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시 문산읍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과 북한군 초소. ⓒphoto 뉴시스
경기 파주시 문산읍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과 북한군 초소. ⓒphoto 뉴시스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가 미국의 승인을 받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에게도 명백한 사실이다.”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 ‘메아리’가 개성공단 재가동을 촉구하는 글(5월 13일자) 중 일부이다. 북한 정권이 최근 들어 각종 선전 매체들을 동원해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면서 문재인 정부에 대해 개성공단 재가동을 압박하고 있다. 메아리는 “남조선 당국이 자체의 정책 결단만 남아 있는 개성공단 재가동을 미국과 보수 세력의 눈치나 보며 계속 늦잡고 있으니 이를 북·남 선언을 이행하려는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며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 공동선언의 이행을 요구했다. 북한의 또 다른 선전매체인 ‘조선의 오늘’도 개성공단 재가동을 촉구하는 글(5월 12일자)에서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는 역사적인 북·남 선언을 고수하고 이행하려는 원칙적인 입장과 자세와 관련된 문제”라고 주장했다. 김정은은 지난 1월 1일 신년사에서 “전제조건과 대가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한 매체들 문 정부에 재가동 압박

북한 정권이 문재인 정부에 개성공단 재개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북한 정권은 1990년대 중·후반 최악의 식량난으로 수백만 명이 굶어죽었던 ‘고난의 행군’ 시절도 버텨내었다. 과거의 이런 사례로 볼 때 식량난으로 또다시 위기 상황에 빠진다고 하더라도 북한 정권의 안위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식량난보다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로 김정은이 심각한 통치자금 부족이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김정일로부터 40억~50억달러의 통치자금을 물려받았지만 체제 정비와 석유 밀수입 등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회피 등에 많은 외화를 사용해 지금은 10억달러도 남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은 그동안 통치자금으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고급 승용차, 요트, 주류, 명품 의류·장신구, 고가 식자재 등을 사들여 부하들의 충성도에 따라 살포했다. 또 평양 여명거리와 마식령 스키장 등 각종 건설사업과 현지지도에서 비자금을 통 크게 사용했다. 김정일의 연간 외화 지출 규모가 3억달러였던 데 반해 김정은은 두 배인 6억달러 정도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각종 제재로 이런 통치자금이 갈수록 말라버리고 있다. 일본 도쿄신문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외화와 김정은의 통치자금이 부족해지자 북한 정권은 부족한 돈을 거둬들이기 위해 노동당 간부와 부유층의 부정부패를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4월 7일자) 한 소식통은 도쿄신문에 “제재 영향으로 북한의 외화 보유액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고 김정은의 통치 자금도 급감했다”면서 “북한 정권이 대대적인 부정부패 검열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북한의 외환보유고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국제무역센터가 공개한 ‘북한 수출입 현황’에 따르면 2018년 북한의 수출 상위 10개국의 수출 총액은 2억7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이런 수치는 2017년 18억5500만달러, 2016년 27억7000만달러 대비 각각 85%, 90%가 줄어든 것이다. 북한 경제전문가 윌리엄 브라운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제재로 인해 북한이 매우 큰 문제에 봉착해 있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외환보유고는 바닥이 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이 지난 5월 21일 서울 영등포구 개성공단기업협회에서 열린 개성공단 방북 승인 관련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이 지난 5월 21일 서울 영등포구 개성공단기업협회에서 열린 개성공단 방북 승인 관련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바닥 드러내는 김정은 통치자금

