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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58호]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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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나는 체인지메이커다]덴마크式 자유학교 실험 나선 양석원

‘갭이어(gap year)’를 위해! 스타트업계 이장님의 이유 있는 변심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저는 월요일을 좋아합니다. 뭔가 시작하는 것, 어려워 보이는 일에 도전하는 것을 즐깁니다.”
   
   그가 내민 명함에는 큼지막하게 이름 석 자만 적혀 있었다. 양석원.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자유란 자기 이유로 걷는 것’이라는 글귀가 보였다. 직함이 아닌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로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글을 인용한 것이라고 했다. 양석원씨는 최근 명함을 바꿨다. 이전 명함은 서울 강남구에 있는 국내 창업 생태계의 허브인 디캠프(D.CAMP)의 사업운영팀장이었다. 양씨는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데 디딤돌 역할을 했다. ‘스타트업계의 이장님’으로 불릴 만큼 디캠프 시작부터 스타트업들의 ‘고민 해결사’를 자처했다. 그는 공유사무실인 위워크가 국내에 상륙하기 훨씬 전에 공유사무실(코워킹 스페이스) 실험을 하고 ‘데모데이’ ‘해커톤’ 등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문화를 국내에 옮겨왔다. 그런 그가 최근 스타트업계에서 한 발을 빼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쉼과 전환을 위한 안전한 실험실’을 내건 자유학교를 공동 창립한 것이다.
   
   자유학교는 ‘갭이어(gap year)’를 위한 과정이다. 갭이어는 잠시 멈춰 서서 삶을 돌아보고 자신을 찾는 시간을 이른다. 말하자면 인생의 쉼표 찍기이다. ‘갭이어’는 영국에서 1960년대 시작돼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기 전 일정 기간 동안 다양한 경험과 함께 자신을 탐색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 과정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갭이어’라는 단어가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2016년 덴마크의 갭이어 프로그램인 ‘폴케호이스콜레’를 다녀왔다. 가을학기 4개월 과정이었다. 삶의 전환을 위한 ‘갭이어’였다. 그는 덴마크에 다녀온 후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폴케호이스콜레’를 한국에 심는 것이다. ‘폴케호이스콜레’를 다녀온 사람들과 함께 한국판 ‘폴케호이스콜레’인 ‘자유학교’를 만들었다. 여기서 자유는 ‘자기 이유’의 줄임말이다. 그는 다양한 형태의 자유학교가 전국 곳곳에 세워지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남의 잣대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자기 이유’를 찾는 인생학교가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다. 그는 두 번의 ‘갭이어’를 경험했다. 그 과정을 통해 그는 ‘자기 이유’를 찾았을까.
   
   지난 5월 7일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 선릉센터에서 양석원(41)씨를 만났다. 그는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나타났다. 현재 디캠프에는 프리랜서로 적을 두고 있다. 디캠프 선릉센터의 10배 규모로 내년 오픈 예정인 ‘마포 청년혁신타운’(가칭)의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고 있다. 스타트업계와는 다른 호흡으로 ‘자유학교’ 실험에 도전한 그의 이야기 속에는 덴마크처럼 행복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해답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첫 번째 갭이어, 실리콘밸리
   
   10년 전, 그가 소셜미디어 1세대인 싸이월드에 다니던 때였다. 누구나 데이터를 생산하고 인터넷에서 공유할 수 있는 웹 2.0 시대가 되면서 세계 IT 시장이 요동쳤다. 진원지는 실리콘밸리였다. 국내 기술보다 앞선 것 같지 않은데 용광로처럼 뜨거운 이유가 궁금했다. 직장 7~8년 차,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안식년 휴가를 이용해 실리콘밸리에 갔다. 시내 구경하고 일정 중에 마지막 하루가 비었다. 구글맵을 따라 무작정 실리콘밸리 회사들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트위터니 마이스페이스니 말로만 들었던 회사들이 몰려 있었다. 지금처럼 뜨기 전이었다.
   
   “트위터를 방문했는데 세상에, 문 열고 들어가니 바로 문 앞에 창업자인 비즈 스톤이 앉아 있는 겁니다. 다들 친절하게 사무실 보여주고 설명해주고 선물 주면서 누구나 환영하는 분위기였어요. 아, 이런 것이 실리콘밸리구나. 문화충격이었습니다. 마이스페이스에 갔을 때는 안 되는 영어로 손짓발짓 싸이월드를 구현해 보였더니 다들 신기해했어요. 배경음악이나 배경화면으로 돈을 버는 싸이월드의 비즈니스모델이 놀라웠던 거죠. BGM(배경음악)이라는 용어도 그들은 모르던 때입니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온 회사의 직원이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겁니다.”
   
