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7일 자사고 재지정에 탈락한 전북 상산고 학부모들이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photo 뉴시스
지난 7월 17일 자사고 재지정에 탈락한 전북 상산고 학부모들이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photo 뉴시스

“대치동은 자사고, 특목고가 생기든 없어지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요. 학생과 학부모의 목표는 고등학교가 아니라 대학이니까요. 교육정책은 매번 자주 바뀝니다. 저희는 입시제도가 바뀌면 학생과 학부모들의 니즈(요구)에 맞게 세팅을 할 뿐이죠.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이 처음 생길 때 정말 많은 혼란과 우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교육에서는 결국 방법을 찾아냈죠. 그 결과 지금은 내신 시장이 엄청 커졌어요. 사교육에서는 입시제도가 바뀌면 거기에 적응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냅니다. 대학에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니라면 어차피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지난 7월 17일 기자가 접촉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대형학원 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최근 자사고·특목고의 일반고 전환 추세에 대해 “대학이 건재하다면 사교육은 건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같은 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의 전면 폐지를 공식 제안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조 교육감이 제안한 방식은 기존의 ‘교육청 평가 후 지정 취소’ 방식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자사고와 특목고를 ‘일괄 폐지’하자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사고의 법적 근거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 조 교육감은 “법령 개정이 어려우면 자사고·외고 폐지 여부를 묻는 대국민 공론화를 진행하자”고도 제안했다.

대부분의 사회 현안에서처럼 교육계에서도 여러 현안을 두고 진보와 보수 양측의 의견이 나뉜다. 보수 쪽에서는 교원총연합회(교총) 등의 교원단체,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등의 시민단체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면 진보 쪽에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의 교직원 노동조합,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 등의 시민단체들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교육계에서 진보로 분류되는 이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을 지낸 이현 우리교육연구소장은 지난해 주간조선 인터뷰에서 “교육에 있어서는 진보와 보수가 바뀌었다”면서 “자신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는 헛진보들이 많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교육계에서는 보수보다 진보가 강세를 보여왔다. 보수 정부로 분류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전국의 교육감은 보수보다 진보 성향 교육감이 많았다. 지난해 치러진 교육감 선거에서는 전국 17곳 중 14곳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당선됐다. 전문가들은 보수 성향의 후보들이 내세우는 ‘수월성 교육’보다 진보 성향의 후보들이 내세우는 ‘형평성 교육’이 더 많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진보교육계는 공교육 강화와 사교육 축소를 주장한다. 이 중 한 축에는 전교조가 있다. 전교조는 꾸준히 수시 확대와 정시 축소를 주장해왔다. 수능 한 번으로 대학입시를 결정하면 학교가 입시를 위한 학원으로 변질되고 공교육이 무너진다는 설명이다.

진보교육에서 다른 한 축을 담당하는 시민단체가 ‘사걱세’다. 회원수 5만명 정도인 이 단체는 이름처럼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을 강화하는 것을 추구한다. 교육 전반의 현안에 입장문을 내고 활발히 활동하면서 여론 형성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 단체 역시 전교조와 비슷하게 수시 확대와 정시 축소, 자사고, 특목고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북의 대표적인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인 상산고가 전북교육청으로부터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한 뒤 이 단체는 ‘상산고는 수능시험을 위한 시험 준비기관이었다’는 취지의 상산고 졸업생의 글을 가명으로 여러 언론 매체에 보내기도 했다. 이후 다른 상산고 졸업생들은 조선일보,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각각 글을 보내 반박하기도 했다.

지난 7월 17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서울시교육청에서 일반고 전환 자사고에 대한 동반성장 지원 방안을 포함한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7월 17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서울시교육청에서 일반고 전환 자사고에 대한 동반성장 지원 방안을 포함한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문재인 정부와 진보교육계 목소리 다른 이유

