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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56호] 201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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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싸울 수 있는 거북선’ 만들다

한 그래픽디자이너의 50년 집념

오동룡  조선뉴스프레스 취재기획위원·군사전문기자 gomsi@chosun.com

▲ 그래픽디자이너 한호림씨가 7년간의 작업 끝에 복원한 실제 거북선 모습.
2017년 5월 2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그래픽디자이너 한호림(73)씨가 거북선 복원 연구 발표를 했다. 당시 한씨는 “현존 복원거북선들은 ‘반신불수’로 제 몸도 못 가누는데 무슨 해전을 하겠느냐”며 “문약(文弱)에 빠진 전문가들이 창피한 복원거북선을 만드는 통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전공에 도리어 욕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메이플라워Ⅱ호, 세계 최고(最古)의 해군함 콘스티튜션호, 디즈니랜드 해적선 카리브호, 제노바 해적선 넵툰호, 스톡홀름의 바사 박물관, 오슬로의 바이킹롱십 박물관, 토론토의 세계범선대회(Tall Ship Show)…. 한씨가 전 세계의 함선들을 돌아본 이야기와 함께 전국에 산재한 우리의 ‘모형·복원 거북선’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박수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선 전문가도, 역사학자도 아닌 그가 거북선 연구자로서 건져낸 연구 성과들이 전문가 뺨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4월 말, 토론토에 거주하는 한씨가 전화를 걸어와 “충무공 탄신 474주년을 맞이하는 4월 28일 한호림의 ‘싸울 수 있는 거북선’ 연구가 50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됐다”며 “이제 반신불수 거북선 대신 임진왜란 전적지를 다니는 진짜 복원거북선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한씨는 자신의 거북선 연구 성과가 담긴 책 ‘디자이너 한호림의 진짜 싸울 수 있는 거북선’(디자인하우스)을 곧 출간한다. 한호림씨는 홍익대 미대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다. ‘오리선생’으로 불린 그는 1980년대 잘나가는 그래픽디자이너였다. 그는 모교 덕수상고 미술교사를 거쳐 인덕대학 시각디자인과 교수로 재직하다 1987년 캐나다로 이주했다. 한호림은 1993년 독특한 디자인의 영어 어휘 학습서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를 출간, 150만부라는 기록적 판매고를 올렸다. 한씨의 지적 작업은 2011년부터 영어 학습서 저술에서 거북선 복원으로 옮아갔다. 그는 토론토 북쪽 리치먼드힐에서 7년간의 작업 끝에 ‘한호림표 거북선’ 도면 제작을 완료했다.
   
   

   수병 한 달 월급 털어 이순신 책 구입
   
   한씨는 대학 재학 중인 1967년 해군 1전단 수병으로 입대해 호위통제함 벽파함(PCE-57), 호위구축함 경기함(DE-71)의 40㎜포 장전수로 근무하면서 바다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그가 근무했던 함정 이름인 ‘벽파’는 전남 진도의 벽파진에서 따온 것으로,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후 두 번째 해전에서 승리한 곳이다.
   
   그는 “주갑판의 함수에서 함미까지 각종 포와 장비를 들여다보고 ‘호기심 덩어리’들을 매일 일기장에 기록해 놓았다가 순검(점호) 때 부함장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다”며 “당시 해군 통제부(해군작전사령부) 공창에서 얻어온 각목을 부러진 쇠톱날로 조각해 75㎝ 크기의 모형군함 ‘벽파함’을 제작하기도 했다”고 했다.
   
   한호림씨는 1969년 1월 출간된 조성도 해군사관학교 교수(작고)의 ‘충무공 이순신’이란 책을 구입해 읽다가 거북선 연구에 빠져들었다. 당시 상병의 봉급이 580원이었는데 한 달 봉급을 탈탈 털어 정가 500원의 책을 구입했다고 한다. 제대하고 나서 서울 광화문 충무공 동상 아래에 놓인 모형 거북선을 보았는데, “구조적으로 말도 안 되는 ‘파충류’ 같은 형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한씨는 이때부터 ‘충무공 이순신’에 나오는 기록에 맞춰 척(尺)을 미터법으로 바꿔 1:100의 비율로 직접 거북선을 만들어보았다. 이미 50년 전 이야기다. 한씨는 “그 모형거북선은 아직도 토론토의 제 책상에 있다”며 “오늘날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의 눈으로 보면 형편없는 모형이지만, 그것이 제 거북선 연구의 출발이었다”고 했다.
   
