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심층 분석]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586’의 전략
  • kakao 플러스친구facebooktwiteryoutube
  • 검색
  1. 사회/르포
[2576호] 2019.09.30
관련 연재물

[심층 분석]불평등을 재생산하는 ‘586’의 전략

▲ 1980년 5월 대학생 학원사태 당시 서울대 시위 장면. photo 조선일보 DB
1960년대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에 진학했던 ‘386세대’의 대다수가 이제 50대가 됐다. ‘586세대’라 불리는 이 세대를 지금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세대’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분야를 보더라도 586세대가 눈에 띈다.
   
   원래도 한국에서는 50대가 경제적으로 가장 힘 있는 세대다. 연공서열 체계가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의 책 ‘불평등의 세대’를 참고해 설명해보자. 이철승 교수는 지난 20년간 100대 기업 임원진 9만3000여명의 연령대를 분석했다. 그간 한국 기업에서 이사진의 대다수는 50대였다. 50대는 전체 이사진의 60% 정도의 비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기업을 이끌어나갔다. 일례로 1990년대 후반 50대였던 1945~1955년생의 비중은 전체 이사진의 62%였다.(‘불평등의 세대’ 106쪽)
   
   60%라는 숫자가 깨진 것은 2010년대 들어서의 일이다. 그러니까 1960년대생이 50대가 되고 나서 50대의 비중은 급격히 늘어났다. 이 교수가 조사해보니 2010년대 후반, 50대 이사진의 비중은 전체의 72%나 됐다. 50대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진 것이다.
   
   정치적으로 봐도 586세대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2016년 제20대 총선 당시 당선된 1960년대생, 586세대는 전체 당선자의 44%나 됐다. 이미 586세대는 이전부터 정치 권력에 적극적으로 진입했었다. 2012년 제19대 총선 당시 1960년대생 당선자는 100명으로 전체 당선자의 33.3%였다.
   
   여기까지만 두고 보면 586세대가 다른 어떤 세대보다 지배적으로 한국 사회를 장악하고 있다는 정도의 주장이 나올 법하다. 실제로도 그렇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숫자 이면에 더 중요한 사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러 사회학자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586세대에게는 ‘책임’이 있다. 586세대는 현재의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를 만들었다. 그냥 만들어내기만 한 것이 아니다. 586세대는 이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10년 후배보다 586의 소득증가율 두 배
   
   먼저 이철승 교수의 책 ‘불평등의 세대’에 기반해 586세대에 대해 알아보자. 이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586세대가 다른 세대와 가장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는 점은 바로 능동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386세대 이전의 ‘산업화 세대’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다. 급격히 변하는 경제적 환경에 적응하면서 경쟁적이고 위계적인 정체성이 생겼다. 그러나 586세대는 독재정권과 빈곤에 맞서 직접 스스로를 조직해 싸워나가며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정체성을 만들었다.
   
   능동적인 세대로서 586세대의 가장 큰 자산은 네트워크다. 학연·혈연·지연으로 엮인 네트워크보다 강력한 것이다. 586세대의 네트워크에는 같은 경험과 이념을 공유한, 끈끈한 ‘연대의 경험’이 있다.
   
   
   386세대는 마냥 기다리지 않았다. 산업화 세대를 아래에서 치받으며 20대 때부터 스스로를 조직화했다. 이들은 20대에 이미 권위주의 정권의 물리적 폭압에 맞설 수 있는 전위 조직과 대중 조직을 건설했다. 이 ‘조직화’의 경험과 그 결과로 남은 네트워크가 이 세대의 최대 자산이다. (39쪽)
   
   
   586세대가 한국 사회의 주류가 된 것에는 시대적 흐름도 한몫을 했다. 586세대가 추구했던 이념과는 다른 ‘세계화’ ‘시장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는 되레 586세대를 사회 주류로 부상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세계화와 민주화는 산업화 세대의 ‘정당성’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세계화’가 산업화 세대의 성장주의와 연공에 바탕을 둔 위계 구조에 균열을 일으켰다면, ‘민주화’는 산업화 세대가 구축해온 국가와 기업 간의 유착 관계(협력·부패)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81쪽)
   
   
   1997년 IMF 외환위기는 첫 번째 기회였다. 당시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인적 쇄신 흐름 속에서 산업화 세대는 현장에서 퇴진했다. 금융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도입된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는 한참 동안 586세대를 독점적인 세대로 만들었다. 비정규직이나 파견직 같은 유연한 고용 형태가 도입되었다. 이미 정규직으로 기업에 자리 잡고 있던 386세대에게 비정규직이니 파견직 같은 불안정한 고용 형태는 남의 일이었다. 이철승 교수는 이를 두고 ‘차별적 질서’라고 표현했다. 이 차별적 질서는 “자본과 386세대 (대기업) 노동조합 리더들 간의 ‘의도하지 않은 공모’”(94쪽)를 통해 386세대에는 기득권을, 그 아래 세대에는 불안정함을 주었다.
   
