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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층취재]  당신도 모르게 ‘혐오표현’을 내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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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78호] 20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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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당신도 모르게 ‘혐오표현’을 내뱉고 있다

▲ 지난 9월 28일 서울 서초구에서 열린 ‘검찰개혁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촛불 집회’의 모습.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최고의 작품에 수여되는 ‘황금사자상’을 탄 영화 ‘조커’의 감독 토드 필립스가 패션지 ‘베니티페어’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 논란을 일으켰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영화 ‘행오버’로 유명세를 탄 코미디 전문 감독이다. 그의 감독 프로필에 코미디가 아닌 진지한 영화가 올라간 것은 이번 영화 ‘조커’가 처음이다. 왜 갑자기 그는 코미디 장르를 벗어났을까.
   
   “요즘의 이 ‘깨어 있는 문화(woke culture)’ 속에서 웃기려고 노력해보라. 왜 더 이상 코미디가 먹히지 않는지 설명하는 기사들이 있었다. 내가 ‘왜’를 얘기하자면, 그건 코미디언들이 ‘제길, 이제 너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라면서 웃기기를 멈췄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토드 필립스 감독이 연출한 코미디 영화 ‘행오버’ 1편과 2편에는 동양인 남성의 신체를 비하하는 묘사가 등장한다. 10년 전에 개봉한 이 영화가 지금 나왔다면 아마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의 기준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논란에 휩싸였을지도 모른다. 아예 영화 제작 단계에서 이 같은 장면이 삭제됐을 수도 있다. 대중문화와 사회 전반에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인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다문화주의 운동에서 비롯됐다. 소수자·약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다문화주의는 정치적 올바름을 지켜야 한다는 ‘지침’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자면 차별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거나 차별적이지 않은 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1960년대 이전에만 하더라도 미국에서는 장애인을 가리킬 때 ‘핸디캡드(handicapped)’라는 단어를 썼다. ‘불리한’이라는 뜻의 ‘handicap’에서 나온 단어다. 그러나 이 단어가 장애인을 경쟁에서 뒤처진 집단으로 보는 차별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는 지적 때문에 요즘은 대부분 ‘디스에이블드(disabled)’라는 단어로 대체해 쓴다. 지금은 ‘disable’, 즉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able’, 즉 가능성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여성·성소수자·장애인·유색인종 등 거의 모든 소수자 집단을 아우르는 정치적 올바름은 서구사회, 특히 미국 사회의 모든 것을 바꿔놓고 있다. 혐오표현이란 무엇인지 치열하게 토론하고 단어를 바꿔 쓴다. 의식적으로 소수자를 배치한다.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게임 ‘오버워치’에는 주요 캐릭터가 레즈비언이라는 설정이 덧붙여지고 과체중인 아시안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인종과 성지향성·성별 같은 코드가 고루 섞이도록 하는 것이 요즘의 대중문화 분위기다.
   
   이런 정치적 올바름 분위기는 늘 논란을 낳는다.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부터, 정치적 올바름이란 ‘문화적 공포’를 불러올 뿐이라는 의견, 도리어 역차별을 불러오고 있다는 의견까지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대중문화에서만 벌어지는 토론이 아니다. 정치·사회·경제 모든 분야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정치인부터 대중문화인들까지 정치적 올바름 혹은 혐오표현에 대해 언급 한번 하지 않은 사람은 찾기 드물 정도다.
   
   
   공지영의 진중권 비난에 담긴 혐오표현들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단어조차 낯설어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 10월 7일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리던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장인 여상규 자유한국당 의원이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향해 “병신”이라는 욕설을 썼다. 곧바로 논란에 휩싸였지만 의외로 여 의원이 쓴 욕설 자체에 집중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병신’이라는 단어는 대표적인 혐오표현 중 하나다. 말뜻을 그대로 풀자면 병이 든 사람, 장애인을 가리키는 단어이지만 그 안에 비하하는 의미가 잔뜩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여상규 의원의 욕설 논란에 대한 온라인 뉴스 기사는 수백 건 쏟아졌지만 이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을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한국 사회는 표현에 민감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례다.
   
