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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55호] 201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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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수익 안 좇고도… 세계 재활병원의 모델 된 착한 병원의 성공법

▲ 서울재활병원 소아 낮병동에서 치료받고 있는 환자의 모습. photo 서울재활병원
2002년 서울 은평구에 자리 잡은 서울재활병원 의사와 치료사들이 한데 모여 머리를 맞댔다. ‘소아 낮병동’이라는 전에 없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다. ‘재활 낮병동’이란 재활이 필요한 장애인이 하루 종일 병원에 입원하는 대신 낮에 6시간만 병원을 찾아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특히 매일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 어린이 환자들에게 낮병동은 삶의 질을 좌우한다. 가족과 떨어져 내내 병원에 있지 않아도 되고, 학교나 유치원에 다니듯이 꾸준히 전문적인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소아 낮병동이 2002년 이전에는 없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도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지선 서울재활병원 원장의 설명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낮병동도 거의 없을 때였다. 언제부터, 몇 명을 대상으로, 얼마만큼의 치료 자원이 필요한지, 어떤 프로그램으로 운영해야 하는지 등 아무것도 참고할 만한 게 없는 상황에서 결국은 성공적으로 소아 낮병동의 문을 열었다. 각 대학 재활의학과며 재활병원마다 생겨날 소아 낮병동의 시작이었다.
   
   올해로 설립된 지 21년 되는 서울재활병원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뿐이지 한국의 재활의학 시스템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병원이다. 서울재활병원의 모체는 고아원이다. 1959년 미국인 존 조셉 타이스 선교사, 아펜젤러 선교사와 윤성렬 목사가 전쟁고아를 모아 만든 은평고아원(은평천사원)이 시작이었다. 그러다가 장애인 거주시설인 은평재활원이 설립됐고 점차로 1998년 서울재활병원, 2002년 서부재활체육센터 같은 각종 산하기관이 생겨났다. 지금은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이 장애인 의료·복지시설을 운영하는데 은평구 지역 커뮤니티와 연계해 공공사업을 펼치는 것은 물론 해외에 필요한 도움을 주는 자생적인 단체로 거듭났다.
   
   “마치 한국이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자라난 것과 마찬가지로 서울재활병원과 엔젤스헤이븐도 그렇게 성장했습니다.”
   
   이지선 원장은 서울재활병원의 시작부터 함께한 인물이다. 이 원장뿐 아니라 서울재활병원에는 21년 병원의 역사를 그대로 함께한 사람이 많다. 그만큼 병원에 가지는 애정이 크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외부에서 종종 병원을 “특이한 병원”, 병원 사람들을 “특이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재활병원처럼 수익을 최우선 목표로 하지 않는 병원이 21년 동안 살아남아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 모범적인 사례로 소개되는 일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만들어낸 것이 병원 사람들이라는 게 이 원장의 설명이다.
   
   
   모든 환자마다 맞춤형 ‘재활일기’
   
   지금 서울재활병원에 대해 얘기하는 이유가 있다. 21년 동안 서울재활병원이 쌓아온 노하우와 정립한 시스템이 이제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재활병원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몇 가지 있는데 하나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의사와 치료사, 환자와 보호자 간의 소통이 중요한 재활치료에서는 어느 한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시스템이 잘 구축되도록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재활병원은 환자의 필요에 따라 시스템을 구축했다. 2006년 국내 최초로 생긴 청소년재활전담팀은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존재하는 청소년 대상 통합적 재활의료 서비스 시스템이다. 보통은 만 12세가 지나면 성인과 같은 곳에서 치료를 받거나, 아니면 마땅한 치료 서비스 체계가 없어 병원을 전전하곤 한다. 서울재활병원에서는 청소년 장애인들의 필요를 고려해 어릴 때부터 어른까지 지속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청소년 전담팀을 만들었다.
   
   “처음부터 연령대별 맞춤 재활 시스템이 있었던 게 아니에요. 병원을 운영하면서 무엇이 필요한지 하나씩 공부해가며 만들어낸 것이지요.”
   
   이지선 원장의 말처럼 서울재활병원의 맞춤형 시스템은 전례가 있어 참고해 만든 것이 아니다. 사실 수익성을 최대의 목표로 생각하는 병원 경영의 입장에서는 맞춤형 재활 시스템은 고려할 대상이 못 된다. 소아 낮병동이 제일 처음 생겼을 때만 하더라도 낮병동에 대한 의료 수가가 책정되지 않아 외래 진료에 대한 최소한의 비용만 환자들에게 받았을 뿐 나머지 놀이 프로그램이나 가족지원·집중 간호서비스는 무료로 제공되었다.
   
   서울재활병원만의 노하우라고 할 수 있는 ‘재활일기’도 마찬가지다. 모든 환자마다 하나씩 받는 ‘재활일기’에는 환자가 어디가 얼마만큼 아픈지, 어떤 재활치료를 받았는지 의료진의 꼼꼼한 메모와 함께 사진자료, 의료진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보내는 메시지 등이 빼곡히 적혀 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일을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기꺼이 한다는 점이에요. 서울재활병원 구성원에게는 ‘특이한’ DNA가 있는데 병원을 제 것처럼 생각하며 앞장서서 일을 해내는 DNA예요. 정말 제대로 된 재활의료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 전에 없던 시스템을 구축해 환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에 직원들은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재활병원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다. 재활치료를 받는 환자 가족을 위한 가족지원 프로그램은 꼭 필요한 것이다. 심리상담이나 법률지원, 양육지원까지 받을 수 있다. 사회복귀 프로그램도 활발히 진행된다. 재활치료를 받는 환자가 자신의 집에 돌아가서도 편안히 쉴 수 있도록 집을 개조해주는 사회적응 프로그램은 오래전부터 진행돼왔다. ‘로하야 학교 가자’ 프로젝트는 요즘 서울재활병원이 추진하는 대표적인 사회복귀 프로그램이다.
   
