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photo 뉴시스
2017년 8월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photo 뉴시스

“환자와 가족의 눈물을 닦아드리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2017년 8월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직접 발표하며 한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미용과 성형, 건강검진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비급여 치료 항목에 건강보험을 적용, 개인 의료비 부담을 경감할 것을 약속했다. ‘건강보험 하나로 의료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대선공약을 이행한 셈이다. 서울성모병원에 있던 환자와 환자가족, 의료진은 환호했다. 이른바 ‘문재인케어’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최근 이와 모순되는 내용의 방침을 내놓으면서 의료정책 방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 전략 등 일부 계획이 병원의 영리추구를 가능케 하고, ‘의료민영화’ 우회로를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관련 시민단체 등에서 제기되고 있다. 현재 국회에선 실제 의료민영화 우회로를 뒷받침하는 듯한 법안도 논의 중이다. 정부 스스로 문재인케어 시행에 제동을 거는 모양새다. 의료계는 혼란스럽다는 입장이다. 오는 8월이면 문재인케어 시행 2년이 되지만, 불안의 시선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문재인케어, 즉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은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국내 3대 비급여 항목인 선택진료비(특진비)와 상급병실비(1~3인실 병실비),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노인과 어린이, 장애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혜택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입원·외래의료비의 경우 소득분위에 따라 최대 2000만원까지 지원하는 등 의료 사각지대도 없앤다. 한마디로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을 높이는 셈이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문재인케어는 현재까지 전체 계획의 약 25~28%가 진행됐다. 지난 5월 보건복지부는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을 통해 본인부담상한제는 개선하고 신경인지검사 등 198항목 급여 기준·적용 등은 확대했다고 밝혔다. 15세 이하 아동 입원진료비와 중증치매·난임 치료, 선택진료비 등의 부담도 낮췄다. 정부는 이런 시도 등으로 건강보험 보장률을 2022년까지 70.0%까지 끌어올리고 이후 이를 유지하겠다는 계획을 고수 중이다.

시민단체들 “사실상 영리병원 허용”

하지만 올 들어 정부가 이와 상충하는 내용의 방침을 내놓으면서 의료정책 방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꺼내든 정책들에는 의료민영화의 우회로를 만들어줄 수 있는 내용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민영화는 의료서비스를 시장에 맡기는 것을 일컫는다. 의료기관들의 경쟁, 영리추구를 통해 의료의 질을 향상시킬 것을 목표하는데, 공익성을 강조하는 문재인케어와는 상반된다.

의료계 안팎에선 지난 5월 정부가 발표한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 전략’을 대표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당시 정부는 희귀난치질환 치료와 신약, 의료기술 개발 등을 위해 바이오헬스 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이 산업이 기술자본 집약성이 높다고 보고 이와 관련한 연구개발(R&D)을 핵심과제로 삼았다. 이를 위해 병원을 기술개발 생태계의 혁신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추진하는 것이 병원 의료기술협력단, 의료기술지주회사 설립이다.

이 방침은 국회에서 ‘보건의료기술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이 발의되면서 힘을 받는 분위기다. 이명수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해당 법안은 연구중심병원이 설립한 의료기술협력단이 자본을 출자해 의료기술지주회사를 세우고, 병원의 연구개발을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연구중심병원은 환자진료와 함께 연구업무도 수행하는 병원으로 국내에선 삼성서울병원 등 10곳이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병원의 의료기술협력단은 의료기술지주회사의 수익금과 배당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의료기술지주회사의 경우 보유기술 등을 활용해 자회사를 설립·경영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기존 지정제로 운영되던 연구중심병원은 인증제로 전환한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에 따르면,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이 법안에 모두 이견 없이 동의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 법안이 그대로 통과돼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 전략 이행에 속도가 붙었을 때다. 의료계에선 의료기술지주회사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직접 개발한 의료기술, 약품, 건강식품 등을 고스란히 연구중심병원에 팔거나 넘길 여지가 크다고 보고 있다. 병원은 의료현장에서 이를 소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의료기술지주회사가 제약업체 등의 자회사를 설립해 추가 영리를 취할 수 있는 구조도 형성된다. 의료 공공성은 저해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기술지주회사 운영이 병원의 돈벌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지는 셈이다. 더군다나 인증제로 전환할 경우 요건만 갖추면 어느 병원이든 연구중심병원으로 운영할 수 있다. 건강보험 재정을 늘려 새로 개발되는 치료기술, 의료약품 등을 급여화하지 않으면 문재인케어는 성공하기 힘들며, 개인 의료비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의료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오헬스 산업을 육성한다는 정책이, 병원을 환자 치료가 아닌 특허 출원과 기술개발을 위한 산업연구시설로 변모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로 인해 진료 패턴 등도 변화할 수 있다. 환자진료와 의료연구에 대한 임무 분담을 확실히 구분하는 해외 의료병원에서나 도입 가능한 방안이다. 한국은 대부분의 병원이 환자 진료를 최우선 업무로 하기에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의료계 시민사회단체들도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이들은 지난 7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의료기술진흥법, 개인정보보호법, 첨단재생의료법, 보험업법 개정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은 “이들 법안이 사실상 영리병원을 허용한다”며 “정부가 의료민영화, 영리화 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저버렸다”고 주장했다.

