에 한동안 김씨와의 연락이 끊기기도 했다. 그러나 김씨가 갑작스럽게 다시 연락을 해온 것은 이른바 ‘버닝썬 사태’로 불리는 연예인들의 잇단 성범죄 사건들이 일어나고 난 뒤의 일이다.

“듣지 않으려고 해도 계속 들리는 불법촬영 범죄 이야기 때문에 마음이 다시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누구에게든 얘기를 해서 이 범죄가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집 근처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김씨는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않고 2시간 내내 쉬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사건 이후 김씨의 삶은 ‘파괴됐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부모님에게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할 수 없었어요. 혼자 속으로 앓다 우울증이 심해져서 한 번은 죽으려고 한강까지 갔다왔어요. 지금도 밖에서는 화장실도 못 가요. 카메라가 있을까봐요. 방광염에 걸렸다가 회복하는 게 일상이에요.”

사람을 믿지 못하고 매사에 의심하게 됐다. 가만히 있다가도 치밀어 오르는 수치심 때문에 분노조절에도 문제를 겪고 있다. 기자와 만난 다음날 김씨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로 내보내지 말아달라”며 울부짖었다. 그러다가 “불법촬영이 예사롭게 일어나는데 그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말로 기사화를 허락했다.

K팝 버전으로 경험하는 불법촬영의 나라

‘버닝썬 사태’는 불법촬영 범죄가 얼마나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이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영상을 촬영하는 것은 물론 제작된 불법촬영물을 유포하는 것은 엄연한 범죄 행위다. 그러나 종종 대중들은 이 같은 행위로 입건된 가수 로이킴, 에디킴 등을 ‘잔챙이’라고 부른다. “잔챙이만 잡아들이지 말고 제대로 수사하라”고 요구하는 식이다. 한 변호사는 라디오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실제로 한두 장 사진을 올리면 경찰에서 입건도 안 한다”며 “이걸 하나하나 전부 다 처벌하게 되면 우리나라 많은 남성,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처벌될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이킴과 에디킴은 잔챙이가 아니다. ‘버닝썬 사태’는 연예인이 일부 치안권력과 유착해 탈·불법적인 일을 거리낌없이 저지른 일만 일컫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다는 연예인 집단에서조차 불법촬영이 일상적이고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준 ‘불법촬영 스캔들’이다.

영국 언론 가디언(The Guardian)은 지난 3월 21일 한국의 ‘관음증 스캔들(Voyeurism Scandal)’을 크게 보도했다. ‘1600명의 호텔 숙박객을 불법촬영한 일당을 체포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가디언은 한국이 “몰카라는 전염병에 맞서싸우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가수 정준영이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하고 유포해 구속된 사건도 이 전염병의 일종이라는 게 가디언의 시각이다.

한국 밖에서는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K팝 스타들의 몰락을 다른 무엇이 아닌 ‘불법촬영 스캔들’로 보고 있다. 미국의 CNN, USA투데이 같은 많은 해외 언론사도 한국의 스캔들을 기사로 다뤘는데 그중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편집장 욘덴 라투(Yonden Lhatoo)까지 나서 일련의 사건을 자세히 분석했다. ‘승리와 정준영의 섹스 스캔들이 한국의 유해한 남성문화를 어떻게 보여주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한국의 불법촬영 범죄의 연장선상에서 ‘버닝썬 사태’를 읽었다. 마이클 허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 기사에 인용된 인터뷰에서 몇 가지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불법촬영 스캔들’이 일부 남성 K팝 스타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미 반복해 벌어진 몇 가지 불법촬영 범죄 사례를 언급하면서 불법촬영에 동조하는 남성들과 관련해 “한국에서 이런 유형의 남성은 전형적(just par for the course for certain kinds of men in Korea)”이라고 말했다. 기사를 그대로 인용하자면 허트 교수는 “여성에 대한 불법자료를 공유하고 여성을 고기조각이나 협상카드처럼 취급하는 것은 한국에서 흔한 일”이라면서 “우리는 지금 이것을 K팝 버전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한국 전체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인지도 높은 K팝 스타이기 때문에 대서특필된 것이지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일반인 남성도 많다는 얘기다.

