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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65호] 2019.07.08

최선희·리용호 독배를 받아들었나

▲ 지난 6월 30일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동에 모습을 나타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오른쪽)과 리용호 외무상. photo 뉴시스
“시대는 달라지고 우리나라의 지위도 달라졌습니다.” 싱가포르 회담 1주년이던 지난 6월 12일 김정은이 내뱉은 일성(一聲)이다. 노동신문 1면에 실렸다. 영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올해 들어 김정은은 잇따라 세계 정상들과 만났다. 2월엔 베트남 하노이에서 트럼프를 만났고 4월엔 푸틴, 6월엔 시진핑을 만났다. 열 발자국 남짓이었지만 트럼프를 북한 땅으로 불러들이는 글로벌 이벤트로 상반기의 마지막 날을 장식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지위도 달라졌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사실상 핵보유국을 같은 반도에 이고 사는 나라로 말이다. 벌써부터 미국 정계엔 ‘핵동결’이란 말이 돌고 있다. 폐기가 아닌 동결이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Axios)’는 지난 7월 2일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발언을 소개했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동결하면 인도적 지원과 연락사무소 개설을 할 수 있다.” 서울에서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오프더레코드(비보도 전제)로 한 말이었다. 북핵 폐기가 최종 목표라는 발언도 했지만 ‘동결’의 충격에 가려진 모양새다.
   
   북한은 진짜 핵동결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까. 판문점 이벤트 이후 미국과의 4차 정상협상에 임하는 북한 외교라인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북한 협상팀의 변화는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확고히 전면에 나선 최선희-리용호의 활약이다. 최선희는 어떤 인물인가. 외무성 제1부상, 한국으로 치면 제1차관을 맡고 있다. 말이 차관이지 실질적으론 김정은의 외교보좌관으로 역할 중이다. 북한에서 1부상은 상(相) 아래에 있지만 상보다 더 많은 실권을 지닌 자리다. 상은 외부 행사와 회의에 참석하느라 자리를 비울 때가 많다. 1부상은 사무실에 대기하면서 김정은의 질의와 지시에 즉시 응한다. 휴일도 없다고 한다. 강석주와 김계관이 오랫동안 역임한 게 바로 제1부상이다.
   
   최선희는 지난 4월 김정은이 러시아를 찾았을 때 김정은과 나란히 자동차 뒷좌석에 앉은 모습이 포착됐다. 리용호 외무상은 조수석이었다. 지난 2월 하노이회담 당시 호텔에서 김정은이 정상회담 준비를 할 때도 김정은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모습이 공개됐다.
   
   최선희는 1964년생으로, 잘 알려졌듯 김일성의 최측근이었던 최영림의 양녀다. 최영림은 부인과의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아 아이들을 입양해 키웠다고 한다. 최선희의 친부모는 해외공작원이었는데 비공개 임무를 수행하다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최영림은 6·25전쟁 때 김일성의 경호연대 대원이었다가 정권 수립 후엔 10년 남짓 김일성의 책임부관을 맡았다. 비서실장이었던 셈이다. 그 후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서기장, 평양시 당위원회 책임비서 등을 맡은 뒤 내각총리에 올랐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지근거리에 머무른 만큼 김씨 일가와도 잘 알았다.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는 그를 ‘부관 삼촌’이라 불렀고, 김정일의 맏딸 김설송은 ‘부관 할아버지’로 불렀다고 한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최선희는 김일성의 비서였던 아버지가 집으로 가져온 자료들을 어릴 때부터 보면서 자랐다. 평범한 아이들은 접할 수 없는 자료들이었다”고 말했다.
   
   
   6자회담 참석 최선희 “통역 이상의 통역”
   
   최선희의 친오빠 최철수는 내각 산하 중앙통계국 국장을 맡고 있다. 우리로 치면 통계청장이다. 통계를 보면 그 나라의 과거, 현재, 미래가 보인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이를 책임자로 앉히는 이유다.
   
