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위성으로 내려다본 서해 함박도. ⓒphoto 구글 어스 캡처
인공위성으로 내려다본 서해 함박도. ⓒphoto 구글 어스 캡처

함박도는 서해 연평 우도에서 북쪽으로 8㎞, 말도에서 서쪽으로 8㎞ 떨어진 1만9971㎡(6000평) 크기의 작은 섬이다. 대연평도와는 28㎞ 떨어져 있다. 섬의 모양이 함박(함지박)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섬의 주소는 공식적으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산97이다. 그런데 주간조선 취재 결과 현재 군(軍)은 함박도를 ‘NLL(북방한계선) 이북 북한 관할 지역’이라고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군의 설명대로라면, 현재 주소가 대한민국으로 되어 있는 섬을 북한이 점령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주소 등록이 잘못되었거나, 대한민국 땅을 북한이 장기간 실효 지배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해양수산부 무인도서 관리유형 지형고시도에 따르면, 함박도의 토지 소유현황은 ‘국유지(산림청)’로 되어 있다. 관련 법에 의한 관리현황은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통제보호구역, 민통선 이북 10㎞)’이고 그 외 지형지질, 주변해역 경관 등은 군사통제에 따라 ‘조사불가하다’고 되어 있다. 시설물 이용현황은 ‘없음’이다. 함박도는 2018년 11월 8일 해양수산부 장관 고시에 따라 ‘절대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2018년 해수부의 무인도서 관리유형 지형고시 내역에서는 ‘절대보전·준보전·이용가능 무인도서’로 총 11개 섬을 분류하고 있는데 이 중 ‘절대보전’ 섬은 납도, 기장섬, 함박도 등 3개다.

국토교통부의 토지이용규제서비스 조회를 통해서는 현재 함박도의 개별공시지가까지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1월 기준 ㎡당 1070원이다. 이 서비스의 ‘지역 지구 등 지정여부’ 항목에는 가축사육제한구역, 통제보호구역, 절대보전무인도서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심지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함박도는 ‘국가지정문화재구역(천연기념물 제419호-강화 갯벌 및 저어새 번식지)’으로 정해져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토지이용정보 조회는 한국 땅만 가능하다”고 했다. 해수부와 국토부는 함박도를 한국 정부의 행정권이 미치는 ‘대한민국 땅’으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군의 입장은 달랐다. 국방부 대변인실은 “우도와 말도 사이 무인도서로 추정되는 함박도는 NLL 이북으로 북한 땅이 맞는다”고 공식 확인했다. 서해 5도 지역에서 작전하는 해군, 해병대 측 역시 “함박도는 북한 땅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해병대 사령부 관계자는 “함박도는 북한 땅이다. 주소상 소재는 대한민국 인천광역시로 되어 있을지라도 NLL 이북이기 때문에 북한 관할 지역”이라고 했다. 해군본부 관계자 역시 “함박도는 NLL 이북으로 북한 땅이 맞는다. 주소 등록상에 착오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다만 군은 함박도에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함박도가 속해 있는 인천시 강화군 서도면 관계자는 “서도면 소속 섬은 맞지만 실질적으로 북한이 점령하고 북한군이 주둔하고 있는 섬으로 알고 있다. 행정상으로는 강화군 서도면 소속인데, 왜 그렇게 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전협정 이후부터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추정한다”고 했다.

해양수산부 무인도서 정보조회 시스템에서 조회한 함박도의 관리 정보. 소유현황이 ‘국유지(산림청)’로 되어 있다.
해양수산부 무인도서 정보조회 시스템에서 조회한 함박도의 관리 정보. 소유현황이 ‘국유지(산림청)’로 되어 있다.

건물·태양광 등 거주 흔적

‘구글 어스’를 통해 함박도를 찾아보면 가로 20m, 세로 12m 크기의 한 층짜리 건물이 지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섬의 한가운데에는 태양광 시설로 보이는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건물 옆으로 이어진 땅에는 사람이 터를 닦아놓은 흔적이 보인다. ‘무인도서’로 보기 쉽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해수부 관계자는 “무인도서 실태조사를 할 때는 현장조사를 원칙으로 한다. 용역을 발주해서 전문 인력이 해당 섬들을 일일이 확인한다”라며 “다만 군사통제구역의 경우 군의 협조를 받아 진행하거나 어쩔 수 없이 섬에 못 들어가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고 했다. 함박도는 지금까지 현장조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함박도는 썰물 때가 되면 6㎞ 떨어진 말도까지 갯벌로 연결된다. 함박도에는 누가 살고 있는 것일까. 누구의 땅이 맞는 것일까.

함박도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서는 역사를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 종전 때 NLL이 그어지는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복잡한 상황이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전 정전협정 한 달 뒤인 1953년 8월 30일, 유엔군사령부는 서해 지역의 섬 관할권을 북한과 나누며 일방적으로 NLL을 그었다. 당시 정전협정문 2조 ‘정화 및 정전의 구체적 조치의 13항 ㄴ목’에는 서해 도서의 관할권을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ㄴ. (…) 상기한 “연해도서”라는 용어는 본 정전협정이 효력을 발생할 때에 비록 일방이 점령하고 있더라도 1950년 6월 24일에 상대방이 통제하고 있던 섬들을 말하는 것이다. 단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북쪽과 서쪽에 있는 모든 섬 중에서 백령도(북위 37도 58분, 동경 124도 40분), 대청도(북위 37도 50분, 동경 124도 42분), 소청도(북위 37도 46분, 동경 124도 46분), 연평도(북위 37도 38분, 동경 125도 40분), 우도(북위 37도 36분, 동경 125분 58분)의 도서군들을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남겨 두는 것을 제외한 기타 섬들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둔다.’

