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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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도 뿌리는 여전히 전통 제조업에 두고 있다. 전통 제조업을 이끌고 있는 중소기업의 고통이 이어지면 새로운 산업혁명이 지체될 수도 있다.”

지난 5월 13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만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이 강조한 말이다. 이날은 ‘제31회 중소기업 주간’이 시작되는 첫날로, 김 회장은 여느때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김기문 회장은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제23~24대 중기중앙회장을 지냈다. 이후 4년의 공백기를 보낸 뒤 올해 중기중앙회장 선거에 다시 도전장을 냈다. 지난 2월 말 26대 중기중앙회장 선거에 당선된 이후 3번째 임기를 시작한 김 회장은 줄곧 중소기업 현장을 돌면서 기업인들의 절박한 요구사항을 들어왔다. 김 회장이 취임한 이후 중기중앙회장실에 놓인 회의용 탁자도 두 배로 커졌다. 김 회장은 “중기중앙회 창고에 묵혀 있던 대형 탁자를 꺼내서 회장실에 다시 배치했다”며 “회장실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적자 중소기업 문제 심각

그는 현장을 돌면서 중소기업이 다양한 층위에서, 복합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을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고 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중소기업이 처한 상황이 이전에 비해 많이 어려워졌다. 이미 정책이 시행돼 다시 되돌리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업·노동계·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중소기업 현장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한 후속조치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중기회 역시) 정부와 국회에 중소기업계의 어려움을 지속적으로 건의할 생각이다.”

김 회장의 지적대로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10곳 중 3곳 이상은 한 해 수익이 0원을 넘지 못하는 ‘마이너스’ 상태다. 국세청 국세통계연보를 살펴보면 2017년 기준 적자가 났다고 신고한 중소기업의 수는 무려 20만개에 달했다. 적자 중소기업의 비중 또한 꾸준히 늘고 있다. 법인세를 신고한 중소기업 중 0원 이하 소득을 신고한 적자 기업 비중은 2014년 33.9%에서, 2015년 34.4%, 2016년 34.7%, 2017년 35.3%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중소기업의 대출금 문제다. 경영난을 겪는 중소기업들이 대출 연장을 하려면 일부 원금 상환을 요구하는 ‘비 올 때 우산 뺏는’ 금융 관행이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자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창업 단계 이후의 기존 기업에 대한 정책금융을 확대하거나 민간 금융권에서도 (기업에 대한 대출 시) 매출액보다는 보유기술과 성장성을 더 중점적으로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사실 중소기업이 겪는 고통은 ‘대변화의 시기’에 접어들면서 가중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사회의 관심과 정부 지원책이 전통 제조업 중심의 중소기업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김 회장은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지만 그 뿌리는 여전히 전통 제조업에 두고 있다. 첨단 IT 기술이 접목된 드론을 제작한다고 가정해보자. 전통 제조업체가 금형을 만들고 주물을 해, 즉 드론 형체를 생산해야 IT 기술을 덧씌우지 않겠나. 그래서 시대가 변했다며 4차 산업혁명 관련 업종만 지원하는 건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 기반에 놓인 전통 제조업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한다.”

청년 일자리 미스매칭 문제 풀겠다

최근 김 회장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이슈는 바로 ‘청년 일자리 문제’다. 취임 후 단행한 첫 조직개편에서 청년 일자리 마련을 위한 본부를 신설한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다. 김 회장의 지시로 중기중앙회는 지난 4월 1일 청년이 일하고 싶은 스마트한 중소기업 일자리를 발굴·육성하고 알리는 사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스마트일자리본부와 청년희망일자리국을 신설했다.

“중소기업은 여전히 일할 청년이 없다고 아우성이고 청년들은 중소기업 중에는 가고 싶은 곳이 없다고 한다. ‘일자리 미스매칭’ 문제가 심각한 것은 중소기업의 근무환경뿐만 아니라 매력적인 중소기업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탓도 크다. 중앙회에선 100대 스마트 중소기업을 발굴하고 청년 구직자와 매칭해주는 ‘청년 스마트일자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성과를 모니터링하는 중이다.”

좋은 중소기업을 발굴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좋은 기업이 오래가도록 돕는 것이다. 국내에선 가업을 승계해 경영을 잇는 소위 ‘100년 중소기업’을 찾기 어렵다. 김 회장은 “일본에선 원활한 가업 승계로 다수의 장수기업이 존재하는데 200년 이상 기업만 4000개 정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며 “하지만 한국은 가업 승계에 대해 ‘부의 대물림’이란 부정적 시각이 존재하고 여전히 상속세 문제 등으로 결국 제3자에게 매각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장수기업이 사라지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 될 수 있다. 기업인들이 상속세 부담을 걱정하기보다 본연의 사업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중소기업에 한해서 가업상속공제 수준으로 가업 승계 증여세에 대한 관세특례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난 5월 14일 열린 2019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기문 중기회장(앞줄 오른쪽 두 번째)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5월 14일 열린 2019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기문 중기회장(앞줄 오른쪽 두 번째)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남북경협 물꼬 틔워야

김 회장이 주목하는 또 다른 과제는 바로 ‘남북경협’ 문제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한층 가까워지면서 북한과의 경제 교류에 대한 국내외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유엔 대북제재와 이를 사실상 통제하고 있는 미국의 방침에 따라 남북 간 경협은 거의 진척이 없는 상태다.

