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은 중독으로 치유한다.” 명성진 목사는 본드 중독 아이들을 음악 중독으로 이끌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중독은 중독으로 치유한다.” 명성진 목사는 본드 중독 아이들을 음악 중독으로 이끌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진영(가명)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술, 담배를 했다. 나쁜 형들의 심부름을 하면서 범죄를 배웠고, 다른 아이들에게 범죄를 가르치는 범죄 영재가 됐다. 엄마는 불치병으로 누워 있고, 장애를 안고 노동으로 삶을 연명하던 아버지는 걸핏하면 진영이를 때렸다. 가출을 밥 먹듯 하며 길거리에서 살았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소년원과 치료감호소를 들락거렸다. 본드 중독으로 여섯 번이나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조치를 당했다. 자살한 아버지의 시신을 거두고 장례를 치르면서도 본드를 흡입했다. 올해 스물네 살이 된 진영이는 비행청소년을 돌보는 선생님이 됐다. 진영이는 위기의 아이들에게 “나도 저렇게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다.

덩치 큰 한솔(가명)이는 동네의 짱이었다. 부모의 통제에 숨이 막혔던 한솔이는 비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저항했다.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자해를 시도했다. 어른에 대한 불신과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괴물이 되어갔다. 중독처럼 나쁜 짓을 하던 한솔이는 현재 스물네 살, 꿈을 노래하는 밴드 보컬이 됐다. 음악을 통해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아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멘토로 활약하고 있다.

세상이 버린 아이들이 세상을 품은 아이들로 바뀌기까지는 전쟁 같은 시간이 있었다. 이들의 변화 과정은 롤러코스터처럼 회복과 추락을 반복했다. 본드 중독에서 벗어났나 싶은 순간 다시 중독의 늪으로 빠져들었고 범죄의 유혹에 수시로 흔들렸다. 수년 동안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도 진영이와 한솔이가 건강한 삶을 살게 된 것은 자신을 믿어주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세상을 품은 아이들’(이하 세품아)을 만든 명성진(51) 부천 예수마을교회 목사이다. 세품아는 위기의 청소년들이 함께 사는 공동체이다. 2008년 명 목사가 한 명의 가출 청소년을 거두어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이 한 명 두 명 비행 청소년들이 모여들면서 수십 명의 가족공동체로 발전했다.

2018 몽골힐링캠프. 여행은 ‘세상을 품은 아이들’을 이끄는 중요한 축이다.
2018 몽골힐링캠프. 여행은 ‘세상을 품은 아이들’을 이끄는 중요한 축이다.

청소년 범죄 해결할 통합 솔루션을 찾다

명 목사에게는 진영이, 한솔이처럼 마음으로 품은 자식이 10여년 동안 수백 명에 이른다. 세품아에는 늘 25~30명의 청소년이 모여 산다. 15명은 법원에서 6호 보호처분(소년원 대신 사적 보호시설 격리)을 받아 감호위탁받은 청소년들이다. 2016년 세품아는 인천가정법원으로부터 청소년 위탁기관으로 지정됐다. 이들은 세품아 생활관에서 공동생활을 한다. 세품아 근처 주택에 자리 잡은 그룹홈 2곳과 자립홈 1곳에는 10~15명이 들고 난다.

그동안 명 목사는 범죄와 본드에 중독된 아이들을 구하느라 하루도 조용하게 넘어간 날이 없었다. 경찰서로 법원으로 뛰어다니고, 도망간 아이 잡으러 다니고, 싸우다 피범벅이 된 아이 둘러업고 병원으로 달렸다. 본드와의 전쟁도 벌였다. 인천·부천은 청소년 본드 사범의 소굴이었다. 한때 전국 본드 관련 사범의 3분의 1이 이 지역에서 발생했다. 본드는 비행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삽시간에 퍼졌고 세품아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음을 잡아가던 세품아의 아이들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2012년 인천지법 판사들과 명 목사가 팔을 걷고 나섰다. 본드 불매운동을 벌이고 본드 제조업체를 찾아다니며 환각물질인 톨루엔을 뺄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기술표준원의 행정지도로 이어져 35~45%에 달하던 톨루엔 함량은 0.1%로 줄었다.

