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일대 전경. ⓒphoto 연합
서울 송파구 일대 전경. ⓒphoto 연합

지난해 말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 일대에 국내 최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 ‘송파 헬리오시티’가 준공됐다. 헬리오시티는 기존 가락시영 1·2차 아파트를 통합·재건축한 아파트 단지다. 2000년 안전진단을 시작으로 사업이 시작됐는데, 건설 당시 사업 구역이 여의도공원 면적(22만9539㎡)의 2배에 달해 ‘미니 신도시’로도 불렸다. 현재는 총 9510가구가 살 수 있는 아파트 84개동이 들어섰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지난해 12월부터 입주가 시작돼 현재는 99%가 입주를 완료했다. 남은 물량에 대한 문의, 매매도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곳 입주민은 단일 아파트 단지 거주민 수로는 최대 수준인 약 3만명에 이른다. 최근 송파구 내 폭발적인 인구 유입을 불러온 셈이다.

그래서일까. 헬리오시티 입주를 시작으로 송파구를 두 개의 자치구로 분리해야 한다는 이른바 ‘송파구 분구론’이 거론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송파구다. 지난해 기준 송파구 인구는 67만3507명으로 집계됐다. 13만5633명으로 인구가 가장 적은 중구와 비교해 5배 많은 셈이다. 헬리오시티 입주민 수 등을 감안하면 못 해도 내년 안으로 송파구 인구가 약 70만명에 달한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데, 정부는 70만명을 분구 검토 기준으로 두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행정구역 실무편람 등에 따르면 ‘기존 행정체제로는 행정수요를 감당하기 곤란하고 인구증가 등으로 확장추세를 보이는 지역’을 분구, 즉 자치구 신설 검토 대상 지역으로 삼고 있다. 인구를 기준으로 따지면 특별시는 70만명 이상, 광역시는 50만명 이상 돼야 한다. 행정구역 조정으로 자치구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건데, 송파구가 이 조건에 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송파구 주민들이 분구를 주장하는 이유는 지역 내 복지와 행정 서비스 악화 우려 등 때문이다. 올 2월에 입주한 헬리오시티 한 입주민은 “한번 나누긴 해야 한다. 인구도 많고 땅도 넓다 보니 구청의 관리나 지역 인프라 구축 등이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헬리오시티도 지어지긴 했지만 버스 노선 등이 충분히 갖춰지지 못하는 등 그 부작용이 곳곳에서 보인다”고 말했다. 가락동 한 부동산 관계자는 “한 자치구가 갖는 행정 능력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세밀한 복지 지원, 원활한 행정 서비스 등을 위해서라도 분구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년 분구 기준 70만명 도달

서울시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서울 전체 자치구 중 공무원 한 명이 담당해야 하는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송파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송파구는 공무원 한 명당 약 451명의 구민을 관리해야 한다. 이는 전체 서울시 자치구 공무원 한 명당 평균 담당 인구 197명보다 2배 높은 수준이다. 분구에 대한 송파구민들의 요구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현재 서울시 송파구 거여동과 장지동 일대 257만㎡ 부지엔 위례신도시가 조성 중이다. 위례신도시는 지난 2003년 정부가 서울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 ‘2기 신도시’ 건립 계획을 추진하면서 서울 송파구와 경기 하남시, 성남시 3개 지자체 부지 총 670여만㎡에 건립 중인 도시다. 송파구는 이 신도시에 1만6513가구를 설립해 총 4만2495명을 수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2017년 말 기준으로 입주가 완료된 곳은 전체 가구의 약 56%인 9277가구이다. 송파구 거여동 인근 한 부동산 관계자는 “5년 내로 위례신도시 입주가 모두 끝날 것으로 보이는데 그때 되면 인구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관측했다.

송파구 분구는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잠실동이 위치한 송파구 북부는 남부보다 상대적으로 더 발달돼 있다. 토지구획정리사업 등이 진행되던 1970년대 ‘잠실지구 종합개발 기본계획’이 수립, 추진되면서 잠실동이 강남 일대 개발의 중요 거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연구소장은 “지역 발달 중요 요인이 일자리인데 강남구에 70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있었고 그중 대다수가 삼성동에 몰렸다. 근데 강남구가 수용할 수 있는 인구는 50만명에 불과했다. 삼성동 옆에 바로 붙어 있는 잠실동이 그 나머지 인구를 수용하면서 급격히 발전했다. 잠실동을 제외한 송파구 뒤쪽은 9호선이 생기기 전까지 출퇴근 등이 어려워 활성화되기도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송파구 남부는 지난 2017년까지 ‘개미마을’로 불리던 대규모 판자촌이 남아 있을 정도로 개발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송파구청에 따르면, 현재 재건축사업을 추진 중인 단지가 총 33곳인데, 이들 단지 대부분이 남부에 쏠려 있다. 이제 막 재정비에 들어선 셈이지만 그만큼 오랜 기간 방치돼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민들 사이에선 “남부에 쓰레기 자원회수시설, 임대아파트 등까지 몰아넣으면서 아예 포기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때문에 송파구를 남북으로 분구해 남부 지역 인프라 확충 등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송파구 내 일부 공공기관들은 이미 분리, 신설이 이뤄지기도 했다. 지난 2013년 효율적인 세원 관리를 위해 추진된 잠실세무서 신설이 그 일례다. 기존까진 송파세무서가 지역 내 모든 세무 업무를 도맡았다. 현재 잠실세무서는 잠실·신천·풍납·삼전·방이·오금동을 관할하고 나머지는 송파세무서가 책임진다. 잠실세무서 관계자는 “인구 증가로 세수 규모가 커지다 보니 업무 분담을 위해 신설했다”고 설명했다.

