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5월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를 정식 진단명으로 인정했다. 국제질병분류체계(ICD-11) 개정판에 게임이용장애를 포함시키며 ‘6C51’이라는 코드를 부여한 것이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게임이 대중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게임이 나쁜 것인지 따져보는 언론 보도가 줄을 이었고, ‘프로게이머들은 중독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곳도 많았다. ‘게임중독의 질병코드 도입을 반대한다’는 게임업계의 성명도 잇따라 발표됐다.

우선은 세계보건기구의 발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경민 서울대 인지과학협동과정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종종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공인되었다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계보건기구의 발표가 의미하는 것은 그게 아닙니다. 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 있고 그 사람들에게 표준화된 절차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 편의상 질병코드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효과적인 환자 관리를 위해서 질병코드를 부여하는 것이지, 그게 알코올중독이나 마약중독처럼 새로운 질병이라고 인정한 것이 아닙니다.”

‘게임중독’이라는 단어 자체에도 이미 편파적인 시선이 들어가 있다. 대신 이경민 교수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단어, ‘게임과용(過用)’이라는 단어를 쓰기를 권유했다.

“게임중독이라는 단어는 게임 자체에 중독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어 중독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과연 게임에 그런 요소가 있을까요? 왜 사람들이 비디오게임을 하고 심지어 일상생활을 제쳐두고 많이 하는 사람이 나오는지, 그걸 모르니 일단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문제는 게임하는 10~30대를 둔 가족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 연령대의 게임 이용률은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게 빠를 정도로 압도적으로 높다. 10대의 게임 이용률은 91.9%다. 특히 10대 남자는 94.9%가 게임을 한다. 20대 남자는 91.7%가 게임을 즐긴다.

이경민 교수는 “외국만 해도 게임이 좋은지 나쁜지 한국 사회에서처럼 토론하는 경우는 많이 없다”고 말했다. 게임 이용 인구는 많은데 게임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사회가 된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가 게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한국 사회의 게임 리터러시(game literacy)가 부족하다고 진단할 수 있다.

처음부터 얘기해보자. 왜 젊은 사람들은 게임을 하는 것일까.

유승호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교수는 게임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를 또래 집단에서 찾았다.

“게임은 또래 집단과 소통하는 방식입니다. 인간은 예전부터 특정 시기가 되면 또래 집단이 함께 어울려 즐길 수 있는 것을 발굴해왔습니다. 예전에는 만화방에 가거나 당구장에 함께 가는 식이었지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에게는 디지털 게임이 그것입니다.”

게임은 소통하는 놀이문화

실제로 김혜영 강원대 사회통합연구센터 연구원은 청소년 집단을 대상으로 심층 연구를 해봤다.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우선 청소년들은 게임을 하면서 소통했다. 게임을 하지 않는 학생은 또래 집단의 대화에 끼기 힘든 수준이었다.

“원래 축구 게임을 즐겨 하던 학생이 있었는데 친구들이 모두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을 하게 되니까,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배틀그라운드를 한다는 얘기를 했어요. 친구들과 대화를 하려고요. 낯선 집단에 가거나 진급해서 반이 바뀌거나 했을 때 게임 이야기로 말문을 틔우기 시작한다는 얘기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들은 일상에서 게임에 대한 대화를 한다. 게임을 하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하기도 한다. 게임을 하려고 ‘집결’하기 때문이다. PC방에 모이는 청소년들은 마치 만화방이나 당구장, 놀이터에서 모이는 것과 같다. 집집마다 성능 좋은 PC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굳이 PC방에 모이는 이유는 그게 친구들과 만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굳이 물리적으로 만나지 않아도 좋다. 함께하는 게임 속에서 만나더라도 친구와의 ‘교제’를 이어갈 수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0~20대는 주로 ‘친구·동료와 어울리기 위해’ PC방에서 게임을 한다. PC의 성능 때문에 PC방에 간다는 응답자는 그보다 훨씬 적았다.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면서 청소년들은 또래 집단에서 인정받고 인정하며 도움을 주고 받는 생활을 한다. 그래서 김혜영 연구원은 청소년의 게임 활동을 “관계적인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게임은 또래 집단을 진정한 의미의 집단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게임에 대한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게임 언어를 쓰면서 결속력을 강화합니다. 같은 게임을 하는 친구들끼리는 친해지겠죠. 그러니까 게임도 유행을 탑니다. 친구들이 ‘오버워치’를 할 때는 나도 오버워치를 하는 식이지요.”

