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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 단독인터뷰]  ‘세기의 비행기왕’ 스티븐 우드바 헤이지 ALC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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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70호]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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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단독인터뷰]‘세기의 비행기왕’ 스티븐 우드바 헤이지 ALC 회장

photo 최흥렬
2007년 5월 10일 뉴욕타임스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The Real Owner of All Those Planes(그 모든 비행기들의 진짜 주인)’. 기사는 항공업계 전문지인 ‘에어라인모니터닷컴’의 편집장 에드먼드 S. 그린즈렛의 말을 인용해 이 ‘Owner’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 업계에서는 그가 하나님이다.”
   
   스티븐 우드바 헤이지(Steven Udvar Hazy). 항공기 임대업체인 ALC(Air Leasing Corporation)의 회장인 그는 항공업계에서는 ‘신(神)’ 또는 ‘비행기왕’으로 불린다. 별명처럼 전 세계 항공사와 비행기 제조사에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리스업의 사업구조를 떠올리면 물건을 대여해가는 고객에게 업체는 ‘을’의 위치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는 다르다. 항공기를 그에게 파는 제조사나, 항공기를 대여해가는 항공사나 모두 그 앞에서 작아진다. 그렇다고 모든 항공기 리스업체가 그렇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만큼 항공업계에서 그가 갖는 힘은 압도적이다. 항공기 제작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다투는 에어버스도 헤이지 회장의 말에 항공기 설계를 바꾼 에피소드는 항공업계에서는 유명한 일화다.
   
   뉴욕타임스에 소개될 당시 헤이지 회장의 회사가 보유한 항공기는 824대였고, 항공기 제조사에 추가로 254대를 주문한 상태였다. 제너럴일렉트릭(GE)을 제치고 리스업계 세계 1위였다. 참고로 당시 세계 최대 항공사였던 아메리칸에어라인이 가지고 있던 비행기가 679대, 프랑스 국적기 에어프랑스가 265대, 독일 국적기 루프트한자가 245대였다. 헤이지 회장은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AIG 등에 13억달러에 매각하고 ALC란 회사를 다시 설립해 현재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 회사도 지금 세계 55개국 100개 항공사에 400대가 넘는 항공기를 대여해주고 있다. 그야말로 보잉과 에어버스 같은 항공기 제작업체는 물론이고 55개 국적항공사까지 전 세계 항공업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인 셈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6월 프랑스 파리 국제에어쇼에서 보잉의 최신 기종인 드림라이너 30대 도입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중 20대는 보잉으로부터 직접 구매했으며, 10대는 ALC로부터 리스하기로 했다. 체결식에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해 케빈 맥알리스터(Kevin McAllister) 보잉 상용기부문 사장, 존 플뤼거(John Plueger) 에어리스코퍼레이션(Air Lease Corporation) 사장 등이 참석했다.
   
   국내에는 낯선 이름이지만 워싱턴 DC에 있는 세계 최대 박물관 ‘스미스소니언’에 가본 미국인들은 그의 이름이 낯설지만은 않다. 이곳에 방문한 한국인들도 한번쯤은 그의 이름을 들었을 수도 있다. 19개 ‘박물관(館)’으로 이뤄진 스미스소니언 중 한 박물관이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항공우주 박물관 스티븐 우드바 헤이지 센터’. 이 센터는 그가 1999년 당시 돈으로 6600만달러를 기부해 세워졌다. 그는 한때 포브스가 선정하는 부자 순위 100위 안에도 들었다. 현재는 500위권이다. 500위권이라고 하지만 그의 개인 재산은 4조원이 넘는다.
   
   우리나라 항공업계도 헤이지 회장과 인연이 깊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서 운항하는 항공기 중 상당수가 헤이지 회장의 회사에서 리스한 것이다.
   
   2007년 미국에서 출간된 ‘보잉 vs 에어버스(Boeing Versus Airbus)’란 책을 보면 항공기 대여사업은 1970년대 중반 헝가리 이민자인 스티븐 우드바 헤이지에 의해 시작됐다고 적혀 있다. 이 책의 저자 존 뉴하우스는 “헤이지 회장의 회사는 비행기를 매개로 하는 모든 항공산업의 패턴을 완전히 뒤바꿨다”고 평가했다.
   
   두 항공사가 오늘날 규모로 클 수 있었던 과정에서 헤이지 회장이 산파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항공의 고(故) 조양호 회장과 아시아나항공 박삼구 회장은 오래전부터 헤이지 회장과 인연을 맺어왔다. 아시아나 박 회장은 그가 한국에 올 때 저녁자리에 초청해 폭탄주를 직접 소개한 에피소드도 있다.
   
