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서울 성동구에 개관한 ‘서울새활용플라자’ 전경.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2017년 9월 서울 성동구에 개관한 ‘서울새활용플라자’ 전경.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커피 찌꺼기로 탁자와 조명을 제작하고 폐자전거로 시계와 조명을 만든다. 버려진 청바지와 타이어는 가방으로 재탄생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버려진 페트병이 담요로 탈바꿈하기까지 한다.

버려진 자원에 새로운 아이디어, 디자인을 접목해 새 제품을 만드는 이른바 ‘업사이클(Upcycle)’의 사례들이다. 업사이클은 재활용을 의미하는 ‘리사이클(Recycle)’과 수준을 높인다는 의미의 ‘업(Up)’을 합친 말이다. 재활용품에 새 가치를 더해 완전히 다른 형태의 제품을 생산하는 활동을 일컫는다.

국내에서는 아직 업사이클에 대한 개념이 생소하지만, 미국·유럽 등 해외에선 이미 하나의 트렌드로 급부상 중이다. 아넥스, 에코이스트, 소닉페브릭, 프라이탁 등 유명 업사이클 관련 기업들이 적지 않으며, 시장성장률은 매년 가파른 추이를 보이고 있다. 프라이탁의 경우 1993년에 설립된 스위스법인으로 연간 약 600억원의 매출을 기록 중이다. 전 세계 350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하며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 한국 정부와 지자체도 업사이클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총 700여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업사이클 산업·문화지원 시설을 건립, 각종 새활용 교육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업계에서는 정부의 이런 지원을 달가워하지만은 않고 있다. 새활용 관련 정책, 제도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건물부터 올리는 ‘보여주기식 행정’만 이어간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업사이클 관련 시설의 방문객 수는 저조하며 입주 기업을 대상으로 한 지원도 미흡한 경우가 적지 않다. 환경부 내부에선 관련 정책 자료가 전무하고, 국비 지원은 구체적인 기준 없이 폐기물관리법 등에만 의거해 이뤄지고 있다. 2014년 국립국어원 결정에 따라 업사이클 대신 ‘새활용’을 표준어로 사용하고 있는데, 새활용에 대한 인지도부터 높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찾는 사람 없는 서울새활용플라자

현재 가장 큰 규모의 새활용 문화·산업지원 공간은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서울새활용플라자’다. 연면적 1만6530㎡에 지하2층~지상5층 규모로 3년여간의 건립기간을 걸쳐 2017년 9월에 개관했다. 주요 시설로는 새활용 전시장과 각종 새활용 체험·학습장, 입주 기업들을 위한 공방, 회의실 등을 두고 있다. 이곳 기업들의 사업은 다양하다. 고장난 우산으로 각종 생활용품을 제작하고, 다 쓴 LED칩을 촛불과 결합해 조명기구를 만들기도 한다. 우유팩을 활용해 교육용 키트를 만드는 곳도 있다. 생소한 제품들이긴 하지만 이들 판매량은 여느 스타트업 못지않다. 시설 곳곳엔 카페, 정원 등 시민들을 위한 휴식공간도 적지 않다. 서울새활용플라자 측은 “새활용 산업 육성, 문화 확산 등을 목표로 세계 최대의 업사이클링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라며 “입주 기업들 지원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새활용플라자는 올해로 건립 2주년을 맞이했다. 하지만 건립 취지, 규모와는 달리 시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월 15일 기자가 이곳을 직접 방문했을 당시에도 방문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1층 새활용 작품 등을 관람하던 30여명의 학생 단체가 전부였다. 2층에 위치한 친환경 및 새활용 제품 판매 공간, 체험장 등엔 플라자 직원만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2층 체험장 담당자는 “이곳은 일주일에 많으면 70여명, 적게는 20명 정도가 온다”고 말했다. 약 40여개의 새활용 기업들이 입주한 3~4층 공간도 썰렁하긴 마찬가지였다. 기업 관계자들만이 오갈 뿐이며, 제품 설명을 요청하는 시민은 손에 꼽혔다.

그러다 보니 입주 기업들이 느끼는 어려움도 적지 않다. A기업 관계자는 “입주 기업 회의에서 방문객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서울시청 등에서 진행할 행사를 여기서 하자는 의견을 건의하기도 했으나 여러 이유 등으로 무산됐다.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지만 정작 시민의 발길을 끌 만한 공간은 적다”고 말했다. 방문객 추이는 기업 홍보, 제품 판매 효과 등으로도 이어지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중요 요인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 서울새활용플라자 입장에서도 이 부분은 큰 고민거리이다.

