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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56호] 201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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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르포]굿바이 치매! 핀란드 노인들은 댄스 중

▲ 춤 전문가 레일라 케톨라씨(왼쪽)가 초기 치매환자들을 상대로 ‘메모댄스’를 가르치고 있다.
‘열쇠를 어디 두었더라?’
   
   “아, 그 유명한 배우 이름이 뭐였지?”
   
   요즘은 노년층만이 아니라 35세가 넘은 5명 중의 1명도 이런 건망증을 자주 호소한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단순한 건망증으로 넘겼을 이런 증상도 요즘 사람들은 은근히 마음이 쓰인다. 가족 혹은 주변 친지 중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기도 했고, 미디어에서도 가족끼리 치매가 문제가 되어 살인까지 하는 패륜적 기사가 자주 보도되는 등 사회 곳곳에서 치매에 대한 부정적 얘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인기리에 막을 내린 화제의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통해서도 탤런트 김혜자씨의 명연기와 함께 치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환기되었다. 이제는 드라마에서도 극적인 병으로 암 대신 치매가 더 많이 등장한다.
   
   아직 완치되는 약이 없고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되는 이 진행성 질환은 그 이름만 봐도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呆)’, 상당히 고약한 뜻을 가졌다. 현 추세라면 2050년 우리나라 노인 6명 중 1명은 치매를 앓게 될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초, 우리나라 정부는 이런 치매와 맞서 ‘전쟁’을 선포하고 2019년부터 2028년까지 ‘치매와의 전쟁’에 총 1조1054억원을 쏟아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핀란드는 ‘기억 우호적 사회’
   
   치매는 국경을 뛰어넘는 세계적 공통 난제인 것 같다. 필자가 살고 있는 핀란드도 지난 10년 동안 치매로 죽은 사람이 무려 40%나 증가한 것으로 보도됐다. 핀란드 정부도 2012년부터 ‘국가 기억 프로그램(National Memory program)’이란 치매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실시 중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최종 목표는 다소 생뚱맞게 ‘기억 우호적(memory-friendly)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전쟁’이란 과격한 단어를 사용했지만, 핀란드 정부는 ‘우호적’이라는 긍정적인 단어를 사용해서 치매 극복의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치매’라는 단어는 의식적으로 제외시킨 것 같다. 바람과 해가 어떤 남자의 외투 벗기기 내기를 하는 어릴 적 읽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목표는 모두 외투를 벗기는 것이지만 접근 방식은 사뭇 다르다.
   
   핀란드 정부의 치매 프로그램의 근간은 △뇌 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 제고 △뇌 건강과 치매 치료에 대한 개방적 태도 배양 △치매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 향상 △치매 관련 연구와 교육 지원이다. 또한 이 프로그램이 마무리되는 2020년에는 치매환자도 스스로 많은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치매환자 인권강화법이 제정될 예정이다.
   
   단순히 치매에서 그치지 않고 뇌 건강이라는 좀 더 광범위한 영역까지 그 관심을 확대시킨 것, 치매 치료에 대한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사회적 태도 변화, 그리고 치매환자의 인권까지, 세세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병을 적이 아닌 친구로 여기며 극복했다는 얘기를 종종 들어본 적이 있는데 핀란드의 치매 정책은 이런 관점과 일맥상통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정책에 발맞춰 핀란드에서는 요즘 ‘치매’라는 단어보다 중립적인 ‘기억(memory, memo)’이란 단어를 사용한 치매 예방 혹은 치료법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메모리요가(핀란드어로 Muistijooga)’다.
   
   메모리요가의 창시자인 안티 시피넨(Antti Sipinen)씨는 2년 전 어느날 TV에서 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유레카’를 외쳤다. 일본의 치매 전문 연구가 시마다 히로유키 박사가 개발한 몸과 두뇌를 함께 사용하는 ‘듀얼태스킹(dual-tasking) 치매 예방·치료법’을 소개한 다큐멘터리였다. 듀얼태스킹 운동을 하루 30분(10분씩 3번도 가능), 일주일에 최소 3번 이상하면 6개월 후 인지기능이 약 30% 향상된다는 실험 결과였다. 치매로 넘어가는 단계의 경도인지장애 환자 절반은 이 운동을 꾸준히 4년간 실시한 결과 그 나이대의 정상적인 인지 기능으로 돌아왔다는 놀라운 결과도 소개되었다.
   