이미 게임 산업은 e-스포츠라는 장르로 진화한 상태다. 기성세대가 U-20 월드컵을 보는 것처럼 청소년들은 ‘LOL 챔피언십’을 보면서 대화한다. 김혜영 연구원은 “만약 친구들이 모두 게임이 아니라 다른 놀이활동을 한다면 자신도 게임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꽤 많았다”고 말했다.

이경민 교수의 설명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인간의 발달 단계에서 게임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혼자 걷고 말하고 움직이다가 협동심을 기르고 경쟁하며 기술을 익혀내는 게임 활동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게 지금은 컴퓨터게임, 비디오게임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예전에는 자치기, 팽이치기를 했을 겁니다.”

이런 점에서 청소년이 하는 게임은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보고 접근해야 한다. 유승호 교수의 말이다.

“늘 그랬지만 기성 세대는 청년 세대의 또래 집단 문화를 낯설어하고 경계했습니다. 지금 게임에 대해 부정적으로 접근하는 기성 세대의 내면에는 게임에 대한 무지, 공포 같은 것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합니다. 잘 모르니까 아이들이 하는 게임이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거죠. 사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놀이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인데요.”

요즘은 게임을 하는 것보다 보는 것이 더 인기 있기도 하다. 게이머가 자신의 게임 활동을 실시간 중계하는 ‘트위치’ 같은 플랫폼에 가보면 수많은 청소년이 같은 게임 방송을 보면서 채팅 등으로 소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게임을 하는 것, 보는 것 모두 ‘소통’과 관련 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게임 자체의 재미 때문에 게임을 한다면 그냥 혼자서 즐길 수도 있지요. 그러나 많은 게이머들은 소통하려 합니다. 마치 함께 모여 축구나 야구 경기를 보듯이 게임 경기를 보고 소통합니다. 지금 청년 세대에게 게임은 곧 소통의 창구이기도 하죠.”

게임이 또래 집단의 놀이문화라고 하더라도 게임과용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처음에는 게임을 재미로 시작했을지 몰라도 일상생활을 제쳐두고, 일상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만큼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과용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특정한 상황과 요인이 과용 현상을 만든다고 지적한다.

부모와의 소통 부족이 게임과용으로

허은 청강문화산업대 게임콘텐츠스쿨 교수는 3년간 중학생들을 추적 조사했다. 어떤 학생이 게임을 과용하는지 알아보니 몇 가지 특징이 잡혔다. 게임을 통해 얻는 효능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성취감이다. 게임을 하면서 목적을 달성하거나 어려운 과제를 해결했을 때에 느끼는 감정이다. 그런데 게임을 과용하는 학생은 대개 성취욕구가 강했다. 허은 교수는 “왜 게임에서 성취감을 느끼는지 물어보면 실제 대인관계 불만족이나 자신이 통제하기 힘든 현실에 대한 불만 등을 게임으로 충족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고 말했다. 또 고독감을 느끼는 학생이 많았다. 고독감이란 원래 청소년기에 으레 겪는 감정이지만 심해지면 우울증이나 은둔형 외톨이 같은 병리적 상태로 나타난다.

가족관계, 즉 가족 간 갈등이나 부모와의 소통 단절이 게임과용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도 많다. 학업 스트레스, 대인관계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그렇고, 학교폭력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계속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 같은 진로 계획 여부와 게임과용 현상도 관련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굉장히 많은 연구에서 부모와의 소통이 게임 과몰입과 관련 있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저의 연구에서는 명확히 그런 결론이 나오지 않았지만, 부모·자녀와의 소통이 늘어날수록 게임 이용이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허은 교수는 이런 점에서 게임과용 현상은 게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소통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학부모를 상대로 종종 자녀의 게임 이용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와 관련해 강연을 가진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학부모들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짚어준다.

“우리가 어릴 때에는 친구와 30분, 1시간 통화하면서 전화선을 붙잡고 있느라 어머니한테 혼나곤 했었거든요. 언제나 아이들에게는 소통의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게임이 그 소통의 욕구를 해결해주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는 아이들의 게임을 ‘시간을 빼앗는 것’ ‘시끄럽고 현란한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게임에서 어떤 즐거움을 얻는지, 어떤 욕구를 충족시키는지 대화를 해야 하는 겁니다.”