   최선희는 1976년 소년 유학생에 선발됐다. 태영호 전 공사도 이때 함께 뽑혀 중국 베이징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귀국 후엔 평양외국어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 바로 외무성에 들어갔다고 한다.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하고 특히 영어는 구사력이 뛰어나다. 태 전 공사처럼 영국식 영어를 구사한다. “깜짝골이 좋다.” 최선희에 대해 묻자 한 외교관 출신 탈북자가 한 말이다. 센스가 있고, 순발력이 강하다는 의미의 북한 말이다. 상황 변화에 맞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판단력이 빠르단 얘기다. 김정은이 푸틴을 만나러 가는 자동차에서까지 왜 옆자리에 최선희를 앉혔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게다가 최선희에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경력이 있다. 바로 ‘6자회담’이다. 당시 회담 주역이었던 김계관 옆에서 통역을 맡아 참여했다. 역사는 인간사의 판례집이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된 6자회담 회의록은 북핵에 5개국(한국·미국·일본·중국·러시아)이 어떤 패를 어떻게 구사했는지, 북한은 이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고스란히 알려주는 북핵 교과서다. 최선희는 이걸 현장에서 집중학습했단 얘기다.
   
   태영호 전 공사에게 북한 외무성에서 가장 껄끄럽게 여긴, 즉 가장 다루기 힘들었던 한국 외교관이 누구였는지 물은 적이 있다. 태 전 공사는 단숨에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을 들었다. 6자회담 수석대표였던 송 전 장관을 북한 외무성에선 가장 대하기 힘든 상대로 여겼다고 한다. 송 전 장관은 최선희에 대해 “통역 이상의 통역이었다”고 표현했다. 당시 6자회담을 취재한 기자들도 최선희의 통역을 인상 깊게 봤다. 기자들과 맞닥뜨린 김계관이 아무리 길게 얘기해도 최선희는 그 자리에서 내용 하나 빠뜨리지 않고 영어로 옮겼다고 한다. 협상이 돌아가는 판세가 머릿속에 모두 들어있었단 얘기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좋은 통역이었겠지만 최선희는 그런 종류의 통역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외교전은 말로 하는 전쟁이다. 단어 하나를 두고 며칠을 줄다리기한다. 6자회담 협상에서 최선희는 김계관의 말을 다듬어서 영어로 옮겼다고 한다. 좀 과장하면 최선희는 이때부터 핵 협상을 실전연습해 본 셈이다.
   
   
▲ 클린턴 미 전 대통령은 억류된 미국인 기자 유나 리와 로라 링을 구하기 위해 2009년 10월 4일 평양으로 들어갔다. 당시 통역을 맡은 이가 바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왼쪽 첫 번째)이다. photo 뉴시스

   1차 핵위기 때 경수로 요구한 전략가 리용호
   
   최선희와 함께 새로운 협상팀 주역이 된 리용호 외무상도 만만치 않은 인물이다. 한마디로 ‘핵 문제에 정통한 외교관’이다. 태 전 공사의 책 ‘3층 서기실의 암호’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리용호는 1990년 미국의 군축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에 참가해 6개월 동안 다양한 싱크탱크들을 돌아보았다. 리용호는 남들보다 빨리 핵 위기를 예상하고 미국 학자들이 쓴 핵 협상 관련 책을 밤을 밝혀가며 모두 읽었다. 얼마 후 1차 북핵 위기가 터졌다. 그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와 준전시 상태를 선언하여 전쟁 임박 상황으로 몰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4년 제네바회담 당시 핵 개발 중지에 대한 대가로 경수로를 요구한 것도 리용호가 제안한 전략이었다. 낚시와 위스키를 좋아하고 외무성 안에서 신망이 두텁다고 한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북한으로선 외무성의 진용을 오롯이 대미 핵 협상에 집중해 꾸린 셈이다. 과연 최선희-리용호조는 지금까지와는 차별되는 북한 외교를 보여줄까. 크리스토퍼 힐 전 차관보의 생각은 좀 다르다. 송 전 장관의 평가를 빌리면 힐 전 차관보는 미국 외교계에서 드물게 일본 중심이 아닌 한국의 입장에서 한반도 문제를 바라본 협상가다. 2004년부터 1년간 주한 미국대사를 역임했다. 이듬해부터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를 맡았다. 그는 지난 7월 2일 언론에 이런 얘길 했다. “비핵화 협상에서 누가 북한 협상단 대표를 맡든 가장 중요한 북한 측 멤버는 회의 기록관이다. 정확히 적어서 김정은에게 전달하도록 미국 협상단은 말을 천천히 또박또박 하면 좋겠다.” 오랜 기간 북과 협상을 해본 이의 짙은 냉소다.
   
