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7일 오전 경남 진주시 가좌동 아파트에서 주민을 상대로 방화 후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피의자 안인득은 지난 5년간 68차례 조현병 진료를 받은 정신질환자였다. ⓒphoto 김동환 조선일보 기자
지난 4월 17일 오전 경남 진주시 가좌동 아파트에서 주민을 상대로 방화 후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피의자 안인득은 지난 5년간 68차례 조현병 진료를 받은 정신질환자였다. ⓒphoto 김동환 조선일보 기자

“새벽마다 전기톱으로 사람 몸을 자르는 소리가 난다고…. 아랫집에서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6년 전, 직장인 오혜주(가명·36)씨 집에 주민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다. 오씨가 사는 빌라 아래층의 60대 남성이 “매일 새벽 윗집에서 전기톱으로 시체를 써는 소리가 들린다”며 경찰에 수차례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여성 혼자 사는 집에 시체도 전기톱도 있을 리 없었다. 영장은 없었지만 오씨는 경찰이 집을 수색하는 걸 허락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랫집 남성의 의심이 풀리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후로도 아랫집 남성의 신고는 끊이지 않았다. 그는 신경과민증을 앓고 있는 정신질환자였다. 간호조무사인 그의 부인은 매일 안정제를 놔주고 출근했다. 그러나 약 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경찰에 신고를 해댔다.

오씨는 그렇게 6개월을 버텼다. 어렵게 구한 원룸이었다. 선뜻 집을 옮기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던 오씨는 어느날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랫집 남성이 오씨의 집 현관문 앞에서 칼을 들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오씨는 곧장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잦은 신고로 그 남성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경찰도 알고 있었다. 경찰이 “진정하고 다시는 그러지 마라”라고 남성에게 당부한 것이 ‘해결’의 전부였다. 오씨는 그날 바로 그 집을 나왔다. 호신용으로 전기충격기도 샀다.

오씨의 경우와 유사한 사건이 최근 끔찍한 결말을 낳았다. 지난 4월 17일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살인으로 5명을 숨지게 하고 18명을 다치게 한 이른바 ‘안인득 사건’이다. 사건 후 범인 안인득(42)이 5년간 68차례 조현병 진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안씨의 아파트 주민들도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공포에 떨며 7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출동한 경찰은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난 4월 24일 경남 창원에서도 조현병을 앓던 A(18) 군이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B(75) 할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정신질환자에 의한 끔찍한 사건들이 잇따르자 “정신질환자 관리 체계가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위험한 정신질환자는 미리 가둬야 한다’는 감정 섞인 주장까지 나온다.

실제로 안씨의 친형은 사건 발생 불과 12일 전 안씨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 그러나 2명 이상의 보호의무자가 신청해야 한다는 강제입원 관련 현행법 규정상 친형에게는 안씨를 입원시킬 자격이 없었다. 여기서 보호의무자는 직계혈족 또는 배우자에 해당된다. 이 법 규정은 2017년 5월 개정된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 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보건법)’ 개정안에 담겨 있다. 이 개정안의 핵심은 정신질환자의 타의에 의한 입원, 즉 강제입원의 요건을 까다롭게 하자는 것이었다. 개정 이전 정신보건법은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 2명이 동의하고 정신과 전문의가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환자 의사와 관계없이 입원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재산 상속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은 자녀가 멀쩡한 부모를 병원에 가두는 등 규정을 악용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런 배경에서 정신보건법 개정이 추진된 것이다. 개정법에서는 정신과 전문의 1인에 의해서는 2주간의 진단입원만을 허용하고, 그 이후로는 국공립정신병원 의사를 포함한 서로 다른 소속의 정신과 의사 2명으로부터 입원 판정을 받아야 한다고 정했다.

국회에서 이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나올 때부터 정신의학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까다로워진 입원 요건 때문에 정작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제때 치료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였다. 안인득 사건은 정신과 의사들의 그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작년 연말 일어났던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교수 사건 때도 범행을 저지른 환자가 제때 적절한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국회서 ‘사법입원’ 도입 논의

현재 국회에서는 정신보건법을 다시 개정하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정신의학계가 힘을 싣고 있는 건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른바 ‘임세원법’이다. 이 개정안은 보호의무자 제도를 폐지하고 ‘사법입원’을 도입해 외래치료지원제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사법입원’이란 강제입원과 퇴원의 판단을 판사에게 맡겨 진행하자는 뜻이다. 정신질환자 관리에 국가의 책임을 더 넓히고 공공성을 키우자는 주장이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윤일규 의원과 함께 연 국회 기자회견에서 “현행 강제입원 절차는 지나치게 까다롭고 위기 상황에 적절히 작동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이 법안을 두고도 정신의학계 내부에서는 ‘과연 되겠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 대학병원 정신과 교수는 “판사가 입원을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라며 “사법입원이 추진되면 정신과 의사들의 자율적 권한은 더 줄어들게 될 것이다. ‘국가의 책임’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말 아닌가”라고 했다.