   - 디자이너가 어떻게 거북선을 복원할 생각을 했나. “거북선 전문가라고 하는 분들이 건조한 육상의 모형거북선, 해상의 복원거북선의 허황된 구조를 보았다. 잘못된 복원거북선들이 늘어만 가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그동안의 연구를 도면으로 그리고, 누구나 알 수 있게 7년간 투시도로 제작했다. 내가 디자인한 거북선도 완벽할 수는 없고, 원형(prototype)에 불과하다. 실험과 실험 끝에 발전해가면 완벽한 거북선으로 탄생할 것이다.”
   
   - 현행 육상의 모형거북선, 해상의 복원거북선들은 구조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참고로 모형거북선은 실물대(實物大·실물과 꼭 같은 크기)든 아니든 뭍에 있는 거북선 모형을 말하고, 복원거북선은 실물대로 건조해 해상에 떠 있는 거북선을 뜻한다.) “커다란 문제점만 10개가 넘는다. 내가 설계한 ‘싸울 수 있는 거북선’에서는 이것들을 전부 개선했다. 예를 들면 실제 거북선은 함교(브리지)에 해당하는 장대(將臺)가 있었고, 거북선의 용두(龍頭)는 포구(砲口)가 아니라 위엄을 위해 만든 것이라 포를 쏠 수 없었다.”
   
   - 그럼 현재 전시 중인 거북선들 모두 구조가 잘못됐다는 이야기인가. “1980년 1월 해군사관학교에서 전문가 고증을 받았다는 첫 실물대 복원거북선이 진수됐다. 싸울 수 있는 거북선이라면 노를 저어 자체 동력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밧줄에 묶여 있다 행사를 할 때는 디젤엔진으로 운항을 했다. 완전하게 복원한 거북선이라면 실제 해사 생도들이 노를 저어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를 휘젓고 다녀야 한다. 내부 공간이 휑하니 비어 있으니, 사람으로 치면 근육이며 내장도 없는 거다. 그리스 해군이 복원한 고대 그리스시대의 범노선(Trireme·노가 3단으로 된 군선) 올림피아호는 자원봉사자들이 노를 저어 지중해를 건너 2004년 아테네올림픽 성화봉송을 했다. 이것이 진짜 복원 전투선인 것이다.”
   
   - 현재 복원거북선들은 개선이 됐나. “1호 복원거북선은 관광용으로 남해(노량)로 보내졌고, 1999년 10월 2호 복원거북선을 건조했다. 반가운 마음에 한국에 달려와서 2호 복원거북선을 보았으나 개선은커녕 부분적으로 더 황당한 구조였다. 1호 복원거북선이 본이 되고 틀로 굳어져 이후 통영, 거제, 남해, 여수 등 남해안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제작한 관광용 복원거북선들이 모두 한심스러운 형태를 띠고 말았다. 공통적으로 ‘전신불수(全身不隨)’ 거북선이다.”
   
   - 거북선의 도면은 존재하지 않나. “판옥선(板屋船)이나 거북선, 기타 전선(戰船)들을 건조할 당시는 어떤 형태로든 대목(大木)들이 그렸거나 목수들이 알아볼 만한 설계도가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임진왜란 즈음의 설계도는 고사하고 그림 자료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올린 장계(狀啓)에도 문자로만 설명을 하고 있어 형태를 연상하기 어렵다. 임진왜란 발발 200년 후, 1795년 출간된 ‘충무공전서(忠武公全書)’ 속 ‘전라좌수영귀선도(全羅左水營龜船圖)’ ‘통제영귀선도(統制營龜船圖)’만 존재하고 설계도는 없다.”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 추정 그림 발견
   
- 거북선을 거북선이라고 부른 까닭이 있나. “돌격선이 화포를 발사하려면 왜병선에 접근해야 했다. 갑판에 노출돼 있는 판옥선의 수군들은 왜병의 총탄, 화살 공격으로 위태로워진다. 이순신 장군은 수군들을 보호하려고 지붕(개판·蓋板)을 씌웠는데, 궁륭 형태로 했던 것이다. 거북 모양이라 귀선(龜船)이라 불렀던 거다. 거북선 지붕을 제작 난이도가 높은 궁륭으로 한 것도 과학적이다. 포를 발사할 때 나오는 유독성 포연(砲煙)이 피자 화덕의 원리처럼 궁륭의 둥근 천장으로 대류현상을 일으켜 효과적으로 빠져나가도록 하려 했기 때문이다.”
   