   두 번째로 주목할 점은 북·일 관계 개선 여부다. 지금 김정은에게 급한 건 돈이다. 제재가 길어지며 돈줄이 막혔다. 지난해에도 대중 무역에서 2억달러를 벌었을 뿐이다. 올해 들어 러시아에서 밀가루 1만t을 지원해줬다지만 필요한 건 외화다. 톱다운 방식으로 트럼프와 관계를 개선해도 제재 해제나 지원은 미국 의회를 통해야 한다는 걸 북한은 지난 세월 학습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에 한때 희망을 걸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능력 밖 사안이라는 걸 알고는 ‘오지랖 부리지 말고 네 집안이나 돌보라’며 욕을 퍼붓고 중단한 상황이다. 현 상황에서 북에 곧바로 돈을 줄 수 있는 상대는 전 세계 국가 중 일본밖에 없다. 바로 전쟁 배상금이다. 북한의 대일 청구권은 아직 살아 있다.
   
   실제 일본은 아시아 국가에 차례로 배상금을 지불했다. 1954년엔 미얀마에 2억달러, 1956년엔 필리핀에 5억5000만달러를 냈다. 남한은 1965년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며 5억달러를 받았다. 중국은 현금 대신 인프라 건설로 받았다.
   
   지난해 삼성증권 리서치센터는 북한이 대일 청구권을 행사해 약 200억달러를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북한 측 요구는 400억달러다. 2002년 고이즈미 총리 방북 당시 요구한 금액이라고 일본 언론이 보도한 적이 있다. 당시 김정일과 고이즈미 총리가 평화선언을 한 배경엔 배상금이 있었고 일단 114억달러를 전후 보상으로 지급하겠다는 밀약이 있었단 얘기가 나왔다.
   
   
   김정은의 관심은 대일 청구권
   
   북한도 김정은-아베 회동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지난 6월 2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일본 고노 외무상을 비난했다. 5월 25일 고노 외무상이 한 강연에서 “(북한이) 올바른 판단을 하면 제재가 풀려 외국 자본이 들어갈 것”이라며 “구멍이 있으면 제재는 듣지 않는다. 3개의 구멍(환적·해외노동자·해킹)을 막아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결단을 재촉하겠다”고 한 걸 문제로 거론했다. 아태평화위 대변인은 “마치 저들이 우리의 생살여탈권이라도 쥐고 있는 것처럼 요망을 떨었다. ‘올바른 판단’과 ‘결단’은 우리가 일본에 대고 할 말”이라고 했다. 고노 외무상을 두고는 “족제비상에 내뱉는 소리마다 천박하고 아니꼬운 저질 인간”이라고 하면서도 아베를 비난하진 않았다.
   
   세 번째 주목할 점은 북한이 외교를 내부 결속에 어떻게 이용할지 하는 점이다. 북한은 핵 폐기의 대가로 늘 ‘체제 안전’을 요구한다. 외부로부터의 안전 외에도 내부로부터의 안전도 포함하는 의미다. 그만큼 취약한 정권이란 뜻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북한은 주민들에게 제한된 정보만 제공하는 식으로 내부 붕괴를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 이번 친서 교환에서도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먼저 편지를 쓴 건 숨기고 트럼프가 먼저 김정은에게 만남을 청한 듯이 내부에 선전했다. 판문점 이벤트 당시 두 사람의 동선을 가만히 보면 북한식 연출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혼자 먼저 판문점 내 분계선에 도착해서 손을 모으고 기다리자 김정은이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다가가는 식으로 만남이 이뤄졌다. 김정은은 이 장면을 위해 걷는 속도도 조절했을 것이다.
   
   요즘 노동신문은 ‘개방은 인민에게 좋지 않다’는 주제의 기사를 연일 싣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6월 27일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를 했다. 여기서 그는 짤막하게 “소비에트연방 붕괴 당시 국민의 70% 이상이 소련 유지에 찬성했다”는 언급을 했는데 노동신문 7월 3일자는 이 대목만 꼭 집어 ‘로씨야 대통령 쏘련의 붕괴는 비극이라고 주장’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최선희와 리용호는 앞으로 북한판 트루먼쇼의 러닝타임을 늘리는 데 어떻게 기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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