북한 경제 구조는 매년 무연탄 수출 10억~13억달러, 의류 임가공 수출 7억달러, 10만명의 해외 파견 노동자 임금 3억달러, 수산물 수출 1억5000만달러 등의 큰 덩어리로 짜여 있다. 이렇게 벌어들인 외화로 석유와 식량, 생필품을 수입해왔다. 북한은 수출할 때는 국제 시세보다 싸게 팔고 수입할 때는 비싸게 들여온다. 수출입 규모의 7~10%인 이런 차액이 노동당 서기실과 39호실 등에 흘러들어갔다. 하지만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돈줄을 죄고 경제를 봉쇄하기 위해 강력한 5개의 제재 결의(2270호, 2321호, 2371호, 2375호, 2397호)를 채택했다. 석탄 수출금지·해외 노동자 송환·수산물 및 의류 임가공 수출 금지·원유 동결 및 석유 수입 50만배럴 제한 등으로 북한의 외화 획득 통로를 90% 이상 막아버렸다. 게다가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 정부도 마지못해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김정은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한 것도 그만큼 북한 경제의 심각성을 입증한 것이다. 김정은의 통치자금이 줄어들면서 3대 세습체제를 떠받쳐온 당·정·군 간부들을 장악하는 데도 빨간불이 켜졌다. 김정은이 ‘조건 없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카드를 꺼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개성공단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6·15공동선언’을 계기로 같은 해 8월 현대아산과 북한이 체결한 개발합의서에 따라 설립됐다. 2004년 6월부터 18개사가 입주했고 같은해 12월 첫 생산품을 출하했다. 2005년 9월에는 1단계 1차 기업 분양으로 24개 기업이 들어섰고, 2007년에는 183개 기업 분양이 완료됐다. 같은해 11월에는 개성공단 근무 북한 노동자가 2만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그동안 개성공단 운영을 놓고 빈번하게 강짜를 놓았다. 2008년 당시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북핵문제 타결 없이 개성공단 확대는 어렵다”고 하자 북한은 이를 빌미로 남북경제협력사무소의 남측 당국자 철수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남측 당국자 11명이 철수해야만 했다. 북한은 또 체류 인력을 880여명으로 제한하고, 통행시간을 축소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이른바 12·1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북한은 2009년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남측 근로자 한 명을 억류했다가 137일 만에 석방하기도 했다.

북한은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 이명박 정부가 개성공단으로 출경을 한동안 차단하자 개성공단을 폐쇄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북한은 2013년 2월 제3차 핵실험을 단행하고 4월에는 노동자들을 철수시켰다. 결국 개성공단은 134일간 문을 닫아야만 했다. 개성공단은 2013년 9월 가까스로 재가동됐다. 북한은 2016년 1월 제4차 핵실험을 단행했고, 당시 박근혜 정부는 같은해 2월 10일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고 입주 기업들을 철수시켰다. 이에 맞서 북한은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폐쇄 전까지 북한 노동자는 5만4000여명으로 증가했으며, 누적 생산액은 5억달러를 돌파했다. 70달러가 채 안 되던 북한 노동자 한 달 평균 임금은 150달러를 넘어섰다. 당시 입주기업은 123개, 협력업체는 5000개였다.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들.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들.

근로자 임금 전체가 노동당 39호실로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들은 2016년 폐쇄 전에 주 6일, 하루 8시간 노동을 하며 75달러를 월급으로 받았다. 여기에 연장·야간 근로수당을 더하면 5만4000여명이 1인당 150달러 정도를 받는다. 여기서 북한 정권이 가져가는 사회문화시책비, 즉 세금 30%를 제하면 적어도 북한 노동자들은 100달러를 가져가야 한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로부터 노동자들의 임금 전체를 미국 달러화로 일괄 수령한 후 노동자들에게 임금의 10~20%를, 그것도 장마당 환율이 아닌 자체적으로 책정한 공식 환율(달러당 130원)을 적용해 북한 돈 또는 지정된 상점에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쿠폰 형태로 지급했다. 북한 노동자들이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다.

