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0일 트럼프와 김정은의 판문점 회동 모습. 좌우측 끝은 리용호 외무상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photo 백악관
지난 6월 30일 트럼프와 김정은의 판문점 회동 모습. 좌우측 끝은 리용호 외무상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photo 백악관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의 주한미군 사령부에는 6·25전쟁 당시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정전협정에 서명할 때 사용한 책상이 지금도 보관돼 있다. 검게 옻칠한 이 책상은 가로 1m, 세로 1.5m 크기로, 바닥에는 정전협정 서명일(1953년 7월 27일 오전 11시)을 기념한 글귀를 새긴 동판이 붙어 있다. 클라크 사령관은 같은 날 오전 10시 유엔군 대표인 윌리엄 해리슨 중장과 북한군 대표인 남일 대장이 판문점에서 서명하고 교환한 정전협정문이 당시 문산에 있던 유엔군 캠프에 도착하자 이 책상 위에 놓고 최종 서명했다. 6·25전쟁을 일시 중지하는 정전협정의 정식 명칭은 ‘국제연합(유엔)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을 말한다. 정전협정은 클라크 사령관과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가 최종 서명함으로써 체결됐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통일을 주장하며 정전협정에 반대했기 때문에 한국군 대표는 서명하지 않았다. 북한 정권은 매년 7월 27일을 미국과 싸워 승리한 날이라는 의미인 ‘전승절’로 제정해 성대한 기념식을 벌이고 있다.

정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는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첫 회담이 열린 이후 무려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이 기간 중 159회의 본회담, 179회의 분과위원회 회담, 188회의 참모장교 회담, 238회의 연락장교 회담 등 모두 765회의 회담이 열렸다. 휴전선 확정과 휴전 감시기구 설립, 외국군 철수 등의 문제는 비교적 수월히 해결됐지만 포로 교환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특히 정전협정의 성격을 규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 평화협정은 1919년 베르사유협정과 1951년 샌프란시스코협정처럼 어느 일방의 승리로 전쟁이 끝났을 때나, 197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평화조약처럼 전쟁의 당사자들이 상대방을 국가로서의 지위를 인정하고 상호 간의 공존에 합의할 때 가능하다.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못한 이유

하지만 당시 한국과 북한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북한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은 1949년 공산혁명에 성공한 중국을 정식으로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은 또 한국은 유엔이 승인한 유일한 합법정부로 규정했고, 북한을 합법정부로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면 전쟁의 책임과 배상, 전후 더 이상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 등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때문에 당시 미국은 중국 및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전쟁을 중단하는 것이 필요했던 미국과 중국 및 북한은 정전협정을 먼저 체결하고 이후 평화협정을 논의하기로 했다. 미국과 중국 및 북한에는 평화협정을 염두에 둔 정전협정이 무리수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빨리 멈추어야 했고, 휴전보다 더 강하게 전쟁을 억지할 수 있는 협정을 맺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에 따라 정전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때문에 정전협정은 일단 한반도에서의 포성을 멎게 했을 뿐, 6·25전쟁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6·25전쟁을 종결하려면 평화협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후속조치를 위해 1954년 제네바회의가 열렸다.

당시 제네바회의에선 한반도 평화협정과 통일 문제 및 인도차이나 문제가 논의됐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선 한국과 미국·영국·프랑스 등 유엔군으로 참전한 16개국, 북한·소련·중국 등이 참가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한 자유선거와 의회 구성, 외국군 철수 등을 놓고 양측은 팽팽하게 대립했다. 특히 중국과 소련 및 북한은 한반도에서 모든 외국군의 철수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의가 진전 없이 결렬상태로 들어가게 되자 유엔군으로 참전한 16개국은 “유엔 헌장에 의거해 침략자를 격퇴하고 평화를 회복시키는 일과 진정한 자유선거에 의한 한국 통일을 충심으로 열망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은 자유선거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대표단을 철수시킴으로써 회의는 성과 없이 끝났다. 당시 인도차이나 문제에선 베트남 분단을 내용으로 하는 합의가 도출됐다. 이에 따라 베트남은 북부와 남부로 갈라지게 됐다.