세품아의 1세대 아이들은 이제 20대 중후반이 됐다. 그들 중 일부는 명 목사 옆에서 비행청소년 구출에 나서고 있다. 문제아에서 문제해결사가 된 것이다. 1세대들이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며 성장하기까지 명 목사는 숱하게 좌절을 맛봤다. 10여년 치열하게 소통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명 목사는 청소년 범죄를 막을 수 있는 솔루션을 찾았다. 명 목사는 ‘적극적 발굴-회복적 생활공동체-그룹홈-자립’의 단계로 진행되는 세품아의 통합 솔루션이 청소년 범죄와 위기 청소년 문제를 해결할 혁신 방안이라고 믿는다. 명 목사는 이 솔루션을 사회로 복제·확산시키기 위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한 명의 비행청소년을 바꾸는 것은 잠재적인 범죄를 막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일이다. 지난 10년이 ‘시즌 1’이었다면 다음 10년을 향한 ‘시즌 2’가 시작된 것이다.

지난 4월 10일 명 목사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에 있는 세품아 사무실을 찾았다. 3~5층짜리 빌라들이 붙어 있는 골목, 허름한 5층 건물 중 4개 층을 빌려 쓰고 있었다. 2층은 세품아 사무실, 3층은 교회, 4층은 생활관, 5층은 음악 스튜디오로 사용하고 있다. 6개월 격리처분을 받은 아이들이 생활하는 3층부터는 출입문이 안에서 잠겨 있었다. 생활관 안에서 아이들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 창문을 통해 탈출하는 아이들이 있지만 뛰어봤자 명 목사의 손바닥 안이다. 아이들을 풀면 그의 레이더망에 다 들어오게 돼 있다고 했다. 바짝 깎은 머리에 가죽점퍼를 입은 그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SBS 드라마 ‘열혈사제’를 떠올리게 했다. 명성진 주연 ‘열혈목사’의 스토리도 ‘열혈사제’ 못지않게 스펙터클 반전 드라마다.

2018 ‘세품아’ 페스티벌에서 세품아 출신들로 구성된 ‘MG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다. ⓒphoto 세품아
2018 ‘세품아’ 페스티벌에서 세품아 출신들로 구성된 ‘MG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다. ⓒphoto 세품아

시즌 1 비행청소년들을 만나다

그는 가난한 교회의 평범한 목사였다. 교회 앞에서 죽치고 노는 동네 일진들이 그도 한때는 무서웠다. 어느 날 차 밑에서 노숙하는 아이가 보였다.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집에 데려온 것은 목회자로서 양심 때문이었다. 아이는 집에 돌아갈 처지가 아니었다. 같이 라면 끓여 먹으며 며칠 밤을 새워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출할 만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아이가 겪은 현실은 잔인했다. 교회 한편에 거처를 마련해줬다. 아이의 친구들이 하나둘 놀러오고, 소문을 들은 부모들이 자신들도 포기한 아이의 손을 잡고 찾아왔다. ‘세상을 품은 아이들’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이들을 데리고 살다 보니 나쁜 아이들이 아니라 아픈 아이들이었습니다. 가출이 아니라 탈출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만난 아이들은 가정에 문제가 없는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아버지한테 칼 맞은 아이, 욕실에서 자살한 어머니를 목격한 아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가출해 남의 집 옥상에서 불 피우다 범죄자가 된 아이. 어쩌면 그렇게 한이 많고 아픈지 거친 욕설과 문신들에 가려져 있던 고통들이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살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겁니다. 가족의 사랑이 있으면 지나가는 바람이 되지만, 그게 없으면 바람에 쓸려갑니다. 상처받고 고통받은 것이 범죄로 폭발한 거지요. 범죄자로 보면 돌봐야 하지만 아픈 아이는 치유해야 합니다. 접근법이 달라집니다.”