   한국에 돌아와 남은 프로젝트를 정리한 후 미련 없이 사표를 내고 실리콘밸리로 날아갔다. 1년 어학연수를 핑계로 한 ‘갭이어’였다. 한국의 IT 정보는 접하기 힘들다 보니 학생 신분으로 방문 중인 그도 파티마다 초대를 받았다. 스타트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어디든 분위기가 뜨거웠다. 컨퍼런스 문화부터 데모데이(스타트업 투자설명회), 오피스아워(스타트업 멘토링 프로그램), 팀 프로젝트인 해커톤 등 스타트업 문화를 흡수했다. 컨퍼런스의 분위기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이 불문 직급 불문, 수평 언어로 경계 없이 소통하고 정보사냥을 했다. 단기 프로젝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유오피스도 경험했다. 1년 동안의 ‘갭이어’는 그를 멈추게 한 것이 아니라 시야를 확 넓혀줬다.
   
   공유오피스를 사업모델로 잡고 한국에 돌아왔다. 직장 초년 시절 MSN 메신저로 온라인 서명 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 하룻밤 새 수천 명이 참여한 것을 보면서 “내 기술로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은 경험이 더해졌다. 서울 강남구 학동 쪽에 사무실을 얻어 공유오피스를 시작했다. 부동산들도 ‘공유오피스’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때였다. 공유경제를 모델로 한 스타트업 10개 팀을 입주시키고 인큐베이팅을 했다. 그중 한 팀이 면접용 정장을 빌려주는 ‘열린옷장’이다. 열린옷장은 사무실 한편에서 행거 하나로 시작해 지금은 빌딩 4개 층을 쓸 만큼 성장했다. 그는 열린옷장의 사외이사이다.
   
   공유경제 선구자로 실리콘밸리에서 보고 배운 대로 다양한 실험을 했다. 10년 전의 일이니 ‘스타트업’이란 단어도 낯설던 때이다. 그 당시를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데모데이’를 계획하고 여기저기 홍보를 했는데 느닷없이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어요. ‘무슨 데모를 벌이느냐’고. 데모데이를 시위하는 날로 오해를 한 겁니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3년여 신나게 일했다. 그는 돈 벌자고 한 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업이 아니라 무브먼트로 접근했습니다. 스타트업도 저에게는 사업이 아니라 문화였습니다. 일에 대한 가치의 기준이 다른 거죠.”
   
   2012년 18개 은행이 연합해 5000억원을 출연해 시작한 디캠프에 합류했다. 국내에 없던 창업허브를 조성하는 일이었다. 그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혼자 할 때는 호수에 던진 작은 돌밖에 안 됐는데 디캠프에서는 돈 없어서 못 했던 것을 충분히 구현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디캠프는 지금까지 4500회가 넘는 창업 관련 행사를 했고, 직간접 투자를 통해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지원했다. 디캠프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매월 열리는 ‘디데이(D.DAY)’는 현재까지 60회 넘게 이어지면서 스타트업들의 데뷔무대가 됐다. 스타트업에 필요한 교육을 지원해주는 디클래스(D.CLASS), 스타트업과 인재를 연결해주는 디매치(D.MACH), 회계·홍보 등 필요한 전문가를 연결해주는 오피스아워(OFFICE HOUR) 등도 디캠프의 주요 프로그램들이다. 그는 이들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람들을 연결해주면서 마당발 인맥을 자랑하는 ‘스타트업계의 이장님’으로 통했다. 그의 소셜미디어 아이디도 ‘이장’이다.
   
   
▲ 지난 2017년 처음으로 실험에 나선 ‘자유학교 1기’.(왼쪽) 단기 일정으로 청년 자유학교도 진행했다.(오른쪽) photo 자유학교

   두 번째 갭이어,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
   
   프로그램들이 안정되자 딴 생각이 들었다. ‘안정’은 그에게 곧 ‘지루함’이었다. ‘갭이어’가 필요했다. “10년, 20년 긴 호흡으로 도전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잘하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이어야 오래할 수 있겠다, 내가 뭘 할 때 가장 즐겁지? 생각해보니 새로운 것을 캐치하고, 그걸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인정받을 때였습니다.” ‘새로운 교육’으로 연결이 됐다. 북유럽에 눈을 돌렸다. 교육도 정치도 신기하고 새로웠다. “우리나라에 나온 북유럽 관련 책은 다 봤다”고 할 만큼 벼락치기 공부 끝에 덴마크의 한 폴케호이스콜레에 등록을 했다. 4개월 한 학기 학비는 500여만원, 숙식까지 해결됐다. 원래는 훨씬 비싸지만 덴마크 정부에서는 외국인에게도 예외 없이 60% 이상 지원해준다.
   
   덴마크에는 폴케호이스콜레가 70여곳이 있다. 덴마크 교육의 아버지로 불리는 니콜라이 그룬트비(1783~1872)가 ‘경제보다 정신’을 부르짖으며 농한기 시민교육을 위해 세운 것이 시초이다. 보통 3~4개월 과정으로 100명 안팎이 함께 생활하면서 다른 사람을 통해 삶을 배우는 ‘인생학교’이다. 대학교육이 무상인 이 나라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곧바로 입학하는 학생은 10명 중 2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폴케호이스콜레’ 등 다른 경험을 선택한다고 한다. 국제 폴케호이스콜레도 있고 액티비티를 내세우는 곳도 있고 학교마다 성격은 다르지만 시험도 없고 직업교육도 못 한다. 나머지는 모든 것이 학교 자율이다.
   