1953년 7월 27일 김일성이 정전협정문에 서명하고 있다. ⓒphoto 위키피디아
1953년 7월 27일 김일성이 정전협정문에 서명하고 있다. ⓒphoto 위키피디아

종전선언만으로는 정전협정 대체할 수 없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올해로 66년을 맞지만 적대행위가 일시적으로 정지될 뿐 한반도의 전쟁 상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전협정이 이처럼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는 경우는 전 세계에서 한반도가 유일하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30 판문점 남·북·미 회동을 사실상의 ‘종전선언’으로 규정해 그 의도가 주목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남북에 이어 북·미 간에도 문서상의 서명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관계의 종식과 새로운 평화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선언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6·30 판문점 회동을 사실상의 북·미 간 종전선언이라고 규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북·미 간 종전선언의 근거로 트럼프 대통령이 특별한 경호 없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은 점, 정전협정 66년 만에 사상 최초로 당사국인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군사분계선에서 두 손을 맞잡은 점 등을 들었다. 문 대통령은 “세계를 감동시킨 북·미 정상 간의 판문점 회동은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파격적인 제안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과감한 호응으로 이뤄졌다”며 “그 파격적인 제안과 과감한 호응은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집권 이후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최우선 과제로 상정해왔다. 하지만 북한 비핵화 문제로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이 어렵게 되자 남·북 종전선언을 먼저 추진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평양 방문에서 판문점선언 부속서인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를 체결했다. 문 대통령은 이를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고 평가하고, 남·북 간 적대관계가 종식됐다고 선언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27일 김정은과의 남북 정상회담에서 도출해낸 판문점선언에서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의 의도는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로 사실상 남·북 간 종전선언에 이어 판문점 회동에서 북·미 간 종전선언이 이뤄짐으로써 종전선언→평화협정→비핵화협상 타결 로드맵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그런데 종전선언만으로는 정전협정을 대체할 수 없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고 법적 효력을 가지려면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면 북한의 비핵화가 선행돼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이처럼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회동을 사실상 종전선언이라고 아전인수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미국 정부는 문 대통령의 과도한 ‘상상력’에 쐐기를 박았다.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7월 9일 미·북 정상의 판문점 회동에 대해 “정상회담(summit)도, 협상(negotiation)도 아닌 두 지도자의 만남(meeting)”이라고 규정했다.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만남’이라고 입장을 밝힌 것은 당시 회동을 “적대관계의 종식”으로 높이 평가한 문 대통령의 발언과는 완전하게 다르다. 미국 정부의 입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판문점 만남에서 특별한 합의나 선언이 없었고, 향후 미·북 비핵화 협상 결과가 논의의 핵심이기 때문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실무팀을 구성해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하겠다”고 강조한 만큼, 앞으로 재개될 예정인 미·북 실무 협상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를 도출해야만 제3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송영무 한국 국방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이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photo 청와대
지난해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송영무 한국 국방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이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photo 청와대

종전선언이 평화협정의 입구가 되려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집착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문 대통령은 정상 간 외교가 미·북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고 갈 것으로 믿고 있으며, 이를 더욱 촉진하기 위해 이런 발언을 한 것 같다”면서도 “문 대통령이 치어리더의 역할을 하는 것은 나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그런 발언은 개인적 열망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오핸런 연구원은 “북한은 여전히 핵무기를 만들고 있고, 국가 예산의 20%를 국방에 쓰고 있으며, 자국민을 강제수용소에 가두는 등 ‘평화적인’ 나라들과는 거리가 멀다”면서 “북한은 아직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고, 그런 문제들이 지속되는 한 북한과의 ‘위장된 평화’에 기뻐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김정은은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단 한 개의 핵무기도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어느 한쪽만이 적대관계 종식을 선언한다고 해서 그것이 저절로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베넷 연구원은 “북한이 남쪽을 향해 전진배치한 대규모 군사력을 후방으로 빼지 않는 한 적대관계가 종식된 것으로 볼 수 없다”면서 “북한이 서울을 사정권에 두고 있는 전방 포대를 후방으로 돌린다면 적대관계 종식에 의미 있는 조치가 되겠지만,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도 “북한군 전력의 70%가 DMZ 근처에 공세 태세로 배치돼 있는 등 위협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땅을 밟은 것이 의미는 크지만, 6·25전쟁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등을 언급하기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비판했다.