아이들을 이해하기까지 그도 시간이 걸렸다. 뒤통수도 여러 번 맞았다. 명 목사의 지갑을 털어 도망가고, 본드 중독으로 IQ 140이던 아이가 100 이하로 떨어졌다. 환각 증상으로 찻길에 뛰어든 아이도 있었다. 다시 범죄의 소굴로 찾아들어간 아이들을 찾아 미친 듯이 헤매기도 했다. 오죽하면 한 청소년 상담사가 “아이들이 아니라 목사님 얼굴이 더 문제예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다 한 사건을 통해 크게 깨달았다.

‘본드 전도사’로 불리던 아이였다. 머리도 좋고 통솔력도 있었다. 세품아에 들어와 놀라울 정도로 변했다. 그런데 소년원 친구와 다시 만난 후 세품아를 뛰쳐나가 본드를 하고 몰려다녔다. 믿었던 만큼 배신감도 컸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경찰서에서 “씨X 아버지도 아닌데 목사님이 왜 그래요” 바락바락 대드는 아이에게 “나도 몰라, 집에 가자”고 소리치고 아이를 안았다. 아이가 엉엉 울었다. 그 순간 알았다. “아이가 걱정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작품이 손상되는 것이 화가 났던 겁니다. 아이가 아니라 나를 위해 화를 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비로소 아이들이 존재 그 자체로 다가왔다. 그리고 아이들과 진짜 가족이 됐다. 다시 문제를 일으키고 본드에 손을 대는 것도 변화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도망간 아이들은 사실 자신을 찾아주길 바라고 있었다. 버림받은 기억 때문에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달팽이처럼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인식을 바꾸니 아이들 안에 있는 보석 같은 재능들이 보였다. 범죄의 낙인 뒤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숨어 있었다. 치워야 할 쓰레기가 아니라 개발해야 할 자원들이었다. “중독은 중독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본드 중독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한 자극이다. 웬만한 자극으로는 그 고리를 끊기 힘들다.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는 본드와 범죄 중독을 음악 중독으로 만들었다.

그는 목사가 되기 전 공연 기획을 했고 기타로 밴드 활동을 했다. 세품아 살림을 맡고 있는 부인 임수진씨는 작곡을 전공했다. 부인 인맥으로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생님을 붙여줬다. 윤도현밴드 리드기타 출신 유병렬씨, 이탈리아 유학파 성악가를 비롯해 국내 실용음악계의 전문가들이 도와줬다. “잘한다” “소질 있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아이들은 하루 9시간이 넘는 지옥훈련을 견뎠다. 2010년 MG 밴드가 결성됐다. 기적의 세대(Miracle Generation)라는 뜻이다. 밴드명대로 아이들은 기적처럼 달라졌다. 수차례 공연을 열었고 봉사 공연도 다녔다. 밴드 멤버들은 문화예술 소셜벤처 ‘5ive Story(파이브 스토리)’를 만들고 CJ 문화재단과 함께 드림스쿨에서 음악 멘토로 활동하면서 음악으로 또 다른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여행은 세품아의 또 다른 주요 키워드이다. 나를 만든 환경과의 단절은 변화에서 중요한 지점이다. 처음엔 충돌하고 주먹이 날아다니다가도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찾아간다. 그는 “문제가 터지는 것은 반전의 기회”라고 말한다. 몽골 힐링캠프, 산티아고 순례길, 자전거 국토종단, 백두대간 종주 등을 통해 아이들은 쑥쑥 성장해서 돌아왔다. “가져간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순간 진짜 아이들로 돌아옵니다. 처음엔 여행에 많은 프로그램을 집어넣었는데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말 타고 걷고 놀고 이야기하다 보면 아이들이 회복되는 것이 보입니다.”

