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아는 겁니다.”

새 책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을 내놓은 이랑주 V.LAB 대표에게 그 비밀을 한마디로 요약해달라고 하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책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의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경영서(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랑주 V.LAB 대표는 마케팅 전략, 경영 원칙 같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이랑주 V.LAB 대표와의 인터뷰가 이뤄진 서울 서초구의 카페 ‘젠틀커피’ 사례 같은 것이다. 7년 전에 문을 연 젠틀커피는 한때 건물 3층까지 확장해 매장을 차릴 정도로 ‘장사 잘되는’ 카페였다.

“그런데 매장을 확장한 이후에 오히려 찾아오는 손님이 줄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럴까, 젠틀커피의 이성천 대표는 자기 자신과 원래의 젠틀커피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왜 젠틀커피라고 이름을 붙였을까요. 이성천 대표 본인이 ‘젠틀맨(신사)’이었기 때문입니다. 젠틀맨이 건네주는 젠틀(gentle)한 커피를 되찾자는 생각에 확장했던 매장의 크기를 다시 줄였습니다. 모든 직원들이 신사답게 중절모를 쓰기 시작했죠. 대표는 항상 양복을 갖춰입었습니다. 매장 곳곳에는 모자, 부토니에, 양말 등을 배치했습니다.”

이랑주 V.LAB 대표가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동안에 한 무리의 젊은 남자 고객들이 젠틀커피를 찾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젠틀커피에는 잘 차려입은 젊은 남성 고객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커피만 마시러 오는 게 아니라 젠틀커피라는 장소가 좋아서 오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몇 년 있다 보니 젠틀커피 하면 누구나 다 중절모와 양복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다른 수많은 카페와는 완전히 차별화된, 그래서 언제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오래가는 것’이 된 것입니다.”

이랑주 V.LAB 대표가 말하는 ‘나를 안다는 것’은 자기계발서에서 종종 언급되는 ‘자아 찾기’ 같은 개념이 아니다. 내가 사업을 할 만한 사람인지 회사를 다닐 만한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부터 짚어가는, 삶을 재정의하는 일이다.

“얼마 전에 요식업을 했던 친한 동생을 만났어요. 세 번 사업을 일으켰는데 모두 실패했던 동생이지요.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동생이 그러더군요. ‘누나, 나는 사업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그걸 모르고, 무작정 아이디어 하나만 가지고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에요.”

요식업뿐 아니다. 스타트업도, 콘텐츠산업도 심지어 대기업까지도 ‘잘될 것 같은 것’을 찾아 시도했다가 잘 안 되면 포기하기 일쑤다. 자영업자가 창업하고 나서 5년 뒤에도 살아남을 확률이 27.5%에 불과하다. 좀처럼 오래가는 것을 만들 수 없다.

한 줄로 설명하는 ‘나’

이랑주 V.LAB 대표가 1993년부터 해온 일이 ‘오래가는 것’을 만들도록 돕는 일이다. 이 대표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전략을 가르쳐 따라하게 만드는 것 말고, 모든 사람과 기업에 맞는 자신만의 ‘비주얼’을 찾을 수 있게 컨설팅해왔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비주얼 머천다이징(VMD)이라는 분야를 개척해냈고 수많은 성공 사례를 만들어왔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찾아가 마법 같은 답을 내려주는 이랑주 V.LAB 대표의 컨설팅 방법은 그러나, 의외로 단순하다.

“가장 먼저 잘될 것 같은 것이 아니라 내가 오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해요. 그러려면 내가 누구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무엇을 구현할 수 있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하죠.”

이랑주 V.LAB 대표는 두 손으로 직사각형 모양을 그렸다.

