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다음 세대의 놀이환경을 고민하는 ‘놀세권: 플레이넷’ 전시가 열리고 있다. ⓒphoto 노기훈
서울 광화문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다음 세대의 놀이환경을 고민하는 ‘놀세권: 플레이넷’ 전시가 열리고 있다. ⓒphoto 노기훈

아이들이 살기 좋은 동네는 어떤 곳일까? 전국의 놀이터는 왜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을까? 이런 질문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가. 이제 역세권, 학세권보다 ‘놀세권’을 따져야 할 때다. ‘놀세권’은 ‘아이들이 뛰어놀며 자라기 좋은 동네’를 뜻한다. ‘놀세권’이 집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터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이런 고민에서 출발해 우리 사회에 새로운 대화를 제안하기 위해 도시계획 전문가, 놀이터 전문가, 벤처기부펀드 ‘씨프로그램’(대표 엄윤미)이 뭉쳤다.

‘씨프로그램’은 2017년 3월부터 15개월간 서울 권역을 중심으로 ‘동네 놀이환경 진단 도구 개발 연구’를 지원했다. 이 연구는 수년 동안 놀이터를 설계하고 놀이환경을 연구해온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과 최이명 두리공간연구소 실장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연구는 아이들이 놀기 좋은 동네는 어떤 곳인지 객관적·물리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국내외 문헌 조사와 아이들의 일상을 추적한 행태 실증 조사로 진행됐다. 주거 형태(아파트·저층주거지)와 지형(경사지·평지)이 각각 다른 서울의 동네 4곳을 고른 뒤, 이 동네에 사는 초등 1~4학년 아이들 100여명에게 GPS 기기를 달았다. 일주일 동안 이동경로와 해당 장소에 머문 시간을 추적한 결과는 흥미로웠다.

학원 가기 바쁜데 놀이터에 갈 시간이 어디 있냐고? 아이들은 학원, 학교를 오가는 중에도 놀 공간만 있으면 잠깐이라도 놀고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아이들의 평일 바깥 놀이 시간을 비교해보니 놀이터가 골고루 분포된 A 동네 아이들은 평균 51.5분인 데 비해 놀이터 수가 적은 B 동네 아이들은 34.3분에 그쳤다. 놀이터의 시설이나 규모 못지않게 ‘입지’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길에서 가깝고 평지에 있는 놀이터는 항상 붐볐지만 경사지에 있는 놀이터는 한적했다. 그 결과를 가지고 부모들 인터뷰, 워크숍,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동네 놀이환경 진단 도구’를 완성했다. 씨프로그램은 지자체, 민간 도시개발업체들이 진단 도구를 활용, 실제 동네 환경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놀이환경에 대한 사회 인식 확산에도 나섰다. 그 첫걸음은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내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6월 3일부터 7월 14일까지 열리고 있는 ‘놀세권: 플레이넷’ 전시다. 고기웅, 권형표 등 자녀가 있는 건축가 5팀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11곳의 놀이 장소를 만들었다. 전시는 제1의 공간인 집, 제2의 공간인 학교, 제3의 공간인 놀이 장소를 연결해 아이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동네를 보여준다. 미술관에 놀이터를 연결한 ‘무한연결 놀이터’ 등 10만여개의 브릭으로 만든 장소들은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하게 만든다. ‘다음 세대에게 필요한 놀이환경은 무엇인가?’ 중요하지만 외면하고 있던 질문에 대해 지금부터 우리 사회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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