전국 교육청의 자사고·특목고 폐지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일각에서는 “자사고, 특목고를 폐지하면 과거의 ‘강남 8학군’이 부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전북교육청이 상산고를 재지정에서 탈락시킨 일이 전국적으로 크게 보도되면서 실제 대치동 아파트 호가가 이전에 비해 상승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이를 의식한 교육부는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과도한 우려”라며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차단하기도 했다. 김성근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은 지난 7월 15일 브리핑을 통해 “수시나 학종과 같은 다양한 대입 방식과 고교 내신의 상대평가 기조 속에서 학생들이 강남 8학군으로 전입해야 할 유인 요소가 많이 줄었다”며 “교육부는 강남 집값이 오를 거라거나 풍선 효과가 클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시 선발 비중이 높아 강남 8학군이 부활할 우려가 없다”는 교육부의 해명과 달리 문재인 정부는 현재 정시 선발 학생 비율을 높이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전국의 사립대에 재정 압박을 가하고 있다. 연세대를 첫 종합감사 대상으로, 전국 대학에 2021년까지 감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설립 이후 현재까지 한 번도 종합감사를 받지 않은 대학이 111개에 달한다. 교육부가 전국 사립대에 지원하는 금액은 한 해 7조원 규모다.

교육계에서는 교육부의 이 같은 움직임이 “정시 선발인원을 확대하라”는 정부 압박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의 정시 전형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라고 권고했다. 여기에 고려대 등 주요 사립대는 “대학의 신입생 선발 자율을 훼손한다”며 반발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정시 비중을 왜 다시 높이려고 하는 것일까. 이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지나치게 다양해 입시컨설팅이나 사교육 업체의 도움 없이 학생·학부모들이 파악하기에 복잡하고 선발 과정이 수능을 통한 선발에 비해 투명하지 못해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학종은 개인의 재능과 특기를 고려해 다양성을 살릴 수 있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대학별로 평가 기준이 천차만별인 데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파악하기 어려워 입시컨설팅이나 사교육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매우 불리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학종에 대한 국민 여론이 급격히 악화하는 데는 2017년 5월 EBS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대학입시의 진실’이 큰 역할을 했다. 40년의 입시제도를 분석하고 3만8000명을 조사한 이 다큐멘터리는 대학교수-입시학원 간 뒷거래, 학생부 1등급 몰아주기 등 수많은 입시 비리를 폭로해 국민적인 관심을 받았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치러진 대선을 통해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국민신문고 ‘광화문 1번가’에는 대입제도 개편이 국민 최다 참여 이슈로 등록되기도 했다. 특히 올해 초에는 유명 드라마 ‘SKY캐슬’이 방송되고 서울 숙명여고에서 시험지가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학종과 수시에 대한 국민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학종을 비롯한 수시 강화는 진보교육계에서도 찬성해온 정책이지만 실제로는 보수 정부에서도 적극 도입해온 정책이다. 실제로 진학사에 따르면 수시로 선발하는 학생 비율은 2002년 28.8%에서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51.5%까지 상승해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수시와 입학사정관제(학종의 전신), 학종을 도입하면서 수시 선발 비율은 꾸준히 상승해 올해는 80%에 육박하게 됐다. 박대권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수시와 학종은 진보보다 보수가 선호할 수 있는 입시정책”이라며 “공정성보다도 대학의 신입생 선발 자유에 초점을 더욱 맞춘 정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수시·정시 학생 선발 비율

현재 교육계가 직면한 핵심적인 문제는 대학입시에서 수능(정시)과 학종(수시)으로 각각 얼마큼씩 학생을 뽑을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2010년 57.9%였던 전국 대학의 수시 선발 평균 비중은 2019년 76.2%로 증가했고, 정시 선발 비중은 2010년 42.1%에서 2019년 23.8%로 감소했다.<표 참조> 이처럼 수시로 뽑는 학생 비중이 단기간에 급격히 늘어난 것은 학업성적만이 아니라 다양한 전형자료를 심사해 학생의 잠재력과 소질을 평가할 수 있다는 도입 취지가 여러 대학으로부터 공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시로 입학한 학생보다 수시로 입학한 학생이 대학 입학 뒤 학업성취도가 더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힘을 보탰다.

하지만 대입제도 개편이 난제라는 것은 2017년 교육부의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때도 증명됐다. 김상곤 당시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는 2022년 대입제도 개편을 당시 사회갈등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활용되던 공론조사에 맡겼지만, 20억원가량의 예산을 쓰고도 뚜렷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해 사실상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공론화 기구인 국가교육회의 대입 개편 특위와 공론화위원회는 수십 차례의 공청회와 토론회, 전문가협의회를 열고 시민 의견을 수렴했지만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두 개편안이 오차범위 내 1·2위로 나왔다. 당시 1위를 차지한 안은 수능을 상대평가로 유지하되 수능 위주 전형(정시)을 45% 이상으로 확대하는 안이었고, 2위를 차지한 안은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꾸되 전형 간 비율은 대학 자율에 맡기는 안이었다.

