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항공일본’. 중국 최대 저가항공사(LCC) 춘추항공이 일본 현지에서 운영하는 항공사다. ⓒphoto 구글
‘춘추항공일본’. 중국 최대 저가항공사(LCC) 춘추항공이 일본 현지에서 운영하는 항공사다. ⓒphoto 구글

문재인 대통령의 사위 서모씨가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진 태국의 ‘타이이스타제트’는 한국 항공기업의 첫 해외 진출 사례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인 이스타항공의 태국 현지 총판은 지난해 현지 기업인 타이캐피털과 합작으로 태국 수도 방콕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현재 태국 항공당국으로부터 현지 노선 취항에 필요한 항공운송허가(AOC)를 얻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하고 현재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으로 있는 이상직 전 민주당 의원이 설립한 이스타항공은 문재인 정부 들어 연거푸 ‘북한행 전세기’를 띄워 유명해졌다. 타이이스타제트가 태국 정부로부터 운항허가를 취득하면 국내 항공사가 처음으로 외국 현지 거점 비행기를 띄우는 사례가 된다. 이스타항공의 한 관계자는 “엄밀히 말해 태국 현지 총판이 태국 기업과 합작해 진행하고 아직 한국에서 투자가 들어간 것은 아니다”며 “현지 총판이라서 상표 사용은 허가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진행 상황은 잘 모른다”고 말을 아꼈다.

이스타항공이 태국을 거점으로 해외 진출에 나선 것은 국내 항공업계의 상황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국내 LCC 업계에서는 제주항공을 비롯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대기업 계열의 진에어(대한항공), 에어부산(아시아나항공), 에어서울(아시아나항공) 등 무려 6개 LCC가 한정된 시장을 놓고 경쟁을 벌여왔다. 여기에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플라이강원, 에어프레미아, 에어로케이 등 3개 LCC에 신규 면허를 발급했다.

대형항공사(FSC)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2개사를 비롯해 LCC 9개사 등 무려 11개 항공사가 좁은 하늘에서 아웅다웅 공중전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결국 좁은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를 거점으로 항공기를 운항하는 것은 LCC로서는 생존을 위한 방편이다.

국내 LCC의 새로운 탈출구로 떠오른 곳이 바로 태국이다. 대개 항공면허는 대부분 국가에서 국가기간산업 보호 차원에서 자국 업체들에만 내준다. 반면 태국은 외국과 합작 항공사에 대해서도 국내선 시장을 내줄 정도로 전면 개방을 허용한다. 말레이시아의 에어아시아를 비롯해 라이언에어(인도네시아), 비엣젯(베트남) 등 동남아 유명 LCC들은 모두 태국 현지에 태국 기업과 합작으로 현지 항공사를 세웠다. 에어아시아가 세운 ‘타이에어아시아’, 라이언에어의 ‘타이라이언에어’, 비엣젯의 ‘타이비엣젯’ 등이다.

이 밖에 싱가포르의 스쿠트항공(옛 타이거항공) 역시 태국 최대 항공사인 타이항공(타이에어웨이즈)의 저가항공 계열사인 ‘녹에어(Nok Air)’와 함께 ‘녹스쿠트’라는 합작법인을 설립해 방콕을 거점으로 국제선에 취항 중이다.

항공산업 문호를 외국 항공사에도 폭넓게 개방하는 것은 이제 트렌드가 되고 있다. ‘항공주권’ 포기 논란도 있지만, 저가 합작 항공사들이 대거 취항하는 것은 관광산업을 이끄는 주된 원동력이 된다. 일례로, 지난해 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모두 3827만명으로, 한국(1534만명)의 2배가 넘었다. 인천·부산·제주~방콕 노선을 운영 중인 이스타항공 역시 이러한 관광시장을 겨냥하고 있는 셈이다.