   
▲ 숫자와 알파벳이 각기 다른 색깔로 쓰인 메모리요가매트를 활용한 메모리요가. 핀란드에서 치매 예방법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두뇌 사용해야만 매트서 움직일 수 있어
   
   지난 25년 동안 꾸준히 요가 교사로 활동해온 시피넨씨는 듀얼태스킹을 요가에도 접목할 수 있음을 즉시 깨달았다고 한다. 단색의 요가매트를 여러 칸으로 나눠 그 속에 차례로 1부터 숫자를 적고 숫자 옆에는 알파벳 A부터 각기 다른 색깔로 적어보았다. 그렇게 그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메모리요가매트’가 탄생했다. 언뜻 보니 필자 눈에는 어릴 때 땅에 그려 놓고 놀았던 ‘오른망놀이’가 떠올랐다.
   
   이 메모리매트 요가 훈련은 쉬운 과제부터 시작한다. 숫자를 차례로 밟는 게 아니라 1324 이렇게 교차해가며 움직인다. 다음은 숫자와 글자를 교차하며 움직이고…. 1C2D 이렇게 말이다. 그 다음에는 색깔까지 추가된다. ‘1C빨강4’…. 점차 복잡해진다.
   
   때로는 더하기, 빼기 등 암산을 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두뇌를 사용해야만 매트 위에서 제대로 움직일 수 있다. 현재 이 매트 하나로만 150개의 다양한 운동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보통 요가는 마음을 비우고 몸을 단련하는 운동인데 메모리요가는 두뇌를 꽉 채워야 한다. 하지만 요가 수업의 기본적 요소도 간과하고 있지 않다. 메모리매트 훈련, 기본 요가 자세 훈련, 호흡과 함께 명상과 쉼에 집중하는 훈련을 골고루 한다.
   
   집에서 메모리요가 훈련을 혼자서 하더라도 1주일에 한 번은 단체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시피넨씨는 말한다. 치매 예방과 치료에 사람과 정기적으로 만나며 관계 형성을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 요가 수업에 참여하는 평균 연령은 60~65세이지만 사전에 치매 예방을 원하는 50대의 참여도 늘고 있다. 현재 가장 고령의 참가자는 87세이다.
   
   처음에는 소규모로 요가학원에서만 메모리요가를 가르쳤다. 얼마 전 헬싱키 시청과 본격적으로 손을 잡으면서 헬싱키 각 지역에 있는 보건소, 시민대학, 양로원 등 다양한 장소에서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는 이제는 직접 가르치는 일보다 메모리요가 강사 훈련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현재 강사 부족 현상을 겪을 정도로 메모리요가에 대한 호응이 뜨겁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헬싱키뿐만 아니라 핀란드 전 지역으로 이 메모리요가가 확대되는 것이고 기회가 된다면 다른 나라에도 알리는 것이다.
   
