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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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3일 류제승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예비역 육군중장)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육사 35기인 그는 제11기계화보병사단장, 국방부 정책기획관, 제8군단장, 육군교육사령관 등을 역임했고 중장 전역 후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으로 한·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합의, 주한미군 사드(THAAD) 배치, 지소미아 체결 등 굵직한 국방 현안들을 처리했다. 그에게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등 안보 현안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문제 해법으로 ‘새로운 계산법(New Method)’이란 걸 내놓았다. 북한이 고철 수준인 영변 핵시설 폐기를 대가로 대북 제재를 해제해 달라는 요구를 미국이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아닐까. “향후 미·북 정상회담은 ‘빅딜’보다 ‘스몰딜’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생산할 ‘미래 핵’은 우선 동결하고, ‘과거와 현재의 핵’은 다음 단계에서 해결하자는 것이다.”

류 부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해임하면서 ‘리비아식 해법(선 비핵화 후 보상)’을 버리고 북핵 문제를 스몰딜로 가져가려 할 가능성이 크다”며 “그렇게 된다면 북한은 시간을 끌면서 핵보유국의 지위를 굳힐 것이고, 우리가 원하는 궁극적 핵 폐기는 물 건너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지소미아 파기 결정 이후 한·미 관계가 껄끄러워진 것 같다. “문재인 정부의 결정이 한·미 동맹 균열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지역적 차원에서, 세계적 차원에서 지소미아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소미아 폐기가 국익을 위한 결정이었다거나, 폐기를 계기로 한·미 동맹이 더 공고해질 것이라는 청와대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 지소미아 파기는 11월 23일부터 적용되는데 정부가 파기 통보한 것을 되돌릴 수 있을까. “지금까지 미국의 반응을 보면 지소미아 파기 선언을 되돌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으로선 일본이 수출규제를 풀어야 명분이 생긴다. 그동안 미국의 중재역할은 눈에 띄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지소미아 복귀와 일본의 반대급부 관련 명분을 만드는 데 중재역할을 해야 한다.”

- 한·미·일 정보공유는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TISA·티사)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하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주장인데, 실제 그런가.<2014년 류제승 당시 국방부 정책실장은 마크 리퍼트 펜타곤 아태보안담당 차관보(전 주한 미대사), 도쿠치 히데시(德地秀士) 방위성 방위정책국장(전 방위성 방위심의관)과 함께 티사에 서명했다.> “논리적 모순이 있다고 본다. 지소미아는 국제법적 구속력을 가진 국가 간의 약속이다. 이에 비해 티사는 국제법적 효력도 없고, 서명 주체도 국방차관급에 불과하다. 한국이 국제법적 효력을 가진 지소미아는 파기해놓고 효력이 떨어지는 티사를 지키자고 하면 일본이 우리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한반도 유사시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과도 직접 교류할 수 있어야 한다. 한·일 간 정보교류의 통로인 지소미아를 없애고 티사만으로 충분하다는 건 안이한 판단이다.”

- 2016년 지소미아 협정 체결 당시 국방부 정책실장으로 실무를 담당했는데 지소미아의 전략적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나. “지소미아라는 도구를 통해 한·미뿐만 아니라 한·일 간에도 북한의 군사활동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미사일은 곡률(曲率) 특성상 정보의 음영(사각지대)이 발생한다. 올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10차례 있었고, 북한 미사일의 전 비행과정을 분석하려면 한·미뿐만 아니라 한·미·일 3자의 추적내용을 합쳐야 정보의 신뢰성이 높아진다. 북한 정보에 관한 한 미국 다음의 정보 강국이 일본이다. 평시 도발 행동이 전시까지 연결될 경우 지소미아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일본의 수출규제조치라는 경제 공세에 대해 안보 카드로 대응했다는 것은 경솔했다.”

- 지소미아 파기 선언 이후인 지난 9월 10일, 북한이 평안남도 개천 일대에서 동쪽으로 발사한 발사체에 대해 한국과 일본은 최대 비행고도와 속도, 탄착지점, 탄도미사일 여부 등에 대해 서로 다른 발표를 내보냈다. “북한 내부의 미사일 발사 징후는 정지궤도상에 위치한 미국의 적외선탐지 조기경보위성(DSP)이 담당한다. 발사한 모습은 한국의 탄도탄 조기경보레이더(그린파인) 또는 이지스함의 스파이 레이더가 담당하며, 착탄한 모습은 홋카이도(샤리키)와 도쿄 인근(교가미사키)의 사드 X-밴드 레이더가 담당한다. 이렇게 3개국의 정보를 조합해 북한 미사일 발사의 상세를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 그런 체제가 무너졌기 때문에 탐지에 혼선이 오는 것이다.”

- 지소미아 체결은 누가 먼저 제안했나.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 우리가 먼저 제안했다. 하지만 일본이 그닥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유야무야됐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다시 시동이 걸렸고, 그때는 일본이 적극적으로 나왔다. 우리의 정보수단이 강화되면서 정보공유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밀실 추진’ 논란이 일면서 서명식 50분을 남기고 체결이 무산됐다. 2014년부터 한·일 간 정보공유의 필요성을 계속 강조해온 미국을 사이에 끼고 한·일 3국이 티사를 통해 2년간 대북 정보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한국과 미국은 일본이 포함된 정보분석의 효율성을 깨닫게 됐다. 결국 2016년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도발이 잇따르자 한국과 일본은 지소미아를 체결하기로 한 것이다.”