   
   헝가리 난민 항공업계 神이 되다
   
헤이지 회장은 언론 노출을 꺼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7년 뉴욕타임스 기사에서도 “헤이지 회장은 언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뉴욕타임스 기사 역시 그에 대한 주변 취재로 채워졌을 뿐이었다. 그가 국내외 언론과 사진기자까지 대동해 공식으로 인터뷰를 한 기사는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가 지난 6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서울총회참석차 전용기를 타고 한국에 왔을 때 몇몇 국내 언론에서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역시 거절당했다고 한다. 대중에 자신의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를 주간조선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현지에서 인터뷰할 수 있었다. 헤이지 회장과 오랜 기간 알고 지냈던 지인을 통해 어렵게 성사가 됐다. 대한항공 고 조양호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하고, 아시아나항공은 매각작업이 이뤄지는 등 국내 항공업계의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의 하늘을 손안에 쥐고 있는 그를 통해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베일 속에 가려져 있는 ‘세기의 비행기왕’을 만난다는 기대도 컸다.
   
   기자는 지난 7월 8일 미국 LA의 센추리시티라는 업무지구 내 ALC 사무실에서 약 1시간가량 그와 공식인터뷰를 가졌다. 헤이지 회장은 헝가리에서 태어났다. 2차 대전 후 소련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미국으로 피란을 온 난민이기도 하다. 헤이지 회장에게 헝가리에서 보냈던 유년 시절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하며 인터뷰가 시작됐다. 의외로 한국, 즉 ‘남한’이란 말이 먼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헤이지 회장의 유년 시절 경험은 지금 남한의 70대 이상 노년층이 겪었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한에 사니까 잘 알 겁니다. 공산국가와 아닌 나라의 차이를요. 나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랐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에 서유럽은 연합국의 지배 아래 있었고 폴란드, 체코,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를 포함한 동유럽은 소련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헝가리는 997년에 세워져 가장 오래 유지된 왕정국가였다가 1차 대전 후 공화국이 됐죠. 이후 소련의 지배를 받는 공산주의 국가가 됐습니다. 우리 가족은 자본주의적인 자유로운 환경에서 사회주의적 공산주의 환경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모든 재산이 몰수된 상황이었습니다.”
   
   - 어렸을 때부터 비행기 조종을 꿈꿨다고 들었습니다. “6살 때쯤 아버지가 나를 에어쇼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게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죠. 비행기를 봤고, 거기서 하늘을 나는 자유를 알았습니다. 감동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그 에어쇼에서 무의식중에 항공 조종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 이후 서방세계, 즉 자유를 향한 비행을 꿈꿨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실제가 됐습니다.”
   
   
▲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위치한 ‘스티븐 우드바 헤이지 센터’ 모습. photo 스미스소니언 홈페이지

   아메리칸 드림의 시작
   
   헤이지 회장의 가족은 헝가리를 탈출해 스웨덴 스톡홀름을 거쳐 결국 미국 뉴욕에 들어왔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헤이지 회장은 미국에서도 하늘을 나는 꿈을 접지 않았다. 어쩌면 ‘아메리칸 드림’이란 단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어렸을 적 스포츠와 공항에 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아무 공항에나요. (공항에서) 어떤 비행기인지, 어디서 오는 건지, 어디로 가는 건지에 대해 (노트에) 썼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도서관에 공부하러 간 줄 알았지만 사실은 공항에 있었습니다. 일종의 모험이었죠. 그리곤 항공 조종을 통해서 항공사와 세계를 연결하는 것에 사로잡혔습니다. 파일럿이 되어 항공에 관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 대학에서 전공은 항공산업과는 관련이 없는 것 같은데요. “UCLA에서 국제경제와 정치학, 국제관계를 공부했습니다. 국제관계를 공부할 때도 항공업에 적용하는 방안을 중점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이런 공부들을 항공업 관련 프리즘의 하나로 본 것이죠.”
   