   “첫 오리엔테이션 때 교장의 첫 마디가 ‘우리는 룰이 없다. 민주주의란 라이프스타일이다. 스스로 문화와 가치를 정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덴마크 친구들이 덴마크어로 이야기할 때 누군가가 약속한 단어를 외치면 영어로 하자는 규칙들을 만드는 거죠. 사소한 것부터 학교 운영까지 어떤 것이든 제안하고 기획, 투표, 실행 과정 등을 통해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배우는 거죠.”
   
   교육을 통해 삶의 방식을 혁신한 것이 덴마크의 행복 비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포함해 폴케호이스콜레를 다녀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6~7명이 뜻을 함께하고 2017년 12월 한국형 폴케호이스콜레인 ‘자유학교’를 만들고 첫 실험에 나섰다. 강화도의 ‘꿈틀이학교’를 빌려 숙식하며 약 2주 일정으로 진행하면서 ‘자유학교’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봤다.
   
   “20~50대까지 20여명이 모였는데 질문이 똑같았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내가 뭘 잘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였습니다. 대학 나오면 공부가 끝나는 게 아닙니다. 생애전환주기마다 교육이 필요합니다. 삶의 전환을 위해서는 자기 속도를 알아야 합니다. 옆에 달리는 차를 보고 과속하다가는 엉뚱한 곳으로 가기 십상입니다. 자기 속도를 알려면 쉬어야죠. 브레이크가 아닙니다. 정중동, 자기를 알아야 제대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 자유학교를 만들자!
   
   자유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다. 모든 커리큘럼도 ‘대화’를 위한 장치들이다. 그룬트비의 교육철학도 ‘대화를 통한 상호작용이 이뤄져야 살아 있는 교육이다’란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띵~’ 하는 자각의 순간은 나를 알아차리는 데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한 일을 정리하고 하고 싶은 일을 적는 ‘자업자득’ 프로그램이나 구글맵에 가고 싶은 곳을 표시하게 하는 것도 전부 대화를 끌어내고 마음의 문을 열게 하기 위한 장치이다. 나이 불문 수평어 쓰기를 회의 안건으로 내놓기도 한다. 존대를 할 때와 수평어를 쓸 때 대화 내용이 달라진다. 정작 진짜 대화는 술잔을 앞에 둔 저녁시간에 이뤄지기도 한다.
   
   1기 자유학교 이후 지난해 2기를 진행했다. 3~4일 일정의 청년 대상 학교도 계속 실험 중이다. 지자체의 위탁을 받고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50플러스 인생학교’도 진행하고 있다. 콘텐츠를 좀 더 쌓고 프로그램을 다양화해서 비영리단체를 만들 계획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자유학교에 대한 아이디어가 꽉 차 있다.
   
   “앞으로 가장 많이 나와야 할 일자리가 교육입니다. 교육은 일정 부분 복지로 접근해야 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세제 등 지원을 하고 전국에 다양한 자유학교가 만들어지게 해야 합니다. 퇴사자 학교, 창업자 학교, 중2부모 학교, 가족문제 해결학교, 막걸리 학교, 도시재생 학교 등등 콘텐츠는 무궁무진합니다. K팝을 배우겠다고 외국 젊은이들이 몰려오는데 수용할 곳이 없습니다. 어학당만 만들 게 아니라 요리, 태권도, 비보이 학교 등 한국 콘텐츠를 활용한 글로벌 자유학교를 만드는 겁니다. 남북관계가 풀리면 DMZ에 국제평화학교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인구절벽 시대에 대학도 캠퍼스 내에 이런 자유학교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유학교는 콘텐츠만 있으면 어디든 만들 수 있습니다. 회사로 찾아가는 자유학교도 가능합니다. 지역의 폐교도 있고 지자체나 기업과 함께 할 수도 있습니다. 학교를 만들 때마다 일자리가 만들어집니다. 세대별로 촘촘하게 평생학교를 만들어 교육 강국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 상상이 갔다. 자유학교를 키우는 것은 지역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삶의 스위치를 끄기 위해 자유학교는 익숙한 곳이 아니라 ‘제3의 공간’에서 숙식을 함께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역 곳곳에 만들어야 한다. 지역의 콘텐츠를 살릴 수도 있다. 학부모들도 자녀 사교육에만 돈을 쓸 게 아니라 인생 사교육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자유학교의 캐치프레이즈인 ‘삶과 전환을 위한 안전한 실험실’에서 그가 더 무게를 두는 것은 ‘전환’이다. 자유학교를 경험한 사람들이 다시 자신만의 자유학교를 만드는 선순환이 일어나 또 다른 형태의 창업, 직업의 길로 연결되길 바란다. 그런 사람들을 인큐베이팅하는 것도 그의 구상 속에 들어 있다. 지금 그는 큰 꿈을 꾸고 있다.
   
   “200년 전 덴마크에서 폴케호이스콜레가 정치·사회·경제 전반에 풀뿌리처럼 퍼졌듯이 자유학교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꿈을 꿉니다. 해외여행 대신 자유학교를 찾아 자신의 길을 찾고, 외국인이 자유학교에 오기 위해 한국으로 몰려오는 그런 꿈을 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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