   한호림씨는 “기존의 모형거북선이나 복원거북선들은 1795년 간행한 ‘충무공전서’에 나오는 ‘전라좌수영귀선도’나 ‘통제영귀선도’에 발목이 잡혀 그것에만 맞춰 충실(?)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에 실제 거북선과 차이가 있다”며 “당시 ‘전라좌수영귀선도’나 ‘통제영귀선도’를 그린 화공(畵工)들은 전선에 대한 전문지식도 없거니와 상식적으로 3차원 묘사를 할 줄도 몰랐다”고 지적했다.
   
   - 복원거북선의 구조 중에서 어떤 점이 문제가 되는가. “거북선이 2층 구조냐, 3층 구조냐의 문제는 학계의 해묵은 논쟁이었다. 나는 자신 있게 3층 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 일찍이 거북선 전문가라는 권위 있는 분들이 2층 구조라고 하는 바람에 학계의 후배들이 찍소리도 못 한 거다. 선저(船底)와 그 위의 갑판이 2층 구조라고 치자. 그러면 어떻게 2층 갑판에서 노수(격군)들이 노를 젓고 동시에 그 공간에서 포를 쏘았단 말인가. 바보가 들어도 웃을 이야기다. 그러니 복원거북선들 모두 포가와 겹쳐 있는 노들을 빼서 거북선 뒤에 쌓아놓았다.”
   
   - 그 다음 문제점은. “장대(將臺) 이야기가 급하다. 장대란 전투선의 높은 곳에 선장(船將)이 올라서서 사방의 상황을 둘러보며 전투를 지휘하는 곳이다. 군사적으로 함교(艦橋), 영어로는 브리지(Bridge)라고 한다. 통통배부터 유조선, 이지스함, 항공모함에 이르기까지 모두 함교가 있다. 판옥선에는 중앙에 장대가 솟아 있다. 판옥선을 개조한 게 거북선이다. 선장이 궁륭으로 뒤덮인 거북선 안에서 무슨 전투지휘를 한단 말인가. 드라마 ‘임진왜란 1592’에서 돌격장 이기남이 선내 중앙 계단에 꼼짝 않고 앉아 눈깔(견시병)이 떠드는 소리만으로 지휘를 하더라. 장대가 없다면 최소한 지붕에 구멍이라도 뚫어놓아야 할 것 아닌가.”
   
   - 장대가 없는 복원거북선의 설계상 결함이 왜 생겼다고 생각하는가. “임진왜란 200년 후인 정조 19년 간행된 ‘충무공전서’ 속 ‘전라좌수영귀선도’와 ‘통제영귀선도’에 장대가 그려져 있지 않았던 것을 거북선 전문가들이 ‘고증’된 것으로 삼은 듯하다. 하지만 이순신 종가(宗家)의 ‘거북선도’ ‘조선수군도’에도 거북선 궁륭 위에 장대가 있다. 그런데 거북선 궁륭에 대한 결정적 자료가 더 나왔다. 미국 조지아주에 거주하는 고미술 수집가 윤원영씨가 일본 니가타현에서 1867년 성벽을 허물다가 발견한 17세기의 거북선 그림을 입수해 2004년 공개했다. 2장의 비단 천에 그려진 이 거북선 그림에는 아주 정교하게 장대가 묘사돼 있다.”
   
   - 본인이 직접 모델로 출연(?)한 설계도를 보면, 노 젓는 방식도 기존 거북선과 다르다. “복원거북선은 나룻배의 노 젓기 방식인 서서 노를 젓는 것으로 상정해 배를 건조했다. 그러나 바다에서 움직이는 전선(戰船)은 서서 노를 저을 수도 없고, 게다가 일렬로 서서 노를 저을 수가 없다. 노수들이 일렬로 고정된 좌석에 앉아 노를 젓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화 ‘벤허’에 나오는 삼단노선 노 젓기 방식을 상상해 보라.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바이킹박물관의 롱십(Long Ship)을 보면, 낮은 좌석에 발을 쫙 뻗고 앉아 발과 손의 작용과 반작용을 충분히 하면서 최대한 속도를 내도록 돼 있다. ‘싸울 수 있는 거북선’ 설계도엔 노수 1인당 95㎝씩 공간을 확보, 한 현에 20명, 좌우 40명을 배치했다.”
   