   - 항공기 대여라는 것이 당시만 해도 생소한 개념이었는데 어떻게 이 사업에 뛰어들 생각을 했나요. “UCLA에서 공부하던 1960년 말에서 1970년대 초는 항공기들이 프로펠러에서 제트기로 바뀌던 시기였습니다. 항공기 가격이 크게 올라 항공사가 기존에 하던 대로 항공기를 직접 구입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항공사들은 비행기를 옛날 방식으로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제트 항공기를 가질 새로운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그리고 저는 구매를 대신할 리스와 렌트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 그렇다 하더라도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이런 사업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았겠습니다. “미국에는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금융기관이 많습니다. 그러나 미국 밖, 예를 들면 (현재의) 한국의 경우만 해도 항공기 리스 창구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공사가 비행기를 리스하는 것이 대중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헤이지 회장은 처음 꿈꿨던 파일럿 대신 항공기 리스업을 시작했지만 나중에 항공기 조종사 자격을 취득했다. ALC 홈페이지에 있는 헤이지 회장 경력에는 ‘35년간 제트기를 조종한 경험이 있는 파일럿’이라고도 적혀 있다.
   
   헤이지 회장은 ALC 이전 1973년에 ILFC(International Lease Finance Corporation)란 회사를 처음으로 설립했다. ILFC는 DC- 8이란 중고 기종을 구매해 에어로멕시코에 리스해주는 것으로 첫 테이프를 끊었다. ILFC는 창립 10년 뒤인 1983년에 시장가치 1억달러가 됐고, 1990년에는 AIG그룹에 당시 돈으로 13억달러에 인수됐다. 그는 AIG에 인수된 후에도 ILFC의 회장 및 CEO를 맡아 2010년까지 경영에 참여했다. ILFC는 항공기 리스업계 경쟁업체인 GE를 제치고 압도적 1위를 유지하기도 했다. 그가 한창 ILFC의 사업 규모를 키울 때 우리나라의 두 항공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과도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 한국 항공사들과도 인연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대한항공의 경우, 1989년부터 조원태 회장의 할아버지(조중훈 대한항공 창업주)와 함께 일하기 시작한 걸로 기억합니다. 대한항공과의 첫 거래는 싱가포르항공에서 산 보잉 747-200이었습니다. 싱가포르항공은 새로운 747-400을 구매했고, 대한항공은 747-200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게 한국에 처음 리스를 준 것이었습니다. 그때 한국에는 항공기 구입을 위해 대출을 해주는 금융기관이 거의 없었고 한국수출입은행에 (지금보다) 더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리스’라는 도구가 항공사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 아시아나항공과는 설립 때부터 거래를 했죠. “몇 년 후 비슷한 경험을 Sam Park(박삼구 회장)의 금호그룹에서 세운 서울에어인터내셔널과 했습니다. 그들은 한국의 두 번째 항공사가 되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타트업 프로세스를 거친 후 그들은 아시아나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보잉 747, 767-300을 리스해줬습니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은 막 시작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성공 여부를 알 수 없었습니다. 대한항공은 경쟁을 최소화하고 싶어했지만 알고 보면 새로운 항공사의 시작은 전체적인 비행 수요를 높입니다.”
   
   
   헤이지 회장이 몸담았던 ILFC나 현재의 ALC가 시장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단순히 금융 분야에서 전문적인 노하우를 갖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항공산업은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인구절벽도 그들에게는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인이다. 항공기 리스업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항공사에 비행기를 리스해주기 위해 그 회사의 성장 가능성은 물론이고 해당국가, 나아가 지역의 여행수요를 정확하게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발주하는 항공기가 장기적으로 시장이 요구하는 조건에 맞는지를 파악한다. 일례로 현재 세계 항공시장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초대형 항공기 에어버스 A380은 ALC가 소유한 항공기 목록에 들어있지 않다. 항공시장의 미래를 정확히 분석하는 능력이야말로 헤이지 회장을 항공업계의 신으로 만든 디딤돌이 됐다.
   
   
▲ 지난 6월 18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르부르제에서 이산 무니어 보잉 상용기 판매·마케팅 수석부사장, 케빈 맥알리스터 보잉 상용기부문 사장 겸 CEO,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존 플뤼거 에어리스코퍼레이션 사장(왼쪽부터)이 보잉 787 항공기 모형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성공 비결은 정확한 수요 분석
   
   2007년 헤이지 회장은 파리에서 열린 에어쇼에서 에어버스의 차세대 항공기 A350에 대해 혹평을 했다. 그 사건은 지금도 항공업계에 회자되는 에피소드다. 당시 헤이지 회장은 A350이 날개 디자인으로 인해 속도가 느려진다는 점을 지적했고, 에어버스가 헤이지 회장의 조언을 받아들여 결국 A350의 디자인을 변경했다. 헤이지 회장은 디자인이 바뀐 A350을 후에 20대 주문했다고 한다.
   
