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 쑹칭링능원의 김태연 지사 묘(가운데 아래). 파묘한 흔적이 보인다. ⓒphoto 이동훈
중국 상하이 쑹칭링능원의 김태연 지사 묘(가운데 아래). 파묘한 흔적이 보인다. ⓒphoto 이동훈

중국 상하이 창닝구의 쑹칭링(宋慶齡)능원 옆에는 외인(外人)묘역이 있다. 중국 명예주석인 쑹칭링은 중국의 국부 쑨원(孫文)의 부인으로, 1981년 사망 후 이곳에 그의 부모, 유모와 함께 묻혔다. 바로 그 우측 옆자리에 상하이에서 주로 활동하던 외국인들이 함께 모여 있는데, 한때 25개국 640명의 외국인이 묻혔다고 한다. 외인묘역에는 영문 또는 한자로 이름을 새긴 묘지석이 줄지어 늘어서 이국적 풍광을 자아낸다.

과거 ‘만국공묘’라고 불렸던 이곳에 묻힌 한국인도 제법 된다. 지난 4월 27일 쑹칭링능원 내 외인묘역을 전수조사한 결과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국내로 이미 봉환한 9위의 독립운동가 외에도 한국인으로 보이는 이름들이 여럿 됐다. 이영선, 조상섭, 임계호, 박영규, 조금보, L.Y. KIM, O.K. KIM(Mrs.), B.H. KIM(Mrs.) 등등이다.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CHUNG SHUICK KIMH(정식 김)’이란 묘지석은 비슷한 위치에 2곳이나 보였다. 그간 국가보훈처에서 추정한 한국인 묘가 14기였는데, 국내로 봉환한 9기 외에도 훨씬 더 많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 중 ‘LI YOUNG SON(이영선)’은 독립운동가 이덕삼(1905~1926)의 묘로 추정된다.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이덕삼의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 따르면, 평북 철산 출신의 이덕삼은 15~16세 때부터 임정의 기밀문서와 독립신문 전달을 담당했다. 이후 병인의용대에 입대해 1926년 순종의 인산일에 맞춰 국내로 밀입국해 거사를 도모하다 체포돼 순국했다. 생전에 활동한 가명 중 하나인 ‘이영선’이란 이름으로 묻혔다가 이곳으로 이장해 왔다고 한다. 조상섭(1885~1940) 역시 평북 의주 출신으로 상하이 한인교회를 이끌며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다.

1992년 한·중 수교 직후부터 우리 정부는 쑹칭링능원에 있던 독립운동가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는 작업을 벌여왔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에는 쑹칭링능원 외인묘역에 있던 박은식·신규식·노백린·김인전·안태국 등 5위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했다. 1995년 6월에는 추가로 오영선·윤현진 지사의 묘를 들여왔다. 2014년에는 연병환 선생, 올해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국내로 봉환한 김태연 지사의 묘 역시 이곳에 있었다.

묘역을 살펴보니 1993년 1차로 봉환한 지사들의 원래 묫자리에는 한글 이름과 함께 ‘1993년 8월 5일 이장(移葬) 대한민국’이란 묘지석을 설치해두고 있었다. 2차로 들여온 오영선·윤현진 지사의 묘는 묘지석까지 같이 국내로 들여왔는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외인묘역 곳곳에 파묘한 묫자리들이 제법 보였는데 오영선·윤현진 지사의 경우 이곳 중 한 곳에서 국내로 가져온 듯 보였다. 연병환·김태연 지사는 파묘 후에도 원래 묘지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1차로 들여온 지사들의 묘처럼 모월 모일 대한민국으로 이장했다는 별도 설명도 없었다.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이 훼손

국외에 있는 독립운동가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는 까닭은 광복된 조국으로 모시는 의미 외에도 국외 상황 변화에 따라 묘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뜻도 있다. 상하이만 해도 당초 독립운동가들이 주로 묻혀 있던 곳은 상하이 최대 불교사찰 정안사(靜安寺) 앞 정안사공묘였다. 도심 재개발에 따라 이곳을 정안공원으로 바꾸면서 만국공묘(현 쑹칭링능원)로 이장해왔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때는 홍위병들이 만국공묘를 파괴하는 등 수난을 겪기도 했다. 만국공묘가 대대적으로 단장된 것은 1981년 쑹칭링이 안장되고, 1984년 만국공묘에서 쑹칭링능원으로 이름을 바꾼 뒤다. 임시정부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충칭(重慶) 화상산 한인묘역의 경우 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고 한다. 그나마 관리가 잘되는 중국이 이럴진대, 중앙아시아 등지는 말할 것도 없다.

국외에 묻힌 지사들의 유해를 국내로 다시 들여오려면, 유족들의 요청과 함께 외교적 교섭이 수반돼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묘역을 관리하는 외국 당국으로서도 땅속의 유골을 무턱대고 파낼 수 없는 노릇이다. 파묘 후에도 유골 세척 등 각종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나마 고향이 이남인 지사들은 연고를 찾을 수 있으나, 평안도나 함경도 등 이북 출신 지사들의 경우 남아 있는 유족들과 연락해 유해를 한국으로 봉환해 오기가 쉽지 않다. 젊은 나이에 순국한 지사들은 대(代)가 끊어진 경우도 태반이다.

쑹칭링능원의 외인묘역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이덕삼(이영선)·조상섭 지사의 묘가 대표적 경우다. 국가보훈처 예우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상하이 만국공묘(쑹칭링능원)의 경우 한국인 추정자 중 독립유공자 예우대상이 되는 분은 이덕삼(이영선) 한 명”이라며 “이덕삼의 경우 후손이 없고 고향이 이북이라 중국 측에서 북한과 먼저 협의를 진행하라고 한다”고 밝혔다.

연고가 있는 북한에서 나설 형편도 아니다. 상하이만 해도 북한 총영사관이 없어 이북 출신 독립운동가의 묘를 돌볼 상황조차 안 된다. 평북 의주 출신인 조상섭 지사의 묘는 1993년 국내로 들여온 안태국 지사의 묘 옆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어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조상섭 지사는 민족문화대백과 등에는 ‘독립운동가’로 소개되지만, 임정 초대 대통령 이승만 탄핵사건의 주역인 때문인지 독립유공자 명단에는 없다. 국가보훈처 예우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조상섭은 포상 명단에 없어 예우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독립유공자 유해봉환 사업을 주관하는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가장 최근 카자흐스탄에서 봉환한 계봉우·황운정 지사를 포함해 지금까지 국내로 봉환한 독립유공자는 모두 141위다. 하지만 만주나 연해주 등에는 독립운동가들의 묘가 지천에 널렸다. 스탈린의 강제이주로 한인들이 대거 이주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도 아직 국내로 못 들어온 독립운동가들의 묘가 많다. 멕시코와 쿠바에까지 독립유공자들의 묘가 흩어져 있다. 국가보훈처의 한 관계자는 “현재까지 파악되는 국외 독립운동가 묘소는 모두 152기”라고 밝혔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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