자유한국당 송석준 의원도 지난 4월 19일 경찰관 단독으로 정신질환자를 강제입원시킬 수 있는 권한을 주자는 골자의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범죄 경력을 조회한 결과 정신질환범죄 경력이 있고, 위해요소가 심각한 경우 경찰의 판단으로 응급입원을 시킬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논의를 종합해보면,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가 잇따르자 환자 관리에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강원대 정신건강의학 박종익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현재 환자를 강제입원시킬 때 평가하는 ‘위험성’이란 치안적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다. 여기서 치안적 관점이란 사실상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경우에만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며 “만약 경찰에게 단독으로 입원시킬 권한을 주면 남용될 가능성이 아주 없진 않을 테지만 그런 우려만 하다가 이런 사달(안인득 사건)이 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정신과 의사가 입원을 시키려 하면 ‘너희 돈 벌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는 소리나 들어야 하는 괴로움이 있다. 그래서 판단 권한을 판사에게 주자는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는 “응급입원 결정 권한을 경찰에게 주는 나라는 미국의 몇몇 주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단 이런 경우 경찰도 정신응급교육을 받고 정식 라이선스를 취득한 경우에 가능하다”라며 “경찰은 치안 전문가이지 정신건강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현장에서 환자를 평가하는 데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경우에는 의료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확충해야 한다”고 했다.

“입원이 아니라 재활서비스 확충이 답이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 권한이 사법이나 공권력으로 넘어가면 인권 침해의 소지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정신장애연대 권오용 사무총장은 “입원만을 강조하는 건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병원 진료뿐 아니라 지역 사회가 제공하는 서비스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입원을 통한 ‘격리’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권 사무총장은 또 “제3자 입장에서는 가두면 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환자들에게는 입원 자체가 상당한 트라우마로 남는다. 선진국에 걸맞은 인도적 방식을 고안해야 한다. 이는 WHO에서도 지침을 내린 내용”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명수 홍보이사(연세라이프정신건강의원 원장)는 전화통화에서 “사법입원은 방치되어 있는 환자를 공권력이 합리적으로 개입해서 안전하게 치료받게끔 하자는 취지”라면서 이런 설명을 했다. “현재 너무 많이 주어진 가족의 권한을 적절하게 줄이고 국가의 권한을 높여 정신질환자에 대한 공공 안전망을 확충하자는 게 핵심이다. 환자를 병원에 데려오지도 못하는 가정이 한둘이 아니다. 그럼 결국 사고가 터질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인가. 기존에 의사가 판단해서 입원시키면 되는 제도를 판사에게 설명하고 입원시키는 과정으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의사들 입장에서는 사실상 입원절차가 더 까다로워진다. 이를 인권침해 요소가 짙어진다고 보는 건 무리한 주장이다.”

해외에서는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기준을 어떻게 정하고 있을까. 미국 대부분의 주와 독일 등의 국가는 자타해(自他害) 위험 기준을 따른다. 이는 한국과 유사하다. 다만 영국의 경우에는 치료 필요성과 자타해 위험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이탈리아, 스페인, 스웨덴 등은 강제입원 기준에 치료 필요성만을 단독으로 고려할 수 있다. ‘자타해 위험성’이라는 기준이 오히려 환자에게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본에서도 보호자에 의한 입원의 경우 치료 필요성 기준을 따른다. 요약하면 미국과 독일을 제외한 국가에서는 정신질환자가 꼭 ‘사고’를 치지 않더라도, 현재 얼마나 치료가 필요한 상황인지를 고려해 입원시킬 수 있게끔 기준이 관대한 편이라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앞서 언급한 오혜주씨의 아랫집에 살던 남성이나 안인득의 경우 ‘치료 필요성’과 ‘자타해 위험성’ 모두를 충족시키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경우 모두 경찰의 조치가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안인득 사건과 관련해 “현장 출동 경찰도 막상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이 현실”이라면서도 “현장 출동 경찰관이 정신질환자에 대해 직접 조치할 수 있는 권한이 제한적이라고 해도, 지역 보건소에 연락해 판단에 도움을 구하기라도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든다”고 했다. 오 교수는 “말로만 해결하고 넘어가려 한 게 경찰이 ‘소극적 방관’을 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했다.

오혜주씨의 아랫집 살던 그 남성은 지금도 윗집에서 시체 써는 소리를 듣고 있을까. 오씨는 “칼 들고 있는 그 아저씨보다 더 무서웠던 건,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현실이었다”고 그때를 회고했다. 오씨는 6년 전 샀던 전기충격기를 지금까지 갖고 있다. 정신질환자와 이웃 주민 모두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이 시급해 보인다.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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