오히려 게임으로 얻는 효능에 집중할 필요도 있다. 이경민 교수의 말이다.

“부모들은 게임에 대해 일단 부정적인 시선을 전제하니까 ‘게임을 한다’ 하면 ‘과용할 것이다’라고 단정지어 버릴 때가 많습니다. 유독 한국 사회가 그렇죠. 외국에서만 해도 게임을 이 정도로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게임을 통해 뇌 기능을 발달시키고 인지능력을 향상시키려는 시도를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 이번 WHO의 결정을 두고 다시금 불거진 게임에 대한 긍정·부정적인 논란은 더 이상 의학적인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게임과용 현상은 의학적인 문제라기보다 사회·문화적인 문제라는 것이 서울대병원 신경과 전문의이기도 한 이경민 교수의 설명이다.

게임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사회

지난 6월 12일, 경기도 파주의 한 초등학교. 게임문화재단에서 학부모들을 상대로 여는 게임리터러시 교육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강연자로 나선 한국스마트학회 회장 조기성 계성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들에게 스마트폰을 실행시킬 것을 권유했다.

“이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여기 코드넘버를 입력하면 게임이 시작됩니다. 영어단어를 얼마나 많이 아는지를 테스트하는 게임인데 한꺼번에 시작하기 때문에 경쟁하며 즐길 수 있는 게임이죠.”

조기성 교사의 신호에 따라 게임이 시작됐다. 금세 강연장 안이 흥분으로 달아올랐다. 실시간으로 바뀌는 순위에 게임에 참여하는 학부모는 물론 옆에서 훈수 놓는 학부모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게임이 마무리되고 강연장의 분위기가 정리되자 조기성 교사가 말을 이었다.

“이미 외국에서는 스마트교육이라고 해서 교육에 게임 요소를 적극 도입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부모님들은 게임이 그저 시끄럽고 폭력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게임은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온라인 게임은 대부분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 협동심도 길러주고요. 학부모님들이 게임 말고 다른 곳에서 키우려는 능력이 사실은 게임에 다 들어가 있는 겁니다.”

그는 학부모들이 자녀의 게임 활동 자체를 막는 것을 단호하게 비판했다. ‘게임이용자 실태조사’를 보면 취학 자녀가 있는 학부모의 절반이 넘는 수가 자녀의 게임 이용을 제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게임하는 자녀는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되는 시대적인 흐름 같은 겁니다. 대신 우리는 게임을 함께 할 수 있겠지요. 학습에도 얼마든지 게임을 활용할 수 있고, 가족과의 대화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승호 강원대 교수는 단 한 마디 말이 변화시킨 가족의 사례를 들었다.

“부모가 게임에 대해 완전히 다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놀랄 만한 일이지만 게임의 내러티브는 이미 매우 복잡하고 기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걸 다 이해하려고 하는 것보다 인터넷 밈(meme·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글·그림) 하나만 알아도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요즘 페이커라는 애가 그렇게 유명하던데?’라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아빠가 페이커를 어떻게 알아?’라며 대화를 시작할 겁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게임에 대해 매우 좁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문화 콘텐츠 산업을 이끄는 산업 역군으로 간주되다가, 어떨 때는 청소년과 청년 세대를 타락시키는 주범으로 취급됐다. 게임이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콘텐츠를 담고 있는지 역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게임을 수치로 환산되는 경제 규모 같은 결과물로만 접근했다. 그러나 게임은 더 이상 사회·문화적으로도 별개의 장르가 아니다.

게임을 하듯이 고객에게 특정한 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보상을 주는 기업부터 뇌 인지기능 회복에 스마트폰 게임을 이용하는 병원까지, 이제 현대 사회에는 게임의 내러티브와 작동 방식이 구석구석 깊이 배어 있다.

“사회학에는 의료화(medicalization)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사회적인 문제를 의료적인 관점에서 진단하는 것이죠. 그런데 게임에 한해서는 과잉의료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게임과용도 의료적인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가정과 학교·사회의 심리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이경민 교수는 기성세대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게임을 단지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아닌지 점검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신 게임을 이해하고 게임에 대해 소통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될수록 게임으로 인해 발전하는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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