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신형 400㎜급 방사포를 김정은이 시찰하는 모습. 이 방사포는 미사일을 뺨치는 속도와 정확도를 갖고 있지만 현재까지 요격은 사실상 불가능해 ‘괴물무기’로 평가된다. ⓒphoto 조선중앙TV
북한 신형 400㎜급 방사포를 김정은이 시찰하는 모습. 이 방사포는 미사일을 뺨치는 속도와 정확도를 갖고 있지만 현재까지 요격은 사실상 불가능해 ‘괴물무기’로 평가된다. ⓒphoto 조선중앙TV

“전 지금도 북한의 신형 방사포(다연장 로켓) 개발 주장을 믿을 수 없습니다. 북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의 과학기술 상식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괴물 방사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국산 탄도미사일 개발에 오랫동안 참여해온 국내 최고 수준의 한 미사일전문가는 최근 북한의 ‘신형 대구경 조종방사포’ 개발 주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지난 7월 31일과 8월 2일 쏜 발사체가 북한판 이스칸데르급 미사일이 아니라 ‘신형 대구경 조종방사포’라며 김정은이 시찰하는 사진까지 공개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만 보면 중국제 WS-2D 다연장 로켓을 개량한 400㎜급 신형 방사포가 확실시된다. 중국제와의 차이점은 중국제는 트럭형(차륜형) 발사대이지만 북한 것은 무한궤도형이라는 것, 로켓의 조종날개 위치 등 로켓 형태가 다르다는 것 등이다. 반면 군 당국은 탄도미사일로 판단했던 당초 평가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사실상 고수하고 있다. 한때 군 관계자들은 북한의 사진 조작 가능성까지 비공식적으로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북한이 김정은이 직접 참관한 행사 사진을 조작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조작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탈북 외교관 출신인 고영환 박사는 “북한은 지금까지 김정은이 참석한 행사에 대해 해석을 달리한 적은 있었어도 사진 자체를 조작한 적은 없다”며 “이번 사진들이 조작됐을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군 당국이 탄도미사일로 판단하고, 국내 최고 수준의 미사일전문가가 북 신형 방사포 공개에 대해 강한 불신을 나타낸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북 신형 방사포가 날아간 거리와 최대 고도, 속도 등만을 보면 기존 방사포와는 크게 차이가 있고 이스칸데르 미사일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신형 방사포는 지난 7월 31일과 8월 2일 220~250㎞의 거리를 최대 고도 25~30㎞, 최대 속도 마하 6.9로 날아갔다. 보통 방사포는 탄도미사일보다 속도가 느리고 비행 고도는 높다. 추진체(로켓) 연소시간이 미사일보다 짧기 때문에 가급적 높이 올려 관성의 법칙에 따라 로켓이 포물선형 궤도를 그리며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북한 신형 300㎜ 방사포의 경우 9~10초가량 로켓이 연소하지만, 이스칸데르급 미사일은 38~40초 이상 로켓이 연소한다. 이에 따라 300㎜ 방사포는 200㎞(최대 사거리)를 날아갈 때 최대 고도 50~60㎞, 최대 속도는 마하 4.5 정도가 된다. 반면 이스칸데르 미사일은 250㎞를 날아가도 최대 고도는 40~50㎞ 이내로 더 낮고, 최대 속도는 마하 6~7가량으로 더 빠르다. 때문에 한·미 군 당국에선 북한이 신형 방사포가 아니라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종전(40~50㎞)보다 고도를 낮추고 거리를 줄여 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스칸데르의 최대 사거리는 600㎞에 달한다.

