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1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1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2008년 7월 11일 금강산에서 관광객 박왕자(53)씨가 북한군 병사가 발사한 총탄에 숨졌다. 이 병사는 북한군 여성 해안포 부대 소속으로 입대 2년 차 열아홉 살 여군이었다. 당시 이 여군은 오전 5시께 매복하고 있던 곳으로 접근하던 박씨에게 여러 발의 실탄을 발사했다. 이 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은 중단됐다. 북한 정권이 이 사건에 대해 사과를 거부하고 재발방지 약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은 이 여군에게 국기훈장 1급을 수여했다. 북한 정권은 지금까지도 이 사건에 대한 사과와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 조치 등을 거부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은 1998년부터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대북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한국 기업인으론 최초로 김정일과 만나 ‘금강산 관광 사업에 관한 합의서 및 부속합의서’를 맺었다. 이후 금강산 관광은 규모가 차츰 커졌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은 해로에서 육로로 확대됐고, 나중에는 승용차 관광까지 허용됐다. 2004년부터 당일 관광, 1박2일 관광에서 2박3일 관광까지 가능해졌다. 사업 시작 7년 만인 2005년 6월 누적 관광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2008년 7월까지 195만명이 금강산을 방문했다.

관광사업은 제재 대상서 빠져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남녘 동포들의 소망을 헤아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김정은은 박왕자씨 피살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도 전혀 언급하지 않고, 마치 시혜를 베풀듯이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김정은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콕 집어서 언급한 이유는 ‘돈줄’이기 때문이다. 금강산 관광만 해도 매년 평균 5000만달러의 돈이 북한 정권의 금고로 들어갔다. 관광객 입장료 명목으로 받은 한 사람당 100달러가 넘는 현금은 개성공단과 함께 북한 정권의 주요 달러벌이 창구였다. 북한 정권이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금강산에서 가진 것도 금강산 관광 재개를 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관광사업에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 안보리 결의 2094호는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 및 활동 또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에 반하는 제반 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 대량 현금의 대북 이전을 금지하고 있다. 이른바 벌크캐시(Bulk Cash) 금지 조항이다.

하지만 북한 여행이나, 북한에 여행 관련 대금을 현금으로 지불하는 행위 자체를 제재 대상으로 삼고 있지는 않다. 중국을 비롯해 외국인 관광객들이 북한을 방문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정부의 독자 제재조치에서도 북한의 관광사업은 빠졌다.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금강산 관광 중단이라는 제재조치를 내렸을 뿐이다. 북한 정권의 의도는 대북 제재의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 정부의 독자 제재, 그중에서도 금강산 관광 재개부터 가장 먼저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도보로 두만강 건넌 중국인 관광객들

북한 정권이 그동안 김정은 집권 이후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것은 관광사업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제재조치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정부는 자국민에게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 국민들의 북한 관광을 막지는 않고 있다. 뤼차오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관광은 유엔 안보리 제재를 받지 않는 북한의 핵심 외화벌이 사업”이라면서 “북한 정권이 앞으로 관광산업을 발전시키려 할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북한 정권은 관광산업을 통해 연간 4400만달러의 수입을 창출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북한의 연간 관광객 유치 규모는 중국인 10만~20만명, 서양 관광객 5000여명이다. 중국에서 비행기편으로 평양에 들어가 지방 여러 곳을 다니는 4박5일 상품 가격은 한국 돈으로 88만원부터 170만원까지다. 열차편은 이것보다 조금 싸다. 신의주 당일관광 상품도 있다. 가이드 팁과 각종 팁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가격이라 실제 비용은 이보다 더 많이 든다고 한다.

북한 정권은 최근 들어 갈수록 외환보유고가 줄어들자 외국인 관광객 모집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제로 올해 1월 1일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의 훈춘에서 중국인 관광객 100여명이 얼어붙은 두만강을 걸어서 건넌 뒤 북한의 나선특별시를 관광하기도 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도보로 두만강을 건넌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말 그대로 두만강의 ‘빙상 관광통로’가 개통됐다. 북한 정권은 이처럼 중국의 국제여행사들을 통해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평양과 금강산, 묘향산, 판문점 등 관광명소와 수준 높은 관광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적극 홍보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중국인 관광객의 경우, 여권과 신분증만 있으면 출입국 통관절차를 쉽게 해주고 있다. 또 중국인 관광객들의 휴대폰과 카메라 사용을 허가해주는 등 통제도 대폭 완화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 정권은 4월 15일 이른바 태양절(김일성 생일) 행사에 지난해 9월 선보였던 대(大)집단체조 공연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북한에 구경거리가 없다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불평에 따라 대집단체조 공연이 재개됐다고 한다. 북한의 집단체조는 최대 10만명의 인원을 동원해 체조와 춤, 카드섹션 등을 벌이는 대규모 공연이다. 북한 정권은 2002년 김일성의 제90회 생일을 맞아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아리랑’이라는 제목의 집단체조를 처음 선보인 이래 2013년까지 공연을 해왔다. 북한 정권은 지난해 9월 ‘빛나는 조국’이라는 집단체조 공연을 재개했다. 당시 북한 정권은 이 공연으로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상당한 실적을 올렸다고 한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공사도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포석이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는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조성 계획을 밝힐 만큼 중요하게 추진하는 사업 중 하나다. 김정은은 지난 4월 6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현장을 또다시 방문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8월 중순과 10월 말에도 이곳을 방문해 공사 진행 상황을 직접 챙긴 바 있다. 당시 김정은은 올해 당 창건 기념일인 10월 10일까지 공사를 마치라고 지시했었지만, 이번에는 공사 기간을 6개월간 더 연장해 내년 태양절까지 완성하라고 명령했다. 김정은이 완공 목표 시점을 6개월 더 늦춘 이유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조치로 장비와 자재 등의 반입이 어렵다는 점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관광 분야는 북한 정권이 수월하게 외화를 확보할 수 있는 ‘틈새시장(니치마켓)’이 될 수 있다. 김정은으로서는 한번 기반시설을 갖춰놓으면 추가로 큰 재원을 투입하지 않더라도 안정적으로 외화벌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광산업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때도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전망대 등을 둘러보는 등 관광에 관심을 보였다. 세계적 관광대국인 스위스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김정은에게 관광산업은 ‘노다지’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새겨져 있을 수도 있다. 북한 정권은 최근 기존 명승지 중심의 단체관광을 넘어 체험과 테마 중심의 개별관광 상품도 내놓고 있다. 해외에서도 이름을 얻고 있는 맥주투어는 물론 자전거나 스키, 골프 등 레저스포츠형 여행 상품도 다수 개발됐다. 또 평양관광대학을 신설해 관광안내(가이드)학부와 관광경영(경영과 개발)학부 등을 설치해 관련 인력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각 도에 위치한 사범대학에도 관광학부를 만들었다. 특히 북한 정권의 입장에선 외국인 관광객을 주민들과 접촉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격리하고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관광산업이 입맛에 맞을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평양의 김정은 선전물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young pioneer tours
외국인 관광객들이 평양의 김정은 선전물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young pioneer tours