그렇다고 새활용 산업 육성을 위한 기업 지원이 활발한 것도 아니다. B기업 대표는 “산업을 정말 육성한다면 기업들 제품 판매를 촉진할 수 있는 유통망이나 기존 기업과의 비즈니스 구축도 필요한데 이 부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개관에 맞춰 입주한 C기업 대표는 “현재 진행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다. 체험학습 한 번으로 새활용 관련 활동이 끝나는 식인데, 이 산업에 뛰어들 예비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입주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폐기물 자원이 플라자 차원에서 수집, 지원되고는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올해 5월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에 개관한 ‘경기도업사이클플라자’ 운영도 이와 비슷한 실정이다. 경기도업사이클플라자는 연면적 2660㎡에 지하1층~지상1층 규모로 서울새활용플라자보다는 작지만 새활용 전시·홍보관, 교육·체험실, 공방이 들어서는 등 그 형태는 동일하다. 경기도업사이클플라자 관계자 말에 따르면, 하루 평균 방문객은 100~200명에 불과하다. 이 중 일부가 카페 이용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플라자 공간을 관람, 이용하러 오는 사람은 얼마 안 된다. 10월 5일 오전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에도 플라자 내부 광장엔 직원들만 상주하고 있었으며, 내부 도서관은 문도 열지 않았다.

이곳에서 만난 D기업 대표는 “기업 유치에만 신경을 쓰고 그 외 산업 육성 등에 대해선 고민하지 않는다. 제품 전시, 시설 홍보 등 형식적인 것에만 치중하고 있다. 시설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인근 E기업 대표는 “후속 지원이 미비하다. 사실 이곳에 입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종 목표는 자생해서 나가는 것이다.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들 기업 관계자들은 취지는 공감하나 새활용에 대한 정의, 제품 기준 등도 명확히 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설 건립은 그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앞서의 D기업 대표는 “실제로 새활용 여부를 구별하기 어렵고 새활용 과정을 거쳤다 해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평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 보니 소비자들은 일반 제품 대신 새활용품을 구입하는 것을 망설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라고 지적했다. 새활용 제품, 기업에 대한 인증제도도 갖춰져 있지 않아, 인증을 얻은 제품 소비를 장려하는 등의 정책도 나올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시설 설립 이전에 관련 제도부터 우선적으로 정비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방문객이 없는 평일 서울새활용플라자(왼쪽), 경기도업사이클플라자(오른쪽)의 내부 모습.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성진 기자
방문객이 없는 평일 서울새활용플라자(왼쪽), 경기도업사이클플라자(오른쪽)의 내부 모습.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성진 기자

710억여원 들여 지자체 5곳에 시설 건립

현재 이런 새활용 산업·문화지원 시설은 최근 3년간 서울과 경기도, 인천, 순천, 대구 총 5곳에 완공된 상황이다. 각 지자체들이 이를 건립하는 데 든 총 사업비는 710억여원으로 국비 240억여원이 여기에 투입됐다. 지자체별로는 서울이 430억원(국비 100억원·시비 330억원), 대구 96억원(국비 50억원·시비 46억원), 경기도 90억원(국비 45억원·도비 45억원), 순천 47억원(국비 23.5억원·시비 23.5억원), 인천 50억원(국비 25억원·시비+구비 25억원)이다. 2019년 기준 이들 시설의 총 운영예산은 70억여원으로 서울새활용플라자가 가장 많은 예산인 48억원을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시설 활용은 미미하다는 점에서 혈세만 낭비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선 환경부 책임도 거론된다. 환경부는 새활용과 관련한 정책 논의 없이 시설 건립을 장려하면서 지자체와 일부 기업을 대상으로 국비만 지원하는 중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아직 새활용과 관련한 정책 자료는 없다. 그 개념을 명시한 자료 정도만 있다. 내부적으론 환경산업과 관련한 일자리창출 과제 중 하나로 언급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의 국비 지원은 ‘폐기물관리법’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외에 명확한 지원 기준은 없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환경부는 2010년대 초반 새활용 산업 동향 파악 등을 위해 관련 기업 50여개 대표를 불러 간담회를 진행한 후에는 별다른 소통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업사이클디자인협회 관계자는 “환경부 쪽 담당자가 계속 바뀌다 보니 실질적으로 업체들이 필요한 것들에 대해 건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1~2개월 전엔 환경부 담당자가 바뀌었는데 아직 얼굴도 보지 못했다”며 “우리가 계속 관련 의견을 건의하다 보니 새활용 산업 육성의 필요성은 인지하는 듯하나 구체적이거나 장기적 계획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 전문가들은 새활용을 앞으로 반드시 필요한 폐기물 처리 방안으로 꼽는다. 쓰레기는 지속해서 늘어나는데, 재활용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2차 오염까지 발생시켜서다. 이런 측면에서 새활용 관련 시설 설립 취지는 좋으나 새활용에 대한 시민들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 우선적으로 주력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재영 서울시립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새활용이 잘 확산되기 위해선 새 제품의 자원이 될 수 있도록 시민들이 쓰레기를 잘 버려야 하며, 동시에 그 가치와 효용성을 잘 인지해 이를 소비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새활용에 대한 필요성, 개념부터 먼저 알려야 한다”고 평가했다.

국내 새활용 산업은 사실상 걸음마 단계다. 향후 이들 시설이 새활용 산업 발전에 거점이 될지, 전시행정으로 남을지는 정부, 지자체 노력에 달린 셈이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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