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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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난 가장 어린 아이는 22주5일 만에 태어난 세쌍둥이였어요. 통계적으로 평균 임신기간은 266일, 38주죠.”

2017년에 태어난 신생아 중 이른둥이는 7.2%. 해마다 비중이 늘어나는 이른둥이를 어떻게 치료하고 지원할 것인지 묻기 위해 이른둥이 전문가를 찾았다. 강남차병원 NICU(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만 10년 넘게 자리를 지킨 전지현 강남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쌍둥이를 임신한 산모가 갑자기 병원에 찾아왔는데 조기 진통 때문이었어요. 보니까 자궁 문이 열려버린 상태더군요. 산모와 가족들에게 말했어요. 이제부터는 하늘에 맡기자고요. 저희는 그저 아이를 세상에 데려다놓을 뿐 삶과 죽음에 완전히 관여할 수 없다고요. 한 아이는 사산(死産)된 채로 세상에 나왔어요. 두 아이는 500g도 채 되지 않았지요.”

22주가 갓 지난 태아의 몸에는 심장과 폐 같은 장기가 모양만 갖췄을 뿐 제대로 작동할 만한 힘이 없다. 어른 손바닥만 한 아기에게 5㎜ 되는 기관을 삽관해 인공호흡을 시도해야 한다.

“어른도 힘들어하는 기관 삽관을 두 아이가 모두 잘 견뎠어요. 심장도 잘 뛰지 않기 때문에 강화제를 투약했지요. 먹지도 못하니까 5대 영양소를 계속 조정해 넣었어요. 의료진은 24시간 내내 아이들에게 붙들려 있었지요.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다가 “촛불이 훅 꺼지듯” 한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숨을 멈췄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지만 수없이 겪는 일이기도 해요. 아주 작은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라 예후를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아요. 제가 자주 하는 말처럼 촛불이 바람에 훅 꺼지듯 순식간에 상황이 변할 때가 많아요. 그때 22주5일 만에 태어난 한 아이도 그랬죠.”

좌절할 법도 했지만 전지현 교수는 포기하지 않았다. 불안해하는 가족들에게는 종종 들려주던 얘기로 희망을 북돋아주었다.

“과학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이가 일찍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건 일종의 신호를 보내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여기에 있기 힘들어요.’ 이른둥이를 낳는 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아이의 관점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그러니까 우리는 아이의 살려고 하는 의지를 잘 지켜줘야 한다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한 아이를 살렸다. 도윤이라는 이름의 아이는 24개월 동안 무럭무럭 자라 지금은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뛰어다니며 건강하게 지낸다.

“얼마 전에 이른둥이 ‘선배’ 아이들을 초청해 이른둥이 부모와 자녀들끼리 경험을 나누고 건강한 모습을 확인하는 ‘홈커밍데이’를 가졌어요. 그때 도윤이도 참석해 모든 이른둥이 가족들에게 행복을 전해줬지요.”

삶과 삶을 이어주는 신생아실 행복전도사

전지현 교수가 소아과, 그것도 고위험군 신생아를 돌보는 일에 천착하게 된 것은 20년 넘은 일이다. 의대 92학번인 전 교수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이른둥이의 생존율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산모의 연령대가 높아지는 것, 태내 감염, 염색체 이상 같은 많은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신생아 중 이른둥이의 비중이 늘어난 이유에는 의학 기술의 발전을 빼놓을 수가 없어요. 제가 처음 의술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에야 기관 삽관 같은 인공호흡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거든요.”

지금에 와서는 이른둥이를 살려내는 것뿐 아니라 이른둥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에도 집중한다. 이른둥이에게는 다양한 건강 문제가 있는데 뇌손상은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뇌손상이 의심되는 이른둥이를 대상으로 저체온요법을 시작한 것도 몇 년 되지 않은 일이다.

“2006년에 미국 학회에 갔을 때 ‘효과가 좋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어요. 뇌손상이 일어나는 계기로부터 6시간이 골든타임입니다. 6시간 내에 조치를 취한다면 뇌세포의 손상이 적거나 없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뇌세포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온도가 36~37도이니 외부 온도을 34.5도 정도로 일정하게 낮추면 뇌세포의 손상을 막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죠.”

실제로 강남차병원에서도 2014년부터 이른둥이들을 상대로 머리 부분의 온도를 일정하게 낮추는 저체온요법을 시작했고 뚜렷하게 좋은 효과를 봤다. 뇌손상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에 저체온요법을 시도한 이른둥이들은 퇴원 후에도 건강하게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처럼 이른둥이의 뇌는, 컴퓨터로 말하자면 하드웨어만 존재하는 것일 뿐 그것을 작동하고 운영하는 소프트웨어는 채워넣어야 하는 상황이다. 전지현 교수는 이른둥이의 조기 재활치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거듭 강조했다.

“우리 뇌는 얼마든지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유연한 조직이에요. 뇌손상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어릴 적부터 잃어버린 기능을 뇌의 다른 부분에서 대체할 수 있게 훈련을 시킨다면 평범한 생활이 가능해지거든요. 그러니 이른둥이의 치료는 단지 NICU에서 생명을 이어나가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병원 밖에서 본격적으로 찾아가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한국의 이른둥이를 위한 지원 정책은 갓 태어난 이른둥이가 NICU 안에서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지원에 그친다. 퇴원 후에 혼자서 길을 찾아야 하는 이른둥이 가족들을 위해 전 교수는 선배 이른둥이 가정과 후배 가정을 이어주는 역할도 한다.

“사실 이른둥이 가정에는 경제적인 부분 말고도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많습니다. 심리적인 안정도 찾아야 하고 충분하고 쓸모 있는 정보가 있어야 하죠. 항상 모든 의사를 찾아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가정을 연결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지현 교수를 중심으로 일종의 자조 모임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시작한 홈커밍데이는 이른둥이 가정뿐 아니라 전 교수에게도 ‘힘’을 준다.

“제가 제일 처음 소아과 의사가 되려고 했던 이유는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였어요. 22주, 23주 이른둥이로 태어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호흡도 하지 못하던 아이들이 홈커밍데이에 모여 시끌벅적 노는 모습을 보니 그때의 마음이 저절로 되살아났습니다.”

이른둥이 전문가로서 전지현 교수는 이 같은 역할을 정부와 보건당국이 대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이른둥이 부모에 대한 정보 제공, 양육 관련 교육, 치료 지원 같은 전반적인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 한 명을 건강하게 키워내기 위해서는 온 사회가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죠. 이른둥이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과 의료진 모두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부족한 잠을 쫓아가며 키워낸 작은 아이가 어느덧 커서 동생의 손을 잡고 진료실을 찾아올 때의 감격 어린 마음이 모두에게 퍼졌으면 좋겠어요.”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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