태국 외에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외국과 합작항공사에 문호를 개방 중이다. 일본항공(JAL)과 전일본공수(ANA) 같은 강력한 자국 항공사를 거느린 일본도 자국 항공시장을 외국 항공사에 개방하고 있다. 중국 최대 저가항공사인 춘추항공은 2014년부터 ‘춘추항공일본(스프링재팬)’이란 현지 법인을 세우고 일본 국내선에 취항하고 있다. 도쿄 나리타(成田)공항을 거점으로 중국 우한, 충칭, 톈진, 하얼빈, 닝보 노선을 운항할 뿐만 아니라, 나리타~삿포로, 히로시마, 사가 같은 일본 국내선에도 취항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 등도 문호 개방

지분상으로는 소수 지분을 쥔 춘추항공과 다수 지분을 가진 일본 업체가 합작하는 구조지만 사실상 춘추항공이 운영권을 행사한다. 중국항공사가 일본 국적 항공사와 동등한 자격으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에어아시아가 일본에 세운 에어아시아재팬 역시 나고야 주부(中部)공항을 거점으로 나고야~삿포로 등 국내선에 취항 중이다. 지난해 3119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일본을 방문한 데는 이들 합작 항공사가 단단히 한몫을 했다.

한국의 경우 여전히 ‘항공주권’을 명분으로 외국 항공사의 국내시장 진입에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항공안전법 제10조는 외국 정부 또는 공공단체, 법인이 주식이나 지분의 2분의 1 이상을 소유하거나 그 사업을 사실상 지배하는 경우 아예 항공기 등록을 못 하도록 못 박고 있다. ‘그 사업을 사실상 지배하는 경우’라는 모호한 규정으로 아예 외국 항공사의 국내 시장 진입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셈이다.

지난 2008년 싱가포르 저가항공사인 타이거항공(현 스쿠트항공)이 인천광역시와 합작으로 ‘인천타이거항공’을 설립해 항공시장에 진출하려 했으나 외국인 규정에 가로막혀 무산됐다. 아시아 최대 저가항공사인 에어아시아 역시 지난 2013년 ‘에어아시아코리아’를 설립해 한국을 거점으로 국제선에 취항하려 했으나 역시 국토부의 벽에 막혀 국내 진출이 불발됐다.

말레이시아 외에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 일본에서 현지 법인을 운영 중인 에어아시아의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은 지난해 방한해 국내 언론과 만나 “한국은 누가 봐도 외항사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이는 결국 한국에 손해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은 한국 여성과 결혼한 친한파이기도 하다.

심지어 대한항공 계열의 LCC 진에어는 100% 한국 회사지만 미국 국적을 가진 조현민 전 부사장(현 한진칼 전무)이 과거 6년(2010~2016) 동안 등기이사로 등재돼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신규 노선권 배분에서 원천배제되는 등 지금까지도 상당한 불이익을 겪고 있다.

항공 관련법상 까다로운 외국인 소유 조항은 아시아나항공 매각에서도 발목을 잡고 있다. 까다로운 외국인 관련 규정 탓에 사실상 국내 기업으로만 인수자가 제한되는데, 선뜻 매수희망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정상화를 위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서 약 1조6000억원을 지원하면서 사실상 국영항공사가 된 상태다.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국민 부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외국 기업 참여가 사실상 제한되면서 현재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향을 내비친 곳은 제주항공의 모기업인 애경그룹 정도가 유일하다. 상당한 노선권을 가진 국내 2위 대형항공사(FSC)임에도 제값을 받고 팔릴 가능성은 거의 없는 셈이다.

글로벌 LCC들의 국내 항공시장 참여가 원천봉쇄되면서 LCC를 표방한 항공사는 급증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LCC는 안 보인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내 LCC들은 파격적 운임으로 승부하기보다는 오히려 소비자에게 비용이 전가되는 고급화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지난해 에어부산이 LCC 최초로 부산 김해공항에 전용라운지를 개설한 데 이어, 제주항공도 지난 6월 인천공항에 전용라운지인 ‘JJ라운지’를 열었다. 라운지 운영만 해도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데 파격적인 가격의 항공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국항공대 허희영 교수는 “한국은 국내선 시장이 작아서 외국 항공사들이 들어오기는 힘들 것”이라며 “오히려 국내 LCC들이 항공시장이 개방된 태국 같은 아세안시장에 더 적극적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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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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