이 와중에 북한에선 개성공단 재가동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북한 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지난 5월 12일 ‘진정한 태도와 올바른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개성공업지구 재가동 문제는 미국의 승인을 받을 문제가 아니다”라며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한국 정부의 결단을 요구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 역시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오는 6월 미 의회를 찾아가 개성공단 재가동의 필요성을 알릴 계획이다.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은 오는 6월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의 브래드 셔먼 위원장이 개최하는 개성공단 관련 설명회에 참여해 공단의 실태와 역할뿐만 아니라 개성공단 재가동의 필요성을 알릴 계획이다.

김기문 회장은 2004년 제1대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을 맡은 바 있다. 남북경협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의 목소리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동안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 과정에서도 개성공단을 10년간 가동했었다. 역외가공 체제로 원자재나 물량 등은 우리가 모두 가져가고 북한 특구 내에서 북한 인력이 생산을 하는 방식이었다. 중소기업계에선 이런 방식으로 힘겹게 개성공단을 꾸려왔기 때문에 지금의 대북제재에 대해선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힘든 상황과 개성공단에 대한 오해들을 풀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호소할 생각이다.”

김 회장은 “앞으로 남북경협 재개에 속도가 붙게 된다면 중소기업계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성공단을 재개하면 남북 모두에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다. 지금은 산업시설들이 해외로 빠져나가서 산업공동화 현상이 문제가 되고 있지 않나. 그런데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에 공장을 짓고 제2, 3 공단을 마련하면 우리에게도 시너지 효과가 난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기문 회장은 임기가 4년인 중기중앙회장을 세 차례나 맡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임기 동안 네 번의 정권 변화를 경험했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과 임기가 겹쳤고 올해 2월 26대 중기중앙회장에 당선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도 조우하게 됐다.

김 회장은 “아직 현 정권의 정책에 대해 평가를 내리기는 이른 시기”라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중소기업 관련 정책에 대해서 “이전 정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속도감 있게 ‘공정경제’ 정책을 추진 중이고 이를 높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는 “기술탈취, 납품단가 현실화, 상생협력 생태계 구축 등에 대한 정부의 대책 마련이 빠르게 추진 중”이라며 “중기중앙회 자체 조사 결과에서도 공정거래에 대한 체감도가 개선되고 있는 게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급진적인 노동정책의 변화로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장에서도 지난 2년간 중소기업계의 최대 현안인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김 회장은 “정책은 이미 결정이 된 상황이니 앞으로는 상황을 신중하게 보고 적용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다행히 정부에서도 좀 더 유연한 방식의 입장을 취하기 시작한 듯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지난 5월 14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19 대한민국 중소기업인 대회’에 참석해 “최저임금, 탄력근로제, 주52시간 근로제 등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도 기업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올해 30회째를 맞은 중소기업인대회는 일자리 창출 유공자 포상 등 우수 중소기업의 성과를 알리고 포상하기 위해 마련한 중소기업계 최대 행사다. 중기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이낙연 국무총리만 참석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문 대통령이 직접 행사를 찾았다”며 “그만큼 중소기업과의 소통이 중요한 시기임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일 잘하는 중기중앙회 만들겠다

김기문 회장은 23~24대 중기중앙회장으로서 많은 일을 했다. 그의 재임 중에 노란우산공제 출범, 홈앤쇼핑 설립, 중소기업DMC타워 준공 등 굵직한 사업들이 빛을 봤다. 다시 돌아온 그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중소기업중앙회의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변화다. 앞으로 중소기업중앙회의 체질을 개선해 중소기업을 위한 현실적인 정책 대안 능력을 갖추도록 공을 들일 계획이다. 김 회장은 “예전엔 굵직굵직한 하드웨어적 사업들로 주목을 받았다”며 “하지만 지금은 중소기업이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정책을 만드는 데 힘을 써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미 ‘당당한 중소기업, 함께하는 협동조합, 일 잘하는 중기중앙회’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요즘 다양한 업종의 중소기업이 모여 있는 협동조합들이 참 어렵다. 업종 하나하나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중소기업을 위한 ‘KBIZ’ 은행을 설립해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서비스 지원에 나서는 것과 동시에 협동조합 지원을 위한 사업들을 다수 추진할 계획이다. 이들 사업은 결국 중소기업중앙회가 능력을 갖춰야 원활히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재임 기간 동안 중기회의 역량을 더 높이기 위해서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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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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