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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72호] 20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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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그 후]‘모자 아사’ 사태로 본 탈북자 복지의 현재

▲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 차려진 한성옥씨 모자 추모 분향소에서 지난 8월 17일 김정아 통일맘연합 대표(오른쪽), 윤미라 통일맘연합 사무국장(왼쪽) 등 탈북 여성이 분향을 하고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토요일 밤 8시의 분향소는 조용했다. 지난 8월 17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의 분향소. 지난 7월 31일 서울 봉천동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탈북자 한성옥씨 모자를 위한 공간이었다. 세월호 추모시설이 들어서 있는 광화문광장에서 30여m 떨어진 인도 위에 세워졌다. 분향소라고 하지만 임시로 세운 작은 천막 안에 고인의 사진을 세워놓았을 뿐이다.
   
   분향소가 설치된 지난 8월 14일부터 이 기사를 쓰고 있는 8월 22일까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에선 단 한 명의 국회의원도 한성옥 모자를 위한 분향소를 찾지 않았다. 같은 기간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나 박준희 관악구청장 등 이들 모자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기관의 인사들도 역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취재진의 눈에 띄기 쉬운 평일 낮 자유한국당 인사들 몇몇이 분향소를 다녀갔을 뿐이다.
   
   주말 저녁의 분향소를 조용히 지키는 이들은 한성옥씨와 같은 말투를 쓰는 탈북자들이었다. 허광일 북한민주화위원회 대표는 지친 표정이었다. 분향소를 만든 직후부터 밤을 새가며 자리를 지킨 터였다. 밤새 시청 직원이나 누군가가 분향소를 철거할까봐 자리를 뜰 수 없다고 했다.
   
   최미란(가명·43)씨도 그곳에 있었다. 분향소가 만들어지고 3일간 매일 경기도 부천에서 분향소로 출퇴근을 했다. 이날은 밤을 샐 작정이었다. 최씨는 혼자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싱글맘 탈북자다. “내가 한성옥씨보다 한 살이 많고, 우리 아들이 죽은 성옥씨의 아들보다 한 살이 많다. 남 얘기 같지 않아서…. 하룻밤이라도 함께 있어줘야 할 것 같아서 왔다.” 한씨 모자를 모르는데 왜 매일 왔냐고 묻자 나온 대답이다. 최씨 옆엔 김정아 통일맘연합 대표가 있었다. 김 대표 또한 인생의 한 부분을 고인과 공유하는 사이다. 한씨처럼 혼자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매매혼을 해야 했고, 공안을 피해 한국에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한씨와 비슷한 시기에 하나원에 입소했다.
   
   
   중국서 매매혼, 동병상련 탈북 여성들
   
   아들과 함께 숨진 한씨는 한국에서 10년을 살았다. 그의 10년이 어땠는지 알아내는 건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하다. 어려운 이유는 최근 몇 년간 한씨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나눈 지인을 찾기 힘들어서다. 쉬운 이유는 한씨와 거의 유사한 행로를 걷고 있는 탈북 여성들이 많아서다. 올해 6월 기준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는 총 3만3022명이다. 이 중 72%인 2만3786명이 여성이다. 여성 중 많은 수가 중국을 통해 입국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
   
   여기서부터 이들의 인생이 크게 뒤틀리기 시작한다.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도망자 신분이기 때문에 매매혼이나 납치 등 성범죄와 인신매매 범죄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공안에 발각되면 북으로 다시 끌려간다. 동네 지리와 중국어에 익숙해지기 전까진 매매혼이라도 차라리 중국인의 집에 숨어 있는 편이 나을 수 있다. 그 이후는 여러 행로로 나뉜다. 중국인 남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그럭저럭 사는 여성도 있다. 운이 좋은 경우다. 중국인 남편이 다시 다른 중국인에게 팔아넘기는 경우도 있다. 공안에 적발돼 북송되기도 한다. 중국의 어떤 지역에서는 탈북 여성이 임신하면 공안이 강제로 데려다 낙태를 시키기도 한다. 김정아 통일맘연합 대표가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복수의 탈북 여성에게 확보한 증언들에 따르면 그렇다.
   
