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정문화축복 페스티벌’에 참석한 시민들이 태극기와 일장기를 동시에 흔들고 있다.
‘효정문화축복 페스티벌’에 참석한 시민들이 태극기와 일장기를 동시에 흔들고 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로 시작된 한·일 갈등이 100일이 넘어섰지만, 양 정부는 여전히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 10월 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임시국회 본회의 연설에서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다. 하지만 국제법에 근거해 국가와 국가 사이의 약속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싶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각국 시민단체와 종교계 등이 직접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서보겠다는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다.

청소년들이 한·일 화합을 염원하며 문화공연을 펼치고 있다.
청소년들이 한·일 화합을 염원하며 문화공연을 펼치고 있다.

누적 한·일 커플 1만여쌍

지난 10월 6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Aichi Sky Expo)에서 열린 대규모 민간 문화축제 ‘효정문화축복 페스티벌’에는 경색된 한·일 관계가 풀리기를 염원하는 4만여명의 일본 시민들이 모였다. 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주요 문화행사 등이 진행될 때마다 태극기와 일장기를 동시에 흔들며 환호를 보냈다. 최근 경색된 한·일 관계를 전혀 느끼기 어려웠다. 무대에 올랐던 정재계·종교계 주요 인사,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은 기조연설을 통해 한·일 화해 무드를 조성하기도 했다.

연단에 오른 한 일본 국회의원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국의 태도 등을 고려했을 때 한국과 일본은 동일한 동아시아 안전보장 환경에 놓여 있는데 점점 차가워지는 관계는 미래를 염려하게 만든다”며 “이때 이런 체전은 (양국 관계 회복에) 큰 의미가 있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에서 눈길을 끌었던 건 한국, 일본의 관계 개선을 염원하는 ‘피스로드(Peace Road)’ 종주 기념식이다. 피스로드 종주는 한·일, 일·한 국제결혼 가정에서 태어난 20대 청년 50명이 지난 9월 말 도쿄에서부터 나고야를 자전거로 횡단하며 한·일 화합을 염원한 캠페인이었다.

피스로드 종주단에 참여했던 한 20대 일본인 대학생은 “한국과 일본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이 사실에 너무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한·일 평화에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었다. 대학생이 돼 한국어를 공부한 후 한국 유학을 다녀왔고, 한·일 평화를 위한 좀 더 구체적인 일을 하고 싶어 이번 피스로드 종주에 참여하게 됐다. 앞으로도 한·일 화합 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걸 실천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소감 발표 이후 한국·일본 학생들은 한국 가요에 맞춰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가정연합) 관계자는 “이런 한·일, 일·한 부부와 그 자녀 등이 양국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국교 회복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가정연합의 경우 1970년대부터 한·일 국제 결혼식을 장려한 단체 중 한 곳으로 한·일 가정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이들은 이른바 ‘축복결혼식’을 통해 한·일 커플 1만여쌍을 만들었다. 가정연합 집계 기준, 현재 이 결혼식을 거쳐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부인은 7000여명,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 부인은 3000여명이다. 이들은 이번 축제에서 한·일 결혼에 더욱 앞장설 것을 밝히기도 했다.

효정문화축복 페스티벌보다 하루 앞서 ‘태평양문명권시대 한·미·일 협력 전망’을 주제로 진행된 ‘일본 서밋 및 지도자회의(Japan Summit and Leadership Conference)’ 분위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한·일·미 일부 인사들은 한·일 관계의 중요성 등을 언급했다.

가지쿠리 마사요시 천주평화연합 일본회장은 “인류사 전체 흐름에서 한국, 일본은 미국과 함께 하나가 되어 평화 문명을 전개해야 하는 중요 과제를 떠안고 있다”는 말로 한·일 관계를 진단하기도 했다. 뉴트 깅리치 전 미국 연방하원의장은 “세계 중심이 유럽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한 뒤 지금은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문명의 중심이 태평양 연안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점에서 태평양문명권을 생각할 때가 왔다. 한·일 관계가 돈독해져야 영구적인 평화가 있다. 과거 잘못을 극복하고 정치적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학자 가정연합 총재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photo 가정연합
한학자 가정연합 총재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photo 가정연합

한학자 총재 “잘못된 과거사에 용서 빌어야”

지난 10월 5일 일본 나고야캐슬호텔에서 진행된 선학평화상재단 기자간담회에선 종교계 주요 인사를 대상으로 한·일 갈등 관련 질의가 이어지기도 했다. 민주주의 확산, 인권신장 기여도 등을 기준으로 4회 선학평화상 수상자를 선정하던 자리였던 만큼 이목이 집중되던 상황이었다. 한학자 가정연합 총재는 이날 한 기자가 제기한 “현재 한국과 일본의 분위기는 엄중하며 한국의 경우 보수와 진보가 양분돼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금의 갈등 관계를 어떻게 보며, 그 해결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나”라는 질문에 “자국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니 양보라는 게 없고, 그러니 하나가 되지 못해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미 그는 ‘일본 서밋 및 지도자회의’에서 “현재 이 나라 위정자, 책임자들은 선조들이 저지른 잘못된 과거 역사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다. 사람이 달라져야 한다”며 소신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터였다.

도쿠노 에이지 가정연합 일본회장의 경우 한·일 관계를 냉정히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반드시 친관계에 있어야 한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민주주의 등의 사상·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나라가 몇 곳 없다. 최근 홍콩 사태 등으로 비춰본 중국의 가치관 등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이럴 때일수록 양국이 양보할 건 서로 양보하면서 지금의 상황을 지혜롭게 타개해 나가야 한다. 미안한 말일 수도 있지만 문재인 정부도 아베 정권에 어느 정도 양보하고, 아베 정권도 양보해야 한다는 말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민간 차원의 노력이 실제 양국의 관계 회복으로 이어질지 여부는 당분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 정부는 10월 22일 열리는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이낙연 국무총리를 참석시키기로 결정한 상태. 30년 만에 열리는 일본 국가행사에 한국 정부의 최고위급 인사가 참석하는 것인 만큼 양국 정부, 시민들의 관심은 크다. 이 총리와 아베 총리의 별도 회담 일정 등은 아직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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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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