위 조항에서 ‘황해도와 경기도 도계선 북쪽과 서쪽에 있는 모든 섬 중 서해 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를 제외한 섬들을 북한(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둔다’는 대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전 당시 유엔군은 압도적인 해군력을 바탕으로 서해 지역의 모든 섬들을 사실상 점령하고 있었다. 정전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유엔군은 이 섬들을 계속 점령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 군사적 요충지인 서해 5도를 제외한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북쪽과 서쪽의 섬들은 북한에 관할권을 넘겼다. 그래서 정전협정 당시 도서 관련 합의는 ‘북한에는 놀라울 만큼 이득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전협정에 첨부된 지도 ‘제3도’를 보면, 우도와 함박도는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북쪽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해당 조항의 주석에는 ‘상기계선(도계선)의 목적은 다만 조선서부연해섬들의 통제를 표시하는 것이며 이 선은 아무런 의의가 없다’고 되어 있다. 때문에 이 첨부를 만들 당시 도계선 설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텍스트에는 ‘황해도와 경기도를 잇는 도계선’이라고 되어 있는데, 경기도 강화군 소재의 함박도를 이북으로 두고 잘못 그었다는 것이다.

1960년대 어부 납북 사건도

함박도의 경우 위 조항에서 언급된 ‘황해도와 경기도 도계선 북쪽과 서쪽에 있는 모든 섬’에는 해당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김명섭 교수는 “서해경계선은 전전(戰前)상태 복귀의 원리(status quo ante bellum)에 따라 38선 이북의 해양과 도서들을 공산 측에 양보했다. 이후 다시 38선 이남의 옹진반도 남단에 대한 공산 측의 지배를 교전선에 따른 분할의 원리(uti possidetis)에 따라 인정해주면서 복잡해졌다”며 “정전협정에 따르면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북쪽과 서쪽에 있는 섬들 중에서 현재의 서해 5도를 제외한 기타 모든 섬들은 공산군 측 관할 하에 둔다고 하였으므로 함박도가 이 도계선 이북에 있는 섬이라면 이북에 속한 것이 된다. 그렇지만 썰물 때 말도와 곧장 연결되는 함박도는 말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우리 측 주소지로 설정된 것 같다. 이북에 속한 섬이라 하더라도 함박도에 조선인민군의 군사시설이 설치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되고, 비무장지대(DMZ)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단순한 행정상의 착오일 뿐, 함박도는 실제 북한 소유로 보는 것이 맞는다는 분석도 있다.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남성욱 교수는 “정전협정 당시 연합군은 함박도를 점령할 가치가 없다고 본 것 같다. 연합군도 서해 지역에 그 많은 섬들을 다 관리할 수 없으니 북에 넘겨줬다고 본다. 당시만 해도 북한의 해군 전력은 전무했는데, 1960년대 중후반 들어 해군력을 강화하면서 북한이 NLL 문제를 들고나왔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정전협정 당시 함박도를 북한에 넘겼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 이전 행정상의 기록이 그대로 전해져 내려온 것 같다”고 했다.

함박도가 NLL 이북 지역으로 북한 땅이 맞는다는 남 교수의 말은 국방부의 입장과 일치한다. 다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것은 북한 땅이 맞는다면 왜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소속으로 주소가 등록되어 있는지 그 내막이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입을 모았다. 군의 설명대로 함박도가 1953년 정전협정 당시 그어진 NLL 이북의 북한 땅이라면, 왜 정부는 이 섬을 지금까지 대한민국 주소로 등록하는 ‘착오’를 일으켰을까. 정부의 단순한 주소 등록 착오가 맞는다면 2018년의 무인도서 관리유형 지형고시와 국가지정문화재구역 설정, 공시지가 공개 등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국토부와 해수부 관계자는 함박도의 주소가 언제부터 대한민국으로 등록되어 있었냐는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함박도는 1965년 인근 주민 100여명이 이 섬 갯벌에서 조개잡이를 하다가 강제 납북되는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1965년 11월 20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말도와 주문도 등 함박도 인근 어민과 선원 등 112명이 ‘북괴’에 의해 피랍되었다고 돼 있다. 이 중 104명이 피랍 22일 만에 판문점을 통해 송환되었다. 서해 5도 지역 주민들에게도 함박도는 미스터리다. 조현근 서해 5도 평화수역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함박도 앞바다는 수심이 3m밖에 되지 않아 썰물 때는 갯벌로 인근 유인섬과 바로 연결이 되는 중요한 섬”이라며 “여기가 NLL 이북의 북한 땅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조 위원장은 또 “평소 함박도 인근 바다에는 중국 어선들이 ‘전진 기지’ 삼아 몰려 있다”고 했다.

키워드

#단독
곽승한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