“보통 저는 큰 종이에다 먼저 자신을 설명해보라고 해요. 기업을 도우러 갔다면 회사를 설명해보라고 하죠. 그럼 쭉 적어요. 자기 자신이나 자기 회사를 글로 한번 요약해보는 거죠. 그리고 두 번째, 그 종이를 반으로 접어요. 앞에서 적었던 것을 다시 요약해보라고 해요. 한 번 더 접어요. 그렇게 쭉 나가다가 단 한 줄로 요약한 그것이 자신이에요.”

이랑주 V.LAB 대표는 자신을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좋은 것을 더 좋아 보이게 만드는 사람’. 일 년에 수백 건의 컨설팅 의뢰를 받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없을 때, 의뢰를 수락하는 단 한 가지 원칙이 ‘좋은 것’이라는 단어에 있다.

“종종 사람들은 저더러 경영을 해보라고 해요. 그러나 저는 좋아 보이게 만드는 사람이지, 좋은 것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에요.”

이번 새 책에서도 언급되는 사례지만 이랑주 V.LAB 대표가 도움을 주러간 한 꽃집 사장은 프로방스의 꽃이 좋아 꽃집을 열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도자기 꽃병이 유행한다”고 하면 도자기 꽃병을 가져다놓고 “모던한 스타일이 좋아 보인다”고 하면 모던한 스타일을 차리곤 했다. 결과적으로 꽃집의 정체성은 좀처럼 알 수 없는 상황이 됐고 고객을 유인할 장점도 없어졌다.

“프로방스풍을 좋아했다면 그것만 밀고 나가면 돼요. 내 타깃은 나와 취향이 맞는 고객인 거지, 모든 고객을 잡을 수는 없어요. 대신 프로방스풍에 맞지 않는 것은 쳐내면 돼요.”

자기 자신을 알고 나서는 오로지 자신을 믿고 일관적이고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면 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정말 많지요. 당장 기업만 해도 CEO(최고경영자)가 바뀌면 모든 것이 다 바뀌어요. 그 기업이 어떤 정신,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CEO의 주장만이 중요하죠. 이런 기업은 오래갈 수 없어요.”

세계적인 보석 기업 ‘티파니앤코’는 180년 동안 단 한 가지 색으로 자신들을 표현해왔다. 누구나 다 아는 ‘티파니색’, 즉 민트색이다. 민트색 상자가 열리고 반지가 나오는 순간은 결혼을 상징하는 문화적 이미지이기도 하다.

“티파니는 굳이 더 고급 브랜드가 되려고 한다거나 더 넓은 고객층을 유치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뚝심 있게 꿈, 사랑을 전하는 티파니의 이미지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그래서 오래가는 겁니다.”

사실 지금껏 한국 사회에서는 벤치마킹에 대한 신화 같은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발전을 위해서는 다른 것의 장단점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벤치마킹은 어떤 단계까지는 성장에 도움이 됐을지 몰라요. 고속 성장기에는 벤치마킹하는 것이 확실히 좋았죠. 그러나 새로운 것을 만들고 오래가는 것을 설계해야 할 시점에서 벤치마킹은 도움이 안 됩니다. 저는 오히려 동종업계에 대한 시장조사를 하지 말라고 조언해요. 다른 것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모방하게 됩니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사라질지 모르죠.”

‘나’를 구현해내는 비주얼

나다운 것을 찾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나다운 것을 어떻게 구현하는지에 있다. 그게 바로 ‘비주얼’이라고 이랑주 V.LAB 대표는 설명했다.

“어떤 서점을 간 적이 있었어요. 비주얼에 한숨이 나오더군요. 책 아래 깔린 테이블보가 빨간색, 핑크색. 도무지 왜 저런 색을 쓴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었지요. 책을 소개하는 문구는 손으로 조잡하게 썼더군요. 사람들이 다시 찾아올까요?”

비주얼은 나다움을 구현하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이다. 우리는 종종 디자이너를 작업을 의뢰받는 하청업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디자이너는 아이디어를 눈으로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현장의 모습을 구현해내려면 디자이너도 직접 작업복을 입고 현장에 가봐야 한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무엇을 구현해야 할지 모르잖아요.”