   헤이지 회장이 한국 국적 항공사에 리스를 늘린 이유도 결국 한국 시장의 수요를 정확히 분석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수학여행도 해외로 가는 시대지만,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시점은 불과 30년 전인 1989년이다. 이후 해외여행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비행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두 항공사가 급성장한 것도 이 시점부터다.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초반에 우리는 많은 항공기를 한국 항공사들에 임대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의 첫 보잉 777-200ER도 내가 리스해준 겁니다. 이 항공기는 아시아나항공이 서울에서 LA를 비롯한 미 서부 지역으로 논스톱 운행할 수 있게 만든 견인차 역할을 했죠. 현재를 위한 빅스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대한항공에는 보잉 777-300ER과 737-800을 제공했습니다. 아시아나에는 A321 에어버스와 A333-300도 제공했습니다. 우리의 회사가 자랄수록 한국과의 관계도 깊어졌습니다.”
   
   - 최근 한국을 비롯한 중국·일본 항공사들이 아시아 항공시장을 두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항공시장의 트렌드는 어떤가요. “(ALC) 전체 비즈니스의 40%가 아시아 지역과 연관돼 있습니다. 비행 수요가 늘어나는 것과 맞물려 기존에 사용 중인 항공기를 효율이 높은 항공기로 대체하고자 하는 수요도 점차 올라가는 중입니다. 30~40년 전이라면 새로운 항공사들은 대부분 가장 싼 중고 항공기를 썼을 겁니다. 그러나 요즘 신규 항공사들은 대부분 에어버스나 보잉의 새로운 항공기로 운항을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최저의 연료소비량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기존 항공사와 경쟁하기 위해서 가장 경제적인 항공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여행객들이 섬세하고 까다롭습니다. 그들은 어떤 항공기가 제공되는지 알고 싶어합니다.”
   
   ALC 홈페이지에서는 ALC와 전 세계 항공사들의 리스 현황을 세계지도를 통해 볼 수 있다. 55개국에서 100개 항공사가 ALC와 거래하는 것으로 집계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그리고 또 한 곳의 항공사가 있었다. 다만 지도에 로고는 표기되어 있지 않고 ‘COMING SOON’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아이콘을 클릭해서 들어가보니 ‘에어프레미아’라는 생소한 이름의 항공사 이름이 나와 있었다. 에어프레미아는 인천과 LA, 그리고 새너제이를 오가는 노선을 운항할 예정이며, 전 좌석이 이코노미와 프리미엄 이코노미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인터뷰 후에 인터넷 포털을 통해 검색해보니 지난 3월 국토교통부로부터 신규 운항 면허를 받았다. 이 부분에 이르러 그의 기억력에 놀랐다. 그의 나이는 73세. 헤이지 회장은 이 회사에 대여하기로 한 기종과 사업성공 가능성 등에 대해 막힘없이 대답했다.
   
   - 에어프레미아와는 어떻게 거래하게 됐나요. “에어프레미아는 ALC에 787보잉 드림라이너 새 기종 3대를 리스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한국에서 출발하고, 한국에 오는 어떤 항공사와도 경쟁할 수 있는 상품을 제공받길 원했습니다. 에어프레미아에 리스한 787보잉 드림라이너는 한국과 미국을 연결하고 향후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호주와 유럽도 연결하기에 최적의 항공기입니다. ‘프리미엄 이코노미’라고 부르는 좌석을 가진 항공기를 봤을 것입니다. 남미, 유럽, 중동, 아시아 항공사 전반적으로 프리미엄 이코노미 클래스의 인기는 높습니다. 에어프레미아의 좌석 클래스는 다른 경쟁사에 비해 우월할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새너제이(실리콘밸리) 같은 미 캘리포니아 서북부 지역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과 직접적으로 부딪치지 않으면서, 커버할 수 있는 시장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항공사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 어떻게 모든 숫자를 다 잘 기억하나요. “(비행기는) 내 아이들 같습니다. 어떻게 아이의 이름을 까먹을 수 있나요.”
   
   - 최근 한국 항공시장에 대한 변화에 대해 잘 알고 있나요. “한국은 새로운 항공사들이 출현하면서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제주항공, 이스타, 티웨이 등이 생기며 국내선뿐 아니라 필리핀, 태국 등 주변국으로의 여행을 장려하고 있어요. 비행기를 타지 못해 기차를 타고 국내(한국) 바다로 주말여행을 가던 사람들은 이제 한국 밖으로 나갑니다. 이것은 큰 발전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인들에게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만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만 가능했던 일들이 새 항공사의 출현으로 가능해졌습니다. 합리적인 가격에 여행을 할 수 있는 인구가 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과 유럽에서 있었던 일이고, 한국뿐 아니라 중국 등에서 최근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한국은 지난 15년 동안 국제선 규모가 20배쯤 늘어난 것 같습니다.”
   