특히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 전체가 노동당 39호실로 들어가기 때문에 돈의 사용처는 김정은만이 알 수 있다. 브라운 교수는 “이런 임금 지급 방식은 국제근로기준과 동떨어진 노예제도와 같다”면서 “이런 월급이 북한 노동자들에게 정상적으로 지급됐다면 다양한 일자리가 창출되고 상업 활동이 아주 활발해져 경제 발전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핵과 미사일 개발 및 통치자금으로 전용됐을 가능성이 있을까. 과거 박근혜 정부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을 통해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에 대한 임금과 기타비용의 70%가 노동당 서기실 및 39호실에 들어가고 그 돈이 핵과 미사일 개발이나 치적사업에 사용된다고 밝혔다. 치적사업은 통치자금을 말한다. 북한 정권은 모든 자금을 노동당에서 관리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타당한 추론이라고 볼 수는 있지만 당시 박근혜 정부는 관련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물론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은 이런 발표에 반발했지만 북한 정권이 노동자 임금을 전용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없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정권의 개성공단 노동자 임금 전용 문제는 물론 대북 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17일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자산 점검을 위한 방북 신청을 9번 만에 승인했다. 문재인 정부는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이미 8차례나 방북을 신청했던 만큼 재산권 확인 차원에서라도 개성공단을 방문할 필요가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개성공단 가동 재개를 타진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 연설(1월 10일)에서도 “김정은의 조건 없는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의사를 환영하며 북한과 풀어야 할 과제는 해결된 셈”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야당 시절 “개성공단은 작은 통일이며 남북 경제협력의 성공모델”이라면서 “정권교체를 이루면 당초 계획대로 개성공단을 2단계 250만평(826만㎡)을 넘어 3단계 2000만평(6600만㎡)까지 확장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1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제안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은 적절한 시기(right time)가 아니다”라고 거부했지만, 문 대통령은 집요하게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방안을 모색해왔다. 문재인 정부가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의 방북을 승인한 것은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이를 고리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복원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 정권이 개성공단의 설비를 무단반출해 의류제품을 생산·수출하며 외화벌이를 했다는 의혹이 최근에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5월 23일 중국 주재 북한 무역일꾼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지난해부터 개성공단에 있는 공장 설비를 무단으로 이전해 임가공의류를 생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RFA는 지난해 12월 7일 북한 정권이 개성공단 공장을 무단 가동해 생산한 고급 의류품이 북한 내 부유층에 판매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RFA는 2017년 7월에도 북한의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정권이 개성공단 내 10여곳의 의류공장을 은밀하게 가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통일부는 지난해 8월과 11월 두 차례 개성공단의 전기 등 기반시설을 점검했지만 가동이나 장비 밀반출 흔적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만약 장비 밀반출 등이 사실이라면 명백한 불법행위이자 남북 합의 위반이다.

설비 무단반출해 의류제품 생산 의혹도

이런 가운데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공단 가동 재개에 부정적인 미국 정치권을 설득하기 위해 6월 10~15일까지 하원 외교위원회 아·태소위원회에서 열리는 개성공단 설명회에 참석한다. 여기서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개성공단의 실태와 필요성을 피력하고 개성공단을 대북 제재에서 제외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도 밝힐 예정이다.

하지만 미국 조야는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이 결정됐음에도 불구하고 대북 제재 이행을 강조하며 개성공단 재개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미국 국무부는 “미국과 한국은 북한 문제에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며 “우리는 유엔 안보리 제재의 완전한 이행을 보장하기 위해 상호 협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언급은 이번 방북이 제재 완화로 비쳐서는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개성공단을 재가동하려면 무엇보다 유엔 안보리 제재 조치를 해제해야 한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 조치로는 △대북 해외투자, 기술 이전, 경제협력을 차단하기 위해 북한과 합작사업 금지(2375호) △직물·섬유 등 경공업 제품 수출 금지(2379호) △식품·농산품·기계류 등 주요 분야 수출 금지(2397호) 등이 있다. 게다가 벌크 캐시(bulk cash·대량현금)도 문제가 된다. 특히 결의 2094호는 “북한 불법 프로그램에 기여하는 모든 금융 거래 또는 서비스를 차단·동결한다”며 “벌크 캐시 이전도 금융 제재에 적용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성공단이 재가동될 경우 북한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이 벌크 캐시이기 때문에 제재 위반이다.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북한 정권의 돈벌이 수단이 될 뿐이며, 핵·미사일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미국 정부는 북한 정권에 엄청난 돈줄이 되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에 제재 예외를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데이비드 맥스웰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김씨 왕국에 직접 자금을 제공하는 돈줄일 뿐이며 북한 경제를 돕는 수단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비핵화 없이는 개성공단 재가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정부를 설득하기보다 김정은에게 완전한 비핵화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이 개성공단 재가동의 유일한 해법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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