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의 원인인 노폐물 단백질 베타아밀로이드(노란 부분).
치매의 원인인 노폐물 단백질 베타아밀로이드(노란 부분).

국내 연구진이 알츠하이머 치매 발병 전에 간단하게 혈액만으로 미리 진단할 수 있는 키트를 개발해 화제다. 지금까지 나온 혈액 치매 진단 키트보다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도구로, 진단 정확도가 90%에 이른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인지장애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이지만 현대 생명과학·의학 분야에서 아직 가장 큰 난제의 질환이다.

보통 ‘치매’라고 하는 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중 가장 흔한 것이 알츠하이머병으로 전체 치매환자의 약 70%를 차지한다. 또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끔 머리에 큰 충격을 받은 뒤 사물을 못 알아보거나 기억을 잃어가는 ‘외상성 치매’를 볼 수 있는데, 외상성 치매로 진단받은 환자의 60%가 알츠하이머 치매와 같은 증상을 보이며 만성적 퇴행성 뇌질환을 갖게 된다.

혈중 베타아밀로이드 농도로 치매 밝혀

치매 원인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단서만 그림자처럼 알려져 있다. 특히 그동안 과학자들이 지목한 알츠하이머 치매 주범의 하나는 뇌의 특정 노폐물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다. 아밀로이드는 당과 단백질이 뭉쳐진 덩어리다.

물론 베타아밀로이드는 정상인의 경우에도 인체 곳곳에서 소량 만들어지지만 빠르게 분해돼 인체 내에 쌓이지 않는다. 하지만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조직을 살펴보면 베타아밀로이드가 분해되지 않고 쌓여 엉긴 덩어리(플라크)가 발견된다. 나이가 들면서 베타아밀로이드가 비정상적으로 과다하게 생성돼 뇌세포 주변에 쌓이면서 뇌의 주요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베타아밀로이드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진단할 때 주요한 척도, 즉 바이오마커로 사용된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일단 발병하면 완치가 불가능하다. 증세가 나타나거나 진단이 이뤄진 뒤에는 뇌세포 손상이 이미 많이 진행된 뒤일 경우가 많다. 현재 의학기술로는 약물로 질병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만 가능하기 때문에 조기진단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세계의 과학자들은 알츠하이머 치매 증세가 나타나기 전에 조기 진단하려는 연구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의 뇌 속 축적 여부를 조사하는 방법이다.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농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면 뇌세포가 손상되기 전에 알츠하이머 치매 발병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다. 학계는 혈액 검사로 뇌 속의 베타아밀로이드가 얼마나 쌓여 있는지 확인하면 효과적으로 조기 진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아직 신뢰할 수 있는 혈액 검사 방법은 없다.

그런데 최근 국내의 연구팀이 그 방법을 찾아냈다. 김영수 연세대 약대 교수와 황교선 경희대 의대 임상약리학교실 교수, 노지훈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공동연구팀이 그 주인공이다. 공동연구팀은 혈중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안정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새로운 전처리 물질인 ‘EPPS’를 개발, 혈중 베타아밀로이드를 녹여 측정 정확도를 높이는 동시에 자체 개발한 민감한 센서(IME) 칩으로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양을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혈액을 채취해 원심분리하는 방법을 착안했다. 혈액을 채취한 샘플 2개 중 하나에만 EPPS를 넣고 혈액에 응집돼 있는 베타아밀로이드 덩어리를 녹인 다음, EPPS를 넣지 않는 샘플과 비교하는 방식이다. EPPS는 베타아밀로이드만을 선택적으로 녹일 수 있는 약물이다. 연구팀은 혈액 속에 존재하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비율이 뇌 속에 축적된 비율과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진행했다. 인지기능 정상군, 경도인지장애군, 알츠하이머군이 실험 대상으로 참여했다.

만약 건강한 사람이라면 EPPS를 넣은 샘플이나 안 넣은 샘플이나 혈중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양의 값에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라면 혈중 베타아밀로이드 농도 차이가 훨씬 크게 나타날 것이다.

예상대로 연구팀의 결과에서는 혈중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비율이 뇌의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양과 상관관계가 있음이 확인됐다. 뇌 속 베타아밀로이드의 농도가 높을수록 혈액 속의 베타아밀로이드도 비례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결국 혈액 속에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축적돼 있으면 알츠하이머 발병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연구팀이 개발한 방법은 90% 수준으로 정확하게 알츠하이머 치매를 조기에 진단할 수 있다고 한다. EPPS로 혈액 속에 뭉쳐진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녹이고, 센서(IME) 칩으로 측정하면 거의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들의 연구는 지난 4월 17일자(현지시각)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되었다.

기존 방식보다 저렴하고 손쉬워

이번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혈액 기반의 바이오마커 기술은 저렴한 혈액 검사만으로 증상이 없는 정상 단계부터 알츠하이머 발병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지금까지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진단하려면 베타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요추천자라는 바늘로 채취한 뇌척수액 검사나, 베타아밀로이드 양전자단층촬영(PET)이라는 고가의 뇌영상 검사를 거쳐야 했다. 이마저도 어느 정도 증상이 나타난 뒤에 이뤄져 조기 진단이 매우 어려웠다.

물론 이전에도 국내외 과학자들을 통해 혈액 속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검사하는 키트(질병 등의 감염 여부를 진단하는 도구)가 다양하게 개발되어 왔다. 그러나 덩어리로 응집된 혈중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양이 개인별로 다를 뿐 아니라 다양한 분해효소 때문에 기존의 키트 방식으로는 혈중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 양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려웠다.

뇌에 축적된 베타아밀로이드는 주변의 뇌세포에 염증반응을 일으킨다. 따라서 신경세포가 손상되고 점점 뇌의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는 신경회로망마저 훼손되기에 이른다. 게다가 축적된 베타아밀로이드는 신경세포를 죽이는 신호 체계를 가동시키는 활성산소를 많이 만들어낸다. 이런 현상들 때문에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리면 인지기능과 공간지각력이 떨어진다. 뇌 병리 침범 부위에 따라 초기에는 기억력 저하가 주로 나타나다가 점진적으로 언어기능, 판단력 등 인지기능 이상을 만들어 일상생활을 어렵게 한다.

앞으로 연구팀이 개발한 바이오마커가 더 많은 분석을 거쳐 실용화되면 알츠하이머 치매 조기 진단이 가능해져 노년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양전자단층촬영 같은 복잡한 검사 없이도 정확한 진단을 통해 의료비용 절감과 알츠하이머 치매를 예방하고 진행을 억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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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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