   - 거북선은 철갑선이었나. “거북선은 미국 남북전쟁 때 목재에 철갑을 씌운 군함(wooden hull-ironclad)이나 영국에서 건조한 완전 철제 군함(iron hull-ironclad) 성격도 아니었다. 거북선이 바닷물과 상극인 철판을 덧입혔을 리도 만무하지만, 입혔다고 해도 조선시대 철공 수준을 감안하면 부분적으로 얇은 철판을 입혔을 것이다. 거북선의 포가 직사포라는 점을 감안하면 궁륭 부분보다는 수직면인 패판에 철판을 씌웠어야 했다.”
   
   - 거북선이 왜병선을 들이받아 깨뜨렸다는 것은 사실일까. “영화 ‘벤허’에 나오는 고대 그리스에서 개발된 로마 군선의 해전 장면을 보면 전투 속력을 내기 위해 노의 숫자를 마치 돈벌레(그리마) 발같이 최대한 늘린 해적선이 충파(衝破·ramming)로 벤허의 전선을 들이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충파를 하려면 선수 아래쪽 삐죽한 곳에 충각(衝角·ram)을 설치하는 디자인을 해야만 한다. 게다가 거북선은 용두가 있다. ‘KBS스페셜’에선 충각을 할 때 용두를 들이밀었다고 하는데, 코미디 같은 이야기다.”
   
   - 거북선의 돛대는 어떻게 고정했을까. “실제로 거북선에는 돛대가 2개 있었는데 전투 시에는 돛대를 뉘었다. 그러나 돛대를 누이는 것은 설계 때는 물론이고 운용 때도 엄청나게 골치 아픈 문제였다. 가장 큰 문제는 앞 돛대를 뒤로 누일 경우, 궁륭 중앙에 솟아 있는 장대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로 돛대가 지나갈 수 있게 장대를 좌우 두 쪽으로 분리해 디자인을 해보았다. 그러면서 ‘내 아이디어에 맞는 근거를 찾으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미술품 수집가 윤원영씨가 공개한 17세기 ‘거북선도’에도 선명하게 장대가 분리돼 있었다!”
   
   
▲ 출간 예정인 ‘진짜 싸울 수 있는 거북선’ 표지를 들고 있는 필자 한호림씨. photo 한호림

   거북선 쌍엽미는 수병들이 용변 보는 공간
   
   - 실제 거북선 내부에 들어가 본다면 어떤 환경이었을까. “거북선 내부는 전투 시나 기온이 낮을 때 모든 패판을 닫아걸기 때문에 어두컴컴해 숨통이 막혔을 것이다. 통풍이 좋지 않아 여기저기 틈새로 들어온 바닷물에 찌들어 썩는 냄새가 진동했을 거고. 목욕도 못하고 땀국에 젖은 장정들에게서 나는 발 냄새, 몸 냄새도 골치였을 것 같다.”
   
   - 거북선에서 수병들은 어떻게 용변을 보았을까. “거북선과 판옥선에는 쌍엽미(雙葉尾)가 있었다. 선미에 곡선으로 치켜올라간 한 쌍으로 된 현(舷)이다. 쌍엽미는 전투 시 활을 쏘고, 평시에는 수군들이 바람을 쏘이는 공간, 변소가 있는 공간이었다. 쌍엽미 바닥의 널빤지 하나를 들어내면 훌륭한 변소가 된다. 모든 복원거북선의 쌍엽미를 보면 바닥이 ‘뻥’ 뚫려 있다. 쌍엽미의 기능을 몰랐던 거다. 범선시대 목조선은 구조적으로 선내에 변소를 만들 수 없었다. 유럽의 범선들은 첨저선(尖底船)이어서 선수(Head)에서 볼일을 보았다. 지금도 미 해군에서 함내 화장실을 ‘Head’라고 부른다.”
   
   - 포를 주무기로 하는 거북선의 원형은 어떻게 설계돼야 할까. “거북선뿐 아니라 전투함은 무조건 인간공학(human engineering)에 맞춰 최대한 작고 낮게 설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조선 중기 남자들의 키가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조선 중기 남자의 평균키는 161㎝ 정도다. 거기에 상투 높이, 격군 갑판(주갑판) 천장 높이와 앉은키(100㎝) 등을 계산해 설계했다.”
   
   한호림씨는 “서양엔 현역 범선들이 아직 건재해 그것들을 설계하고 운용하는 뱃사람들, 건조·수리하는 전문인들이 많은데 한국은 문약한 전문가들만 많다”며 “만약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설계한 복원거북선이 남해안 전적지를 누비고 다닌다면 나 같은 그래픽디자이너는 자원봉사자 격군으로 거북선을 저으며 남해안을 순례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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