상반된 내용에 찬성 비율도 오차범위 이내로 집계되면서 공론화는 사실상 무산됐다. 공론조사가 실패하고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다음 개각 때 가장 먼저 유은혜 사회부총리로 교체됐다. 이후 김 장관이 취임 초기부터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수능 절대평가’ 역시 영어만 2018년도 수능 때부터 절대평가로 전환됐고, 나머지 과목은 상대평가로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에서 앞으로 대학 신입생 선발 방식은 어떻게 바뀔까. 일단 수능 위주 전형 선발 비율이 다시 늘어나는 추세인 것은 명확하다. 정시 선발 비중은 올해 20% 초반대까지 내려갔지만 교육부는 2021년까지 평균 정시 선발 비중을 30%까지 높일 예정이다. 박대권 교수는 “학생이 배우고 교사가 가르치는 순수한 교육의 행위에는 수시가 맞을 수 있지만 수십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 행위인 입시는 정책이 지녀야 할 특성을 가져야 한다”며 “공정성, 객관성, 지속성 등의 특성을 수시가 정시에 비해 담아내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세는 수시 선발이다. 수능 위주 전형이 30%까지 높아진다고 해도 두 배가 넘는 60% 이상의 학생은 대학이 여전히 수시로 선발하기 때문이다. 수시 전형 중에서도 주요 대학들이 내신성적으로만 선발하는 학생부교과전형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학종이 대세인 것은 명확하다.

‘공영형 사립대’도 의견 엇갈려

최근 자사고·특목고 폐지 논란을 바라보는 대치동의 시각에서 볼 수 있듯, 진보교육계가 해결 과제로 삼고 있는 근본 문제는 대학의 서열화다. 전국 국립대와 서울 주요 사립대부터 시작되는 대학의 서열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중·고교 평준화 정책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진보교육계에서는 이전부터 복잡한 한국 교육의 난맥상을 풀 수 있는 최종 목표로 대학의 서열화를 겨냥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대학의 서열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영형 사립대’ 사업을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 역시 문재인 정부의 실제 정책 시행 방향과 진보교육계의 목소리가 일치하지 않는 사례다. 진보교육계에서는 공영형 사립대 도입에 대해 “고등교육의 공공성과 경쟁력을 함께 키우기 위한 대안”이라며 적극 찬성해왔다. 정부책임형 사립대라고도 불리는 공영형 사립대학은 사립대학 예산의 50% 이상을 국가재정으로 교부하는 대학이다. 정부가 발전가능성이 높은 사립대에 재정과 운영을 지원해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공공성을 높인다는 게 시행 취지다. 조선대, 상지대 등이 첫 전환 대상으로 꼽힌다.

하지만 막상 공영형 사립대 사업은 기획재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기획·연구에도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교육부가 관련 예산을 요구했지만 기재부가 0원으로 전액 삭감했다. 올해는 10억원으로 편성된 기획연구 관련 예산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기재부에 의해 ‘수시 배정’ 사업으로 지정되면서 0.5%인 5000만원만이 교육부에 배정됐다.

전국 모든 사립대에 정부가 절반 이상의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여기에 사립대 운영 비리도 속속 터져나오면서 세금을 적극 투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 기준 국내 전체 대학 중 사립대학 비율은 86.5%에 달한다.

공영형 사립대를 두고는 진보교육계에서도 목소리가 엇갈린다. 민주정책연구원에서 부원장을 맡았던 이범 교육평론가는 “공영형 사립대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며 다른 대안을 내놓는다. 그가 내놓은 것은 교수 1인당 1억원 정도의 비율로 재정지원을 하고 주요 국공립·사립대를 묶어 학생들을 공동으로 입학을 시키는 ‘대학 공동입학제’다. 이 평론가는 “조금 있으면 문 닫을 것 같은 대학에 국민 세금을 써서 국공립대화한다는 공영형 사립대는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라며 “사학의 기득권을 인정해주면서도 학부 교육의 하한선을 만든다면 인기 대학을 가기 위한 경쟁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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