   - 한국 항공사들은 어떻게 이 변화에 맞춰야 할까요. “한국 항공업계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60~1970년대에 비해 한국은 많은 것이 현대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매번 서울을 방문할 때마다 많은 것들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실감합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이나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죠. 새로운 사회기반시설들의 발전 정도는 우리 미국이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한국 항공시장의 경쟁 강도는 더욱 올라갈 것입니다. 외항사도 많이 들어갔고, 아시아 지역과 대륙 간 비행 등 모든 측면에서 그럴 것으로 예상됩니다. 향후 1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 항공사들은 장비나 로열티 프로그램, 얼라이언스 등 여러 측면에서 최고가 되어야 합니다. 대한항공이 델타와 조인트벤처를 통해 더 많은 루트 선택지를 연 것이 하나의 예입니다. 경쟁 속에서 성장하고 살아 남으려면 역동적이어야 합니다. 현재 아시아나항공도 매우 어려운 경쟁 속에 놓여 있습니다. 대대적으로 성장한 LCC(저비용항공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비용 모델을 바탕으로 상장(IPO)을 하고 항공기를 최신 기재로 갈아야 하는 문제 등이 있습니다.”
   
   
   스미스소니언에 6600만달러 기부
   
헤이지 회장은 지금도 전용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올해 초에도 한국을 방문해 항공업체 관계자들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리스업의 특성상 굳이 지금처럼 공격적으로 영업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도 그가 왕성하게 세계를 누비는 이유가 궁금했다.
   
   - 회사가 안정됐는데 직접 돌아다니며 비즈니스에 관여하는 이유가 있나요. “이것은 국제적 비즈니스입니다. 상점을 운영하듯 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문화적 측면에서 접근합니다. 우리는 고객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객사가 어떤 데서 도전을 받고 있고, 경쟁을 하고 있으며, 성공적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나를 포함한 고위 경영진들은 항공사와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IATA 총회가 올해는 한국에서 열렸는데 75개 항공사(고객사)가 거기 있었습니다. 작년은 시드니, 재작년은 칸쿤이었죠. 그들을 만나서 미래에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하는 게 필요합니다. 또 오늘 우리가 그들을 돕기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이해하기 위해 자주 만남을 가지고 싶습니다.”
   
   헤이지 회장은 외국인이긴 하지만 사업가로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람이다. 제한된 정보이긴 하지만 그가 걸어온 발자취에는 분명 사업가로서 주목할 점들이 많아 보였다. 이 시장에서 그가 성공하기 위해 갖췄던 분석력, 미래를 내다보는 눈, 정상의 자리에 올라도 끊임없이 고객과 소통하는 점 등이 그것이다. 비록 다른 환경에서 사업을 했지만, 그에게 기업가정신이 무엇인지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1999년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거액을 기부한 사실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6600만달러란 거금을 선뜻 기부한 계기가 있었나요. “앞서 얘기했듯 내가 소년 시절 항공시장에 매료됐던 영향이 컸습니다. 요즘 세대의 아이들에게 내가 느꼈던 ‘동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스미스소니언에는 비행기와 로켓이 있었으나 이를 전시할 공간이 없어 창고에 처박아 둬야 했어요. 스미스소니언이 연락을 취해와 터는 있으나 실제 박물관을 지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나는 보잉, 에어버스, 록히드마틴, GE, 롤스로이스와 같은 제작사에 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을 피력했고, 이들의 기여가 잇따랐어요. 참고로 박물관 이름에 내 이름을 넣은 것은 스미스소니언의 결정이고 내가 요구한 것이나 기부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 당신이 생각하는 기업가정신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조금 미쳐야 할 필요가 있어요. 용기와 상상력을 갖고자 하고, 그리고 아무도 하지 않았던 것들을 시도하려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하도록 격려하고 동기를 부여해야 합니다. 혼자서는 못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 사람에게서 초기 아이디어가 나오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고 같은 열정과 신념, 아이디어에 자신감을 갖게끔 하는 팀을 꾸려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가정신이란 용기, 상상력, 열정 이 세 가지가 메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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