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남부 크질오르다주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묘. ⓒphoto 뉴시스
카자흐스탄 남부 크질오르다주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묘. ⓒphoto 뉴시스

지난 4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수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공항에서 독립운동가 유해 봉환식을 직접 주재했다. 독립운동가 유해 봉환식은 대개 현지 대사나 총영사 등 재외공관장이 주재하기 마련이다. 현직 대통령이 직접 봉환식을 주관하고 전용기로 모셔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셔온 분은 카자흐스탄 현지에 묻혀 있던 독립운동가 계봉우 지사와 부인 김야간, 황운정 지사와 부인 장해금 등 모두 4위. 카자흐스탄에서 독립유공자의 유해를 모셔온 것도 이번이 최초다.

하지만 이번에도 카자흐스탄에 묻혀 있는 봉오동전투(1920)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는 데는 실패했다. 홍범도 장군 유해는 이번에 모셔온 계봉우 선생 유해가 묻혀 있던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주(州)에 있다. 봉오동전투는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싸워 첫 승리를 거둔 전투다.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전투에 이어 치러진 청산리대첩에도 참가했고 여기서도 대승을 거뒀다. 당연히 1순위가 돼야 할 카자흐스탄 최초의 독립운동가 유해 봉환에서 홍범도 장군이 탈락한 ‘이변’이 벌어진 것이다.

역대 대통령 중 누구보다 ‘친일(親日)’ ‘독립’ 같은 화두에 천착해온 문재인 대통령 역시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끝까지 타진한 것으로 알려진다. 문 대통령이 가장 먼저 찾은 곳도 카자흐스탄 수도 누르술탄(옛 아스타나)이 아닌 옛 수도인 알마티다. 1992년 카자흐스탄과 수교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 카자흐스탄을 찾은 이래 알마티를 찾은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이다.

알마티에는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홍범도 장군이 말년에 수위로 근무한 고려극장이 있다. 고려극장에서 고려인 동포들과 함께 홍범도 장군 연극을 본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산리·봉오동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이 말년에 몸을 의탁한 곳”이라고 언급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크질오르다주에 있는 홍범도 장군 묘소 참배도 고려했으나, 현지 공항 사정으로 무산됐다고 한다.

사실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문제는 카자흐스탄과 수교 이래 수십 년째 풀리지 않는 난제(難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1990년 구(舊)소련과 수교한 이래 역대 대통령은 모두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을 타진해왔다. 구소련 붕괴 후에는 그 대상이 카자흐스탄이 됐다. ‘역사 바로세우기’를 내걸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을 카자흐스탄 측에 요청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햇다. 이 같은 답답한 상황이 무려 3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신(新)북방정책’을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도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에 실패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홍범도 장군과 북한과의 ‘연고’다. 홍범도 장군은 구한말인 1868년 평양에서 태어나 수렵을 생업으로 한 포수 출신이다. 일제의 총기회수령에 분개해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무장독립운동을 해왔다. 남한과 달리 북한은 만주 일대의 무장독립운동을 정통으로 봐왔다. 홍범도 장군은 고려공산당 내 이르쿠츠크파와 상하이파의 내분으로 발생한 ‘자유시 참변’(1921) 직후 소련군에 정식 편입됐고, 1927년에는 소련공산당에 정식으로 입당한 전력도 있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 역시 그간 홍범도 장군의 한국 이장을 반대했다고 한다. 백주현 전 주카자흐스탄 대사는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 당시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모시고 크질오르다 홍범도 장군의 묘소를 찾았다”며 “당시 사업회에서는 서울로 모셔가길 원했는데, 현지에서는 그냥 모셔가면 어떡하느냐고 반론이 좀 있었다”고 했다. 백 전 대사에 따르면, 현지 고려인 동포 조상들의 70%는 평안도, 함경도 등 북한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백 전 대사는 “북한과 이념적으로 가깝지 않다고 해도 심리적으로 남한으로 가는 데 대해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역시 홍범도 장군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해왔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62년에는 홍범도 장군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에는 해군의 1800t급 최신 잠수함을 ‘홍범도함’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홍범도 탄생 150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봉오동전투 100주년을 맞는 내년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을 재추진할 계획이다.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카자흐스탄 방문에 합류한 우원식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회담 전에도 외교부 장관 등과 협상전략을 논의했는데, 내년 봉오동전투 100주년까지는 반드시 봉환해야 한다는 뜻을 전하기로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심기에 달렸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22일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도 “크질오르다에서 서거한 홍범도 장군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최고로 추앙받는 인물”이라며 “한국 국민은 올해 또는 늦어도 내년 (봉오동전투) 100주년에는 홍범도 장군 유해를 봉환했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뜨겁다”고 말했다. 이에 토카예프 대통령은 “외교·법률적으로 검토해 양국 관계와 국민 간 교류 등을 감안해 이 문제가 내년 행사 때까지 해결될 수 있도록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지금이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봉환할 최적기란 얘기도 나온다. 북한과 카자흐스탄은 1992년 수교했으나, 북한이 1998년 카자흐스탄 현지 대사관을 철수하면서 빈껍데기만 남아 있다. 백주현 전 대사는 “북한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아그레망을 못 받은 다음 중앙아시아 거점으로 카자흐스탄에 재진출하려고 했으나 거부당했다”며 “비핵화는 카자흐스탄의 대표적 대외정책으로 북한 입장에서는 접근이 쉽지 않다”고 했다.

카자흐스탄의 ‘칸’으로 불리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역시 대표적인 친한파(親韓派)다.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이례적으로 문 대통령과 만난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카자흐스탄공산당 서기장 시절부터 30년간 장기집권해왔다. 수도 이름도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아스타나에서 누르술탄으로 개명하고, 공항에도 자신의 이름(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공항)을 붙일 정도다. 한국 입장을 고려해 2016년 북한대사관 재개설 요구를 묵살한 사람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문재인 정부의 특성상 북한이 딴지를 걸 경우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이 무산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올해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역시 ‘건국절’ 논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요란했지만 정작 북한과 공동기념식이 무산되자 대통령은 방미차 출국하고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축소됐다.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역시 북한의 심기에 달린 셈이다. 내년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는 남북 관계의 또 다른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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