- 지소미아가 파기되면 불가피하게 한·일 간 군사 교류도 영향을 받지 않을까. “물론이다. 과거 정부는 한·일 군사관계에서 정치·역사 문제와 군사 분야를 분리했다. 덕분에 한·일 간 군사관계가 진전될 수 있었다. 한·미·일 해군은 탐색구조훈련(SAREX)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실시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유야무야된 듯하다. 또 한·미·일 미사일 경보훈련도 하지 않고 있다. 2016년 12월 국방부 정책실장 재직 시 제8차 한·미·일 안보회의(DTT)에서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잠수함 추적 훈련을 만들었는데, 현 정부는 이것 역시 하지 않고 있다.”

류 부원장은 “북한 잠수함을 추적하는 훈련은 기본적으로 정보훈련이고, 유사시 북한 잠수함을 추적하려면 평소 꾸준한 추적 훈련을 통해 실전능력을 확보해 가야 한다”면서 “한·일 양국이 지소미아를 되살려 중국과 북한에 한·미·일 안보협력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고 했다.

- 트럼프 대통령은 얼토당토않은 산법(算法)으로 방위비 분담 협상에서 한국을 코너로 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주둔 직간접 비용이 50억달러나 든다는 건 도대체 어떤 근거를 갖고 말하는 것인가. “2018년 회계연도 예산서의 35억달러는 미군 2만8500여명의 인건비에다 ‘작전지원비(Operational Support)’까지 포함한 금액일 것 같다. 핵추진 항공모함이나 전략폭격기 같은 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 비용도 여기에 포함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독일과 일본과의 분담금 협상도 염두에 두고 ‘협상용’으로 50억달러를 말한 것 같다.”

한·미는 1991년부터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을 맺어 한국이 주한미군 유지비용 일부를 부담토록 하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은 △인건비(주한미군 한국인 고용원 임금) △군사건설비(미군기지 내 시설 건설) △군수지원비(용역 및 물자지원) 등 3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 현재 SMA 협상이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미국 측은 연간 1조원 수준인 우리의 방위비 분담금을 5배 이상 인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규모다. 사실 ‘방위비 분담금’이란 말보다 ‘특별지원금’이란 표현이 더 맞다. 트럼프 정부 이전 미 관계자들은 한국이 능력에 비례한 방위비 분담을 하고 있다는 공통된 인식이 있었다. 우리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 인상 상한을 제안하면서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면에서 필요한 미국산 무기 구매를 앞당기든지, 주한미군 기지 이전을 위한 환경정화비용을 우리가 부담하겠다는 카드를 활용할 가능성을 예상해 볼 수 있다.”

- 환경정화비용을 분담금 협상의 카드로 쓴다니? “80개의 미군기지 가운데 모두 반환되고 26개만 환경정화 문제로 남아 있다. 청와대가 26개 주한미군 기지의 조기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하자, 미국 측이 15개 기지는 이미 비워져 폐쇄돼 전환이 가능하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실은 한·미 간 환경정화비용 부담 문제 때문에 반환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환경정화비용은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일이다. 하지만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안에 비하면 얼마 안 되는 규모다. 주한미군 기지 이전 문제에서 우리가 전향적 조치를 한다면, 미국도 방위비 분담금 문제에서 상응하는 호응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미국이 올해부터 유엔군사령부의 ‘재활성화(revitalization) 프로그램’을 통해 그간 경계가 모호한 주한미군사·한미연합사·유엔사의 역할을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정부는 유엔사를 남북관계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유엔사가 남북관계를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 행동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뜻을 모아 유엔사 역할 강화를 위해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지원해야 한다.”

- 역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예비역 대장)들이 지난 8월 15일 청와대에 전작권 전환과 연합사 평택기지 이전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달성될 때까지 연기하자고 건의했다고 한다. “한미연합사령관과 가장 밀착된 위치에서 연합작전을 체험한 분들이 걱정하시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2019년 기본운용능력(IOC) 검증이 끝났고, 임기 내인 2022년까지 전작권 전환이 가능하다고 하고 있다. 한국군 핵심 군사능력,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국군의 초기 필수 대응능력,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지역 안보환경 관리 등 ‘3가지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사항을 갖춰가는 중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필요조건이 구비되더라도 충분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예컨대 북한이 핵동결을 하더라도 완전한 비핵화를 압박하기 위해서 미국과 핵공유 체제를 위한 포괄적 합의가 중요하다.”

류제승 부원장은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9·19 군사합의에 대해 ‘유엔군사령관으로선 (정전체제 유지에) 좋지만, 주한미군사령관으로서는 (위기관리나 전쟁수행에) 문제가 있다’고 한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며 “너무 성급한 합의였고 실제로는 손해 본 합의서가 체결됐다”고 평가했다.

특히 ‘쌍방은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 등에 대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해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명시한 합의서 1조1항을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군이 통상적·방어적 차원의 훈련을 해도 북측이 훈련의 성격을 호도하고 무력증강 문제를 지적할 빌미를 줬다는 것이다. 그는 “1조1항은 1992년 2월 발효된 ‘남북불가침합의서’ 체결 당시 북측이 집요하게 요구했으나,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인데 북한의 숙원을 풀어준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9·19 군사합의 체결 이후 북측이 물리적 피해를 주는 직접 도발은 하지 않았지만 최근 10차례에 걸쳐 발사한 신형무기들은 군사합의를 위반한 ‘적대행위’이고 ‘전략적 도발’이라고 규정하면서 “F-35A 스텔스기 도착 행사를 청주 제17전투비행단장(준장) 주관으로 축소해서 했는데, 우리가 당당하게 보일수록 북한은 추가도발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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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룡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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