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국제공항과 운영 중지된 에어포트호텔(오른쪽).
대구국제공항과 운영 중지된 에어포트호텔(오른쪽).

대구국제공항의 에어포트호텔은 국내 지방공항 중 유일한 환승호텔이다. 2001년 대구공항 신청사를 개장하면서 옆에 있는 구청사를 개조해 문을 연 공항호텔로 공항과 곧장 연결된다. 하지만 지난 8월 12일 이곳을 찾았을 때 ‘영업을 종료한다’는 표지와 함께 호텔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대구공항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 측이 내년 임차계약이 만료되는 이 호텔을 리모델링해 국내선 청사로 바꾸기로 하면서다.

현재 대구공항은 국내선과 국제선이 한 건물에 혼재돼 있다. 이날도 국내선과 국제선 도착장이 있는 대구공항 1층은 제주와 코타키나발루, 다낭 등지에서 온 승객들이 한데 섞여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1층에 국내선·국제선 도착장과 함께 체크인 카운터도 함께 자리하고 있어 출발·도착 승객들이 뒤엉켜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공항 2층 출국장 역시 국내선과 국제선 출국장이 같이 있어 승객들로 북적였다.

공항 청사와 이어진 에어포트호텔을 개조해 국내선을 국제선과 분리하면 포화상태가 일정 부분 해소된다는 것이 공항공사 측의 판단이다. 지난해 대구공항 이용객은 406만명으로 수용한계치(375만명)를 넘어선 상태다. 공항공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대구공항 이용객도 247만명으로, 연말에는 전년 수준을 돌파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에어포트호텔 리모델링과 화물터미널 신축 등 대구공항 확장에는 올해부터 시작해 약 7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하지만 700억원을 들여 대구공항을 확장해본들 그리 오래 쓰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공항이 민군공항 통합 이전 방침에 따라 경북 군위군 또는 의성군으로 이전해 나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대구공항 이전 업무를 총괄하는 국방부는 지난해 3월 경북 군위군 우보면과 군위군 소보면·의성군 비안면을 이전 예정 후보지로 선정했다. 국방부 군공항이전사업단 측은 “올해 안으로 이전부지를 선정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올해 이전 부지 선정 후 2020년 착공에 들어가 2023년 신공항을 개항하는 것이 목표다. 이 일정대로 진행된다면 올해부터 대구공항 확장에 들어갈 700억원은 불과 4년 만에 매몰 비용으로 변한다.

대구공항 확장 결정으로 오히려 탄력을 받은 것은 대구공항의 민항 존치론이다. 대구시 일각에서는 민군공항 통합 이전 방침에 반대해 군공항만 시 외곽으로 이전하고 민간공항은 현재 위치에 존치할 것을 주장해왔다. 여기에 공항공사가 700억원을 투입해 대구공항의 민항 시설을 확장하기로 하면서 민항 존치론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가 됐다.

문을 닫을 예정인 대구공항은 최근 들어 만년 적자에서 탈피해 흑자 행진을 거듭하면서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탈바꿈했다. 대구공항은 1936년 일제가 군사용으로 조성한 동촌비행장이 모태다. 1961년 민간항공기 취항과 함께 민군공항으로 변했고, 1994년 대구~후쿠오카 부정기편 취항과 함께 국제공항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민항 개항 이래 55년간 줄곧 적자를 기록하다가 2016년 최초로 11억원의 흑자를 냈다. 이후 3년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소음피해 불구 운항제한시간 짧아

대구공항은 국내 어떤 공항보다 도심과 가까워 소음피해가 크다지만, 정작 다른 지방공항에 비해 운항제한시간(커퓨타임)은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한국공항공사가 운영하는 공항 중 흑자를 내는 김포·김해·제주공항은 밤 11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항공기 이착륙이 제한된다. 반면 대구공항의 운항제한시간은 밤 12시(자정)부터 다음 날 아침 5시까지로, 다른 공항보다 2시간이 더 짧다.

당초 도심과 가까운 대구공항의 운항제한시간은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였다. 하지만 소음피해에도 불구하고 공항 활성화를 위해 운항제한시간을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한시적으로 줄인 결과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몇 안 되는 항공기로 항공기 회전을 극대화해야 하는 티웨이항공 등 저가항공사가 대구발 국제노선을 급격히 늘리면서다. 연간 100만명 수준에 그쳤던 대구공항 이용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이 기간과 거의 일치한다.

당초 2018년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 조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공항공사 대구지사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지자체와 협의를 거쳐 오는 2022년까지 4년간 추가로 연장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대구~나리타(도쿄)는 오전 5시55분에 뜨고, 대구~베이징은 밤 11시20분에 뜬다. 다른 지방공항에서는 불가능한 운항시간표다.

대구공항이 외곽으로 이전해갈 경우 수년간의 흑자 행진이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대구공항의 최대 장점은 도심과 가까운 데다 늦은 시간까지 공항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구공항은 대구 교통의 허브인 동대구역과 대구전시컨벤션센터(EXCO)에서도 각각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불과하다. 새벽이나 늦은 시간 공항을 이용하는 데 부담이 없다.

하지만 대구공항 이전 후보지로 꼽히는 경북 군위군 우보면과 소보면, 의성군 비안면까지는 동대구역을 기준으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 약 1시간이 걸린다. 대구보다 경북 구미에 더 가깝다는 점에서 사실상 구미공항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대구공항의 최대 취항 노선인 제주 노선은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대구에서 제주까지 1시간을 날아가기 위해 역방향인 북쪽에 있는 군위나 의성까지 약 1시간을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거리 항공여행객들이 가장 꺼린다는 소위 ‘개구리 점프’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경우 대구 남쪽 지역 승객들 상당수가 항공편도 더 많고 순방향인 김해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동대구역에서 김해공항 역시 중앙고속도로(부산~대구)를 이용해 약 1시간15분 정도로 시간상 차이가 크지 않다.

대구공항이 경북 군위나 의성으로 이전해가면 몇 안 되는 내륙 노선은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대구공항의 내륙 노선은 2004년 경부고속철 1단계(서울~동대구) 구간이 개통된 후 직격탄을 맞았다. 2016년 수서고속철 개통 이후에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금은 에어부산이 김포~대구 간에 운항하는 것이 전부다. 이마저 이른 아침과 늦은 밤 각 1편에 불과하다. 그나마 도심과 가깝고 KTX의 반값에 나오는 특가 항공권이 자주 있어 숨겨진 알짜노선으로 불리던 이 항로는 대구공항이 이전할 경우 명맥이 끊어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 대한항공에서 대구~인천 구간을 운항하고 있지만, 이는 환승 전용 내항기로 국제선으로 분류된다.

물론 민항 존치론자들의 주장처럼 군공항만 외곽으로 이전해간다고 했을 때 경북 군위나 의성에서 흔쾌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대구 지역의 여당 의원인 김부겸 의원(4선·대구 수성갑)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군공항만 받으려는 곳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대구공항 통합이전 방침은 내년 총선에서 대구 정가의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당초 대구공항의 민항 기능은 박근혜 정부 때 영남권 신공항 건설과 함께 폐쇄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김해공항 확장을 최종 선택하면서 TK지역 여론 무마 차원에서 결정된 것이 대구공항 통합이전이다. 원칙 없이 성급히 결정된 대구공항 통합이전 방침이 딜레마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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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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