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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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사업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안다. 우리나라에서 기업하는 어려움을 말이다. 각종 규제에 막혀 무엇 하나 제대로 해보기 어려운 데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 생태계는 중소기업 및 영세업자들의 성장을 더욱 힘들게 한다. 중소기업을 위한 이익단체도 여럿 생겨났지만, 사실상 정치집단화됐다. 문재인 정부도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격상시켜 중소기업들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하지만 바닥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주52시간 근무제나 최저임금제는 그 취지와 달리 중소벤처기업들을 더욱 옥죄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여러 대형 로펌에 속해 있는 30~40대 위주의 젊은 변호사들이 나서 “중소벤처기업들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보겠다”며 포럼을 결성해 주목받고 있다. 지난 5월 1일 서울지방변호사회 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활동을 시작한 ‘중소벤처기업법포럼’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중소벤처기업 활성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변호사 100여명이 참여했다. 변호사들이 자발적으로 어떤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나선 규모로는 상당히 큰 편이다. 이들의 기본적인 활동은 중소벤처기업 관련 법제를 논의하는 것이지만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중소벤처기업 활성화와 국가 경제 발전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 모임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법무법인 주원의 정재욱(34) 변호사. 법무법인 세종에서 일하다 주원의 파트너 변호사로 합류한 그는 대한변협의 상임이사이기도 하다. 지난 5월 21일 국회에서 만난 정 변호사는 “변협 내 여러 모임 커뮤니티를 살펴보다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을 위한 커뮤니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포럼 창립을 제안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변호사들이 참여해 놀랐다”고 말했다.

30~40대 변호사 100여명 참여

“사실 변협 내에서는 건설, 부동산, 금융, 회사법, 지식재산권 등 커뮤니티 등이 활발했었지만, 중소벤처기업 관련 이슈는 돈이 안 되기 때문에 모임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들이 여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대기업에서 중소벤처기업으로 경제 성장동력이 변하는 새로운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 변호사는 법무법인 세종에서 노무 관련 소송을 오래 맡아왔고, 주원에 합류한 후에는 블록체인 업체와 같은 스타트업 기업들의 법률 소송을 주로 대리했다. 2018년에는 ‘최저임금 고시 취소 소송 사건’에서 고용노동부 장관 대리를 맡기도 했다. 이 사건은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 주휴시간을 포함해 계산해야 하는지를 다툰 소송이었는데 2018년 노동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였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며 그는 중소기업이나 벤처업체들의 고충을 가장 가까이서 들었다. 이번에 포럼에 참여한 변호사들도 비슷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즉 제조업에 딸린 하청업체들은 대·중소 기업 간 상생협력 문제, 하도급 문제가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여깁니다. 벤처기업들은 규제가 걸림돌이라고 생각하죠. 이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각종 어려움을 법률적으로 공론화시키는 것이 포럼의 첫 번째 목표입니다.”

변호사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정책과 현실의 괴리는 상당하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주52시간 근무제나 최저임금 등은 방향은 좋더라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고 역효과만 일으키는 게 현실이다.

“내년부터 300인 미만 50인 이상 사업장에서도 전면적으로 주52시간 근무가 시행되는데, IT 벤처기업들은 그야말로 ‘멘붕’ 상태입니다. 소프트웨어 관련 업체의 경우 촉박한 용역기간, 빈번한 과업 변경 등 불합리한 발주 관행, 소프트웨어 개발 및 업그레이드 시 업무량 집중 등으로 인해 성수기에는 주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프로젝트의 납기를 1~3개월 앞둔 시기에 집중근로가 불가피한데, 실제 연말(10~12월)에 일이 몰리는 경향도 있죠.”

정 변호사는 “주52시간제를 유연화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당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가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하지만 정부나 국회는 여기에 손을 놓고 있습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일정 기간의 단위로 정해진 총 근로시간의 범위 내에서 업무의 시작 및 종료시각, 1일의 근로시간을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하에서는 1주 40시간, 1일 8시간의 근로시간 제한 없이 근로자 본인의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근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협상 테이블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외부에서 공론화해야 하는데 이런 문제들을 앞장서 풀고 싶습니다.”

사실 중소벤처기업을 어떻게 살려나갈 것인지는 어느 정부도 풀지 못하고 있는 오랜 숙제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처럼 외부에서 공정경제를 외치다 제도권(국회)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현실의 벽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그렇다면 중소벤처기업법포럼은 이전에 있던 비슷한 시도들과 어떤 차이점을 내보일 생각일까. 정 변호사는 이에 대해 “일시적·시혜적 시각으로 중소기업 문제를 접근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52시간제 유연화 조치 앞장설 것

“그동안 우리나라는 중소기업기본법,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등 중소벤처기업의 보호와 지원을 위하여 많은 법과 정책을 시행해왔죠. 그러나 여전히 중소기업, 벤처기업이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정책의 목표나 방향 설정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시적·시혜적 접근이나 지원책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대·중소 기업 간 공정한 거래 질서의 확립,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 투자와 회수의 선순환을 위한 법 제도의 마련 등 보다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과 관련한 법제도가 많은 것 같지만 관련 법제 연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정 변호사는 향후 3년간 이 포럼의 대표를 맡기로 했다. 30대 중반의 나이지만 그가 포럼 대표를 맡은 이유는 단순히 첫 제안이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한다. 노무 분야나 스타트업 법률지원 등의 경험도 풍부한 데다 중소벤처기업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포럼에는 국내외 투자, 금융, 공정거래, 조세, 형사, 지식재산권, 인사노무, IT, 블록체인 등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있습니다. 경력으로 보자면 법조 경력 1년 차에서 20년 차에 이르기까지, 나이로 보자면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하죠. 이러한 분들께서 제게 대표라는 중책을 맡긴 이유는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열정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라도 열정과 능력이 있으면 자신의 재능을 쏟아부을 수 있는 중소벤처기업계의 싱크탱크를 잘 만들어보겠습니다.”

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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