   586세대의 경제적·정치적 성장은 함께 이뤄졌다. 이철승 교수는 “386세대의 선두주자들은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기업과 정당에서 수뇌부로 부상했다”고 설명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시민사회가 권력으로 진입하기 시작하면서 586 네트워크는 정치권 곳곳에 자리 잡았다. 2000년대 초반의 ‘40대 기수론’은 대세처럼 보였다. ‘낡은’ 3김(金)이 물러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필두로 한 젊은 진보 정치인들이 대거 여의도로 몰려들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부상한 586세대의 지배적인 위치는 20년이 지난 지금 절정에 달하고 있다. 이들이 누린 과실은 다른 세대, 특히 아래 세대가 미처 누리지 못한 것이다. 단적인 예로 소득 증가율을 살펴보자. 586세대의 막내인 1969년생이 30대에 접어들었을 때, 그러니까 1999년의 30대 도시근로자의 월평균소득은 191만원이었다. 10년 뒤 2009년, 40대가 된 586세대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은 390만원으로 늘었다. 소득증가율은 104.2%, 소득이 두 배 넘게 늘었다.
   
   반면 1970년대생이 30대가 된 2009년 30대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은 362만원이었다. 40대가 된 1970년대생들은 2019년에 월평균 557만원을 번다. 소득증가율은 53.9%에 불과하다. 10년 선배들의 증가율이 반토막 난 셈이다. 같은 시기 586세대의 월평균소득은 597만원으로 1970년대생과 비슷한 성장률을 경험했다.
   
   이 숫자들을 두고 보자면, 586세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파른 경제성장의 과실을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토막 난 소득 증가율은 586세대와 그 아래 세대가 누리는 ‘성장의 기쁨’이 다르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똑같이 사회생활을 하더라도 586세대와 그 아래 세대가 누리는 것은 다르다. 586세대는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정치와 경제 권력을 장악하면서 한국형 불평등 구조를 만들거나 최소한 방관했다.
   
   
   데이터는 ‘우리도 다 겪었으니 인내하라’ ‘세대 갈등은 위험하다’라는 위 세대의 다독임과 우려 섞인 충고가 상당 부분 ‘거짓’임을 폭로한다. 그 다독임은, 그들이 겪은 젊은 시절은 오늘의 청년 세대가 겪고 있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시대였다는 점에서, 또한 인내한다고 해서 좋은 시절이 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에서 이중의 거짓이다. (133쪽)
   
   

   586세대는 무엇을 상속하고 있나
   
   586세대는 사회를 장악하면서 자원을 불균등하게 나눠 가졌다. 문제는 586세대가 가진 사회적·경제적 자원들이 586세대에서만 소비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상위 계층은 상속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대개는 소득을 상속하는 것보다 자산을 상속하는 일이 쉽기 때문에 부동산 같은 자산을 상속하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이철승 교수가 논문 ‘세대 간 자산 이전과 세대 내 불평등의 증대’ 등에서 연구해온 바로는 30~40대 고도성장기를 겪었던 산업화 세대, 즉 1930년대 출생한 현재의 노인 세대들은 성공적으로 자산을 상속해왔다. 1950~1960년대 베이비부머는 물론 1970~1980년대 손자 세대에까지 자산이 상속되어 노력 하나 없이도 충분한 자산을 꾸린 청년들이 생겨난 것이다.
   
   586세대의 대다수는 아직 현역에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미 586세대는 자산을 상속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586세대가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대개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586세대의 자녀 세대인 20대, 밀레니얼 세대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은 꽤나 암울하다. 2010년 이전만 해도 7% 안팎에 머물던 20대 청년 실업률은 2014년부터 9%를 넘어 10%에 근접할 정도로 치솟았다. 밀레니얼 세대가 대학을 마치고 졸업할 무렵부터 시작된 취업난이다. 사회적 자원을 독점하게 된 586세대는 이런 자녀 세대에게 ‘사회적 상속’을 해줄 수 있다. 이전 세대처럼 실물자산으로 상속하기 이전에 사회적·문화적 지위를 이전시켜 주는 것이다.
   
   동그라미재단에서 발표한 ‘기회불평등 국민인식조사 보고서’ 내용을 보면 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20대 청년들 중 외국 방문 경험이 있는 학생은 가구소득이 많아질수록 늘어났다. 200만원 이하 가구소득 배경의 청년 35% 정도만이 외국 방문 경험이 있는 데 반해 600만원 이상 가구소득 배경의 청년들은 60%가 넘게 외국을 방문했다. 사회 계층이 높을수록 단체생활에 참여하거나 리더의 위치에 서본 경험도 늘어났다. 하위 계층의 청년 34%만이 단체생활을 해봤다고 응답했지만 상층에서는 45.8%로 크게 늘었다.
   