불법촬영은 남성 놀이문화의 일종

실제로 불법촬영 범죄로 검거되는 인원은 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늘어나는 추세다. 경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6년에는 4891건이던 검거 건수가 2017년에는 6220건으로 크게 늘었다. 불법촬영 범죄의 특성상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인지하기 쉽지 않다는 점, 여타 성범죄와 마찬가지로 신고율이 낮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매우 많은 수다. 같은 시기 강간으로 검거된 범죄자 수가 5134명이었다. 왜, 누가 불법촬영을 저지르는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불법촬영 가해자의 특성을 살펴보면 실마리가 보인다. 조윤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분석을 보자. 불법촬영이 아닌 다른 일반 성범죄 가해자의 직업을 보면 대다수가 무직이다. 40.0%가 무직이고 사무직 가해자는 26.6%다. 불법촬영 성범죄자의 직업 분포는 완전히 반대다. 불법촬영 가해자의 40.6%가 사무직이고 25.4%가 무직이었다.

눈에 띄는 통계자료는 하나 더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에서 낸 통계를 보면 불법촬영 가해자의 71%가 피해자와 아는 사이였다. 특히 직장동료, 같은 학교 학생처럼 일상을 공유하는 가해자가 17.6%에 달했다. 두 통계를 요약해보자면 많은 불법촬영 가해자는 직장과 학교에서 만나게 되는 평범한 동료라는 결론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불법촬영 성범죄자는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하위 계층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계층의 남성들이 불법촬영에 나서고 이에 동조하는 현상을 두고 페미니스트 철학자 윤지선씨는 “남성연대의 일종”이라고 설명했다.

“남성의 놀이문화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불법촬영물이 카카오톡 같은 소셜미디어 메신저를 통해 더 많이 생산되고 유포되며 독려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남성들 사이에서 불법촬영물은 남성성을 확인하며 권력을 생산하는 일입니다.”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불법촬영물을 만들어 올리는 남성에게는 시선이 집중된다. “너 왜 이러냐” 비난하는 사람 없이 오히려 “더 내놓아라”라는 부추김을 받곤 한다.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불법촬영물의 일부를 업로드하면 곧바로 “좌표를 찍어달라”며 영상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추종자’가 나타난다. 불법촬영물 생산자·유통자는 그 집단 안에서는 상당히 남성다운, 리더 역할을 하게 된다.

정준영과 승리의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은 아주 전형적인 사례다. 정준영은 ‘은밀한’ ‘즐거움’을 공유하는 남성 집단의 리더로서 불법촬영 생산물을 마구 내놓는다. 정준영의 추종자들은 때로는 정준영을 부추기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하면서 영상물을 즐긴다. 만약 그 자리에서 “이러지 말라”고 말리는 남성이 있다면 그는 집단에서 축출되거나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내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면 ‘너는 왜 얌전히 있느냐’는 지적을 받을지도 모른다. 학교나 군대에서 겪었던 바 그대로 남성집단에서 어울리기 위해 남성들은 불법촬영물에 대해 ‘굿’ ‘ㅋㅋㅋ’ 같은 반응을 돌려준다.

“남성의 놀이문화, 남성성과 권력을 확인받는 과정에서 여성은 그저 물건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여성들을 수치심을 가진 인간적인 상대로 여긴다면 좌표를 찍고 여성 신체에 대해 마구 품평할 수 없습니다.”

불법촬영이 남성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는 불법촬영물이 촬영되기 어려운 장소에서 촬영할수록 더욱 존중받는다는 점에 있다. 정준영은 ‘상가’에서 촬영한 성관계 영상을 올리면서 마치 자랑하듯이 “난 쓰레기야”라고 말했고 지인은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라”라면서 칭찬하는 말을 건넸다. 위험 부담이 큰 곳에서 촬영하면 할수록 성취감은 커진다. 불법촬영물은 성적 쾌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왜 사무직 남성 가해자가 많을까

윤지선씨는 불법촬영 카메라가 아주 일상적인 공간에, 굉장히 많은 수로 분포하고 있는 것을 두고 “여성에 대한 감시체계”라고도 설명했다.

