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대표가 운영하는 루리웹의 사이트 소개글을 읽어보자.

‘루리웹(RULIWEB)은 비디오게이머의 비디오게이머에 의한 비디오게이머를 위한 보금자리를 만듦과 더불어 전 국민, 나아가 전 인류의 비디오게이머화를 지상과제로 하고 있습니다.’

루리웹은 지극히 취향 중심의 커뮤니티 사이트다. 게임, 애니메이션, 피규어, 영화, 전자기기 등 서브컬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낮지 않다. 맨 처음 루리웹에 접속하면 보이는 것이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에 대한 뉴스 기사다. 메인 메뉴는 플레이스테이션4(PS4), 엑스박스 원(XBOX one) 같은 콘솔 게임 관련 내용이고, 각종 게임 로고와 직접 그린 만화가 이어진다. 다시 말하자면, 루리웹은 취향에 맞는 사람들이 모여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다.

웹 분석 사이트 시밀러웹에 따르면 루리웹의 한 달 방문횟수는 7591만회에 달한다. 남성 이용자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상당수는 20대다. 커뮤니티 역사가 오래되었고 게임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30대 이상 남성 이용자의 비율도 꽤 높은 편이다.

원래 루리웹은 2000년 작은 규모의 개인 사이트에서 시작했지만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여러 포털사이트의 도메인을 빌리곤 했다. 가장 오래 연결되었던 곳은 다음(daum.net)으로 한동안은 ‘ruliweb.daum.net’이 사이트 주소일 때가 있었다. 지금은 서브컬처는 물론 일반 커뮤니티 사이트로도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가 됐다.

루리웹의 콘텐츠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굳이 회원가입을 할 필요가 없다. 로그인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거의 모든 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을 쓰고 댓글을 달 수 있는 것은 회원뿐이다. 회원가입은 어렵지 않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루리웹에 접근할 수 있는 셈이다.

루리웹은 각 분야별로 게시판을 가지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콘솔, PC, 애니메이션, 피규어 같은 분야마다 그에 대한 정보를 올릴 수 있는 유저 정보 게시판, 잡담할 수 있는 게시판이 따로 있다. 게임마다 게시판이 마련돼 있다. 게시판 종류가 수없이 많기 때문에 모든 게시판을 통달하는 이용자는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 대신 자신의 취향에 맞게 원하는 게시판을 골라 활동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대다수의 이용자가 찾는 잡담 게시판은 있다. 유머 게시판이 커뮤니티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데 여기에서 대부분 ‘많이 본 글/힛갤’에 올라가는 글이 등장한다. 시사 이슈와 관련된 언론 기사는 ‘사회/정치/경제 게시판’에서만 다룰 수 있다. 정치와 관련한 잡담은 정치유머 게시판에서 진행된다. 메뉴에서 보이는 게시판의 위치가 일반 ‘유머 게시판’보다 위쪽에 있다는 이유로 ‘북유게’라고 줄여 말하기도 한다.

꼭 서브컬처에 대한 게시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루리웹에서 가장 많은 이용자가 찾는 게시판 중 하나는 ‘음식 갤러리’다. 자신이 먹은 음식이나 직접 만든 음식을 보여주는 이 게시판의 게시물들은 운영자가 직접 뽑아 사이트 메인에 게시하는 ‘오른쪽 베스트’ 글에 꼬박꼬박 뽑히는 편이다.

싸우면서 친해지는 취미 친구들

루리웹은 서브컬처 매니아들이 각자의 취향을 들고나와 모인 곳이다. 예전에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소수의 마음 맞는 친구들과 취미를 나눴다면 지금은 루리웹이라는 느슨하고 거대한 공간 안에서 마음껏 오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루리웹에서 많은 호응을 얻는 게시물들은 취미활동과 관련이 있다. 자랑할 만한 피규어를 처음부터 손수 만들어내거나,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장소에 일일이 방문하는 등 정성을 들인 게시물은 언제나 많은 추천을 받는다. 더러는 놀랄 만큼 전문적인 활동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어 루리웹의 콘텐츠는 늘 풍부하게 유지되는 편이다. 만약 루리웹에 게시되어 있는 취미활동 중 어느 하나를 좋아하게 된다면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콘텐츠 때문에 매일같이 루리웹을 찾게 될 것이다.

다만 루리웹에서는 이용자들끼리 싸우는 일을 보기가 어렵지 않다. 요즘은 ‘덕후’라고도 부르는 매니아들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니만큼 나와 상대방의 ‘취향 존중’과 관련한 문제가 자주 일어나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반말을 사용하며 대부분의 덕후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매우 잘 아는 편이고, 확고한 취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같은 취미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알기 힘든 용어도 자주 사용한다. 유머 코드도 사뭇 다르다. 게임 ‘히어로즈 오브 스톰’의 로고를 가지고 패러디하며 웃는 게시물은 루리웹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대다수의 이용자가 남성인 만큼 다른 남성 중심 커뮤니티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루리웹은 반페미니즘 정서가 매우 강한 편이다.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를 비판하는 게시물은 늘 이용자의 호응을 얻는다. 동성애에 대한 태도는 특이할 만하다. 게이 포르노나 동성애 문화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는 편이지만 결코 동성애에 우호적이지는 않다. 특히 유머 게시판 이용자들끼리 서로를 칭할 때 ‘유게이(유머 게시판을 이용하는 게이)’라고 부르는 점이 눈에 띈다. 현실에서는 친한 친구를 ‘새끼’라고 부르는 것처럼 ‘유게이’라는 호칭은 멸칭(蔑稱)인 동시에 매우 친근하게 여기는 것이기도 하다.

때로는 공공장소에서 읽기 민망한 게시물도 자주 올라온다. 예컨대 일본 AV(Adult Video) 배우의 사진도 자주 올라오는 편이다.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수위가 높은 콘텐츠에 대해 거리낌 없이 얘기하기도 한다.

친노·친문이지만 반(反)김정은

루리웹의 다른 게시판들과 다소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곳은 ‘북유게’라고 불리는 정치유머 게시판이다. 이곳의 정치 성향은 친노·친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용자의 연령대도 다소 높은 편이다. 최근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조국 전 장관을 옹호하는 분위기가 매우 짙었다. 이 때문인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아예 ‘루리웹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명왕’ 문재인입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직접 찍어 루리웹 회원을 호명하며 지지를 호소하는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명왕’은 문재인 대통령의 외모가 만화·애니메이션 ‘원피스’에 등장하는 캐릭터 ‘실버즈 레일리’, 일명 명왕을 닮았다고 해서 루리웹에서 통용되던 별명이었다. 여전히 이 게시물은 북유게의 공지사항으로 계속 노출돼 있다.

다만 다른 게시판에서는 이런 성향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북한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는 이용자들이 많아 김정은을 이용한 패러디 게시물이 인기를 얻기도 한다. 일본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좋아하면서 일본 사회·문화에 익숙한 이용자가 매우 많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문제에 한해서는 반일(反日)의 경향이 강하다. 유독 반려동물에 대해 우호적이기도 하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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