   한씨 역시 북한을 탈출한 후 중국에서 조선족 남성 김모씨와 결혼했다. 아들을 낳고 살다 2009년 태국을 거쳐 한국에 입국했다. 한씨를 데려온 게 바로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다. 김 대표는 2005년부터 탈북자를 중국 등지에서 한국으로 데려오는 일을 하고 있다. 2009년 입국, 하나원 133기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 한씨는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남한 남성과 일정 기간 교제도 했다는 증언이 있다. 그러나 한씨는 중국에 두고 온 아들을 잊지 못했다. 결국 조선족 남편과 아들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남편을 한국에 데려오겠다고 했을 때 김용화 회장은 말렸다고 한다. “중국 남성과의 결혼 생활이 좋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으니 말렸다. 그런데 피붙이 아들을 잊지 못해하더라.”
   
   남한에 온 남편은 통영의 조선소에 취직했다. 남편과 한국에서 함께 지내던 중 둘째 아이가 생겼다. 남편은 ‘남한 남자의 아이가 아니냐’며 의심했다고 한다. 임신 중인 한씨를 상습적으로 구타했다. 아이는 병을 안고 태어났다. 뇌전증, 흔히 간질이라 불리는 병이었다. 조선업계에 불황이 찾아왔다. 남편은 해고당했다. 남편은 원래 한국으로 귀화하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국적 취득을 위한 심사에서 떨어졌다.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면 필기시험과 면접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한국인과 혼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 필기시험은 면제받는다. 남편 김씨는 면접에서 떨어진 경우다. ‘되는 일이 없다, 중국으로 돌아가겠다.’ 이들 가족은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중국으로 다시 갔다.
   
   
   10만원씩 받던 아동수당도 끊겨
   
   다시 시작된 한씨의 중국 생활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지난해 9월 한씨는 아픈 둘째 아들 동진이만 데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남편과는 이혼을 했다. 동진이는 평소에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는 등 경련과 발작이 심했다고 한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한씨는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아동수당 10만원과 양육수당 10만원 등 총 20만원이 한씨 모자의 생명줄이었다. 한씨가 기댈 사람은 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중국에서 구출해준 김용화 회장. 지난해 말 김 회장은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어진 한씨의 다급한 상황을 관악구청 복지 담당자에게 알렸다. 이 과정에서 고성이 오갔고 관악구청 직원은 김 회장에게 “나를 협박하느냐, 통화 내용을 녹음한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구청 직원과의 대화는 한씨에 대한 지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성과 없이 끝났다.
   
   이때부터 한씨는 한국 사회에 체념하기 시작한 듯하다. 김 회장의 말이다. “내가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구출하는 일을 하니, 탈북자들은 내가 대단히 힘이 센 사람인 줄 안다. 그런데 내가 구청에 전화했는데도 안 되는 걸 보고 절망한 것 같다.”
   
   김 회장의 말이 맞는지 관악구청에 확인했다. 복지와 관련해 방문상담을 하면 기록을 해놓는데, 기록상으로 한씨는 지난해 12월 봉천동 주민센터를 찾았다고 한다. 이때 아동수당을 수령하는 계좌를 변경했다고 한다. 김 회장이 관악구청 복지정책과나 생활복지과 직원과 통화를 했는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관악구청 관계자가 답했다. 참고로 관악구청 복지정책과에서는 40명이 일하고 생활복지과엔 33명이 일한다. 복지 관련 구청 공무원이 73명이란 얘기다. 관악구에 거주하는 탈북자는 총 360명이다.
   
   한 달여 뒤 한씨는 다시 주민센터를 찾았다. 올해 1월이었다. 협의이혼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 관악구 측에선 한씨와 김 회장이 어떤 문의를 했는지 확인해줄 수 없다고 하지만, 한씨가 협의이혼 서류를 제출한 사실로 미뤄 ‘기초생활수급을 받으려면 남편과 이혼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주민센터 측에서 받은 듯하다. 하지만 한씨는 구체적인 기초생활수급자 신청 방법은 안내를 받지 못했다.
   