시즌 2 체인지메이커를 넘어 패스메이커로

2017년 세품아 미래교육연구소를 만들어 교육 모델과 시스템 연구에 본격 나섰다. 음악, 여행 등 10여년 경험한 문제 해결 방식을 결합해 ‘청소년 재범 방지 솔루션’을 완성했다. 최근 세품아의 다섯 아이들을 연구한 ‘비행청소년의 탈비행 너머: 돕는자로서의 삶’이라는 논문은 한 명의 변화가 10명, 100명의 아이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굿 라이프 모델’, 즉 삶의 모델을 보면서 따라가는 것이다. 세품아 출신들의 자립이 중요한 이유다.

가족공동체적 돌봄, 여행, 음악을 확장시킨 세품아 통합 솔루션은 이제 사회에 확산시킬 준비가 갖춰졌다. 첫 시도는 공교육이다. 현재 울산에 있는 한 학교의 교과 과정에 이식하는 것을 실험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통하면 다 통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 범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현재 소년범 시설도 재범을 막는 데는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이 솔루션이 널리 퍼져 하나의 생태계가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현재 고민은 솔루션의 마지막 단계인 ‘자립’이다. 공동체 내에서 회복이 된 아이들을 취업시켰더니 100% 실패였다. 가족에게 받은 상처는 어른에 대한 분노로 잠재돼 있다 관계 장애로 터져 나왔다. 대인관계를 훈련시키기 위해 세품아 근처에 밥집 ‘허기’를 만들었다. ‘허기’에서 평범해 보이는 한 청년이 홀을 책임지고 있었다. 세품아 출신인 이 청년이 손님을 편하게 대할 수 있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해결책을 해외에서 찾고 있다. 환경이 바뀌면 효과가 빨랐다. 몽골에 전진기지를 마련하고 카페, 식당, 여행사를 만들었다. 이곳에 아이들을 보내 사회적응 훈련을 시키고 있다. 한 건축가의 재능기부로 제3세계에 적정주택을 공급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벌인 사업들을 모아 지주회사를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규모를 키워 ‘자립’ 사업에 전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그는 세품아 대표를 내놓고 자립팀을 이끌고 있다.

“사실 ‘자립’에서 길이 막혔어요. 그러다 길이 없으면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체인지메이커(change maker·변화를 만드는 사람)를 넘어 패스메이커(pathmaker), 즉 길을 만드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습니다.”

그의 곁에는 세품아 선생님 등 그와 함께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2014년 사회혁신가들을 발굴해 지원하는 아쇼카코리아의 펠로로 선정됐다. 정혜신 박사 등 아쇼카 펠로들의 네트워크는 그가 계속해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 돼주고 있다. 무엇보다 부인 임수진씨는 그의 비빌 언덕이다. 목사가 되기 전 사업에 실패해 죽음 앞에까지 갔을 때도, 뒤늦게 신학대학에 편입했을 때도 그를 변함없이 지지해줬다. 살림살이는 늘 팍팍하다. 세품아 운영은 기업 후원이 가장 큰 축이다. 감호위탁 1인당 월 30만원이 지원되고, 매월 정기적인 후원회원들이 있다. 후원금은 5000원부터 몇십만원까지다. 5000원은 세품아 아이 중 한 명이 자신의 용돈을 아껴 낸다. 가장 많은 후원금은 현재 자동차 서비스 사업을 하는 세품아 출신이다.

그의 소망은 누군가의 비빌 언덕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언덕에서 많은 열매가 열렸다. 그 열매가 싹이 터 또 다른 누군가의 언덕이 되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 세품아 출신 선생님의 책상에는 이런 메모가 붙어 있다. 그가 수없이 되뇌었던 말이기도 하다. ‘모든 아이들은 가장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는 순간이 가장 사랑이 필요한 순간이다.’

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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