   몇 년 전부터 만들어진 ‘금수저’ ‘흙수저’ 구분법에 의한 수저론은 산업화 세대의 실물자산 상속보다 586세대의 사회적 상속을 비판하며 등장한 것이다. 무엇을 금수저라고 정의할 것인지는 때에 따라 다르지만 ‘남들보다 조금 더 쉽게’ 상위 계층에 진입할 수 있다는 특성은 항상 포함된다. 무엇이 금수저의 인생을 ‘남들보다 더 쉽게’ 만드는지 추론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단순히 부모의 재력만 갖춰져서는 안 된다. 예전보다 더욱 복합적인 사회에서 출발점을 당길 수 있도록 사회·문화적 자산을 전승할 만한 지위를 갖추고 있어야 금수저가 된다.
   
   최근 1~2년 사이 연이어 불거지는 입시비리·채용비리 사건들은 지위를 갖춘 586세대가 어떻게 사회적인 상속을 이행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586세대의 입시·채용비리 사건들을 살펴보면 다른 무엇보다 ‘가족’이 586세대의 가치 중 앞서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입시·채용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조국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자녀의 채용비리 사건으로 재판 중인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등은 공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만큼이나 자녀의 지위 향상에 신경써왔다.
   
   
   언어를 빼앗아 장악하는 586세대
   
   주목할 만한 것은 586세대가 불평등한 사회를 방조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586세대는 이 세대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언어를 유연하게 활용하면서 자신들의 지위와 불평등한 사회를 공고하게 만들었다.
   
   유계숙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가 가족상담연구센터 양다연·정백 연구원과 함께 연구한 내용을 살펴보자. 이들은 서울 시내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생들을 상대로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수저’ 계급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들 중 본인의 계급을 흙수저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 단 2.3%에 불과했다. 대다수는 자신을 동수저(36.7%) 내지는 은수저(34.7%)로 인식하고 있었다. 흔히 수저론을 이분법적으로, 금수저와 흙수저로만 나눠 활용하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그 어느 수저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수저론은 금수저와 흙수저로만 세상을 구분할까. 왜, 누가 그렇게 하고 있을까. 해답은 조국 장관이 취임 전 가졌던 기자간담회에서 내놓은 답변에 있다. 그는 ‘자신이 어느 수저에 속한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통상적인 기준으로 금수저가 맞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흙수저 출신이 법무부 장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조 장관의 발언처럼 586세대 정치인들은 금수저·흙수저 용어를 자유롭게 활용한다. ‘흙수저가 금수저가 될 수 있는 세상’ 같은 구호는 마치 사회의 진보와 개혁을 담보하는 희망적인 언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들이 인식하듯이 ‘계급’은 금·흙수저로만 나뉘지 않는다. 단지 편하게 구분 짓기 위해 금수저 이외의 다른 계급을 흙수저로 지칭해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헬조선’이나 ‘N포세대’ 같은 언어도 마찬가지다. 이 용어가 생겨난 이후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세대가 바로 586세대다. 이들은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를 인정한다. 도리어 사회의 부조리함을 먼저 소리 높여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활용하는 단어가 바로 저항적인 언어다.
   
   ‘헬조선’은 맨 처음 ‘꼰대’가 만든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나온 단어다. 20대 청년들에게 꼰대는 바로 사회·경제 지위를 독점하고 있는 50대, 586세대다. 586세대에 저항하기 위해 풍자적으로 만들어낸 이 단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세대가 586세대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재계와 학계에서도 청년들의 ‘헬조선’ 의식을 탈피하기 위한 방안을 쏟아냈다.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급격히 힘을 잃어버린 이유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저항은 586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조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20대 청년들은 행동하는 대신에 담론을 형성하고 공유하면서 불평등한 사회에 저항한다. 그런데 이 단어들이 생겨나자마자 권력 집단은 이를 빼앗아가 무력화시킨다. 그리고 때로는 단어를 통해서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인식시킬 때도 있다.
   
   유계숙 교수와 양다연·정백 연구원의 연구에서 봐도 ‘수저 계급의식’은 행복감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 단지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오기는 하지만 삶의 만족도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586세대가 수저론을 사용할 때 수저는 곧 삶의 만족도와 의지를 모두 떨어뜨리는 절대적 기준처럼 여겨진다. 맨 처음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생겨났던 단어가 역설적으로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화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학계를 중심으로 586세대 퇴진론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른다. 다만 586세대 퇴진론은 이전의 ‘세대 갈등’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대립 때문에 퇴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586세대가 만들어놓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퇴진론이 언급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586세대가 지금의 독점적인 지위를 버리고 세대 교체를 이루며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 질지는 의문이다. 586세대가 사회를 장악하고 난 뒤인 이제야 586 책임론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586세대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이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지 논의를 시작할 때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