   대개 한국 사회에서는 ‘혐오표현’이 공격성을 드러내놓은 단어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혐오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어보자. 공지영 시인이 지난 9월 24일 정의당에 탈당계를 제출한 진중권 동양대 교수를 향해 페이스북에 비난의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이 글에는 여러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표현이 등장한다. ‘그의 요청으로 동양대에 강연도 갔었다/ 참 먼 시골학교였다’는 문장에서는 지방 대학에 대한 비하가 읽힌다. ‘실은 고생도 많았던 사람, 좋은 머리도 아닌지/ 그렇게 오래 머물며 박사도 못 땄다’는 문장에서 ‘좋지 않은 머리’ 때문에 ‘박사도 못 땄다’는 표현 역시 비하의 여지가 있다. 직접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혐오표현으로 지적받을 수 있는 표현은 많다. ‘시골’이라는 단어는 단어 자체로는 도시와 구분되는 지역을 뜻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분명히 비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 등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성적소수자, 장애인, 이주민을 칭하는 표현은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혐오의 의미를 담을 수 있다’. 그저 ‘아줌마’라고 부르더라도 비난의 의미를 담는다면 충분히 혐오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이 다문화가정 동급생을 향해 “다문화”라고 부른다는 증언이 곳곳에서 나오기도 한다. 원래 ‘다문화’는 객관적인 단어지만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혐오표현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지영 시인의 페이스북 글에서 지방 사립대를 ‘참 먼 시골학교’라고 표현한 것은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다. 지방 대학을 서울에서 먼 외진 곳으로 구별 지어 비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의식하지 못하는 혐오표현은 한국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결정장애’라는 신조어가 그렇다.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행동을 두고 ‘장애’라는 표현을 붙인 것이다. ‘못하는 것’을 곧 장애라고 표현한다는 점에서 장애에 대한 편견을 읽어낼 수 있는 단어다.
   
   

   ‘맘충’ ‘급식충’… 집단 혐오 만드는 ‘충’
   
   한국 사회의 혐오표현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보통 혐오 대상이 되는 소수자 집단이 아니라 ‘나 아닌 다른 모든’ 집단이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사전적으로 혐오표현이란 소수자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차별·혐오의 대상이 되는 소수자 집단에 차별·폭력 같은 행위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을 하는 것을 두고 혐오표현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혐오표현은 그 대상이 매우 광범위하다. 강희숙 조선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설명을 바탕으로 찾아보자.
   
   ‘-충’이라는 접미사는 대표적인 혐오표현 중 하나다. ‘맘충’ ‘급식충’ 같은 단어가 있다. ‘급식충’은 10대 청소년들을 일컫는 혐오표현이다. ‘급식이나 축낸다’는 의미가 내재된 표현이다. ‘맘충’은 맨처음 제멋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일컫는 단어였다가 아예 어린아이를 기르는 엄마 전체 집단을 아우르는 단어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단어의 문제점은 혐오의 대상이 아닌 대상에 혐오스러운 속성을 붙이고 집단으로 만들어 혐오의 대상으로 몰아붙인다는 점이다. 기성세대인 중년 남성을 지칭하는 혐오표현 ‘개저씨’나 ‘꼰대’가 그렇다. 보통 중년 남성은 사회의 주류로 정치·경제적 권력을 독점하는 집단이다. 바로 이 속성 때문에 중년 남성들은 꼰대나 개저씨로 매도된다. 서열 중심적이고 위계를 강조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습득해온 관습적이고 문화적인 특징이다. 그런데 보다 개인주의적으로 자라난 청년들에게 기성세대의 이런 특징은 ‘다름’이 아니라 ‘비난’의 대상이 된다.
   
   강희숙 교수는 이런 경향을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갈등 구조에서 찾기도 한다. 한국행정연구원의 ‘2018년 사회통합실태조사’를 보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갈등으로 인식되는 것은 ‘보수와 진보’의 갈등, 즉 이념 갈등이다. 빈곤층과 중·상층의 갈등, 즉 경제적 갈등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82.4%였는데 이념 갈등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보다 많은 87.0%였다. 남녀 갈등이 심각하다는 사람이 48.9%, 세대 갈등이 심각하다는 응답이 62.3%에 그친 것에 비춰보면 이념 갈등이 얼마나 심각하게 여겨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념 갈등의 특징은 이분법적이라는 것이다. 강희숙 교수는 ‘수구꼴통’과 ‘좌익빨갱이’로 딱 양분되는 사회를 두고 “전형적인 혐오사회”라고 표현했다. 혐오사회에서 혐오란 어떤 한 개인의 호오(好惡)에 따른 감정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형성되는 감정이다. 이러려면 기준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까. ‘나’라는 존재가 기준이 된다.
   