“왜 남성성을 확인하는 방법이 불법촬영이어야 하느냐면 그것이 그간 남성들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던 억압과 통제, 권위를 재확인시켜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불법촬영 카메라는 어디에든 존재하는데 그러면서 남성들은 일상적인 공간, 회사, 학교에서 느꼈던 상실감에 대한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남자답다’는 말에 얽매이는 남성들이라면 직장에서, 학교에서 남성의 자리를 잃어가는 데에 대해 불만을 가질 것이다. 전통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은 남성의 역할이었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상실감을 보상받는 방법 중 하나는 여성이 알 수 없는 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가장 내밀한 모습을 보면서 ‘탈취자’인 여성을 물건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니네가 아무리 잘난 척해봤자 결국 너희는 내 앞에서 신체를 다 드러내게 될 걸’이라는 우월한 시선이 일상적인 불법촬영에 담겨 있습니다. 불법촬영물을 찍고 유포하면서 안심을 하는 거죠. ‘난 아직 남자야’라고요.”

그런 점에서 가해자 중 유독 사무직 남성이 많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종종 판사나 변호사, 의사 같은 전문직 남성이 불법촬영으로 처벌받게 된 사건이 보도되기도 한다. 이들은 꼭 변태 취향을 가졌기 때문에만 불법촬영을 했던 것이 아니다. 불법촬영이라는 행위를 통해 얻는 만족감·성취감, 그것을 공유하면서 얻는 인정(認定) 같은 감정 때문에 위험부담이 큰 불법촬영에 나섰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불법촬영 성범죄자의 재범률은 다른 성범죄에 비해서도 높은 편이다. 범죄를 통해 성적인 쾌락만을 얻는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볼 수도 있겠지만 불법촬영 범죄를 통해 얻는 것은 매우 복합적이고 다양하다. 다른 어떤 행위를 통해서 얻어낼 수 없기 때문에 불법촬영 가해자들은 또다시 범죄를 저지른다.

불법촬영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 단순히 불법촬영 행위만을 처벌하고 예방하려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법촬영은 뿌리 깊은 여성혐오와 남성연대의 결과물로 나온 것이라는 해석이 맞다면 해결책도 심층적이고 복합적이어야 한다. 일부의 일탈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단체에서는 불법촬영물 유통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불법촬영과 촬영물은 굉장히 많은 남성의 암묵적이거나 적극적인 동조하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문화적인 것이기 때문에 원천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서 피해영상물이 유통되는 웹하드 42곳을 전수조사해 봤습니다. 그 결과 검색어를 차단하는 방식으로는 영상물 유통을 거의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인터넷플랫폼사업자(ISP) 플랫폼에서 아예 유통 자체를 차단할 수 있게 조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근본적으로는 불법촬영물이 생산되는 이유, 잘못된 남성연대와 남성 놀이문화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양성평등 교육을 전면 실시하고 젠더 간 소통을 늘리는 등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불법촬영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행위를 멈출 수 없었던 ‘버닝썬 사태’를 만든 인물들에게는 적절한 처벌과 함께 젠더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불법촬영의 피해자 김예나씨는 “제가 나온 영상을 보고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던 단체 채팅방의 사람들 모두가 똑같은 범죄자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제가 완전히 잠적해버린 이유는 그저 수치스러워서가 아니에요. 모두가 나쁜 범죄자처럼 느껴져서예요. 불법촬영을 하는 사람이 제일 나쁘지만 영상을 보거나, 보지 않더라도 소극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도 만만치 않게 나쁘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이 있으니까 불법촬영을 하는 사람이 줄어들지 않는 거라고 봐요. 결국 우리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불법촬영에 대해 적극적으로 ‘안 된다’고 말해야 해요. 이번에 ‘버닝썬 사태’가 터지고 나서 포털 검색어에 ‘정준영 동영상’ 따위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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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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