북한 신형 방사포의 ‘원형’인 것으로 알려진 중국 WS-2D 대구경 다연장 로켓. ⓒphoto 조선일보
북한 신형 방사포의 ‘원형’인 것으로 알려진 중국 WS-2D 대구경 다연장 로켓. ⓒphoto 조선일보

군 당국에서 이스칸데르로 ‘오판’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신형 방사포탄 비행 때 회피기동과 유사한 변칙기동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칸데르의 가장 특징은 여느 탄도미사일의 포물선형 비행궤도와는 다른 독특한 요격회피 기동에 있다. 이스칸데르는 보통 탄도미사일보다 낮게 올라간 뒤 하강하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급상승, 목표물 상공에 거의 수직으로 내리꽂힌다. 이를 전문용어로 ‘풀 업(pull-up)’ 기동이라 한다. 신형 방사포 비행 때 ‘풀 업’ 기동과 같은 급상승, 급하강은 없었지만 완만한 상승, 하강 비행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의 신형 다연장 로켓이 이스칸데르처럼 요격회피 기동을 한다며 북 신형 방사포의 원형이 중국제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중국은 러시아제 BM-30 ‘스메르쉬’ 300㎜ 다연장 로켓을 개량한 A200과 A300 다연장 로켓이 이스칸데르처럼 요격회피 기동을 할 수 있다고 선전하며 수출하고 있다. 한 소식통은 “북 신형 방사포가 중국제 다연장로켓과 비슷하다고 하지만 중국제 최고 속도(마하 5)보다 더 빠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 ‘괴물’ 방사포는 신종 위협으로 부상한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보다 더 위협적인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스칸데르처럼 빠르지만 최대 비행고도가 이스칸데르보다 낮아 레이더 탐지 시간이 짧아지고 그만큼 요격이 어렵다. 더구나 방사포는 미사일보다 싸기 때문에 수십~수백 발을 한꺼번에 쏠 수 있다. 방사포에 대한 요격 수단은 현재 한국군은 물론 주한미군에도 없는 상태다. 더구나 GPS(위성항법장치) 등 유도장치를 달아 미사일처럼 정확하다. 위력도 지금까지 최신형이었던 300㎜ 방사포보다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8월 1일 신형 방사포탄이 함경북도 무수단리 해상 근처의 한 바위섬을 정확히 타격한 사진을 공개했는데 방사포탄이 바위섬을 타격하면서 거대한 화염이 솟구치는 장면을 보여줬다. 신형 300㎜ 방사포(KN-09) 시험 발사 때에도 이 바위섬을 타격하는 사진을 공개했는데, 그때 발생한 화염과 연기 규모는 이번보다 작았다. 신형 방사포탄의 폭발 위력이 기존 300㎜ 방사포보다 커졌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북 신형 괴물 방사포가 한·미 양국군의 요격을 피해 우리 군의 ‘전략무기’인 F-35스텔스기가 배치된 청주기지 등 공군기지들, 육해공 3군 본부가 있는 계룡대, 주한미군의 심장부인 평택·오산기지, 경북 성주 사드 기지 등을 정밀타격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지난 8월 6일 김정은 참관하에 이스칸데르 미사일 2발을 성공적으로 발사한 뒤 사실상 개발완료를 선언함에 따라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신형 방사포 등 각종 방사포를 함께 쏘는 ‘섞어 쏘기’를 할 경우 속수무책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에 신형 방사포를 미사일로 오판했듯이 유사시 방사포를 미사일로 오인해 요격미사일을 쏘거나 정반대의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군에서는 한국군의 패트리엇 PAC-3 CRI형과 주한미군의 최신형 PAC-3 MSE형으로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패트리엇 미사일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요격시험을 했을 뿐 실제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대상으로 요격시험을 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검증 문제가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우리도 이스라엘식 다층(다중) 방어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스라엘은 로켓과 각종 포탄, 미사일 등으로부터 이스라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저고도·근거리에서 고고도·장거리에 이르기까지 4중 방어망을 구축하고 있다. 신형 방사포와 이스칸데르 미사일에 대해선 유사시 가급적 빨리 발견해 발사 전 타격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자폭형 스텔스 무인기 등 첨단 타격 수단, 지상 감시 정찰기, 소형 정찰위성 같은 감시 정찰 수단 등도 대폭 보강할 필요가 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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