   여성에게 ‘김치녀’니 ‘김여사’ ‘맘충’ 같은 비하적인 혐오표현이 붙은 지 오래되었다. 최근에는 남성을 지칭하는 혐오표현도 다양하게 생겼다. ‘한남충’이 대표적으로 ‘개저씨’ 같은 단어도 있다. 세대 갈등도 사회문제인 만큼 혐오표현도 다양하다. ‘틀딱’이 대표적이고 ‘연금충’ 같은 단어도 있다. ‘지방대’라는 단어 자체는 말 그대로 서울이 아닌 지역에 있는 대학을 일컫는 말이지만 대개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아예 ‘-충’ 접미사를 붙여 ‘지방충’이라고 쓰이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그다지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는 종교에도 혐오표현이 있다. ‘개독교’ 같은 단어는 기독교, 특히 개신교 집단을 하나로 묶어 지칭하는 혐오표현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특징이 더 발견된다. 한국 사회의 혐오표현은 집단을 매도하는 형식으로 쓰인다. 이런 표현은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경상도와 전라도 간의 지역갈등이 그렇다. 한 개인의 특성을 지역 출신의 탓으로 매도해버리는 표현은 꾸준히 생겨났다. ‘개쌍도’니 ‘홍어’ 같은 표현은 한 집단을 매우 단순화해 혐오하는 방식으로 쓰여왔다.
   
   집단화시켜버리는 혐오표현은 최근 들어서 더욱 많이 나타난다. ‘흑형’이라는 신조어를 떠올려보자. 흑인 남성을 일컫는 이 단어는 다소 익살스러운 호명(呼名)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차별적인 혐오표현으로 볼 수 있다. 흑인 남성이라고 해서 모두가 신체적 조건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흑형’이라는 고정관념을 만들어버리면서 흑인 남성을 ‘우리’가 아닌 다른 집단으로 밀어내기 한다는 점에서 ‘흑형’은 혐오표현이다.
   
   이렇게 집단으로 매도하는 혐오표현은 이념 갈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보수와 진보는 양분될 수 없는 개념인데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념 지형을 인정하지 않는 혐오표현이 많다. 당장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지난 10월 3일 서울 광화문 광장의 구호를 읽어보자. ‘조국 사퇴’부터 ‘문재인 하야’까지 모인 사람들이 원하는 바와 외치는 구호는 다양했다. 그런데 이를 두고 하나의 ‘수구꼴통’ 집회로 치부하는 것은 혐오표현으로 볼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있었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 photo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외국의 혐오표현 규제법
   
   아직 어떤 것이 혐오표현이고 왜 그것을 사용하면 안 되는지 사회적 논의가 일어나기도 전에, 한국 사회에는 표현이 먼저 자리 잡아 버렸다.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는 표현을 제거하기도 전에 새로운 혐오표현이 덧대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혐오표현을 쓰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국을 벗어나 보면 외국에서는 혐오표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고, 나아가 규제에 대한 논의도 일어나고 있는 데 반해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논의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혐한(嫌韓) 분위기로 한국 사회의 눈총을 사고 있는 일본 사회에서도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법이 제정됐다. 2016년 5월에 일본 의회에서 채택된 ‘헤이트스피치 억제법’은 무엇이 헤이트스피치(혐오발언)인지를 규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는 법률이다. 그보다 앞서 일본 오사카시에서는 ‘헤이트스피치의 대처에 관한 조례’를 채택해 혐오발언을 할 경우에는 신상을 공개하도록 했다.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에서는 이보다 강력한 제재가 많다. 독일에서는 많은 논란 끝에 2017년 ‘네트워크 집행법’이 연방의회에서 통과됐다. 소셜네트워크 플랫폼들에 가짜뉴스나 혐오표현 같은 위법한 콘텐츠를 삭제할 의무를 지우는 법이다. 만약 제대로 의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도 부과된다. 이보다는 약하지만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무엇이 혐오표현이고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법률상으로 규정돼 있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혐오표현과 정치적 올바름의 논쟁이 한국 사회와 완전히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일본의 헤이트스피치의 주된 대상은 한국인이다. 미국의 정치적 올바름 논쟁이 주로 일어나는 영역은 대중문화다. 그러니까 한국 사회는 혐오표현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혐오사회에 살면서 외국의 혐오표현에 대한 논쟁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혐오표현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가 시작된 적도 없는데 벌써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닌 셈이다.
   
   다만 우리는 혐오표현과 관련된 심각성이 사회 전체에 번지고 있다는 사실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혐오표현 대응 관련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보고서’의 결과를 보자. 혐오표현을 접해봤다는 응답은 전체의 83.8%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혐오표현을 한 번이라도 사용해본 사람은 12.3%였다. 혐오표현이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의견도 96.3%에 달했다. 혐오표현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70.3%나 됐다. 이제 우리는 혐오표현에 대해 얘기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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