   올 2월 마지막 아동수당 10만원이 한씨의 통장에 들어왔다. 동진이는 3월에 만 6세가 됐다. 아동수당은 아이가 만 6세가 되는 생일 직전 달까지만 나온다. 지난 3월부터 모자는 아동수당은 끊긴 채 양육수당 10만원으로 버텨야 했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동진이가 몇 달만 늦게, 10월에 태어났더라면 이들 모자는 어쩌면 지금 살아있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복지부는 아동수당을 기존의 만 6세 미만에서 만 7세 미만 아동에까지 확대 지급하기로 했는데 첫 시행이 올 9월이다.
   
   3월부터 모자는 한 달 10만원으로 생활했다. 10만원으로는 1300원짜리 봉지라면을 76봉지 살 수 있다. 한씨와 아들이 집안에만 머무르며 하루에 라면 두세 봉지를 나눠 먹으며 살아야 버틸 수 있는 돈이란 얘기다.
   
   관악구청에 따르면 올 4월 복지 담당자가 모자의 집을 한 번 방문했다고 한다. 문은 잠긴 채 열리지 않았다. 5월 한씨는 은행을 찾아 계좌에 남아 있는 전액 3838원을 인출했다. 그 돈으로 한씨는 어떤 음식을 샀을까.
   
   7월 31일 이들이 살던 임대아파트에 누수현상이 있어 수도 관계자가 아파트를 찾았다. 문은 잠겨 있었고 집 안에서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의 신고로 이들 모자는 세상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올해 7월엔 서울 기준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날이 15일 있었다. 경찰은 두 달 전인 5월경에 두 모자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집안에 남아 있는 음식물은 고춧가루뿐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대북 기조 따라 달라지는 탈북자 지원
   
   지난 8월 21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긴급 현안점검 간담회가 열렸다. 남북하나재단, 보건복지부, 통일부, 서울시의 담당자들과 탈북자 단체장들, 개인적으로 참석한 탈북자들로 국회 간담회실이 꽉 찼다. 한씨 모자와 같은 비극적인 일이 왜 일어났을까 구조적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이 마련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부처별 설명을 종합한 결과 한씨의 경우 결국 지난해 말과 올해 초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 결정적 계기인 걸로 이야기가 모아졌다. 이때 주민센터의 공무원은 모자의 수입이 0원이라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긴급생계지원 자금 신청 절차를 안내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하나재단의 전연숙 기획조정부장은 “주민센터나 구청 직원들이 어려운 처지의 탈북자들이 어떤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안내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작성해 배포하겠다”고 답했다.
   
   강동완 동아대 부산하나센터 교수는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짚었다. 정부의 탈북자 정착지원제도의 문제점이다. 탈북자 정착지원은 기본적으로 통일부의 소관업무로 되어 있다. 탈북자가 처음 남한에 들어와 적응교육을 받는 기관이 바로 하나원이다. 하나원을 나온 후엔 남북하나재단에서 이들을 지원하는 게 탈북자 정착지원의 기본 뼈대다. 하나원과 남북하나재단 모두 통일부 정착지원과에서 관할한다. 통일부가 어떤 조직인가. 통일부 홈페이지를 보면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인도지원에 관한 정책의 수립, 북한정세 분석, 통일교육·홍보,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조직으로 스스로를 정의했다. 북한을 연구하고 대북정책을 수립하는 조직에 가깝단 얘기다. 어쩔 수 없이 정부의 대북 기조에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7월 8일 하나원은 개소 20주년을 맞았다. 조촐하게 열린 20주년 행사엔 통일부 장·차관 누구도 참석하지 않았다. 현장의 탈북자들도 정부의 대북 기조에 따라 탈북자 지원 사업이 크게 좌우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탈북자 정착지원 업무는 기본적으로 복지정책의 성격을 띤다. 실제 남북하나재단에서 하는 사업의 상당부분이 복지 성격의 지원 사업이다. 정책 지휘 기관과 실행 기관이 전혀 다른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는 셈이다. 게다가 통일부가 탈북자 지원 업무를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으니 통일부의 눈에 띄지 않는 어려운 처지의 탈북자는 곧장 복지 사각지대로 몰린다.
   
   한씨 모자의 죽음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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