물론 종전선언이 평화협정의 입구가 될 수도 있다. 냉전 이후 동유럽·중동·아프리카 등 40여개국에서 300여개의 평화협정이 체결됐고, 이 가운데 내전의 50%가 평화협정을 통해 해결됐다. 이 때문에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종전선언은 평화로 가는 킹핀(kingpin)”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종전선언이 북한 비핵화와 체제 안전보장을 교환하는 핵심 연결고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전선언은 자칫하면 북한 정권이 쳐놓은 ‘함정’일 수 있다. 북한 정권은 1974년부터 평화협정 체결과 유엔사 해체 및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왔다. 종전선언을 통해 정전협정을 무력화시켜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면서 유엔사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는 것이다.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은 지난 4월 25일 제8회 모스크바 국제안보회의에서 “정전협정 서명 국가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정전 상태, 즉 법적으로 전쟁 단계에서 평화체제로 이전하는 협상을 적극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노 인민무력상은 또 “군사적 대치 상태를 제거하는 긍정적 조치들이 한반도 모든 영토에서 일어나야 한다”며 “외국이 참여하는 합동군사훈련이나 외국 군사장비 도입 같은 긴장 원천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전협상에서 북한군 대표이자 인민군 총참모장을 역임한 남일 외무상은 1954년 제네바회담 당시 모든 외국군 동시 철수와 남·북 동시 선거를 제안했었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7월 16일 담화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거론하며 “만일 그것이 현실화된다면 조·미 실무협상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면서 “합동군사연습 중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온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직접 공약하고 판문점 조·미 수뇌 상봉 때에도 거듭 확약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북한 정권은 그동안 한국의 단독군사훈련과 한·미 연합훈련 등에 대해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왔을 뿐만 아니라 F-35스텔스 전투기 도입 등도 문제를 삼아왔다. 북한 정권은 이처럼 과거부터 지금까지 변한 것이 전혀 없다.

트럼프가 들고나온 평화선언이라는 ‘꼼수’

종전선언은 자칫하면 북한의 남침에 대비한 한·미 연합사의 존속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북한 정권이 종전선언 이후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이에 따라 한·미 연합훈련은 당연히 실시하기 어렵게 되고, 이 경우 주한미군의 일부 철수도 이루어질 수 있다. 북한 정권 입장에선 종전선언이 유엔사를 해체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정부에선 북한과의 실무협상에서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당근을 제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7월 12일 “북한이 필요로 하는 체제안전 보장이 갖춰지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는 사실상의 종전선언인 평화선언(peace declaration)과 연락사무소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평화선언은 조약의 형태가 아니고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사실상 6·25전쟁의 종식을 의미하는 정치적 선언이다. 평화협정은 의회가 반대할 것을 우려해 평화선언이라는 ‘꼼수’를 쓰려는 것이다. 내년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외교적 성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지금까지 한반도 비핵화만을 주장했을 뿐, 한번도 완전한 북한의 비핵화를 언급한 적이 없다. 게다가 북한 정권은 헌법보다 중시하는 노동당 규약에서 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한 적도 없다. 트럼프 정부가 평화선언을 추진한다면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 유엔사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북한 정권으로부터 받아내야 한다. 또 북한 정권은 장사정포와 생화학무기 및 특수부대 등을 폐기하고 해체해야 한다.

아무튼 가장 중요한 점은 완전하고 검증되고 되돌릴 수 없는 북한의 비핵화다. 핵(核) 있는 종전선언이나 평화선언은 가짜 평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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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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