   요가 외에 춤도 핀란드에서 요즘 관심을 받고 있는 치매 예방·치료법이다. 지금까지 음악이 두뇌에 미치는 영향력은 비교적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다. 이에 비해 춤과 두뇌와의 상관성은 아직 초기 연구 단계라고 한다. 핀란드의 한나 포이카넨(Hanna Poikonen) 박사는 이 부분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작년 포이카넨 박사가 전문 댄서들의 두뇌를 연구해서 발표한 박사 논문은 핀란드 미디어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학자이면서 전문 춤꾼이기도 한 그녀는 오래전부터 춤과 뇌과학의 관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녀는 “전문 춤꾼의 뇌는 놀랍게도 음악가의 뇌보다 음악에 더 빠르게 반응한다”며 온몸을 사용하는 춤이 음악보다도 더 뇌 건강에 좋다고 강조한다. 뇌의 백색질이 저하되면 기억력이 감퇴하고 우울증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는데 춤을 출수록 뇌의 백색질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춤도 치매 예방·치료의 효과적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녀는 치매 예방·치료를 극대화할 수 있는 댄스 방법을 몇 가지 제시하고 있다. 같은 템포와 움직임으로만 되는 반복적 춤보다는 빠르고 느린 다양한 템포가 가미될수록 더 좋고, 큰 움직임과 작은 움직임 등 다양한 움직임이 포함된 춤이 치매 예방에 더 효과적이다. 또한 몸에 익은 댄스만이 아니라 집중해서 따라해야 하는 새로운 즉석 댄스도 포함하는 것이 좋다.
   
   이런 이론에 거의 일치하는 치매 예방 춤 강좌가 핀란드에서는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 모 방송국에서 방영된 ‘서울 메이트’란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우리에게도 낯이 익은 레일라 케톨라(Leila Ketola)씨는 몇 년 전 치매 예방·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메모댄스(Memodance)를 개발했다. 레일라씨는 20년 이상 댄스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춤 전문가이다. 2010년 고령자를 위한 춤 강좌를 처음으로 개설한 것이 메모댄스의 단초가 되었다. 몇 년간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되며 오늘날의 메모댄스로 탄생하게 되었다.
   
   

   춤이 뇌를 되살린다
   
   이 댄스의 특징은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움직임이 많다는 것이다. 방향과 움직임을 갑자기 변경하고, 몸에 익숙한 동작보다는 양 손가락으로 번갈아 코와 귀를 번갈아 만지는 등 생각을 하며 따라하는 동작이 많다. 이 댄스 강좌에서 음악의 역할은 크다. 젊을 때 좋아했던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면 치매로 시달리던 노인들의 젊은 시절의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나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고 레일라씨는 말한다.
   
   이 메모댄스는 치매 예방, 초기 치매환자 치료뿐만 아니라 이미 치매를 오랫동안 앓고 있는 환자도 즐길 수 있다. 이때는 치료 목적보다는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환자들을 위해 레일라씨는 지난 3년간 1주일에 1번씩 중증 치매환자 전문 치료 양로원을 방문하고 있다.
   
   며칠 전 레일라씨와 함께 필자도 이곳을 방문했다. 강습 시작 전 모인 분들을 살펴보니 아무 표정도 없고 거동도 힘드셔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계신 분들이 많았다. ‘잘 일어서지도 못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춤을 추시려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핀란드의 오래된 전통 성인가요(우리나라 트로트 음악과 매우 비슷함)가 깔리면서 예상치 못했던 장면이 내 앞에서 펼쳐졌다.
   
   레일라씨가 흥을 돋우며 간호사 몇 분과 함께 환자들에게 다가가 춤을 같이 추니 환자들은 어깨를 들썩이고 발을 구르더니 갑자기 휠체어에서 일어나 조금씩 댄스 스텝을 밟았다. 가사를 따라부르는 분들도 많았다. 그러더니 서로 농담도 하고 노래를 불렀던 가수와 관련된 오래된 연예계 가십도 얘기했다. 좀비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무표정한 얼굴에 화색과 함께 웃음이 맴돌았다.
   
   1시간 동안 즐겼던 메모댄스가 끝날 즈음에는 환자들이 동네 노인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노인들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얼른 수업 소감을 여쭤보려고 몇 분에게 다가갔다. “재미있느냐”고 여쭤보니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아까 열심히 가사를 따라 부르던 할아버지께 다가가 성함을 여쭤봤는데 안타깝게도 대답을 못하는 게 아닌가. 후에 들은 얘기인데 환자분들 중 많은 경우가 대화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환자들이 춤도 춤이거니와 가사까지 따라서 불렀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두뇌의 치료를 넘어선 마음의 치료가 이들에게는 더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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