순서대로 말해보자면 ‘나’를 찾는 것, 그것을 구현해내기 위해 비주얼을 고민하는 것이 차례로 진행돼야 한다.

이랑주 V.LAB 대표와 만난 카페 젠틀커피의 비주얼은 이랑주 V.LAB 대표의 설명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카페를 구성하는 주된 색은 갈색, 검정색, 어두운 초록색이었는데 저절로 ‘신사다움’을 떠올리게 하는 색이기도 하다. 걸려 있는 액자, 놓여 있는 의자와 소품 하나하나가 다 카페의 이미지에 맞게 채워온 것이다.

“오래가지 않는 카페들은 요즘 인기 있다는 디자인의 의자, 예뻐 보이는 조명을 들여놓습니다. 그게 왜 이 공간에 필요한지 설명해보라고 하면 못 해요. 그리고 그건 오래갈 수 없습니다.”

이랑주 V.LAB 대표는 맨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백화점에서의 경험을 떠올렸다.

“백화점에서는 정기적으로 매장의 진열 상태와 인테리어를 바꾸는 리모델링을 실시해요. 할 때는 다들 심혈을 기울이거든요. 그런데 바꿔놓고 보면 한 층의 모든 매장이 비슷비슷해져요. 같은 시기에 같은 유행 디자인을 쓰다 보니 똑같이 촌스러워지는 거죠. 또 똑같이 바꾸게 되고요.”

사람이든 기업이든, 작은 매장이든 큰 업체든 다르지 않다. 한 개인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오래 기억되고 싶을 때에도 이랑주 V.LAB 대표의 비주얼 전략은 유효하다.

“보험설계사 같은 개인사업자 분들을 만나면 늘 같은 색을 유지하라고 조언해요. 나라는 사람이 열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구현하고 싶다면 늘 붉은색의 소품을 가지고 다니거나 옷을 입고 다니는 게 좋아요. 그러면 사람들은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아, 그 빨간색 옷 입은 설계사’라고 떠올리겠죠.”

27년간 지켜온 나다움

이랑주 V.LAB 대표의 비주얼 전략은 2000개 넘는 브랜드와 매장에 새로운 비주얼을 가져다주었다. 교보문고, LG전자, 하이마트, 풀무원 같은 대기업뿐 아니라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에까지 대한민국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실제로 그의 강연 현장에 가보면 컨설팅을 의뢰한 CEO 등 책임자보다 직원들이 더 많은 감동을 받고 먼저 나서서 변화를 시도한다고 한다.

“보통의 경우에는 너도나도 같은 전략을 죽 읊어주며 그대로 바꾸라고 지시하거든요. 그러나 저는 모든 사람, 상황, 기업에 맞는 전략을 함께 찾아나가려고 노력합니다. ‘나’를 강조하다 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당신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당신들이 만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을 던지거든요.”

비주얼 머천다이징 분야를 최초로 도입한 것도 그렇고, 이후에 내놓은 전략들도 그렇고, 이랑주 V.LAB 대표가 줄곧 지켜나가는 ‘나다움’은 다소 독특하기까지 하다.

“자라면서도 늘 ‘내가 알아서’ 나의 길을 찾아온 덕분일 거예요. 학교를 다닐 때부터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개척해나가려고 했거든요.”

그가 개척해낸 비주얼 머천다이징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지만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분야였다. 27년간 그가 관여한 기업과 브랜드, 상권이 수도 없이 많고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비주얼 역시 손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외국에 나가 길을 걸으며, 물건을 고르며 브랜드의 역사를 알게 되었을 때, 왜 우리는 이렇게 오래가는 것들이 없을까 아쉬웠어요. 자영업자뿐 아니라 기업 경영자, 자기 자신을 경영하고 싶어하는 사람까지 모두 오래갈 수 있도록, 저의 얘기가 가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키워드

#저자 인터뷰
김효정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