   지금은 초등학교 5학년인 로하는 여덟 살 때 갑작스러운 뇌경색으로 목 위를 제외한 온몸이 마비되는 아픔을 겪었다. 끈질기고 체계적인 재활치료 덕분에 마비되었던 사지를 움직여 홀로 거동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지만 그 이후의 ‘삶’이 문제였다.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로하에게 남은 과제가 너무 많았다. 친구들의 따돌림, 교사들의 무지 같은 난관을 거쳐야 하는 로하를 위해 서울재활병원에서는 사회복귀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같은 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로하의 장애를 체험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어요. 로하가 얼마나 꿋꿋이 용기 있게 장애를 극복했는지 소개하기도 했죠. 한두 번에 그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서 로하가 학교로 돌아간 2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계속 로하의 집과 학교로 방문해 사회복귀를 돕고 있어요.”
   
   서울재활병원의 이런 모든 시스템을 공공재활의료사업으로 묶어 표현해도 좋다. 서울재활병원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최우선은 수익이 아니라 필요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모든 시스템은 직원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구축되었다.
   
   서울재활병원의 또 다른 키워드를 말하라면 ‘교육’을 들 수 있는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어 교육적인 문제가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재활병원 의료진이라면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교육방송국이 있다. 여기에는 재활치료에 대한 노하우가 담겨 있는데 어떻게 병원 시스템을 이해할 것인지, 교육 강의 프로그램으로 가득 차 있다.
   
   “시스템을 만들기만 해서는 운영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시스템을 만들 때부터 모두 함께 모여 앉아 연구하고 의논하며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누가 어떤 상황에서든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게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이지선 서울재활병원 원장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북한에도 재활병원 노하우 전수 중
   
   병원은 몇몇 명의(名醫)로만 운영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한 팀으로 똑같은 시스템하에서 같은 노하우를 공유하며 균질하지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울재활병원은 그렇게 하기 위해 교육에 온 신경을 쏟았다.
   
   서울재활병원이 국내외에 ‘수출’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몇몇 재활의료 기술만을 수출하는 것이 아니다. 병원을 운영하고 환자의 수요에 맞게 시스템을 만드는 노하우, 그에 맞게 직원을 교육하는 방법을 함께 수출한다. 이렇게 하는 병원이 없으니 자연히 수많은 병원이 서울재활병원 앞에 줄을 설 수밖에 없다. 재활의료에 일가견이 있다는 유명 대학병원들은 서울재활병원에 도움을 청하며 재활치료 노하우를 주고받는다. 재활병원을 처음 세우는 입장에서는 서울재활병원을 제일의 모델로 삼는다.
   
   중국 상하이에 350개의 병상을 갖추고 설립된 양지재활병원은 서울재활병원의 노하우를 전수받으려 활발히 협력하고 있는 상하이 대표 재활병원이다. 이런 곳은 세계 곳곳에 있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는 물론 베트남, 아랍에미리트에까지 서울재활병원이 활발히 국제 사업을 펼쳤다.
   
   요즘은 아프리카와 북한에도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특히 북한에서는 최근 어린이 재활병원 건립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데 서울재활병원이 의료기술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지난 3월 중국 상하이에서 남·북·중 3국 의료진이 만나 세미나를 가지기도 했다.
   
   남은 것은 ‘새로운 병원’이다. 사실 서울재활병원이 그리는 청사진에서 지금의 서울재활병원은 좁다.
   
   “서울재활병원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공공의료사업을 주로 펼치는 병원입니다. 다시 말하면 환자와 보호자의 전 생애에 걸쳐, 지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서울재활병원이 해야 하고, 하려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공간은 너무 좁아요.”
   
   당장 소아 낮병동이 있는 서울재활병원의 본관 대기실은 아이들의 유모차를 놓기에도 공간이 부족하다. 시스템은 충분히 갖추어지고 있는데 구현할 공간이 좁다. 비좁은 공간을 억지로 터서 만든 건물마다 의료진이 빼곡하게 나눠 들어가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 새로운 병원을 세우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장애인이 병원 안팎에서 충분히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게 전인(全人)적인 의료 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해요.”
   
   하는 일은 많은데 모든 것이 부족하다. 직원들의 노력으로 겨우 적자를 면하고 있는 재정도, 새로운 병원을 세울 공간도 없다.
   
   “얼마 전에는 오래 우리 병원에서 함께 지내온 한 환자의 부모님이 저에게 면회를 신청하더군요. 아침 이른 시간에 만나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 손을 잡으며 말하셨습니다. ‘원장님, 병원 새로 지으신다면서요. 제 도움이 필요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보험을 깨서 100만원을 우선 마련해 봤습니다.’ 그 마음이 너무 소중해 다시금 병원을 세우던 날로 돌아간 것처럼 의지가 굳어졌습니다.”
   
   이지선 원장은 올해 하반기에 아프리카 짐바브웨로 달려갈 예정이다. 그곳에 또 의료시스템을 수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물론 병원에 돌아오는 수익은 없다. “어떻게 하면 이 시스템을 재활 소외 지역에 나누어 함께 발전하며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을지 내도록 고민하고 있다”는 이지선 원장과 서울재활병원의 다음 발걸음 역시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세상을 향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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