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아가 적어 텅 빈 서울의 한 종합병원 신생아실. ⓒphoto 정경열 조선일보 기자
출생아가 적어 텅 빈 서울의 한 종합병원 신생아실. ⓒphoto 정경열 조선일보 기자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하에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든 국가 예산만 150조원이 넘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정확히는 152.9조원이다. 올해 저출산 대응책 예산은 26조3190억원이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사이 합계출산율은 1.132명에서 0.977명으로 떨어졌다. 합계출산율의 뜻이 15~49세 가임기 여성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의 수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0.977명이라는 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아이를 한 명도 채 낳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해가 갈수록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이 되자 저출산 대응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왜 152.9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놓고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일까. 정답부터 얘기하자면 어떻게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명확한 로드맵 없이 저출산 문제와 관련이 먼 대응책도 저출산 정책으로 포괄시켜 진행해온 주먹구구식 행정 때문이다.

정부의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따른 2018년 시행계획을 살펴보자. 제3차라는 숫자는 그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5개년 단위로 진행된 데서 붙여진 것이다. 제1차 기본계획이 2006년부터 5년간 진행됐고, 2016년부터 내년인 2020년까지가 제3차 기본계획 구간이다. 이 3차 구간 중 총 71조80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됐는데 2018년에만 26조3189억원의 예산이 들었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항목은 ‘맞춤형돌봄확대·교육개혁’으로 약 16조8000억원이 들었다. ‘청년일자리·주거대책강화’ 부문에 5조7000억원이 들었고, ‘일·가정양립사각지대 해소’에는 1조4000억원만이 배정됐다.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드러난다.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저출산 대응책에 대한 국민 인식과 욕구를 조사해본 결과 85%의 응답자가 “자녀 양육을 할 예정이거나 양육 중인 부부를 위해 출산과 양육을 지원하는 정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고 대답했다. 미혼 청년을 위한 혼인 지원 정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응답은 15%에 불과했다.

사실 미혼 청년이 늘어나는 것은 출산율을 떨어트리는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받는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과 같은 혼인율이 지금도 유지되었다면 합계출산율이 2.0명에 달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한국의 혼외출산율은 전 세계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대개 결혼한 관계에서만 출산이 이뤄진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하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은 자연히 출산하는 사람도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혼 청년이 증가한 것은 단순한 사회문제가 아니다. 가치관의 변화, 경제적·문화적 환경의 변화가 어우러져 나타나는 것으로 당장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혼인율을 높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철희 교수 역시 “결혼의 감소가 단기적인 사회경제적 변동이나 정책적 변화에 의해 쉽게 반전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미혼 청년들이 결혼할 수 있게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결혼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매우 장기적인 목표로 설정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국민들이 미혼 청년을 위한 혼인 지원 정책보다 당장 지원이 필요한 부부들에게 출산·양육 지원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청년일자리를 마련하고 교육을 개혁하는 것이 실제로 출산율을 높이는 데 얼마만큼의 효과를 가져올 것인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김종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의 주도로 실시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재구조화 연구’에서 김 연구위원은 출산율을 제고하기 위해 세워진 각종 정책들이 실제로 출산율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청년 해외취업을 촉진하는 것은 청년일자리를 지원하는 일인데, 이게 저출산 해결이라는 목표와 얼마나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간 정부 정책은 이런 방식, 즉 목표와 수단이 밀접하지 않은 방식으로 운영돼왔다.

150조 예산 절반이 상관없는 곳에

다시 지난해 저출산 대응책 시행계획을 살펴보자. 곳곳에 빈틈이 보인다. ‘교육과 고용과의 연결고리 강화’라는 명목하에 1907억원이나 되는 예산이 쓰였다. 저출산과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 정책들을 살펴보면 더욱 의문이 든다. ‘청년 해외취업 지원’ 정책에 424억원, ‘대학 인문역량 강화’에 425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과제 설명 어디에도 ‘저출산’이라는 단어는 없다. ‘자유학기제’도 저출산 대응책 중 하나다. 2018년 기준으로 893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청소년 동아리나 축제를 지원하는 사업 예산 69억원도 저출산 예산으로 분류됐다.

