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10시 부산 완월동 한 골목. 속칭 ‘이모’로 불리는 성매매 알선 여성들이 각 업소 앞을 서성이고 있다.
저녁 10시 부산 완월동 한 골목. 속칭 ‘이모’로 불리는 성매매 알선 여성들이 각 업소 앞을 서성이고 있다.

‘부산 완월동’. 1982년 법적 행정구역명이 충무동으로 바뀌면서 지도상에선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지명이다. 하지만 부산 주민들 사이에선 한반도 최초 성매매집결지로 아직까지 기억되고 있다. 완월동은 부산역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로 부산항 남항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지난 7월 15일 저녁 9시 “완월동으로 가달라”는 말에 부산역에 대기하던 택시기사 김모씨도 곧바로 시동을 걸었다.

월요일 저녁 완월동은 생각보다 한적했다. 가게를 기웃거리는 남성보다 길거리에서 호객하는 여성이 더 많았다. 빨간색 조명은 띄엄띄엄 보였고 변두리엔 문을 닫은 업소가 적지 않았다. 일부 업소는 여성 한 명만이 나와 자리를 지켰다. 택시기사 김씨는 “과거와 비교해 그 규모가 줄었다. 전체의 3분의 2가 영업을 중단했다. 장사가 잘될 때는 골목 양쪽 가게들이 싹 다 불을 켠 채 손님을 맞이했다. 월요일일지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업소 유리 너머엔 여성 10여명이 한꺼번에 앉아 있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완월동에 남아 있는 업소는 40여개로 250여명의 여성이 영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 집창촌 역사를 기술한 책 ‘유곽의 역사’에 따르면, 부산 완월동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형성된 유곽(국가의 허가, 묵인을 받고 성매매 영업을 하는 업소나 집결지)이다. 1902년 부산 중구 신창동과 광복동 일대에 설치됐던 아미산하(蛾媚山下) 유곽이 1907년 지금의 완월동 자리로 옮겨왔다.

과거 완월동의 규모는 상당했다. 1910년대엔 일본인들이, 광복 이후엔 미국인 방문객들이 주를 이루며 북적거렸다. 여타 사창가와 달리 외국인 접대 성격의 손님이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1970~1980년대만 해도 124곳의 성매매 업소에서 2000명이 넘는 여성들이 일할 정도였다. 당시 완월동은 동양에서 가장 큰 사창가로 불렸다. 국내에선 외화벌이 창구로 여겨지면서 단속도 덜 받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성기 때는 부산 조폭 칠성파 건달들이 업소 2~3개를 한꺼번에 장악해 관리, 영업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완월동 일대가 최근 폐쇄 절차를 밟고 있다. 영업이 어려워지다 보니 이곳 건물주(포주)를 중심으로 재개발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수십 년간 숙식해온 여성들은 대책 없이 그대로 쫓겨날 것을 우려한다. 재개발 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여성도 적지 않았다. 일각에선 여타 지자체처럼 업소 여성들을 위한 대책 수립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재개발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속도 붙은 재개발 논의

완월동 영업이 축소되기 시작한 건 지난 2004년부터다.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되면서 단속이 강화된 여파가 컸다. 한 가구점 사장은 “옛날엔 덕성관, 대성관, 장미관 등 ‘○○관’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곳이 많았는데 지금은 이를 가리거나 영업을 아예 중단한 곳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업소가 사라진 자리엔 주택과 아파트, 교회, 어린이집, 일반 가게들이 들어섰다. 업소 전체 규모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성매매 업소 포주들이 다수 참여한 완월동 상인회 ‘충초친목회’를 중심으로 완월동 일대를 재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한 세탁소 사장은 “재개발 이야기는 예전에도 나왔다 들어가곤 했는데 이번엔 좀 다르다”며 “완월동 포주들 90% 이상이 재개발에 처음으로 동의한 상황으로 서울 청량리처럼 재정비 수순을 밟는 듯하다”고 말했다.

현재 부산 서구청은 완월동을 포함한 충무동과 남부민동 일대에 대한 도시재생활성화지역 지정을 부산시에 요청한 상황이다. 시 승인 이후 중심시가지형 국토부 공모사업에 선정되면 관련 예산도 지급받을 수 있다. 상인회는 이를 위해 주민들과 도시재생 전문가 등을 불러모아 7월 24일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재개발 논의에 불을 붙이고 있다. 서구청 관계자는 “상인회 측과 협의를 해봐야 하지만 민간 주도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완월동 성매매 업소 여성들은 이런 재개발 논의를 잘 모르는 분위기였다. 길가에서 호객을 담당하던 한 여성은 “우리는 일하는 사람들이라 잘 모르고 재개발을 원치도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업소 내 성매매 종사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기사로만 언뜻 보고 구체적으로 전해들은 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호객 여성은 “주인이 아니라 잘 모르고 여기 포주들만 알고 있을 것”이라며 “정말 재개발이 되면 여기 친구들은 당장 갈 곳이 없다고 봐야 한다. 일부는 여기서 먹고 자며 번 돈으로 가족들도 먹여살리는데, 생계가 끊기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낮이면 업소 문을 열어놓고 주변을 정리, 청소하거나 가게에서 장을 봐오는 등 이곳에서 숙식하는 여성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재개발 보상 대상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성매매집결지 재정비 시 포주들은 대개 조합 측으로부터 업소 여성 수만큼의 영업보상비 등을 지급받곤 하지만, 정작 그 보상금이 여성들에겐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강현준 한터전국연합회 대표는 “수년간 여성을 수단으로 수익을 올렸다면 재개발 이익을 분배해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경우는 사실상 없고 법적으로도 보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4~5층 높이의 업소 건물이 큰길을 따라 펼쳐져 있는 완월동. 낮이면 이곳에서 숙식하는 여성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4~5층 높이의 업소 건물이 큰길을 따라 펼쳐져 있는 완월동. 낮이면 이곳에서 숙식하는 여성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일부 지자체, 여성 자활 조례 재정키도