송파구청의 경우 한때 이전·확장설이 제기돼 분구 필요성과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2008년 문정동에 법조타운이 들어서면서 그 지역에 공공청사 부지를 마련한 적이 있긴 했는데 현 청사 건물이 공공청사로 지정돼 있다 보니 신천동에서 문정동으로의 이전은 사실상 어려웠다”고 말했다.

송파구 안팎에선 송파구가 실제 분구할 경우 송파대로를 기준으로 동서로 분구되거나, 가락시장역 등을 기점으로 남북으로 분구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남북으로 분구하는 것은 송파구 북부와 남부의 지역 차이가 커 지역균형 측면에서 적절치 못하거니와 낙후된 남부를 떨어내는 모양새라는 점에서 힘들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김학렬 부동산연구소장은 “서초, 강남이 동서로 분구됐듯이 송파구도 분구된다면 남북보다는 동서로 나뉠 것으로 보인다”며 “관건은 발전된 잠실을 얼마만큼 서로 차지하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균형 잡힌 세원 마련을 위해서도 동서로 분구하는 방안에 힘이 실린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서울시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행정구역 확장과 강남 개발 등으로 이미 수차례 분구, 자치구 신설 등의 조치를 취한 바 있다. 1973년 기존 9개 자치구에서 2개의 자치구(도봉·관악)를 신설하고 1975~1980년 6개의 자치구(강남·강서·은평·강동·구로·동작)를 추가로 만들었다. 1988~1995년엔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립 등으로 8개 자치구(중랑·노원·양천·서초·송파·광진·강북·금천)를 신설, 지금의 25개 자치구 체제를 형성했다.

하지만 지금의 송파구 분구는 과거와 달리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분구 절차도 복잡해졌고 사회적 분위기도 변화하면서 1990년대처럼 분구를 하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보니 이를 추진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분구는 송파구의 결정 사안이 아니며, 인구 70만명도 아직 확정적으로 넘어서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정치권 계산도 분구 막아

행정구역 실무편람에 따르면, 분구는 자치구·관할시 의회가 수렴한 의견을 시에 전달하고 시가 행정안전부에 자치구 신설 검토를 요청해야 그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 행안부 승인 이후엔 이와 관련해 작성된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해야만 한다. 정치권의 분구 의지도 필요한 셈인데, 정치권이 나서기란 쉽지 않다. 선거구가 일반적으로 인구, 행정구역 등을 기준으로 획정되다 보니 분구 추진이 부담으로 작용해서다. 선거구가 변화하면 정당이나 해당 정치인은 정치 전략을 다시 짜고 입지를 새로 다져야 한다. 현재 송파구에는 3개의 선거구가 있다.

송파구를 지역구로 둔 한 의원실 관계자는 “분구는 정치적 도구로도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신중히 접근할 사안이다. 행정 효율성과 편의성 제고도 중요하지만 지역 규모 위축으로 공동체적 요소가 상실되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 우리 의원은 분구를 반대한다”고 귀띔했다. 자치구 분할에 따른 부동산 가격 변동과 이를 염려하는 주민들의 시선도 분구 추진 부담 요인 중 하나다. 만약 송파구가 분구하면 서울시에 26번째 자치구가 탄생하는 셈인데, 분구는 주민들 의사만큼이나 이해관계자들의 의지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자치구

평균 인구·면적 선진국보다 비대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는 ‘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시·도·특별자치도’와 ‘시·군·구’로 나뉘는 2층제 구조를 취한다. 여기서 시·군·구는 기초자치계층으로 볼 수 있는데, 한국은 이 계층의 평균 인구·면적 규모가 선진국과 비교해 상당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기초자치계층의 평균 인구·면적은 20.8만명·427.0㎢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영국은 13.5만명·555.3㎢, 일본은 3.9만명·117.0㎢, 이탈리아는 0.7만명·37.2㎢, 독일은 0.6만명·24.0㎢, 스페인은 0.5만명·62.5㎢, 프랑스는 0.2만명·14.8㎢에 불과했다. 활발한 자치구역 개편에 따른 결과다.

서종국 인천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자치구역이 탄력 있게 조정될 수 있어야 한다. 인구가 늘수록 지역을 디테일하게 들여다보기 힘들어진다. 일정한 행정관리 비용 투입을 통합 규모의 경제 실현도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연구소장은 “경기도권 1기 신도시 중 한 곳은 인구가 100만명이 넘었지만 지난 2016년 3개 자치구를 통합한 바 있다. 발전은 늦어졌고 신도시 위상은 낮아졌다. 그 이유를 돌이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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