‘공교육 역량강화’에는 853억원이 책정됐다. 학습부진 학생을 지원하고 일반고 재학생 등을 위해 직업교육을 강화한다는 공교육 역량강화가 저출산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교육부 관계자는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는 과도한 사교육에 대한 부담과 공교육에 대한 불신도 있다”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공교육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저출산 문제 해결의 일환으로 삼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김종훈 연구위원이 지적한 대로 지나치게 먼 상관관계를 가진다.

‘SW 전문인력 양성’ 정책에도 450억원이 들었다. SW, 즉 소프트웨어 중심사회를 선도할 인재를 양성하는 정책인데 SW 중심대학을 선정하고 입학정원을 확대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중소기업과 대학을 연계한다거나 특성화고 인력을 양성하는 일은 굳이 저출산과의 연관성을 이끌어내자면 ‘청년의 일할 능력을 향상시키고 일자리를 만들어줘 빨리 자립하게 만든 다음, 결혼으로 이끌자’는 논리가 세워진다.

이게 지난 10여년간 반복되어온 일이다.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각 부처에서 별도로 시행하는 정책이 저출산과 연관성이 보이면 한데 묶어 제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시인했다.

“각 부처마다 부처 성격에 맞는 저출산 정책을 새롭게 세워내는 것이 더 힘든 일이다. 그러니 각 부처에서 진행 중인 사업을 조금 수정해서 저출산 문제와 연관지어 제출한 경우가 많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조사해보니 2016~2018년 사이 시행계획 기준으로, 저출산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는 정책은 전체 예산의 52~57%에 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150조원 정책의 절반이 저출산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데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보면 지금까지 13년간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적으로 쓴 돈은 70조~80조원 혹은 그보다 적은 숫자일 수 있다.

재조정하니 예산 절반도 안 남아

문제점을 인식한 정부도 개선에 나섰다. 지난 2월에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수정돼 새로 발표됐다. 원래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쭉 이어져 진행되던 5개년 계획이었는데 중간에 수정하는 일은 이례적인 것이다. 그만큼 정부 안팎에서 저출산 대응책에 대한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새로 제시된 기본계획에서 눈에 띄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무작정 ‘아이를 낳으라’고 말하는 출산장려정책에서 벗어나 ‘아이를 낳고 기르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전 세대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출산 해소라는 핵심적인 목표에 부합한 과제만 남기고 나머지는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재정비된 핵심 저출산 대응책, 즉 ‘역량집중과제’의 예산 규모는 10억원이다. 올해 추정되었던 예산 26조원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정부의 설명을 옮겨보자.

“그동안 정책목표와 세부 정책과제 간의 낮은 정합성이 문제가 됐고 가능한 정책과제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하고 있는 데 대한 비판적인 평가가 다수 있었다. 특히 예산 지출 대비 성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계속되어온 만큼 체계적인 과제 정비와 예산 구조조정 추진이 필요하다.”

구조조정된 정책은 대학등록금이나 고용 지원과 관련된 교육·청년 정책이 대다수다. 남은 정책들은 이제 저출산·양육 문제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한계가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가장 큰 문제는 새로 마련된 로드맵마저 장기적인 구조 변화보다 일시적인 지원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김혜숙 백석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시적인 지원금이 출산율에 미치는 효과에는 의구심이 든다”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많다. 김민곤 중앙대 행정학 박사나 최분희 한성대 행정학 박사 등의 연구에 따르면 출산장려금이나 일시적인 경제적 지원은 출산율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김혜숙 교수 역시 “사람들이 임신·출산을 고민하고 결심하는 데 몇백만원의 지원금이 얼마만큼의 도움이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OECD 국가들의 출산율이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지를 살펴보면 이런 문제점이 더욱 확실해진다. 김현숙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가 연구한 바를 보면 가족수당같이 현금으로 주는 급여는 북유럽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 대신 양성평등적인 노동시장, 가족친화적인 정책 같은 것이 출산율에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1.66명까지 떨어졌던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이 2010년대 들어서도 여전히 2.0명대에 근접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출산가정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이 늘어났기 때문만이 아니다. 출산율이 떨어졌다가 회복된 유럽 국가들을 보면 혼외출산율이 늘어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만큼 출산과 가족 형태에 대해 유연한 사회구조가 뒷받침되었다는 얘기다. 혼자서도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굳이 결혼을 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지원책이 준비됐다는 의미다. 특히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도록 매우 세부적인 가족수당제도가 마련됐다. 재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임시대기수당을, 장기실직자에게는 특별연대수당을 지급했고, 장애아가 있는 가정에 주는 수당도 다양화했다. 자녀간호수당도 따로 있다.