‘지상 최대 쓰레기’ 오명 류경호텔

북한 정권은 외국인 관광객을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 호텔 등 숙박시설을 확충하려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현재 평양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는 호텔은 고려호텔, 양각도호텔, 서산호텔밖에 없다. 김정은이 류경호텔을 올해 안으로 무조건 완공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평양 보통강구역에 있는 105층짜리 류경호텔은 1987년 김일성 생일 80주년을 완공 목표로 착공됐다. 하지만 골조공사만 끝냈고 1990년대 이후 자금난으로 내부공사가 완전히 중단됐다. 이 건물은 지난 30년간 ‘지상 최대 쓰레기’라는 오명을 들어야만 했다. 북한 정권은 평양의 마천루가 될 것이라고 자랑하던 류경호텔이 외국에서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자 지난해부터 호텔 외벽에 화려한 LED조명으로 선전구호를 장식해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이 지금까지 보여온 행보로 볼 때 북한 정권이 구상하는 관광산업의 핵심은 금강산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그리고 마식령스키장을 연계하는 코스일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볼 때 금강산은 김정은이 그리고 있는 ‘관광대국’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첫 관문이다. 금강산이 열려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와 마식령스키장에도 본격적으로 한국인과 외국인 관광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수차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현장을 둘러보면서 “건물을 더 지어야 한다” “시공의 질을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을 보면 이곳에 매년 100만명의 관광객 유치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도의 대규모 관광객을 끌어모을 수 있는 것은 한국밖에 없다.

김정은은 이런 구상을 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상당한 교감을 한 듯하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조건 없고 대가 없는 재개 의지를 매우 환영한다”면서 “이로써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북한과 풀어야 할 과제는 해결된 셈”이라고 김정은의 발언에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당시 문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매우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북한 정권은 그동안 수많은 도발을 일으키고도 사과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금강산 관광을 갔다가 황당하게 목숨을 잃은 박왕자씨와 유족들을 생각해서라도 북한 정권에 제대로 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확실하게 받아내는 것이 대통령의 의무인데도 이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한술 더 떠 “남북 간 경제협력이 시작된다면 가장 먼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금강산 관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금강산 관광을 따로 언급하며 개성공단보다 먼저 재개할 수 있다는 취지로 언급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2월 28일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 재개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금강산 관광 재개에 집착하는 이유는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제시한 ‘신한반도체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문 대통령은 “신한반도체제는 대립과 갈등을 끝낸 새로운 평화협력 공동체이자 이념과 진영의 시대를 끝낸 새로운 경제협력 공동체”라면서 “한반도에서 ‘평화경제’ 시대를 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어 “평화경제 시대의 일환으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개 방안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강조했었다.

문재인 정부가 4월 27일부터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안보 체험 여행지로 고성 구간부터 개방한다고 밝힌 것도 금강산 관광 재개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른바 ‘DMZ 평화둘레길’의 일환인 고성 구간은 금강산전망대에서 금강산의 절경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정권과 사전 합의도 없는 데다 DMZ 내 군사적 긴장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9·19군사합의 이행이 사실상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인의 안전대책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이런 사업부터 추진하는 것은 자칫하면 불상사로 이어질 수 있다.

문 대통령, 금강산 관광 재개 맞장구

특히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금강산 관광 재개는 시기상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북한 정권이 금강산 관광 재개를 통해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조치를 허물어뜨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비핵화 조치 없이 북한 정권의 제재 해제 요구를 먼저 검토해서는 안 된다면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같은 남북경협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도 제재 완화의 긍정적 효과를 거둘 수 없는 북한 정권의 돈벌이 수단일 뿐”이라면서 “금강산과 개성공단 사업은 북한 정권의 돈줄 역할을 하고, 이 사업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간 자금이 핵과 미사일 개발로 가는지 현금으로 대체되는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도 “금강산과 개성공단은 김씨 정권 궁정(宮廷)에 직접 자금을 공급하는 돈줄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은 성급하게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남북경협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토머스 컨트리맨 미국 군축협회 이사장은 “김정은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원하지만 남북경협 재개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무튼 금강산 관광은 북한 비핵화 이후 천천히 재개해도 늦지 않다. 금강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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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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