그러다 보니 부산여성단체연합 등 부산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재개발에 앞서 이들 여성을 위한 보호대책부터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7월 7일 성명서를 통해 “완월동은 일제강점기 유곽에서부터 미국 위안소를 거쳐 또다시 일본 ‘기생관광지’ 등으로 여태 자리해온 곳이다. 성착취를 일상적으로 승인하는 공간은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 완월동 성매매집결지는 반드시 폐쇄돼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그 전에 여성들이 사회에 다시 적응하고 자활할 수 있는 기회부터 만들어야 한다. 부산시와 부산 서구청의 책임 있는 개입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일부 지자체에선 성매매집결지 폐쇄, 재정비 과정에서 업소 여성 자활대책을 마련해 이들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도 했다. 인천시 미추홀구의 경우 지난해 ‘성매매피해자 등의 자활지원 조례 시행규칙 제정규칙안’을 입법해 성매매 업소에 종사하던 일부 여성들에게 생계비와 직업훈련비, 주거지원비 등으로 최대 226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자활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여성은 11명이다. 부산 시민사회단체는 완월동 여성에게도 이런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완월동 업소 여성들에 대한 지원을 이어온 여성인권지원단체 ‘살림’ 관계자는 “재개발 시 포주에 대한 보상만 이뤄지고 여성들은 그대로 쫓겨나는 상황 등을 막기 위해 시의원, 구의원과 접촉 중”이라며 “여성들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파악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과 재개발을 어떻게 진행할 수 있을지 논의 중”이라고 귀띔했다. 부산시와 부산 서구청에선 아직까지 관련 대책이 전무한 상황이다.

일각에선 “범법자를 사회가 나서서 도와야 하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등 성매매 업소 여성에 대한 평가가 분분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이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스스로 성적 노동을 펼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무엇이 그들을 극단적 상황에 내몰게 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며 “대개는 결손가정이나 빈곤층에 있는 여성이 성매매에 뛰어들곤 하는데 가정과 학교, 지역이 보호했어야 했다. 이들을 어떻게 다시 품을지 사회 공동체가 다 함께 고민해야 한다. 완월동도 그렇고 수년간 업소 생활을 해온 여성이 포주 등에 대항하거나 이를 그만둘 기회를 찾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인천 성매매집결지 ‘옐로하우스’도 철거 중

1900년대 부산 완월동과 함께 동양 최대 사창가로 거론되던 곳은 인천 ‘옐로하우스’다. 1902년 인천항 주변에 형성된 시키지마(敷島) 유곽이 1961년 정부의 성매매 집단화 방침에 따라 지금의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일대로 자리를 옮겼다. 옐로하우스란 이름은 여성들이 1970년대 미군 부대에서 얻은 노란색 페인트로 건물 외벽을 칠했다 해서 붙여졌다.

옐로하우스는 부산 완월동보다 더 일찍이 재정비 작업에 들어갔다. 인천시는 2006년 이 일대를 도시환경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하고 정비사업을 추진했다. 부동산 경기침체 등으로 지지부진했던 사업은 2015년 정비사업조합이 지역주택조합으로 전환키로 결의하면서 속도를 냈다. 2017년 인천시는 정비구역 지정을 해제했고, 지역주택조합은 700여가구가 들어설 수 있는 대규모 주상복합건물 신축을 새롭게 추진했다.

현재 조합 측은 이 일대 토지 매입을 모두 끝마친 상황이다. 하지만 한 개의 성매매 업소가 남아 조합 측의 철거 작업에 대응하는 상황이다. 영업은 중단한 지 오래이지만 갈 곳 잃은 10명 남짓의 업소 여성들이 아직까지 이곳에 남아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이 업소의 한 여성은 “사람이 있는데도 밤낮으로 조합 측이 용역을 동원해 유리창을 깨고 강제 진압을 시도하고 있다”며 “경찰은 조합 측의 정당한 명도집행이기에 막을 수 없다고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 측은 지난 6월 철거 과정에서 석면 조각이 발견돼 작업을 잠시 중단한 상황이지만, 석면 조사가 끝나는 대로 남은 한 곳에 대한 철거도 재개하겠다는 입장이다. 숭의1구역 지역주택조합 관계자는 “일부 여성들이 일생 동안 포주한테 모든 것을 상납해 보상을 받아야 한다며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이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로선 재건축 진행이 늦어질수록 비용만 늘어나는 실정이다. 명도 소송과 형사고발 조치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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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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