그런데 그간 한국의 출산율 제고 정책 예산에서 가장 적은 비중을 차지했던 것이 ‘일·가정양립사각지대 해소’였다. 수당만 일률적으로 지급했을 뿐이다. 김혜숙 백석대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양성평등적인 직업·가정 환경과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면서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다는 확신이 들 수 있는 사회를 마련하는 것인데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정책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나마 중앙정부에서는 얼추 기본계획에 맞는 구조조정이 이뤄졌다고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맞춰 편성된 2019년도 지방자치단체 시행계획이 있다.

‘함께 돌보고 함께 일하는 사회’라는 이름으로 조정된 저출산 대응책 예산은 전국 3조2763억원 규모다. 경기도가 8067억원으로 제일 많고 서울시가 4148억원, 그 뒤를 대구와 인천, 충남과 경남 등의 순이다.

원어민 교사 지원·금연 정책도 저출산 예산

서울시의 시행계획을 보면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위기 청소년 사회안전망 구축’ 사업에 108억원, ‘아동·청소년 자립지원 강화’에 91억원, ‘흡연 등 건강 유해 행태를 감소시키는 사업 지속 추진’에 46억원 등의 예산이 책정돼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에서 제시한 정책 방향에 맞게 정책을 편성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저출산 대응책은 직접적인 지원을 넘어서 모든 세대에 적용되는 돌봄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함께 아이를 키우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위기 청소년을 돕거나 청소년에게 유해한 환경을 개선하는 정책 역시 저출산 정책으로 볼 수 있다.”

지금껏 지적해왔듯 저출산 해소라는 목표와 지원정책 간의 연관성이 지나치게 멀게 느껴지는 답변이다. 지자체에서도 이 점을 인정하기는 한다. 충청남도 아산시의 저출산 대응책을 보면, 원어민 보조교사 지원을 위해 9억원, 고교학력 증진사업 지원을 위해서는 3억원이 책정됐다.

‘파워리더십 함양지원’ ‘초등 스케이트 교실’ ‘원어민 화상학습 자료’ 같은 저출산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정책 예산들을 다 합하면 전체 저출산 예산의 17%가 넘는 규모다. 아산시 관계자는 이런 정책을 두고 “넓게 확대해서 본 것”이라고 표현했다. “크게, 확대해석해서 보면 인재를 교육하고 지원해서 저출산을 해소하려는 것”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장난감 축제 집행 예산 4억원을 저출산 대응책으로 넣어둔 강원도 춘천시도 있다. 경기도 과천시에서는 ‘청소년 국제 교류 활성화’와 어학연수 정책에만 1억5000만원 가까이 들였다. 경상남도에서도 ‘청춘 푸드트럭’ 지원 사업에 1억4400만원, 대학생 단기해외어학연수에 3억원 등 저출산과 관계가 멀어 보이는 정책에 예산을 편성했다.

자유학기제를 활성화하는 정책 예산 32억5800만원을 저출산 대응책으로 포함시킨 대전시나, 청소년 쉼터 운영비 13억7400만원을 비롯해 지역사회 청소년 통합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예산을 모두 통틀어 저출산 정책 예산으로 제출한 대구시는 중앙정부의 실패 사례를 답습하는 것처럼 보인다.

광주광역시에서도 ‘문화콘텐츠 전문인력 양성 및 취업지원’과 문화콘텐츠 사업 지원비 36억원을 저출산 대응책 예산으로 편성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저출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종합적인 대응책이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청년일자리를 지원해 결혼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문화콘텐츠 사업은 광주에서 진행해오던 것이고 그걸 저출산 대응책과 연결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지적했듯이 각 지자체나 중앙부처에서 중장기 전략으로 진행 중이던 사업을 저출산 대책으로 백화점식 나열을 하는 데 활용했다는 설명이다.

10여년간 150조원을 넘게 썼는데도 출산율이 오히려 감소한 이유를 다시 되짚어봐야 할 때다. 김혜숙 교수의 말이다.

“효율적인 정책은 타깃을 정확히 설정하고 목표에 적합한 정책을 기획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저출산 정책은 가능한 것을 가져다 나열하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해 다른 비효율적인 정책을 제거하고 보여주기식 행정을 넘어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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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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