의료노조 측 입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관계자는 “이들 법안은 문재인케어를 역행하는 것으로 동시 진행될 경우 문재인케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 속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건의료기술진흥법 개정안 등은 의료계 반발로 지난 7월 16일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이다. 국회가 다시 개원하면 재논의될 예정이다.

최근 의료계 시민사회단체나 노조의 비판을 받는 정책은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올 5월에 내놓은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도 구설에 오르고 있다. 의료법상 의료행위와 비의료기관에서 제공 가능한 행위를 규정한 내용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비의료기관의 각종 질환 상담·조언 등을 허용하며, 만성질환의 경우 의료인의 감독하에 진행되는 치료 등을 예외적으로 가능토록 하고 있다. 의료계에선 이 내용이 민간보험사의 보험 상품 판매를 촉진시키며 시장 활동을 넓힌다고 지적한다. 본래 건강보험법이 보장해야 할 영역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의료민영화를 추진했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도 제기됐던 내용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7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보건의료기술진흥법 등 의료민영화법안 폐기를 촉구하는 의료계 시민사회단체. ⓒphoto 뉴시스
지난 7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보건의료기술진흥법 등 의료민영화법안 폐기를 촉구하는 의료계 시민사회단체. ⓒphoto 뉴시스

의료계 혼란 “의료정책의 정합성 결여됐다”

의료계는 혼란스럽다는 입장이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더 거슬러 오르면 2018년 정부는 의료분야에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해 의료 신산업, 신기술 출시를 꾀하겠다 했는데 이 또한 문재인케어하곤 정반대되는 내용이다. 새 의료기기 등을 절차상 곧바로 보험혜택 적용대상으로 삼기도 어렵다. 어느 장단에 맞춰 병원을 이끌지 모르겠다. 정책의 정합성이 결여되는 지점들이다. 관련 협회, 의료계, 전문가 등이 모여 충분한 시간을 갖고 협의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행 2년이 다 돼가지만 문재인케어 재정 확보에 대한 우려는 해소되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는 당초 건강보험 누적적립금 21조원 절반과 국가 재정을 통해 5년간 30조6000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의료계는 더 큰 재정이 필요할 것이라 내다본다. 최대집 회장은 “급여 항목이 커질수록 의료행위에 대한 수요는 커져 30조원 이상의 금액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며 “지난해 급여화한 뇌·뇌혈관 MRI 이용률만 해도 4배 이상 뛰었다”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최근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이 올해부터 2023년까지 적자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에도 건강보험 당기수지는 177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올해는 3조1636억원, 2020년은 2조7275억원, 2021년 1조679억원, 2022년 1조6877억원, 2023년 8681억원 등 적자를 이어갈 것으로 추계했다. 2017년까지만 해도 7년 연속 흑자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재정 상황이 크게 악화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뒷말 많은 바이오헬스 분야에 대한 정부 투자 확대 추진은 재정적으로도 무리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료정책연구소는 불분명한 국내 의료체계가 정책 입안 혼란을 가져온 것이라 평가했다. 한국의료정책연구소 측은 “의료기관 운영 방식은 크게 3가지다. 정부가 모든 의료기관을 직접 운영하거나 정부가 민간의료기관에 돈을 주고 위탁하거나 민간의료기관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것 등이다. 우리나라는 전체 의료기관의 90%가 민간 소유로 세 번째를 택하고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병의원 등이 정당한 사유 없이 건강보험 적용을 거절할 수 없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제도) 실시로 그 개념이 혼재돼 있다. 의사 직업 수행의 자유에 따라 영리를 추구하려다가도 정부의 공적 개입과 생명 존중으로 불가해지는 식이다. 최근 지적되는 정책 혼란은 여기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이를 깊게 고민하고 정리했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최근 거론되는 정책들이 당장 문재인케어 시행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오히려 신기술 개발로 의료비 절감 효과 등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잘 되고 있나

문재인케어 시행으로 간병인 대신 간호사가 간병, 간호를 전적으로 도맡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구 포괄간호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정부가 3대 비급여 항목 중 하나인 간병비 급여화를 추진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의료현장에선 이 역시 근로여건 등을 고려치 않은 조치이며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악영향만 준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천 한 종합병원 간호사 이모씨는 “간호사 1명당 환자 2.5명을 돌봐야 하는데 워낙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이를 준수하긴 어려운 환경이다. 새벽 시간엔 12~24명까지 책임진다. 여기에 간병 업무까지 도맡게 되다 보니 업무 강도는 높아졌다. 화장실도 못 갈 정도”라고 말했다. 경기도 한 종합병원 간호사 김모씨는 “환자 한 명 한 명을 제대로 돌볼 수 없어 환자들 불만도 크다”며 “오죽하면 침대에서 떨어진 환자가 한동안 방치된 적도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대한간호협회는 서비스 인식개선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인력난도 문제지만 홍보가 부족했던 것도 문제다. 간병 서비스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정책 내용 등을 알려줬어야 한다. 현장에선 환자의 잔심부름을 요구받는 경우도 많아 간호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정책 집행과 함께 인식개선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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